269화. 방법은 역시
초무하가 온몸을 덜덜 떨었다.
그럴 수밖에.
하투제라니.
하투제라니.
어찌 자신이 하투제에 참가한단 말인가.
꿈도 꾸지 않았다.
아니, 자신만이 아니라 맹룡대 일 년차 생도 대부분이 그러했다.
작년 맹룡대 칠 조의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다.
왜 신화라 칭하겠는가.
자신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담당 교관이 칠 조 선배들이 말한 그 분도 아니고 말이다.
헌데, 관주의 명으로 맹룡대 일 년차도 모두 참가라니.
하투제가 열리는 목란산을 향해 이동을 하는 와중에도 떨림이 멎지 않았다.
그런 그의 시선이 앞에서 당당히 걸음을 옮기는 생도에게 닿았다.
그녀의 이름은 추휘연.
같은 조의 여자 생도다.
내공을 도통 쌓지를 못해 성취가 가장 낮은.
헌데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응? 왜?"
초무하의 시선을 느낀 공야휘연이 슬쩍 돌아보았다.
"아니. 추휘연, 너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웃을 수 있나 해서······."
"그럼 울까?"
돌아온 대답에 초무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지만."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거야. 혹시 또 모르지,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칠 조 선배들처럼 우리가 작년 같은 일을 만들지도."
초무하는 긴장도 잊고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불가능을 저리 태연히 입에 담는 추휘연의 행동 때문이다.
그 웃음에 두 눈을 가늘게 뜨는 공야휘연.
"세상에 절대로 불가능한 것은 없어. 일 푼, 아니 일 리의 가능성은 있을 거야."
초무하는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하자고."
추휘연이 싱긋 웃었다.
추녀라 할 얼굴이건만.
그 웃음을 본 순간 초무하는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의 눈웃음이 이상하게도 무척이나 예뻐 보였다.
'내, 내가 왜 이러지. 갑자기 미쳤나······."
초무하가 어떤 반응인지는 관심도 없이, 공야휘연은 자신의 활을 쓰다듬었다.
사일자뢰궁.
교룡관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꺼내 들었다.
그놈들에게 제대로 복수하기 위해.
'응? 그러고 보니 추휘연이 궁술을 수련한 적이 있었던가?'
초무하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항상 양팔에 차고 있던 팔찌도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추휘연 덕일까.
초무하는 떨림이 멎은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 선배님들도 그러셨는데. 한번 전력을 다해 보는 거야. 안 되면 더 열심히 수련하면 되는 거지.'
***
하투제 하루 전 밤.
목란산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맹룡대까지 참가하면서 많은 이들이 모여든 탓이다.
하무백이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올해는 사람이 많은 만큼 좀 복잡하겠네."
"설마 맹룡대 전원을 참가 시킬 줄은 몰랐어요."
한설빙이 곁에서 중얼거렸다.
"뭐, 훈련의 성과를 확인하는 차원이겠지. 관주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지."
하무백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이런 이들과 달리.
맹룡대 칠 조와 와룡대 이십 조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전략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었다.
상대해야 할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생존확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니까.
"맹룡대 우습게 보고 덤비면 안 된다."
당진산이 그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맹룡대 생도들.
"어느 정도인가요?"
은화량이 조심스레 물었다.
사실 맹룡대 생도들이나 자신들이나 시작은 별반 다를 게 없기는 했다.
자신들 역시 맹룡대에 가야 할 수준이었으나, 시중을 위해 꼼수로 와룡대로 넣었던 것이니.
"객관적으로 따지면 너희가 더 강할 거야. 아무래도 익힌 무공이나, 심법이 차이가 나니까. 게다가 너희는 영약도 먹고, 하 교관님이 손수 신경을 써주시기도 했고."
백리평의 설명에 다섯의 얼굴이 살짝 하얘졌다.
분명 강해졌지만, 그때의 고통이 떠오른 탓이다.
영약의 맛 역시.
"그런데. 맹룡대는 방패가 있어."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다섯.
"하투제 같은 집단전에서는 방패가 굉장히 큰 위력을 발휘해."
연하민이 말했다.
