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 열 명 남았어
밤은 점점 깊어져 가고 있었다.
탈락 신호탄은 밤하늘에 더욱 밝게 빛났다.
연기가 아닌 섬광으로.
마치 목란산 밤하늘에 불꽃놀이를 하듯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밤이 되었다는 초조함에 다들 움직임이 다급해진 탓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열 명 남았어."
탈락 신호탄의 숫자를 계산하던 나중천이 말했다.
열.
그 숫자에 와룡대 이십 조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자신들 다섯.
아마도 와룡대 일 조의 넷.
분명 그렇게 열 명일 것이라 거의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끝냈다.
"어떻게 할까?"
임대치의 물음.
"내일 새벽까지 기다리자. 그때가 가장 지칠 시간이니까."
은화량이 말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들이 직접 경험해 보았기에, 그 시각에 얼마나 지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자면 더 지치게 만들어 줘야지."
은화량의 손에는 사냥한 토끼가 몇 마리 들려 있었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
이제 목란산에서의 토끼 사냥이라면 눈 감고도 할 수준이었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의 경험이 오죽 힘들었어야지.
순식간에 손질을 마친 다섯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쯤이면 좋을까?"
심철산의 말에 다들 동의했다.
적당히 모아온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서 불을 피웠다.
주변에 돌로 잘 둘러싸서 괜히 산불로 번지지 않게 조치까지 마친 후.
토끼 다리 하나를 뜯어서 나무 꼬챙이에 꿰어서는 불에 올려 두었다.
금세 고기 익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타서 없어지기 전에 잘 찾아보라고."
나중천이 히죽 웃었다.
그들은 그렇게 곳곳에 모닥불을 피운 후 토끼 고기를 조금씩 불에 올려놓았다.
냄새가 잘 퍼지게.
준비된 계책인지라 미리 부싯돌과 화섭자를 충분히 챙겼기에 불을 피우는 건 순식간이었다.
모닥불을 여기저기 깔아놓은 후.
와룡대 이십 조는 깊숙한 숲에 자리를 잡고 모닥불을 피운 후 남은 토끼를 구워 배부르게 저녁을 해결했다.
사실 점심도 거른지라 정말 정신없이 먹었다.
"연하민 선배님. 정말 잔인하시다."
배가 부르니 여유가 생긴 것일까.
방금의 작전을 떠올리며 심철산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 다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닥불을 끄고 노숙을 할 곳을 찾아 숨어들며 연하민의 계책을 떠올렸다.
"혹시 밤이 되었고 생존자가 너희와 와룡대 일 조만 남게 된다면, 그때는 굳이 생식할 필요가 없어."
"왜죠?"
불을 피우면 위치가 노출되기 때문에 생식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일단 산속에 남은 사람이 적어서 노출될 위험이 줄어들기도 하지만. 일부러 노출하는 것도 계책이 되기 때문이지."
"계책이요?"
나중천의 물음.
"하투제는 시작된 후 끼니를 해결할 시간이 없어. 아니 애초에 해결할 음식을 챙겨가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다섯.
"끼니도 거르고 힘들게 전투에 임한 후 밤이 왔어. 어떨 것 같아?"
"힘들고, 배고프고··· 죽을 것 같죠."
영후인이 그간의 수련을 떠올리며 답했다.
"그러던 차에 고기 냄새와 불빛을 발견한다면?"
"눈 돌아갈 것 같은데요?"
임대치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을 겪었기에 할 수 있는 대답.
"그런데 막상 와보니 고기가 조금 있거나 타서 없어졌어. 어떨까?"
"눈 돌아가죠. 다른 의미로."
나중천의 대답이다.
"그런데 그때 또 다른 곳에서 고기 냄새가 난다?"
이어진 연하민의 물음.
"아······! 한 조각 희망으로 다시 찾아갈 거고. 그런 상황을 반복해서 겪으면, 체력도 체력이고··· 정신은······."
은화량이 깨달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래. 밤에 너희와 와룡대 일 조만 남았다는 확신이 들면. 한 번 써먹어 봐."
***
물론 지금은 맹룡대 생도 하나도 남아 있었다.
그것도 활을 위협적으로 사용하는.
허나.
그녀 역시 미끼에 당할 것은 마찬가지.
상관없다는 판단에 연하민의 계책을 시행했다.
공야휘연도 첫 번째 미끼에는 걸렸다.
고기 냄새에 혹시나 하고 이끌려 모닥불을 찾은 것이다.
먹고 있으면 귀찮게 사냥하지 않고 자리나 하나 얻을까 하는 생각에.
허나 그녀를 반긴 것은 토끼 앞다리 하나가 모닥불에 기름을 흘리며 타닥타닥 익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 이 새끼들 재미있는 짓을 했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목표와 의도를.
그랬기에 그냥 그대로 두었다.
