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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79화 (279/312)

279화. 없어

조금 떨어진 곳의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싶더니.

한 인영이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섰다.

얼굴도 가리지 않은 모습.

단번에 알아보았다.

지난번에 자신을 찾아왔던 사해련의 그 손님이다.

하무백을 찾아왔던 이.

이 소란의 원인이기도 한 이다.

하긴 그가 무슨 잘못이겠는가. 명령대로 움직인 것을.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최대한 조용히 끝내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하무백과 저 자가 조용히 만나고 헤어지는 것.

그리고 소림은 그대로 소득 없이 돌아가는 것.

팽도율은 그리 생각을 하고 일단 사해련의 전령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는 데 협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임무라고 해봐야 고작 하무백을 만나고 가는 것이기에.

그리 마음먹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가 나타난 후 팽도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허나 조심해서 나물 건 없었기에, 인적이 더욱 없는 곳으로 산책하듯 걸었다.

[여기까지 용케도 찾아왔군.]

팽도율의 전음.

해평소는 눈치가 빨랐다.

다시 몸을 숨겼다.

[경계가 그리 삼엄하지는 않더군요. 그들은 누구입니까?]

해평소의 물음에 팽도율의 얼굴이 굳었다.

[그들을 만났나? 아니, 우선 이것부터 물어야겠군. 어찌 그들의 눈을 피했는지.]

[무창 밖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굳이 자신의 육감 같은 것에 대해 떠들 생각이 없었던 해평소였기에 사실 중 일부만 말했다.

그 대답에 팽도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창 안만 뒤졌으니 못 찾을 수밖에.

무창 밖의 드넓은 곳을 뒤져서 사람 한 명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조심성이 많은 이로군.'

정파의 심장부에 전령으로 올 만한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드는 의문.

무창 밖에 있는 그가 어찌 그들의 존재를 안다는 말인가.

[하면 그들은 어떻게 안 건가?]

[일단의 무리가 무창을 나와서 북쪽으로 바삐 달리더군요. 이 늦은 시간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팽도율.

그들이 찾는 이는 이곳에 있는데 그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이란 말인가.

[소림사일세.]

팽도율이 짧게 그들의 정체를 말해 줬다.

그 대답을 들은 순간 해평소의 등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올라왔다.

여기서 그들이 갑자기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자신이 얼마나 은밀하게 조심스레 움직였는데.

정체를 드러낸 곳은 이곳 교룡관밖에 없었다.

보아하니 팽도율이 자신의 정체를 흘린 것도 아니다.

'그래서 육감이 그렇게······.'

해평소는 그때 자신의 선택을 칭찬했다. 육감이 다시 한번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

육감을 무시하고 계속 머물렀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소림사의 마귀들에게 쫓길 생각을 하면.

[다림다루. 그곳으로는 가지 말게. 소림의 속가제자가 루주일세.]

이어진 말에 등이 축축해지는 해평소.

그가 무창에서 마지막으로 차를 마시고 있던 곳이었으니.

[어떻게 소림사에서······.]

돌아온 전음에 고개를 작게 젓는 팽도율.

[나도 모르네. 다만 아마도 개방 쪽에서 흘러 나간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네.]

다림다루에서 소득 없이 돌아온 후 벽력개를 잠깐 만났었다.

무창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 두 사람이었기에.

간단한 정보 교환을 했던 것.

해평소는 개방이라는 말에 납득하면서도 의문을 가졌다.

교룡관 안에 거지는 없었으니까.

[그는 내일쯤 올 걸세.]

해평소의 목적은 하무백이니.

그에 대한 정보를 준 후 관주각으로 걸음을 돌리는 팽도율.

묵묵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해평소는 조심스레 교룡관을 벗어나 무창 밖으로 나갔다.

소림사에서 왔다면 무창 안에 있는 것은 위험했으니.

***

소림승들은 목란산을 향해 달렸다.

하루 종일 무창을 수색하고.

휴식을 취하고 잠자리에 들 시간에 다시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지칠 수밖에 없었다.

해서 목란산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 잠시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최대한 서둘러.

먼동이 터올 때쯤.

목란산 인근에 도착했다.

연진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전신의 모든 내공을 끌어모아 두 눈에 집중했다.

반야보리심안에 모든 내공을 집중한 것이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최대치로 펼친 안공.

그 상태로 주변을 살폈다.

어디선가 사기의 흔적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주변을 살피기를 얼마일까.

한 방향에서 희미한 사기의 흔적을 보았다.

"후우."

안공을 멈추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에라도 두 눈이 터질 듯이 아팠다.

먼 곳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사기를 찾아내는 놀라운 능력.

한계까지 몸을 혹사한 결과였다.

"저쪽이다."

