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우승은
철령은 마치 성난 멧돼지 마냥 와룡대 이십 조의 뒤를 쫓았다.
그 뒤로 화보명이다.
자신들을 쫓아오는 일 조의 모습을 확인한 이십 조는 두 갈래로 찢어졌다.
철령과 화보명 역시 좌우로 찢어졌다.
그 뒤에 도착한 벽이겸과 탁무전은 난감했다.
양쪽으로 흩어진 것만 확인했을 뿐, 누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알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지?"
탁무전이 물었다.
"흩어지면 놈들의 노림수에 말리는 거다."
벽이겸의 말에 탁무전은 쉽게 결정을 내렸다.
둘은 찢어지지 않고 함께 움직이기로.
오른쪽의 길을 택해서 쫓았다.
그러나 흔적을 쫓기가 쉽지 않았다.
놈들은 계속해서 찢어지면서 자신들을 흩어놓으려 했다.
다시 한번 양쪽으로 갈라진 흔적.
두 사람은 자신들의 조원이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결국은 한쪽을 택해 함께 움직였다.
그렇게 일 조를 뿔뿔이 흩어놓은 이십 조는 다시금 모였다.
그렇게 모인 곳은 철령이 미친 듯이 쫓는 곳이었다.
뭐, 이제는 기세가 죽어서 헉헉거리면서 산길을 헤치고 있었지만.
당연한 일이다.
밤새도록 산속을 헤맨 놈이 체력이 남아 있을 턱이 없었다.
아무리 내공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의 앞에 와룡대 이십 조 다섯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빌어먹을 새끼들이··· 비겁하게······."
그 말에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다.
덫에 걸린 놈이 바보다.
굶주림을 참고 체력을 보존하면서 밤을 보냈으면 이 지경은 아닐 터.
"네가 멍청한 거야."
나중천이다.
철령과 같은 철기방 출신의.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철기방의 한낱 일꾼에 불과한 나중천이 방주의 조카인 철령에게 멍청하다고 하다니.
철기방에서 그랬다가는 당장 죽을 만큼 맞았으리라.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동등한 교룡관 생도로, 하투제에 참가하는 중이었다.
"이 비천한 새끼가 감히 주제도 모르고. 뿌드득."
철령은 이까지 갈며 몸을 떨었다.
한 발 앞으로 나서는 나중천.
다른 생도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에 철령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지금 저놈이 자신과 일 대일로 겨루겠다는 것인가?
어이가 없었다.
철령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유룡검법의 기수식을 취하는 나중천.
바로 철령을 향해 짓쳐 들었다.
챙!
철령의 검이 나중천의 검을 막았다.
철기방의 대표적인 절기는 철기진천팔격창이라는 창법이다.
허나 검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철랑파산검.
철령은 한 손으로는 철랑파산검을 다른 한 손으로는 철랑조를 펼치며 나중천의 검을 맞상대했다.
휘익! 휙!
검이 공기를 갈랐다.
허나 상대를 가르지는 못했다.
나중천은 침착하게 철령의 검과 손을 피했다.
그리고 적절한 때에 반격까지 가했다.
챙!
채챙!
두 사람의 격돌이 계속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유리한 것은 나중천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철령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니까.
"비천한 놈답게 비겁하기 그지없구나."
억울하다는 듯 말하는 철령.
"그깟 배고픔도 못 참아서 밤새도록 고기 조각 찾아 헤맨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폐부를 찌르는 나중천의 말.
"우아아아악!"
그 말이 약점을 건드린 것일까?
철령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온몸이 허점투성이였다.
너무도 당연히 나중천은 철령의 돌격을 피하고 그의 온몸을 검으로 두르렸다.
"크으윽."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쓰러지는 철령.
그의 패배요, 탈락이었다.
"철령. 사망."
와룡대 이십 조의 판정관이 판정을 내렸다.
일 조의 판정관은 현재 벽이겸과 탁무전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신호탄이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와룡대 이십 조는 다시 산속을 달렸다.
이번 목표는 화보명이다.
그는 이제 햇빛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는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길을 잃은 것이다.
아니, 조금 전 터진 신호탄을 보고는 그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했다.
허나 금세 와룡대 이십 조에게 포위 당했다.
화보명의 얼굴에는 낭패한 표정이 역력했다.
일 대 오의 싸움.
아무리 상대가 상대라도 현재 자신의 상태에서는 승산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딴 술책에 말려 들어 너희 같은 쓰레기들에게 당하다니 원통하구나."
"쓰레기들의 술책에 당할 정도면 네가 쓰레기만도 못하다는 거지."
심철산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화보명과 같은 천검파 출신.
그를 바라보는 화보명의 두 눈이 세차게 떨렸다.
"빌어먹을 새끼가."
발가락의 때만도 못하게 여겼던 놈이 저리 나오니 당장 분노가 치밀어 올라 땅을 박찼다.
어차피 패배할 것.
저놈은 끝장은 내겠다는 생각이었다.
화보명의 손끝에서 천환천로검법이 펼쳐졌다.
