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탈락이다
와룡대 이십 조는 갑자기 급변한 산속의 분위기에 기척을 더욱 죽였다.
산속 동물들의 울음이.
벌레들의 소리가.
바람의 냄새가 바뀌었다.
무언가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
와룡대 이십 조는 더욱 신경을 곤두세웠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저녁노을이 찬란한 시간.
자신들이 숨어 있는 이곳에 무슨 일이 생길 듯했다.
사사사삭.
누군가가 발소리를 죽이고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로 거친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그리고 발소리를 넘어.
쌔액!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
추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헌데 그 방향이 와룡대 이십 조가 매복한 쪽이다.
빠르게 달려오는 인영을 확인했다.
맹룡대다.
여생도였고.
활을 들고 있다.
가볍고 조용히 달리고 있었다.
놀라운 움직임.
저것이 맹룡대 생도가 보일 수 있는 움직임이란 말인가?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괜한 전투에 말려들 수는 없었으니까.
대신 전투의 말미에 끼어들어 어부지리를 얻을 순 있었다.
비겁하다고 할 수 없는 전술.
이것은 실전 전투를 가정한 하투제였으니 .
연하민도 그 부분을 계속해서 강조하지 않았던가.
비겁과 정정당당에 얽매이지 말라고.
어떻게든 최후까지 살아남을 수단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라고.
하투제의 규칙이 허락하는 한에서.
'맹룡대 생도들은 연합도 했으니까.'
나중천이 맹룡대 생도들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 지난 후 모습을 드러낸 다섯.
순간.
와룡대 이십 조의 호흡이 흔들릴 뻔했다.
그랬다가는 기척을 드러냈을지도 모를 일.
가까스로 기척을 숨겼다.
당연했다.
모습을 드러낸 놈들은 와룡대 일 조였으니까.
설마 이쪽에 나타날 줄이야.
모습들을 보아하니 제법 고생들을 한 모양이다.
'맹룡대에게 당했을지도 모르겠네.'
지금 쫓고 있는 이도 맹룡대.
게다가 방패를 들고 병진을 짠 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저들이 아무리 뛰어난 후기지수라 하더라도 말이다.
쌔애액!
다시 한번 날아오는 화살.
챙!
검으로 대번에 쳐내는 화보명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이곳까지 쫓아오면서 약이 바짝 오른 모습이다.
덕분에 허점이 곳곳에 보였다.
쌔액!
또 한 번 들리는파공성.
퍽.
이번에는 공구패의 종아리에 명중했다.
"큭."
통증이 적지는 않은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판정관은 사망 판정을 내리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부위.
대신.
"세 번 중 두 번. 한 번 더 맞으면 사망이다."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는 했다.
화살에 세 번 명중되면 부위에 상관없이 사망 판정이 떨어지는 규칙.
공구패의 얼굴이 더욱 험악해졌다.
"씨발. 저 못생긴 년이······."
절로 흘러나오는 욕설.
다른 네 사람의 얼굴도 험악해졌다.
이곳까지 추적하면서 다들 한 발씩은 맞은 상태.
공야휘연은 이미 세 발 명중 시 사망이라는 규칙을 알고 있었다.
다른 조를 상대할 때 확인했으니까.
그래서 다섯 전원에게 한 발씩 명중시킨 것.
그것도 통증이 움직임에 미묘한 방해를 할 만한 부위들을 골랐다.
"빌어먹을 년."
철령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두 눈은 분노로 활활 타고 있었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흩어져서 이동하는 와룡대 일 조.
그들의 등이 와룡대 이십 조에게 훤히 드러났다.
은화량이 신호였다.
그가 앞으로 튀어 나가면서 그대로 공구패의 등을 공격했다.
"뭐, 뭐야?"
깜짝 놀라는 공구패.
앞으로 나가던 와룡대 일 조가 멈춰서 황급히 공구패 쪽으로 몸을 돌리는 찰나.
남은 네 명이 튀어나오며 그들을 공격했다.
챙! 채챙! 챙!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주르르륵.
그러나 와룡대 일 조의 다섯이 명백히 손해를 보았다.
일방적으로 밀린 것이다.
기습에 제대로 힘을 싣지 못한 탓이다.
와룡대 이십 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빠르게 공격해나갔다.
"크윽. 이 개잡놈의 새끼들이."
벽이겸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공격해 오는 이들의 기세가 매서웠다.
더군다나 처음에는 각자 기습하는 것 같더니 어느새 검진을 이루고 있었다.
오 대 오의 전투.
"오냐. 이 새끼들 아주 죽여주마!"