연진이 가리킨 방향으로 그들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잠자리에서 막 눈을 뜬 하무백의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가 발하는 기척을 느낀 것이다.

'땡중 놈들이군. 여긴 무슨 일로.'

공야휘연은 이미 떠나고 없다.

하무백이 천막에서 나왔다.

소림승들이 다가오고 있는 길목의 적당한 바위에 걸터앉은 하무백.

새벽 댓바람부터 불청객이라니.

귀찮았다.

멀리 먼지가 일어나는 게 보였다.

정말 전력으로 땅을 박차고 달려오는 듯했다.

사특한 무리들에 대해서만은 진심인 소림다웠다.

선두에서 달리는 이의 얼굴이 보였다.

안면이 있는 이다.

소림의 일대제자 연진.

'그래서인가?'

하무백은 즉시 무극명륜안을 운용했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니.

과연.

와룡대 이십 조 녀석들의 몸에서 사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특히 패력시에 어깨를 정통으로 맞았던 심철산에게서 진했다.

이 정도라면.

공야휘연의 화살에 맞고 탈락한 이들의 몸에도 사기가 묻었을 터.

연진 정도의 경지라면.

그들과 마주쳤다면 그들의 몸에 묻은 사기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반야보리심안.

마기, 혈기, 사기를 찾아내는 데는 그만한 안공도 없었으니.

"아미타불. 오랜만이외다. 하 시주."

어느새 도착한 연진이 합장을 하며 하무백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렿네. 오랜만이네."

퉁명스러운 대답.

연진은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다.

"소승이 나설 일이 무엇이 있겠소이까. 사특한 악적들의 흔적을 쫓다 보니 이곳까지 왔을 뿐. 혹시 하 시주께서는 본 적이 없으신지?"

"없어."

단호한 대답.

"흐음."

연진은 그런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그가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려는 기색.

그러나 하무백은 당당했다.

당연했다.

하무백은 진실을 말했으니까.

적어도 하무백에게 있어서 사특한 악적이란 마교와 혈교다.

그러니 본 적이 없을 수밖에.

만약 연진이 사파의 무리를 본 적이 없냐 물었다면 다른 대답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딱히 거짓을 말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진실을 전부 말해 줄 생각도 없었지만.

연진은 어느새 다시 반야보리심안을 운용하고 있었다.

"저곳의 시주들은······?"

"어제 무리를 좀 했던 생도들."

"제가 좀 만나봐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천막 밖의 기척 때문인가.

생도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나타난 일단의 승려 무리에 깜짝 놀라는 생도들.

"아미타불. 소림의 연진이라 합니다."

연진은 그런 생도들을 향해 정중히 합장을 했다.

그의 시선은 심철산에게로 향했다.

가장 많은 사기를 뿌리고 있는 이였기 때문이다.

"시주께 월 좀 물어보려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마, 말씀하십시오. 대사님."

심철산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혹시 하투제에서 화살에 맞으셨습니까?"

"···네. 맞았습니다."

심철산이 얼떨떨한 얼굴로 답했다.

왜 그것을 물어보는지 알 수 없다는 얼굴.

하무백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지켜만 보았다.

'제법 많이 알아내고 왔군.'

이곳에 나타났을 때 이미 예상한 일이지만.

어제.

공야휘연을 떠나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거리다.

그녀라면 잘 숨어들었을 것이다.

물론 내공을 금제하였기에, 멀리 가지는 못했겠지만.

문제는.

'연진 저 땡중이라면.'

사일자뢰궁에 서린 사기를 발견할 것이다.

소림승들이 이곳에 나타난 것은 하무백도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다.

설마 연진 정도의 인물이 나섰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까.

'똑똑하게 잘 숨었기를 바라야겠군.'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시주가 쏜 화살인지?"

연진이 다시 물었다.

이 자리에는 사기를 지닌 이가 없었으니까.

"아, 추휘연이라고 맹룡대 생도입니다. 저기 저 천막에 머물고 있을 텐데······."

심철산이 가리키는 천막.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연진이 천막 앞으로 다가갔다.

"아미타불. 소승은 소림의 연진이라 합니다. 혹여 실례가 아니라면 잠시 뵐 수 있을까요?"

아무런 답이 없었다.

기척도 없다.

연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천막 안에 아무도 없음을.

그 정도의 고수가 이런 지근거리에서 기척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으니.

그럼에도 지킬 것은 지켜야 했기에.

"혹, 이 천막의 주인이 여시주입니까?"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일.

심철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진의 시선이 연하민과 하설란에게 향했다.

"두 분 시주께 부탁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두 사람의 시선이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설란 역시 이미 천막 안에 아무도 없음을 알고 있었다.