삼대 제자 중에서는 천검파에서 인정한 열 명의 기재만이 익힌 절기.
그것이 화보명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그 역시 그 열 명의 기재 중 한 명이었으니.
목청산과 범일소가 동투제에서 패한 후, 천검파에서 다시금 교룡관으로 보낸 기재였다.
헌데 목청산과 범일소에 비한다면 부족해도 너무나 부족했다.
그래도 검법만은 제대로 익혔는지 천환천로검법의 검로만은 제법이었다.
허나, 그뿐.
이미 체력이고 내공이고 심력이고.
정상인 것이 없었다.
검에 힘이 실리지 못했다.
심철산의 유룡검법은 화보명의 천환천로검법을 제대로 맞상대했다.
아니, 조금 후에는 우세를 점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는.
압도하기 시작했다.
검을 휘두르는 심철산조차도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훈련과 전술의 승리였다.
그렇게 화보명도 패했다.
이제 남은 것은 벽이겸과 탁무전 두 사람.
그들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남은 둘은 검진으로 상대해야겠지?"
나중천의 말에 은화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일대일로 벽이겸을 꺾고 싶었지만, 완벽한 승리가 먼저였다.
상대가 둘이라면 검진을 펼치는 것이 확실했다.
"가자."
은화량의 말에 다섯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그들은 벽이겸과 탁무전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깊숙한 산길.
검진을 펼치기에는 부적합한 지형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근처에 적당한 곳이 있었으니, 그곳까지 유인하면 될 일.
벽이겸과 탁무전은 이십 조의 의도대로 그곳까지 추적해 왔다.
이미 이들도 알고 있었다.
남은 조가 와룡대 일 조와 이십 조가 전부임을.
일 조에서는 자신들 둘만 남았음을.
그러니 유인인 줄 알면서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건곤일척의 승부를 내야 했으니.
내기도 걸려 있고.
그렇게 산속의 작은 공터에 도착한 일곱.
"같잖은 놈들 같으니······."
이를 악물며 벽이겸이 말했다.
그가 어떤 말을 하던 이십 조 다섯 사람은 동요 없이 검진을 펼쳤다.
벽이겸과 탁무전을 마주한 다섯 사람.
말은 필요 없었다.
타닥!
바닥을 박찬 다섯 사람의 공격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챙! 채챙! 챙! 챙!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이십 조 생도 다섯은 검진을 펼치는 것에 집중했다.
검진은 훌륭했다.
훈련한 대로만 한다면 저 둘을 능히 이겨내리라.
"크윽."
"무슨."
벽이겸과 탁무전은 당황했다.
저들의 검진이 너무도 단단한 탓이다.
벽이겸은 검을 휘두르다가 결국은 검을 내렸다.
자신의 검법으로는 뚫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대신 주먹을 들었다.
권갑을 낀 양손.
그의 손에서 뇌정파혼권이 펼쳐졌다.
어마어마한 거력이 검진을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탁무전은 빙혼설령검을 펼쳤다.
뇌정루와 빙천궁을 대표하는 절기가 두 사람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게다가 두 무공의 합이 제법 잘 맞았다.
철갑철기군을 상대하면서 손을 맞춰본 효과도 있었다.
그래서 오 대 이의 전투였으나 쉽지만은 않았다.
이 둘은 앞서 다른 셋과는 달랐다.
확실히 그들보다 한 단계 더 강했다.
방탕한 그들의 행동과 생활을 보며 비슷비슷할 거라 여겼는데.
그 와중에 이 둘은 본인들의 수련은 소홀히 하지 않은 모양.
주먹과 검에 담긴 내공의 힘이 심상치 않았다.
만약 하무백이 먹였던 영단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몰아놓고도 내공이 부족해 패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악무는 다섯 사람.
단전의 내공을 최대치로 끌어냈다.
검진의 위력이 더욱 증가했다.
"으윽."
뒤로 주르륵 밀리는 탁무전.
그의 목을 향해 임대치의 검이 날아갔다.
텅.
벽이겸의 주먹이 임대치의 검을 쳐냈다.
퍽.
그 순간.
은화량의 검이 벽이겸의 허리에 박혔다.
"벽이겸. 사망!"
일 조의 판정관이 외쳤다.
은화량의 얼굴에 성공의 웃음이 맺히는 찰나.
쌔액!
파공성이 울리는가 싶더니.
퍽.
은화량의 가슴에 촉이 없는 화살이 명중했다.
"은화량. 사망!"
갑작스런 화살에 남은 다섯 사람은 깜짝 놀랐다.
'빌어먹을.'
탈락 판정에 전선에서 이탈하는 은화량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일 조를 잡는데 정신이 팔려서 한 사람을 잊고 말았다.
방심한 것이다.
맹룡대의 여생도를 잊다니.
그녀의 활 솜씨를 보고서도.
벽이겸과 은화량의 탈락으로 사 대 일의 싸움으로 변했다.
그러나 탁무전도 와룡대 이십 조도 조금 전처럼 격렬히 싸우지 못했다.
어딘가 숨어서 자신들을 향해 은밀히 화살을 날릴 존재를 인식한 탓이다.