자신들도 놀았던 게 아니다.
이 쓰레기 새끼들 때문에 얼마나 굴렀던가.
그 울분을 모두 돌려주리라.
그렇게 마음먹고 벽이겸, 탁무전, 철령, 공구패, 화보명 이 다섯이 땅을 박차는 순간.
검진이 자연스레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십 조 생도 다섯이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도주했다.
"뭐, 뭐야··· 저 새끼들······."
갑작스런 기습 후 바로 도주라니.
제대로 싸우려 했건만.
와룡대 일 조 다섯은 양쪽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한쪽은 화살을 날린 빌어먹을 년이고.
한쪽은 개잡놈의 쓰레기 새끼들.
"각개격파로 가자."
철령이 말했다.
방금 한 번 부딪힌 걸로 알았다.
와룡대 이십 조 저놈들은 확실히 자신들보다 약했다.
아무리 검진이라 한들.
세 명 정도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리라.
철령의 의견에 벽이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어떻게 나누지?"
"일단 공구패 너는 개잡놈의 새끼들 쪽으로 가는 게 좋겠다."
공구패의 물음에 벽이겸이 답했다.
이유는 뻔했다.
화살에 두 번 맞은 탓이다.
공구패는 고개를 끄덕였다.
철령과 화보명이 빌어먹을 년을, 나머지 셋이 개잡놈들을 맡기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곧장 달렸다.
와룡대 이십 조 쪽은 이십 조의 판정관이 있었기에, 일 조의 판정관은 철령과 화보명에게 따라붙었다.
***
"씨발. 길도 아닌 곳으로······."
와룡대 이십 조는 흩어져서 미리 계획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목란산에서도 유독 산세가 험하고 나무가 울창한 곳이다.
이곳은 미리 와서 훈련받은 이십 조 생도들도 상당히 힘겹게 움직이는 곳이다.
오늘 처음 목란산에 들어온 이들이 쉬이 움직일 수 있는 지형이 아니었다.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이 경공을 방해했으니.
거기에 노을이 점점 진해지며 어둠이 차차 몰려오고 있었다.
가뜩이나 어두운 산속의 시야가 점점 제한되고 있었다.
"미치겠군. 이런 곳이라니······."
이들은 철갑기마대에게 훈련받았다.
평원에서의 전투가 주특기인 이들에게.
당연히 이런 울창한 산속에서의 전투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 결과.
쌔액.
아래에서 갑자기 날아온 검.
나중천의 공격이었다.
"윽."
챙!
겨우겨우 상대의 검을 막은 탁무전.
그러나 나무뿌리에 걸려 몸이 기우뚱했다.
완벽한 기회다.
나중천의 공격이 이어졌다.
검법은 알고 있었다.
잠룡대와 와룡대라면 모두 배우는 검법.
유룡검법이었다.
"그따위 검법으로 감히!"
몸이 쓰러지는 와중에 탁무전은 자신의 검법을 펼쳤다.
빙혼설령검.
빙천궁의 절기였다.
유려한 움직임의 검이 나중천의 검을 쳐냈다.
그리고.
탁무전은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체면을 차릴 여유가 없었다.
그대로 나려타곤의 수법으로 바닥을 구른 탁무전은 바로 반격에 들어갔으나.
나중천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빌어먹을······."
등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철갑철기군과의 훈련으로 바닥을 구르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조금 전 나려타곤을 펼칠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무인으로 바닥을 굴러서 상대의 공격을 피한다는 것은 수치라 생각했었으니까.
만약 나려타곤을 펼치지 않았다면?
'그대로 당했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상황이다.
탁무전과 같은 경험을 벽이겸과 공구패 역시 했다.
아니.
공구패는 탈락했다.
그에게 세 명의 생도가 달라붙은 탓이다.
은화량, 임대치, 영후인.
특히 공구패에게 마지막 일격은 먹인 이가 영후인이었다.
같은 대해문 출신의.
대해문에서 공구패의 시중을 들어주라며 보낸 영후인에게 공구패가 최후의 일격을 먹고 탈락한 것이다.
어디에서 지켜보았던 것일까.
영후인의 일격을 무시하고 도주하려던 공구패의 귀에.
"공구패 사망! 탈락이다!"
판정관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의 그 허망함이란.
믿을 수가 없었다.
곧장 하늘로 쏘아진 탈락의 신호탄.
와룡대의 탈락이었다.
일 조도, 이십 조도 모두 와룡대.
때문에 어느 조에서 탈락자가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이 일 조의 패착이었다.
