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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72화 (272/312)

272화. 미친년인가?

상대의 황당하다는 반응에는 아랑곳 않고 공야휘연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하무백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그 눈빛에 얼굴이 뚫릴 지경이었다.

"뭐, 뭐냐?"

하무백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그럴 수밖에.

이런 경우는 하무백도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여인이다.

맹룡대 훈련에서 잠깐 보았다고는 하나, 어쨌든 처음으로 마주한 여인.

거기에 사해련주의 핏줄로 추측이 된다.

그런데 다짜고짜 자신에게 저런 반응이라니.

맹룡대 훈련에서 인정사정없이 굴렸으니 자신에게 분노를 토해내고 있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저 모습은 흡사 기다리던 정인(情人)을 만난 여인이지 않은가.

처음 보는 여인이 자신에게 저런 모습을 보인다고?

하무백은 단언컨대 처음 겪는 일이다.

그랬기에 황당했고, 당황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기에.

"저, 그러니까, 그게······."

하무백의 물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전 만나고 싶었다고 소리친 그 사람이 맞나 싶었다.

그 사이 하무백은 조금씩 냉정을 찾아 갔다.

처음 겪는 상황에 순간적으로 당황하긴 했지만, 하무백은 하무백이다.

목숨이 위기에 이르는 상황도 수없이 겪었던 그였다.

이런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었지만.

"사해련에서 무얼 노리고 교룡관에 잠입한 거지? 칠채봉환까지 사용해가면서."

하무백의 냉정한 물음에도 공야휘연은 개의치 않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무백을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여, 여, 역시 알아보셨군요! 역시 하무백 대협!!"

감격에 찬 외침이다.

칠채봉환.

기물 중의 기물이다.

절정고수의 내공을 금제한다는 게 어디 보통 일이던가.

소문은 들었을지 몰라도 그 실체를 확인한 사람은 전무하다시피한 기물이다.

헌데 하무백은 자신이 칠채봉환을 사용했음을 바로 알아보고 있지 않은가.

역시 천하제일인이다.

하무백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지금 대화가 되지 않고 있었으니.

"공야장천과의 관계는?"

그럼에도 다시 물음을 던졌다.

그 물음을 들은 공야휘연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어떻게 봐도 웃음이다.

"이렇게 철저히 정체를 숨겼는데 그, 그것도 아시다니. 역시······."

계속되는 감격과 감동.

하무백은 순간.

'미친년인가?'

그런 생각까지 떠올렸다.

하무백의 두 눈이 서서히 차가워지는 것을 눈치챈 공야휘연은 그제서야 번쩍 정신을 차렸다.

"할아버지세요."

그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전에 공야휘연이 제대로 답했다.

비로소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된 것이다.

하무백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핏줄임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녀라는 사실은 좀 의외였다.

공야장천이 손자, 손녀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라면 절대 이곳에 손녀를 보낼 리가 없었다.

"가출했군."

단번에 내린 결론.

생각보다 심각한 사안은 아닌 듯했다.

사해련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간자를 잠입시켰나 하고 지켜본 것인데.

단순 가출이라면.

다만 왜 가출까지 해서 맹룡대에 온 것일까?

하무백의 말에 공야휘연은 살짝 고개를 돌리고는 손가락을 배배 꼬았다.

"고, 공야휘연이라고 해요. 그리고 꼭 만나고 싶었어요."

아까 했던 말의 반복.

그러니까.

이 소저가 지금.

날 만나기 위해 사해련에서 가출해 맹룡대까지 입관했다는 말인가?

"나를?"

하무백이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공야휘연.

어이가 없었다.

"왜?"

다시 묻는 하무백.

"그게, 저. 그러니까······."

우물쭈물거리는 공야휘연.

그녀 스스로도 그런 자신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두 눈을 감고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당당히 대답했다.

"천하제일인을 만나고 싶었어요."

헌데 그 답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천하제일인이라서 만나고 싶었다니?

"누가? 내가? 천하제일인?"

하무백이 다시 묻자 또 한번 고개를 끄덕이는 공야휘연.

"누구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것이?"

하무백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천하제일인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드넓은 천하에.

어떤 기인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 할아버지가······."

하무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세상은 소휘웅이 혈교 교주와 마교 교주를 처단한 천하제일인으로 알고 있지만. 진실은 다르다고. 호천단주 하무백이야말로 천하제일인이라고."

공야휘연이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그 늙은이가······.'

공야장천의 얼굴을 떠올리는 하무백.