와룡대 일 조 그놈들이 개고생하는 거야 그녀 역시 바라는 바니까.
하지만 머릿속의 평가를 수정하기는 했다.
'정파 놈들이 다들 곱게 자란 것만은 아니었어.'
이런 수를 쓸 줄 알다니 말이다.
다만 곱게 자란 그놈들은 분명 당하겠지.
"직접 사냥하려면 귀찮겠네."
공야휘연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느새 활에 화살을 걸어둔 채였다.
그녀가 사라지고 하무백이 나타났다.
모닥불을 지그시 바라보는 그.
"제법. 머리를 쓰는군. 역시 연하민이라 해야 하나. 상황이 도와주기도 했고······."
하무백이 피식 웃었다.
이 계책을 수군거릴 때 근처에 있었기에 귀에 들리기는 했었다.
실제로 써먹을 줄은 몰랐는데.
하무백이 공야휘연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나타나 판이 묘하게 흘러서 이렇게 된 것이다.
설마 와룡대 일 조와 이십 조만 남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줄이야.
하무백의 예상으로는 그 전에 결판이 날 줄 알았음이니.
공야휘연은 사해련주의 손녀답게 강했다.
게다가 은신과 이동이 제법 뛰어났다. 궁술 역시도.
해가 지는 동안 홀로 움직이면서도 와룡대와 잠룡대 생도들을 처리한 탓에 판이 여기까지 흘러온 것이다.
'응? 멍청한 놈들. 불빛에 뭐가 있을 줄 알고 저렇게 접근한다는 기척을 줄줄 흘리면서 달려드는 건지. 쯧.'
하무백은 이곳으로 황급히 다가오는 기척에 혀를 한 번 차고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과연 저 어설픈 놈들이 몇 번째 모닥불에서 쓸데없는 체력 소모를 그만둘지 생각하면서.
'내분으로 제 놈들끼리 탈락할지도 모르지.'
허기에 눈이 돌아가 버리면, 조금 있는 고기라도 서로 먹겠다고 싸울 수도 있으니까.
저놈들의 결속력이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와룡대 일 조 네 명도 나름의 재능은 있는 이들이었는지라, 모닥불 근처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조심스레 접근했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모닥불만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혹시 자신들의 접근 기척에 몸을 숨겼나 하는 생각으로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뭐지?"
화보명이 찝찝한 듯 중얼거렸다.
철령이 모습을 드러내고는 모닥불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멈춰!"
벽이겸이 놀라서 외쳤다.
이곳이 함정일 수도 있었다.
맹룡대의 잡년이든 이십 조의 쓰레기들이든.
허나 철령은 망설임이 없었다.
이미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신했고.
고기 냄새까지 맡았으니까.
배가 고파도 너무 고팠다.
굶주림이라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이들이다.
각자 문파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자란 이들이니까.
특히 철령이 더욱 그러했다.
제 어미가 얼마나 살뜰히 챙기고 보살폈는가.
그랬기에 이리도 손쉽게 모닥불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그렇게 모닥불에 도착한 철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토끼의 앞다리로 추측되는 작은 부위 하나가 반쯤 탄 채 불 위에 놓여 있었다.
철령은 빠르게 그것을 잡아채서 입으로 가져갔다.
뜨거웠으나 상관없었다.
지금은 배고픔이 먼저였으니까.
으적으적.
철령이 급하게 부족한 이빨로 반쯤 탄 토끼 고기를 씹었다.
그 모습에 다른 세 사람이 땅을 박찼다.
배가 고픈 것은 모두 마찬가지였다.
허나, 모닥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철령이 먹고 있는 고기 단 하나가 전부다.
황급히 철령을 돌아보았으나.
이미 다 먹어 치우고 뼈를 바닥에 버리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화보명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의 눈이 돌아가 있었다.
"닥쳐. 먼저 먹은 놈이 임자야."
"잠깐. 진정해!"
벽이겸이 거칠게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나 있는 고기를 먹어 치운 철령에 대한 불만이 그의 눈에도 있었으나.
벽이겸은 지금 식욕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대항해서 맹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거 이상하지 않아?"
벽이겸의 지적에 모닥불로 시선이 향하는 세 사람.
"보란 듯이 모닥불을 피워 놓고 한 명이 먹기에도 모자란 고기를 올려놨어. 이거 분명히 그걸 가지고 우리가 싸우기를 바라는 술책이야."
나름 타당한 분석.
그 말에, 두 눈에 불길이 이글거리는 화보명도 더는 발작을 하지 못했다.
"킁킁. 그런데 고기 냄새가 또 나는데?"
탁무전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고기 냄새를 맡은 것이다.
벽이겸이 말릴 새도 없이 두 사람이 튀어 나갔다.
철령과 화보명이다.