서로 다른 세 세력이 서로를 노리는 상황.
그중에서도 화살을 든 여생도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그 존재를 숨기고 있으니까.
와룡대 이십 조의 얼굴에 난감함이 어리는 순간.
나중천이 외쳤다.
"일단 탁무전부터 잡는다! 우리는 우승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 말대로다.
내기에서 이기려면 와룡대 일 조보다만 오래 생존하면 된다.
와룡대 일 조의 남은 인원은 하나.
눈앞의 탁무전이다.
네 사람은 전력을 다해 탁무전을 향해 달려들어야 했다.
화살이 날아오기 전에 끝내야 했으니.
유룡검진이 격렬하게 움직였다.
쉬지않고 탁무전을 몰아쳤다.
네 사람의 연환격과 합격.
탁무전은 전력을 다해 버텼지만 한계가 있었다.
'왜 안 쏘지?'
지금 상황이라면 자신보다는 넷이 남은 저들을 저격하는 것이 그 잡년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 한 발이면 틈이 벌어질 것이고 탁무전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텐데.
화살이 날아오지 않았다.
공야휘연은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조준을 한 상태다.
하지만 쏠 생각은 없었다.
쏘는 순간은 탁무전이 탈락하는 순간.
그녀의 판정관은 아직도 그녀를 찾지 못했다.
대신 지금 막 모습을 드러냈다.
탈락 신호탄을 보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어쨌든 이제 곧 마지막 싸움이 벌어질 거라는 생각에 탈락자가 발생한 곳을 찾은 것이다.
그 순간.
심철산과 영후인의 검격이 탁무전의 검을 쳐올렸다.
팔이 들리며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나 탁무전.
완벽한 기회였다.
나중천이 탁무전의 가슴을 찔러 들어가는 순간.
전력으로 몸을 틀며 바닥을 구르는 탁무전.
그 끝에는.
임대치가있었다.
그의 검이 그대로 탁무전의 목을 그었다.
"탁무전. 사망!"
판정관의 판정이 울리는 순간, 임대치는 그대로 몸을 날려 굴렀다.
자신을 향해 화살이 날아올 거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화살도 날아오지 않았다.
머쓱한 얼굴로 임대치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피잉!
작은 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파공성은 없었다.
퍽!
그런데 나중천의 가슴에 적중한 화살.
"나중천. 사망!"
"어, 어떻게······."
나중천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파공성이 없는 화살이라니.
공야휘연은 싱긋 웃고 있었다.
이제 남은 녀석을 셋.
그리고 마침 남은 화살도 이제 셋이었다.
와룡대 이십 조 생존자 셋은 즉시 흩어졌다.
내기에서는 이겼다.
하지만 하투제는 끝나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것.
이제 우승이 목표가 된 것이다.
'제법 귀엽네.'
흩어지는 생도들을 보며 공야휘연은 생각했다.
저 녀석들은 그래도 제법이라고.
허나 그래봤자다.
공야휘연이 다시 몸을 날렸다.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다.
피잉!
다시 울리는 작은 소리.
그리고 소리 없이 날아가는 화살.
퍽!
임대치의 등 한가운데 꽂혔다.
"임대치. 사망!"
이제 영후인과 심철산 둘만 남았다.
"젠장."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도 없이 날아오는 화살이라니.
두 사람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디서 날아오든 일단 쳐내야 했다.
검을 들고 사방을 살피는 영후인과 심철산.
그렇게 반 각의 시간이 흘렀다.
산속은 고요했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패력천살궁 중 무음시(無音矢).
아직 공야휘연의 경지가 극성에 이르지 않아 활시위 소리가 살짝 나기는 했지만, 이 정도 수준의 상대에게는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피잉!
다시 한번 울리는 작은 소리.
고요 속에 울린 소리였기에 두 사람은 똑똑히 들었고, 집중도를 최고조로 올렸다.
그리고 보았다.
심철산이 검을 휘둘렀다.
퍽!
화살을 검으로 막아냈다.
"됐다!"
심철산이 기쁨의 외침을 토해낼 때.
공야휘연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활이 부러지도록 활시위를 당긴 채다.
팽!
쒜에에에엑!
활시위가 튕기는 소리가 들이고 곧바로 들리는 무시무시한 파공성.
두 눈에 화살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심철산이 즉시 쳐내려 했으나 화살이 더 빨랐고, 더 강했다.
퍽!
심철산의 어깨에 명중한 화살.
거기서 끝인 줄 알았는데.
화살은 힘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심철산이 튕겨 나가 쓰러지고.
화살은 그대로 영후인의 가슴에 박혔다.
"영후인. 사망!"
"크윽."
심철산은 어깨에 맞았기에 사망 판정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애써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어느새 그의 목에 닿아있는 검.
언제 나타난 것일까.
쓰러진 심철산 앞에 선 채 검을 늘어뜨린 여생도.
공야휘연, 아니 추휘연이었다.
"심철산. 사망!"
"최종 생존자, 추휘연! 우승은 맹룡대 구 조!"
최후의 판정이 판정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