그라면 그날의 진실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최후의 결전이 벌어진 자리에는 없었지만.

그의 경지라면 그 전투를 느낄 수 있었을 테니.

멀지 않은 곳에서 혈교와 마교의 고수들을 상대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소휘웅이라면 자웅을 결해볼 만하나, 하무백은 자신이 없다고······."

뒤이어 다른 말을 덧붙이는 공야휘연.

'후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파의 지존, 공야장천.

사파이나 사이하지 않았고, 강함을 숭상하는 인물이었기에.

그랬기에 순순히 하무백의 강함을 인정했던 이.

허나, 손녀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했을 줄이야.

"그래서 꼭 만나보고 싶었어요. 할아버지가 인정한 천하제일인을. 제 영웅이 되었거든요."

발그레해진 얼굴로 속삭이듯 말하는 공야휘연.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해련이 뒤집어졌겠군."

하무백의 말에 시선을 피하는 공야휘연.

저 소저도 자신이 저지른 일의 여파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였나?'

그렇지 않아도 남궁세가로 가는 길에 사파로 추측되는 무인들의 기척을 몇 번 느꼈다.

하오문의 움직임도 평소와 다른 듯하였고.

전부 이 소저 때문이었다.

'현광. 그 땡중이 이 사실을 아는 날에는······.'

골이 지끈거렸다.

소림사의 방장 현광.

승려가 아니라 노괴(老怪)다.

불심을 명분으로 혈교와 마교에게는 잔혹한 마귀가 된.

강하기도 강했다.

하무백이 감탄한 몇 안 되는 무인 중 하나였으니.

그 땡중은 마교와 혈교뿐만 아니라 사파 역시 증오하고 있었다.

마, 혈, 사.

모두 증오의 대상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상을 혼란케 하는 사이한 것들.

모두 똑같은 제거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다른 이도 아닌 사파 지존의 손녀가 교룡관에 있다.

그 노괴가 당장 숭산을 박차고 달려 나올 일이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네?"

"만났잖아."

"어······."

공야휘연은 말문이 막혔다.

맞다.

맹룡대를 꼭 집어 들어온 목적은 방금 이루었다.

만나고 싶은 천하제일인을 만났으니까.

그런데.

그 뒤는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그······."

잠깐 생각에 잠겼던 공야휘연이 입을 열었다.

"복수를 좀 해줘야 할 놈들이 있어서. 그 일은 끝내야 할 것 같아요."

"와룡대 일 조?"

하무백의 물음에 공야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까지 어떻게 아냐는 물음은 던질 필요가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무백은 천하제일인이니까.

그것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납득하는 공야휘연이었다.

"절 모욕했으니 응당 대가를 치러야지요."

그리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어려있었다.

"잠깐."

문득 하무백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

'허허. 내 손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네는 모를걸? 좀 더 큰다면 능히 무림화로 꼽힐 미모일세.'

공야장천이 자랑처럼 이야기한 말.

그리고 세인들이 떠드는 무림오화.

그중 사이화(邪梨花).

분명 눈앞의 공야휘연일 것이다.

손녀가 둘이라는 얘기는 못 들었으니.

그런데 저런 추녀의 모습이라면.

"기물을 한두 개 훔쳐 나온 게 아닌 모양이로군."

"이, 이건 제 거예요!"

공야휘연이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얼굴도 바꾸고 내공도 감췄다.

이건 사해련이 아니라 사해련 할아버지가 나서도 못 찾을 일이다.

하무백이 알고 있는 공야장천이라면 손녀를 찾기 위해 천하를 뒤지고 있을 터.

'위험한데······.'

그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사파의 무인들이 천하 곳곳을 뒤지고 다니는 것을 그 땡중이 두고 볼 일이 없었으니까.

특히나 정파의 후기지수가 모인 교룡관이 있는 무창, 정천맹의 본단이 있는 낙양.

그리고 땡중의 숭산.

이 세 곳은 사파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곳이다.

그 땡중에게는.

천하에 사파가 없는 곳은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 땡중은 그런 것조차 인정하지 않으니.

"너. 네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을 벌인 것인지 알고 있나?"

하무백의 물음에 공야휘연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돌아가라."

하무백이 낮게 말했다.

공야휘연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하무백을 만나기 위해 가출을 하여 맹룡대에 들어온 것이지만.

만났다고 바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영웅의 모습은 계속 보고 싶은 법이니까.

그때.

하무백과 공야휘연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있었다.

잠룡대 생도들이었다.

