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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76화 (276/312)

276화. 억울해?

심철산은 멍한 눈으로 자신의 목에 검을 늘어뜨린 여생도를 바라보았다.

스쳐 지나가도 인상에 남을 만한 얼굴이다.

추녀라는 인상으로.

다만, 두 눈은 맑고 투명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그녀가 우승이라는 선언에 싱긋 웃으며 검을 거뒀다.

심철산의 주변으로 와룡대 이십 조 생도들이 비척비척 다가왔다.

순식간에 전멸.

그랬기에 사망 판정만 계속해서 나와 모두 이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공야휘연의 시선이 은화량에게로 향했다.

"억울해?"

은화량이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실력이 부족했으니, 전투에 패했다. 그뿐이야. 우승 축하한다."

탈락자의 표식을 받아 들고 산 아래로 내려가려는 찰나.

역시나 탈락자의 표식을 한 벽이겸과 탁무전이 활활 불타오르는 눈으로 다섯 사람을 노려보았다.

"비겁한 새끼들······."

벽이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 말.

그 이상의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판정관 세 명이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비겁? 하아······."

어이가 없다는 비아냥과 한숨이 흘러나온 것은 와룡대 이십 조가 아니었다.

공야휘연이었다.

벽이겸의 고개가 그녀를 향해 획 돌아갔다.

"너. 내가 마지막에 쏜 화살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흥. 그깟 화살 힘이 좀 강했다만, 나라면 충분히······."

"연달아 열 개가 날아왔다면?"

이어진 공야휘연의 물음에 벽이겸은 아무런 대답도 못 했다.

그저 네깟 게 그게 가능하냐는 눈빛으로 노려볼 뿐.

"왜? 못 할 것 같아서? 하아··· 이래서 실력이 없는 것들은······."

절레절레 머리를 흔드는 공야휘연은 주변에 떨어져 있던 화살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허공을 향해 연발로 화살을 쏘았다.

모두 네 발.

콰콰콰과!!!!

영후인을 탈락시켰던 그것보다 훨씬 더 파괴적인 파공성을 남기며 네 개의 화살이 하늘로 사라졌다.

조금 전처럼 살짝 힘을 뺀 것이 아닌.

정말 제대로 펼친 패력시(覇力矢)다.

여기에 맞는다면, 아무리 화살촉이 없다고 한들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씨익 웃으며 벽이겸을 쳐다보는 공야휘연.

벽이겸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런 공야휘연을 바라보았다.

두 눈이 잘게 떨렸다.

"어, 어떻게··· 어떻게 맹룡대에······."

"뭘, 맹룡대에 강한 애들 많더만."

그녀의 대꾸에 벽이겸은 입을 다물었다.

작년 동투제의 영향인지 일부러 맹룡대를 골라서 들어간 후기지수들이 있었다.

하무백에게 박살이 났던 도림주의 아들 운도헌이라든지.

"저 친구들이 비겁해서 너네가 패한 게 아니야. 저 친구들 말대로 네놈들 실력이 부족하니까 패한 거지."

공야휘연의 말에 벽이겸은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도 누구 덕인데? 시작하자마자 보내버리려고 했구만."

마지막 말에 벽이겸과 탁무전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야휘연은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그 뒤로 와룡대 이십 조가 따랐고.

마지막으로 벽이겸과 탁무전이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가장 뒤는 와룡대 일 조의 판정관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철령이 발작하고 있었다.

어떻게.

자신들이 저 쓰레기들보다 먼저 탈락했단 말인가.

저 쓰레기들이 준우승이라니.

맹룡대 구 조가 우승했다는 사실보다 더욱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난리를 치는 철령 주변의 다른 와룡대 일 조 생도들은 가만히 있었다.

벽이겸이 가장 난리를 칠 법도 했건만.

마지막에 보았던 공야휘연의 그 엄청난 화살과 그녀의 말 때문에.

그냥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만약 그녀가 넉넉한 화살로 가장 먼저 자신들을 노렸다면?

가장 먼저 탈락했을 것이다.

더욱이 그녀는 자신에게 원한도 있었을 터.

담룡각에서 그녀를 보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그 못생긴 얼굴은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았으니.

기루에서 몸도 팔지 못할 외모라는 폭언을 쏟아붓지 않았던가.