"작년의 우리도 그 도움을 크게 받았을 정도야. 산길에 방패를 가지고 움직이는 게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전투를 펼칠 만한 곳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져."
연하민의 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는 맹룡대 생도들.
그 덕에 작년에 남궁지후를 잡을 수 있지 않았던가.
"거기에 이번에는 집단전 훈련을 제대로 받았으니까."
단목운뢰가 말했다.
자신들 역시 그 훈련을 받지 않았던가.
"방법은 역시."
연하민이 결정을 내린 듯 말했다.
"잠복과 기습."
그녀의 말에 결연히 고개를 끄덕이는 와룡대 이십 조 생도들.
이미 목란산의 지리를 익히며 수없이 연습을 했다.
추적, 잠복, 은신, 기습.
"절대 정면에서 맞붙으면 안 돼. 뒤에서 기습하고 빠지고. 숨고. 그것을 반복해야 해. 너희의 목표는 가장 오래 생존하는 거니까."
***
새파란 하늘의 태양빛이 뜨겁다.
도도히 흐르는 강 바로 앞의 높은 암벽 위의 초지.
그곳에 봉분 두 개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두 사람.
남궁유와 남궁후였다.
남궁휘가 지내던 마을에 도착한 지도 수 일이 지났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 가족을 따뜻이 맞아 주었다.
이곳에서 아버지가 그냥 무명이라는 이름으로 지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남궁이라는 성을 밝힐 수는 없었기에.
남휘, 남유, 남후라는 이름을 밝히니.
십수 년만에 드디어 이름을 알았다며 밝게 웃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라니.
아버지가 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어머니도 계신 곳이고.
왼쪽이 남궁유의 어머니, 오른쪽이 남궁후의 어머니라 하였다.
두 사람은 매일 아침 이곳으로 와서, 오후 느즈막히 돌아갔다.
눈앞에 펼쳐진 강.
산월마림에서부터 흘러나온 강이라 했다.
저 강 덕에 아버지가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러고 보니. 오늘이 하지네."
하늘을 올려다보던 남궁후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남궁유가 슬쩍 웃었다.
"작년 생각이 나는 모양이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후.
인생 첫 패배였으니까.
절대 잊을 수 없으리라.
그 패배 덕에 자신은 변화했고, 오늘이 있었다.
어찌 보면 아주 작은 계기였을 텐데.
그 덕에 아버지를 찾고 어머니를 찾았다.
여러 모로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목란산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 녀석들 잘 하려나."
남궁후가 중얼거렸다.
당진산의 내기 때문에 와룡대 일 조와 승부를 봐야 하는 와룡대 이십 조.
자신 역시 그들의 수련을 도왔기에 마음이 쓰였다.
"뭐, 하 교관님이 계시니까."
남궁유의 말에 남궁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사람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게 할 것만 같았으니까.
"그보다. 그때의 패배는 설욕을 할 거야?"
남궁유의 물음.
"글쎄. 굳이 거기에 얽매일 이유가 있을까?"
무언가 초탈한 듯한 모습.
절정의 경지에 든 이후 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이다.
동생의 그런 모습이 기껍다는 듯 남궁유가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누나 차례지."
"응?"
"더 강해져야지. 이번 동투제."
남궁후가 두 눈을 반짝였다.
얽매일 이유가 없다고 하더니.
말만 그런 것이었다.
***
하지.
하루 중 낮이 가장 긴 날.
하지답게 뜨거운 햇볕이 얼굴을 찔러 왔다.
팽도율이 단상에 올라가 짤막한 말을 하고, 곧바로 하투제의 시작을 선언했다.
잠룡대, 와룡대, 맹룡대 생도들은 곧바로 판정관과 함께 목란산으로 진입했다.
앞으로 한 시진 후.
전투가 시작된다.
하무백은 그렇게 움직이는 생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설빙 역시 마찬가지.
두 사람은 판정관에서 빠졌다.
맹룡대 교관들은 하투제의 판정관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공 수위의 한계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지 않았지만, 맹룡대 교관이라는 이유로 역시나 빠진 상태.