"잠깐 실례할게요."

연하민이 짧게 말하고 입구로 들어갔다.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천막 안.

"들어오세요."

연하민의 말에 연진이 천막 안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깨끗했다.

혹시 단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서도 굳이 이렇게 들어와 확인했건만.

다만 한 자리에 희미하게나마 사기가 남아 있었다.

"역시 사파의 종자들이란······."

연진이 작게 중얼거리는 그 말에 연하민이 흠칫했다.

사파.

이곳에 머물던 그 여생도가 사파란 말인가?

정파와 사파의 개념에 대해 잘 모르는 하설란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다른 천막을 좀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

생도들의 동의를 얻어 다른 천막도 모두 확인했다.

와룡대 일 조 생도들은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이다.

모든 천막을 둘러보았으나.

아직까지 사기가 남아 있는 천막은 두 곳이었다.

심철산이 머물렀던 곳과 추휘연이 머물렀던 곳.

이후 연진은 생도들에게 추휘연에 대해 세세한 사항을 물었다.

외모라든지, 키라든지, 습관이라든지.

모든 확인이 끝난 연진이 하무백을 노려보았다.

"하 시주. 사특한 무리를 본 적이 없다고 하지 않으셨소이까?"

"그랬지."

하무백이 담담히 답했다.

"하 시주의 경지라면 이곳에 남아 있는 사기를 모르지는 않을 터. 이 사기를 이곳에 남긴 이도 보았음이 분명할 텐데 어찌 거짓을 말하는 것이오이까?"

그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하무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나에게 사특한 악적이란 마교와 혈교야. 이곳 어디에 마교와 혈교의 흔적이 있지? 만약 그랬다면 너희가 오기도 전에 내 손에 끝장났어."

으르렁거리는 듯한 하무백의 말.

그 기세에 연진이 움찔했다.

하무백은 하무백이었기에.

"하지만 분명 사파의 흔적이······."

"그러니까. 사파가 뭘 어쨌다고?"

"······."

연진은 아무런 말도 못 했다.

하무백은 지금 자신들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그에게 사파는 사특한 악적이 아니라고.

연진은 하무백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결국 한발 물러서는 것은 그였다.

"알겠소이다. 그럼 하나만 묻겠습니다. 그 추휘연이라는 시주는 어디로 갔습니까?"

"알아서 찾아봐."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싫고, 알려주기도 싫고.

그 의도가 명확한 대답이다.

"알겠소이다. 실례 많았습니다. 아미타불."

연진도 더 이상 하무백과 갈등 상황을 만들기 싫었는지 그렇게 물러났다.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듯한 혈기 넘치는 젊은 소림승 몇몇이 하무백을 노려보기는 했지만.

연진의 결정에 반기를 들지는 않았다.

***

공야휘연은 전력으로 달렸다.

소림승들이 찾아왔다 하니.

어떻게든 몸을 숨겨야 했다.

이 상황에 처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맹룡대의 훈련은 그녀에게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내공이 없는 상황에서 움직일 수 있는 체력이 되었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밤을 지새워 달렸다.

그런 그녀의 눈에 작은 마을이 들어왔다.

아직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이다.

공야휘연은 조심스레 마을 외곽으로 들어갔다.

잠시 쉬어가야 했다.

그 와중에 어깨에 빗겨 멘 자신의 애병을 만졌다.

사일자뢰궁.

소림사의 중들 중 이것에 깃든 기운을 느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라.

아주 작은 가능성이지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라.'

문인백송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렇다면 일단 사일자뢰궁을 숨겨야 했다.

조심스레 움직인 그녀의 눈에 띈 것은 마을 외곽의 말라버린 우물이다.

이미 다른 우물 두 곳이 지금도 쓰이는 것을 확인한 터.

굳이 이곳에 올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우물 속에 사일자뢰궁을 던져 넣었다.

그 위로 주변의 모래와 흙을 던져 넣고 자갈과 바위로 덮었다.

그리고 다시 우물을 막고 있던 뚜껑을 덮었다.

이렇게 했는데도, 소림에서 사일자뢰궁을 발견한다면.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사일자뢰궁보다 자신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

공야휘연은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사해련주의 손녀.

그 위치가 어느 정도의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물론 그런 무게를 알고도 가출해버리는 대책 없는 추진력도 지니고 있었지만.

거기에는 확신이 있었다.

칠채봉환과 만환신면이라면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사일자뢰궁의 사기를 알아볼 수도 있는 소림 승려의 존재는 상정 외의 비상 상황.

그랬기에 더 중요한 것을 지키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모든 것을 지키지 못할 때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이 역시 문인백송의 가르침이었다.

공야휘연은 하무백의 기대대로 똑똑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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