발작하던 철령이 벽이겸을 향해 고개를 획 돌렸다.

"너 이 새끼. 네가 책임져."

"뭐?"

넋이 나가 있던 벽이겸이 고개를 들었다.

"내기를 한 건 네놈이니까, 네놈이 책임지라고. 혼자서 그놈들 시중을 들든 시종이 되든 알아서 하라고!"

철령의 외침에 벽이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다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나머지 녀석들이 있다는 게 문제.

여기서 싸우면 아마도 사 대 일의 싸움이 될 것 같았다.

'쓰레기 새끼들······.'

와룡대 이십 조를 향해 내뱉던 말을, 같은 조의 생도들을 향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기를 합의할 때 너희도 다 동의했다."

"난 모른다. 네가 알아서 해라. 내기를 주도한 것도 네놈이고, 약조한 것도 네놈이니. 씨발. 교룡관 따위 오는 게 아니었는데."

그 말을 끝으로 철령이 몸을 돌려 사라지려 하였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느새 나타난 맹룡대 칠 조 때문이었다.

"무슨 소리야? 내기에 졌으면 책임을 져야지."

당진산이 유들유들 웃으며 말했다.

"에이 썅. 너희 둘이 내기를 했지. 우리는 그냥 보고만 있었다고!"

철령이 일그러진 얼굴로 외쳤다.

당진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 맞는 말이다.

"그래. 그랬지. 너희 다섯과 우리 다섯을 조건으로 내기를 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었지. 그거 암묵적 동의 아니야? 싫으면 그때 안 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

이를 악무는 철령.

"그럼 후반기 기대한다. 퇴관 같은 거 해서 도망가지 마라."

그들을 스윽 바라보는 맹룡대 칠 조는 그대로 떠났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에는 기쁨에 겨워하는 와룡대 이십 조가 있었다.

"후아. 빌어먹을."

대체 몇 번을 이 말을 하는가.

벽이겸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오전이건만 하늘이 깜깜해 보였다.

"아! 퇴관. 퇴관이 있었네."

철령이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네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사문의 명예까지 건 내기에서 퇴관이라니, 이 새끼가 미쳤나 하는 눈빛이었다.

"그때. 당가의 명예와 뇌정루의 명예를 걸고 내기를 했지. 우리 철기방은 입에 올린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그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 따위 때려치우면 그만이라는 얼굴.

그 말은 다른 세 사람에게도 깨달음을 주었다.

당시의 상황을 아무리 다시 떠올려봐도 그랬다.

자신들을 대표해서 벽이겸이 나서서 뇌정루의 명예를 걸었을 뿐.

나머지 네 사람은 지켜보기만 했으니까.

그렇게 철령을 제외한 세 사람의 눈빛도 변했다.

벽이겸이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쓰레기들 맞네. 맞아.'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이놈들이 퇴관을 하든 말든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도망쳐서 사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든 말든.

당시 상황을 지켜본 생도들이 얼마던가.

그들에게 저런 억지 논리가 통할까?

벽이겸은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는 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자신의 후반기 생활은 확정이 되었다.

'시종 노릇이라. 젠장.'

그런 벽이겸의 곁에서 함께 걸음을 옮기는 이가 있었다.

탁무전.

"퇴관은 힘들 것 같아서. 그랬다가는 아버지께 죽을 것 같거든."

시종 노릇을 함께 할 생도가 생겼다.

***

"소림에서 무창에 들어왔다고?"

벽력개가 수하의 보고에 눈살을 찌푸렸다.

소림이 무창에 들어올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개봉의 본타로 전한 소식 때문일 터인데.

'그걸 소림에서 알았다라···. 개방에 쥐새끼가 있나 보군.'

벽력개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같은 정파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다른 문파다.

알린 적 없는 소식이 새어나갔는데, 특히나 정보를 주특기로 하는 개방의 정보가.

벽력개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개봉에 한번 가보긴 해야겠구나."

단목운혜도 완치가 되었고, 단목운뢰도 무럭무럭 강해지고 있었다.

이제 자신이 무창에 매여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무백.'

그 괴물 덕에.

하지만 과연 그 괴물이 무창에 있는 것이 좋은 일일까 하는 물음에는 답을 낼 수가 없었다.

당장 소림이 무창을 찾은 이유.