굶주린 배에 겨우 고기 한 조각 들어갔다.
아예 굶주린 쪽보다 조금이라도 뭐가 들어간 철령이 더욱 눈이 돌아가 있었다.
"이거······."
벽이겸이 불길한 예감에 중얼거렸다.
탁무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함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역시 몸을 날렸다.
저 둘만 갔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밤새도록 목란산 산속을 누볐다.
모든 모닥불에 고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 이게 뭐야······. 왜, 왜 없어! 이 빌어먹을 놈들아!!"
불빛을 발견하고 전력으로 질주해 가장 먼저 도착한 화보명이 허망한 얼굴로 외쳤다.
이번 고기는 자신의 차지라는 희망으로 달렸건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불만 타닥타닥 타고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분노했던가.
이 상황에 속으로 분노를 삭이는 이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와룡대 일 조를 담당하는 판정관이다.
그 역시 하루종일 굶은 것은 마찬가지다.
그도 사람인데 배가 고프지 않을까.
저 새끼들은 와룡대 이십 조가 깔아놓은 게 분명한 덫에서 고기라도 주워 먹지.
판정관은 그저 저놈들을 따라 밤새 돌아다니면서 먹지고 못하고 자지도 못했다.
뻔히 보이는 덫에 걸려 밤새 산속을 헤매는 일 조 놈들이나.
이런 흉악한 덫을 설치한 이십 조 놈들이나.
둘 모두 판정관의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멍청한 놈들에··· 빌어먹게도 치밀한 놈들······.'
그의 두 눈이 점점 퀭해졌다.
그렇게 밤새 고생한 결과.
철령이 세 조각, 화보명이 세 조각, 벽이겸과 탁무전이 한 조각이었다.
고기를 두고 싸우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아니, 싸우기 직전까지는 갔으나.
이것이 내분을 위한 술책이란 벽이겸과 탁무전의 주장에 가까스로 싸우지는 않았다.
'씨발. 거기에 더해 체력을 빼려는 술책이기도 했어······.'
벽이겸은 세 번째 모닥불에서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알렸다.
허나.
식욕에 눈이 돌아간 철령과 화보명을 말릴 수가 없었다.
잔뜩 굶주린 위장에 찔끔찔끔 들어간 고기 조각은 그들의 식욕을 더욱 부채질했으니.
둘만 둘 수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함께 움직인 벽이겸과 탁무전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차후에는 결국 그들도 모닥불을 향해 달려 들었다.
그렇게 한 조각씩의 고기를 먹은 것이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채 계속해서 산길을 달렸다.
수면욕을 이긴 식욕이라니······.
차라리 그 고기가 없었다면, 다들 포기하고 잠을 잤을 것이다.
하루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니까.
허나 아주 조금 간에 기별도 안 갈 그 고기가 식욕을 폭발시켰고.
두 사람의 이성을 마비 시켰다.
그 결과가 이거다.
새벽하늘의 여명이 강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어스름을 몰아내고 있는 태양.
자신들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후우."
지친 한숨을 몰아쉴 때.
바스락.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돌아보니 와룡대 이십 조 다섯 명이다.
"개새끼들······."
힘없는 욕설이 벽이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개쓰레기들이!!"
저들의 등장으로 철령은 이제야 깨달았다.
밤새 저놈들에게 농락당했음을.
저놈들은 잘 먹고, 잘 잤는지 얼굴의 때깔이 달랐다.
그 분노에 철령이 땅을 박차고 다섯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와룡대 이십 조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려 달아났다.
철령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그 뒤를 쫓았다.
"머, 멈춰!"
깜짝 놀란 탁무전이 외쳤지만, 철령은 듣지 못한 듯 더욱 빨리 달렸다.
화보명도 어느새 뛰쳐나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인상을 찡그린 벽이겸과 탁무전도 따라붙었다.
'완전히 말려들었어.'
벽이겸은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이 떠난 자리.
공야휘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흐음. 재미있네."
싱긋 웃는 그녀.
"나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지."
목란산에서 밤을 보내는 동안 수많은 이들을 탈락시키면서 그녀는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하투제 우승.
맹룡대도 하투제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작년에 동투제도 우승했으니 뭐.
물론 내기는 와룡대 이십 조가 이겨야 한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당연히 그럴 것 같고.
물론 그 중간에 개입은 할 것이다.
자신이 우승하려면 이십 조의 손실도 최대한 키워야 했으니까.
그러자면 저들의 전투를 계속에서 시야에 담아두고 있어야 했다.
그녀의 발이 조용히 땅을 박찼다.
잘 먹고 잘 잔 것은 공야휘연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그 움직임이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슬슬 끝날 때가 되어가나?"
하무백이 가벼운 걸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기감으로 현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바.
이제 이 귀찮은 짓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쩌면 더 귀찮은 일이 무창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사실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