참여 인원이 늘어난 덕에 잠룡대와 와룡대 일 년차 교관은 물론 이 년차, 삼 년차, 사 년차 교관들 일부도 차출되어 투입되었다.
"얼마나 버틸까요?"
곁으로 다가온 연하민이 물었다.
"글쎄. 예상치 못한 사람이 끼어 들었는데··· 과연 그게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모르겠군."
"네?"
갑작스레 예상치 못한 사람이라니.
맹룡대 일곱 사람의 시선이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별것 아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하무백.
허나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조금 전 보았던 그녀가 지나간 길을 바라보았다.
'없었는데, 있다? 내 기감을 속였다라······. 분명 내공이 전혀 없던 녀석이었는데.'
팔짱을 끼는 하무백.
다른 생도들과 달리 내공이 하나도 없었기에 오히려 인상이 남아 있는 생도였다.
'재미있군. 기물까지 사용해서 맹룡대에 들어왔다라.'
저 정도 무공 수위로는 절대 하무백의 기감과 이목을 속일 수 없었다.
그런데 무공을 익힌 흔적을 전혀 몰랐으니.
기물을 사용한 것이 분명할 터.
사파, 그리고 기물.
"시끄러웠겠네."
하무백이 작게 중얼거렸다.
"네?"
한설빙이 그런 하무백을 돌아보았다.
"아니야."
그리고 훌쩍 몸을 날려 목란산으로 사라지는 하무백.
아무래도 직접 봐 두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사 신분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
천하제일세가 호북연가.
그 연가의 가주인 연자경이 수하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해련의 전령이 무창에 들어왔다고?"
연자경의 얼굴에는 흥미롭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네."
"무슨 일로?"
"그것이 하무백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
"흐음."
수하의 보고에 생각에 잠기는 연자경.
"최근 사해련의 동태는?"
갑자기 저렇게 움직일 리 없으니 분명 무슨 변화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전체적으론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습니다만······."
"다만?"
"흑오단(黑鳥團) 놈들이 좀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기는 했습니다."
흑오단.
정천맹에 천목각이 있다면 사해련에는 흑오단이 있었다.
사해련의 정보조직.
그들이 바빠졌다는 것은.
"사해련에 무슨 일이 있기는 있다는 거로군."
연자경의 얼굴에 흥미가 일었다.
사해련에 일이 생겼다.
그런데 갑자기 하무백을 찾았다.
"무슨 일일 것 같나?"
연자경이 수하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정파의 영역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하무백에게 사람을 보낼 일이 없을 테니까요."
수하의 답에 연자경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 역시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하무백이라는 인간은 정파인 주제에 사파에 대해 별다른 적대감을 보이지 않는 별종이었으니까.
그놈이 적대감을 보이는 곳은 혈교와 마교 두 곳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인간들 하고.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겠어."
연자경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수하는 가만히 있었다.
"혼란은 변화를 만들지. 지금까지의 변화는 모두 맹주 놈에게 유리한 쪽이었지만."
혼란의 시작은 하무백의 좌천이었다.
헌데 그것이 독이 될 줄은.
이제 자신들 쪽으로 그 혼란과 변화를 가지고 와야 했다.
"풀을 건드려 뱀이 놀라게 해보도록 하지."
타초경사(打草警貯).
사해련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건드려서 반응을 보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직접 움직이시면······."
"우리가 움직이면 안 되지. 사해련이니 소림사에게 이 정보를 흘리면 될 일이야."
"아!"
수하는 경탄한 표정을 지었다.
소림사.
정파제일문.
그리고 천하제일문.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말이다.
허나.
지난 전쟁으로 그 성세가 많이 죽었다.
그랬기에 당금 강호에서 천하제일문이라 하면 무림인들은 무당파를 먼저 떠올림이니.
그럼에도 그들은 마(魔)와 사(邪)를 증오했다.
혈교와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 사해련과 연합할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한 이들이 소림사였으니.
사해련의 전령이 은밀히 무창에 들어와 있다는 정보만 전하면.
그들이 알아서 풀을 쳐줄 것이다.
"더불어 전령이 만나러 온 하무백도 건드릴 지도 모르고."
연자경이 음습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