거슬러 올라가자면 하무백 때문이었으니까.

'사해련에서 하무백 그 녀석에게 전령을 보낸 것이니··· 쯧.'

***

해평소.

사해련의 전령으로 무창에 들어온 이다.

제법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홀로 정파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곳에 전령으로 가는 것인지라.

나름 고심해서 뽑은 이였다.

특히나 경공이 빠른 것이 이유 중 하나였다.

여차할 때 도주할 수 있도록 문인백송이 그런 인선을 선택한 것이다.

'교룡관의 관주는 말이 통하는 인물이었어.'

일전의 만남을 떠올리며 해평소는 차를 들이켰다.

임무 중이었기에 술은 멀리하는 터.

해서 적당한 다루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참이었다.

"덥군."

하지.

하루 중 낮이 가장 긴 날.

이제 곧 한여름이 올 때이긴 했지만, 벌써 한여름인 양 무더웠다.

교룡관주가 말하기를 하지가 지나면 하무백이 복귀할 거라 하였다.

이제 곧 그를 만나 임무를 마치고 복귀할 일만 남았다.

그리 생각하며 찻잔을 입에 가져가는데.

'뭐지?'

등줄기가 쭈뼛 섰다.

그가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불길하다.'

그가 전령으로 뽑힌 또 하나의 이유.

바로 기가 막힌 육감이었다.

그의 육감이 말하고 있었다.

무창에 위험이 닥쳤으니 어서 몸을 빼라고.

입술을 잘근 씹는 해평소.

고민은 짧았다.

사파의 무인으로 사는 동안 육감의 도움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해평소는 즉시 움직였다.

다루를 떠나 객잔으로 갔다.

짐을 챙긴 후 객잔을 빠져나와 육감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절대 서둘러 달리지 않았다.

그저 태연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무창의 성문을 빠져나온 후.

그는 땅을 박찼다.

숨어 있기 좋은 곳을 찾기 위해서.

무창을 떠날 수는 없었다.

그는 아직 임무 중이었으니까.

해평소가 무창의 성문을 나온 직후.

그와는 정반대 쪽.

죽립을 쓴 일단의 무리가 성문을 통과해 무창에 들어섰다.

소림사에서 보낸 이들이다.

속가 문파에 내려와 있던 이들이 먼저 움직인 것.

사파의 종자를 잡으려면 한시가 급했으니까.

숭산에서 출발한 이들도 전력으로 무창을 향해 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파의 잡놈이 무창에 있다라······."

선두에 선 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빨리 찾아라."

낮은 읊조림에 그와 함께 들어온 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명을 내린 이는 무창 거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정해진 곳이 있는 듯 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다림다루(多林茶樓).

소림의 속가제자가 운영하는 다루였다.

소림사 본산의 제자가 무창에 올 때면 항시 머무는 곳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연진 사형."

다루의 루주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소식은 들었는가? 공 사제."

연진의 물음에 루주 공지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본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나도 속가를 둘러보러 나온 차에 급한 연락을 받고 이리 왔네."

"무창에 사파의 악적이 숨어들었다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공지덕이 참담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교룡관주까지 만났다고 하니 더 큰 일이지. 정파는 아직 사파를 제대로 모르는 듯허이. 쯧쯧."

"일단 안으로 들어가 쉬시지요. 먼길 피곤하실 터이니."

"아닐세. 제자들에게 수색을 명했는데, 어찌 내가 편히 쉬겠는가. 객이 된 도리로 주인에게 인사차 들린 걸세. 잠시 후 다시 보세나.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리 인사를 마친 연진은 다시 다루를 나와 무창의 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 연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공지덕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얼마 전 조용히 다루를 떠난 손님이 지금 사형이 찾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

"이제야 보는군."

팽도율이 하무백을 보고는 빙그레 웃었다.

하투제가 끝나고 뒷정리가 한창일 때.

팽도율은 겨우 하무백을 만날 수 있었다.

하투제 시작 전까지는 하무백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고.

끝난 후에는 팽도율의 일이 많았기에.

"무슨 일이오?"

"무창에 자네 손님이 와 있네."

"소님?"

[사해련에서 보냈더군.]

전음으로 돌아온 대답에 하무백이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오늘 우승한 녀석과 관련된 일인 것 같았다.

"쯧."

하무백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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