그러나 철령과 화보명은 탈락자가 당연히 이십 조라 생각하고 각개격파의 움직임을 유지했으니까.
그래서 철령과 화보명은 오히려 공야휘연을 쫓아 더 멀리 떨어졌고.
오 대 이의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벽이겸과 탁무전은 어떻게든 이십 조를 뿌리쳐 만났다.
공구패를 노리는 동안 일대일로 벽이겸과 탁무전을 붙들었던 이들이 필사적으로 쫓아오지 않은 덕이다.
"이 새끼들··· 여간내기가 아니야."
벽이겸의 말에 탁무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구패는?"
탁무전의 물음.
벽이겸은 고개를 저었다.
"설마······?"
불길한 생각에 신음을 흘리는 탁무전.
"몰라."
벽이겸이 짜증 내며 말했다.
"일단 철령과 화보명과 합류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이어진 벽이겸의 말에 탁무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기의 조건은 상대를 탈락시키는 게 아니었다.
더 오래 생존하는 것.
그렇게 벽이겸과 탁무전은 조심스레 되돌아갔다.
하지만 돌아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깊숙한 산속의 울창한 숲.
왔던 길을 찾아 나가는 일은 지극히 어려웠으니.
와룡대 이십 조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 보았다.
그들이 모두 떠난 후.
한자리에 모이는 다섯 사람.
"어떻게 할까?"
영후인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자신의 손으로 공구패를 탈락시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탓이다.
"이 정도면 그냥 승부를 봐도 될 것 같기는 한데······."
조금 전 공구패를 함께 상대했던 임대치가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생존자는 얼마나 되지?"
은화량이 물었다.
나중천이 탈락 신호탄의 숫자를 세고 있었다.
"맹룡대는 이제 한 명 남았어."
그 사이에도 신호탄은 계속 터지고 있었다.
목란산 곳곳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생도인 모양이군."
은화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살을 쏘았던 여생도.
그녀가 갔던 방향에서는 탈락 신호탄이 없었으니까.
"잠룡대는 최소 세 개 조가 남았고, 와룡대는 우리 포함 최소 네 개 조."
나중천이 이어서 말했다.
"잠룡대는 열다섯 명, 와룡대는 스무 명?"
은화량의 물음에 나중천이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조금 전에 공구패가 탈락해서 와룡대는 열아홉."
저녁이 찾아오고 있는데 생각보다 많이 남았다.
자신들의 실력이 자신들의 생각 이상이었지만.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처음 계획대로 가자."
은화량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 크."
임대치가 재미나다는 듯 작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와룡대 이십 조는 벽이겸과 탁무전이 이동한 곳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판정관이 나직한 한숨을 흘렸다.
'저놈들 하룻밤을 보낼 모양이로군. 피곤하겠는걸.'
이렇게까지 하는 놈들은 처음이었다.
하투제는 늦어도 자정 전에는 최후의 생존자가 결정이 났는데.
저놈들은 아예 은신해서 밤을 보낼 생각이다.
그사이 다른 놈들이 전투를 펼쳐 모조리 전멸하지 않는 이상은.
올해는 하루를 넘길 듯했다.
하필이면 자신이 판정을 담당한 조가 이런 작전을 가지고 나오다니.
인상을 찡그린 판정관이 와룡대 이십 조의 뒤를 따랐다.
'흐음······.'
그 모습을 멀리서 공야휘연이 지켜보고 있었다.
'제법이네. 역시 하 교관님이 가르치는 맹룡대 칠 조에게 훈련받는 녀석들이야. 제대로 전투할 줄 아는군.'
내기의 내용을 알고 있는 공야휘연이다.
오래 살아남는 쪽이 이기는 내기.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들은 이 산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생도들은?
어림도 없는 일.
공야휘연 자신이야 당연히 문제없는 일이었지만.
'흐음. 그럼 좀 더 괴롭혀 줄까?'
그녀의 입가에 사악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일 쟤들이 움직일 때까지는 살려둬야지. 아무래도 직접 끝장내는 것이 더 좋을 테니.'
내기에 대한 전후 사정을 알기에.
그리 생각하는 공야휘연이었다.
그녀의 신형이 다시 스르륵 사라졌다.
"귀찮게······."
그 뒤에 나타난 하무백.
이들이 하룻밤을 보낼 작전을 짰다는 것은 알았지만.
막상 실제로 그대로 흘러가니.
귀찮았다.
자칫 문제의 소지가 될지도 모를 생도를 감시하느라 자신 역시 목란산 속을 움직이고 있는 탓이다.
"쯧."
가볍게 혀를 찬 하무백의 모습은 순식간에 유령처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