하무백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공야휘연을 보고 다시 한번 말했다.

"분명 말했다. 빨리 돌아가라."

하무백은 그대로 사라졌다.

공야휘연도 하무백이 사라진 후 빠르게 움직였다.

잠룡대 생도들이 가까워짐에 따라 그녀도 기척을 느낀 것이다.

***

와룡대 이십 조의 하투제는 순조로웠다.

각자 흩어져서 정찰을 하고, 다시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고.

은신 후 이동.

매복 후 기습이라는 작전이 잘 먹혀든 덕이다.

다만 와룡대 일 조는 어느 쪽으로 움직였는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점점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오후로 접어든 시각.

와룡대 이십 조는 인내심 있게 매복하고 있었다.

그 시각.

와룡대 일 조는 와룡대 이십 조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들 탈락한 거 아닐까?"

화보명이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설득력 있는 추측이었다.

그 쓰레기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버텼을 리가 없으니까.

자신들 다섯 역시 상당히 고생하지 않았던가.

철갑철기군과의 훈련이 아니었으면, 어쩌면 탈락했을지도 모른다.

철령이 한 쓰잘데기 없는 짓의 덕을 보게 될 줄이야.

"훗. 아무래도 그렇겠지?"

벽이겸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자신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아남았는데, 그딴 놈들은 탈락해도 진작 탈락했으리라.

무슨 상상을 하는 것일까?

벽이겸과 탁무전의 웃음이 음흉하게 변했다.

뒤이어 다른 세 사람에게도 음흉한 웃음이 번졌다.

"후반기에 갈 적당한 기루들을 미리 물색해봐야겠어."

"응?"

벽이겸의 말에 철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뜬금없이 기루라니.

자신들이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 아니던가.

"시종 놈들에게 한번 보여줘야지. 기루가 어떤 곳인지. 크크크크."

음흉하면서도 음탕한 웃음이다.

그제야 나머지 넷은 벽이겸의 의도를 이해했다.

자신들의 시종이 될 다섯 사람.

그중 한 사람은 연하민이였으니.

그녀까지 데리고 기루로 가겠다는 것 아닌가.

과연 그곳에서 질펀하게 노는 자신들의 모습에 도도한 연하민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병신 새끼들. 지들이 직접 나서는 것도 아니고. 고작 저딴 쓰레기들이랑 붙어서 이기는 것으로 내기를 걸다니."

철령이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그는 아직도 당진산에게 당한 분이 풀리지 않았다.

애써 어머니까지 불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탓도 있다.

대신 훈련만 죽어라 했지.

그 훈련 덕에 지금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그들의 대화에 판정관이 속으로 인상을 썼다.

겉보기에는 그저 무표정했지만, 속마음으로는 한숨을 수십 번도 더 쉬었다.

'하아. 이런 놈들이 정파의 후기지수라니······. 신진팔문의 미래도 뻔하군.'

그는 잠룡대의 교관이었다.

쒜액!

그때 공기를 찢어 발기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퍽!

철령의 어깨에 촉이 없는 화살이 박혔다.

그래도 치명적인 급소는 아니었기에 사망 판정은 나지 않았다.

다섯은 즉시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는 웬 맹룡대 여생도가 활을 들고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저년은?"

보는 순간 기억이 났다.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외모였으니까.

물론 나쁜 쪽으로.

보는 것만으로 기분 나쁘게 생긴 추한 여인.

분명 담룡서각에서 부딪힌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껏 욕을 퍼부어 주었었는데.

지 주제도 모르는 년이 그때 일에 앙심을 품은 것일까?

이런 기습이라니?

재빨리 주변을 살피는 와룡대 일 조의 생도들.

다른 이들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맹룡대 생도들의 방패는 상당히 귀찮았는데, 아무리 보아도 저년 혼자만 온 것 같았다.

"다른 놈들은 다 탈락했나 보군."

철령이 살기가 줄줄 흐르는 눈으로 말했다.

그때.

저 못생긴 년이 다시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다.

"흩어져서 잡는다!"

벽이겸의 말에 그들은 경공을 펼쳐 빠르게 산개했다.

과연.

다른 생도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훌륭한 경공이었다.

쌔액!

푹.

다시 한번 화살이 날아왔지만 애꿎은 땅에 꽂혔다.

공야휘연은 그 모습을 힐끔 보고는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와룡대 일 조가 전력으로 그 뒤를 쫓았다.

'자, 잘 따라와라. 그러라고 일부러 내공도 싣지 않고 약하게 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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