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그 미친놈들이?
"우리도 간다. 준비해라."
하무백이 소림승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공야휘연이 간 곳과는 다른 방향이다만.
저들 중에 추적술을 익힌 땡중이 있다면······.
아니 있을 거다.
하무백이 알고 있는 현광이라는 노괴는 그런 부분에서는 철저했으니까.
하무백의 지시에 다들 서둘러 움직였다.
와룡대 일 조만 미적거렸을 뿐이다.
맹룡대 칠 조, 와룡대 이십 조와 함께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마뜩잖은 것이다.
"낙오하면 버려두고 간다."
하무백의 서늘한 음성이 와룡대 일 조의 귀에 들렸다.
그렇게 출발했고.
무창을 향해 쉼 없이 달렸다.
그날 저녁 무렵.
도착할수 있었다.
생도들은 교룡관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하무백은 곧장 무창 밖으로 나왔다.
무창을 향해 오는 동안 기감을 펼쳐 찾아낸 이 때문이었다.
'헉!'
해평소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몸을 숨기고 있는 곳에 당연하다는 듯 갑자기 나타난 하무백 때문이었다.
'자네가 그의 근처에만 가도 그가 알아서 찾아올 거야.'
문인백송의 말이었다.
군사의 말을 들으면서도 어찌 그게 가능할지 믿을 수가 없었는데.
정말이었다.
오늘쯤 하무백이 무창에 돌아온다고 하였기에 들어가 봐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육감은 무창이 위험하지 않다고 했었으니.
"사해련주가 보냈다고?"
'그렇소이다."
담담한 하무백의 물음에 해평소는 애써 태연하게 답했다.
하무백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그 손을 쳐다보던 해평소는 이내 의미를 깨닫고는 품에서 서찰을 꺼내서 건넸다.
안에 쓰인 내용은 그도 모른다.
봉인된 봉투를 뜯고 빠르게 내용을 훑는 하무백.
'역시.'
예상대로다.
사해련주의 손녀가 가출로 인한 실종 상태이기에 찾는 데 도움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만환신면이라는 기물을 얼굴에 쓰고 있기에 얼굴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얼굴을 기물로 바꿨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보물을 세 개나 지니고 가출을 했던 거다.
전서에는 칠채봉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얼굴이 완벽히 변해서 그녀의 기척으로만 찾아야 하는데.
정파의 영역에서는 자신들의 움직임에 제한이 많으니 도와달라는 내용.
하무백의 능력을 알고 있는 공야장천이나 문인백송이기에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다.
'문인백송이겠군.'
다만 그녀가 칠채봉환을 지닌 것까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알았다면 하무백도 방법이 없다고 여겼을 테니까.
내공을 완벽히 금제해버리는 이의 기척은 하무백이라 해도 느낄 수 없으니까.
하지만.
'한 번 직접 본 덕에 이제는 찾을 수 있겠군.'
하무백은 공야휘연이 칠채봉환을 착용하는 보습을 직접 보면서 그녀의 기감을 느낄 요령을 깨달을 수 있었다.
"련주와 군사께서는 가부만 알려주시라 하였습니다."
전령도 전서의 내용은 모르는 듯했다.
짐작은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소림사에서 무창을 찾는 와중에 이렇게 몸을 피할 정도로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이라면.
전령을 만나기 전에 그녀를 먼저 만났다.
이것은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소림까지 나선 마당이니.
귀찮았지만, 지금 외면하면 더 귀찮아질지도 몰랐다.
"가(可)."
전서는 삼매진화에 불타 재로 변해 흩날렸다.
하무백은 몸을 돌려 그대로 사라졌다.
그 모습에 해평소 역시 빠르게 달렸다.
전서응을 숨겨둔 곳을 향해서.
하무백이 전서의 내용에 대해 허락했다는 소식을 한시라도 빨리 알려야 했으니.
하무백은 능광만리행을 극성으로 펼쳤다.
공야장천의 공식적인 부탁을 받아들인 이상.
그 골치 아픈 아가씨를 무사히 사해련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동투제는 무슨.'
그때는 명분이 없었다.
하무백이라 한들,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는 한 명의 무인을 마음대로 강제할 수 없었으니.
지금은 다르다.
사해련의 공식적인 요청을 받고 움직이는 것이니까.
'관주한테 뭐라 해야 하나······.'
의도치 않게 또 맹룡대의 훈련을 빼먹게 되었다.
한설빙이 교룡관으로 복귀한 것만 믿어야 했다.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복귀해야 했다.
하무백이 목란산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그 시각.
전서응은 사해련을 향해 전력으로 날았다.
***
"추휘연이라······."
팽도율이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복귀한 맹룡대 칠 조에게 보고를 받은 것이다.
하무백은 곧장 떠났기에 그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다만.
그 추휘연이라는 생도에게 무언가 있기는 했다.
연진이 사파라고 했다지 않은가.
그 부분에서는 절대 틀릴 리가 없으니.
"후우."
팽도율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을 때.
맹룡대 구 조의 생도 둘이 관주실에 도착했다.
팽도율이 부른 이들이다.
초무하와 진연심.
추휘연과 특히 친했던 생도들이었다.
"저, 그. 휘연이 때문인가요?"
진연심이 주저주저 먼저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팽도율.
전날.
소림승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화살을 맞은 이들을 추궁하는 것을 보았다.
그 기세가 무서웠다.
다른 이들은 못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진연심은 무서웠다.
그래서 친구가 걱정되었다.
이번 하투제에서 활을 사용한 것은 그녀가 유일했으니.
"추휘연 생도와 함께 지내는 동안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나?"
칠 조 담당 교관과의 면담은 벌써 마쳤다.
그는 아는 게 없었다.
그렇다면 하무백에게 물어봐야 했는데, 그는 또 어디론가 사라졌으니.
"아무것도 없었어요. 훈련을 따라오는 것을 힘들어한 것 말고는."
"응?"
진연심이 의외의 말을 했기에 팽도율이 되물었다.
연진이 사파라 점 찍고 추적하는 이가 맹룡대의 훈련을 따라가지 못해 힘들어했다고?
"그. 휘연은 아무리 수련해도 내공이 생기지 않았어요."
초무하가 조심스레 답했다.
금시초문이다.
근데 그런 이가 하투제에서 우승했다고.
내공도 없는 이가 쏜 화살을 잠룡대와 와룡대의 생도가 막지 못했다고?
말도 안 된다.
'모종의 방법으로 내공을 금제하고 있었다.'
그러면 설명이 되었다.
그녀가 정말 사파라면, 맹룡대에 입관한 순간 하무백이 알아봤을 테니까.
내공을 금제하고 있었기에 하무백조차도 몰랐던 것이다.
'전령이 찾아온 것은 그 때문인가?'
조각이 딱딱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누구이기에.
전령까지 교룡관으로 찾아왔단 말인가.
한 명 짐작이 가는 사람이 있었지만.
휘연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떠올리긴 했다.
묵이화(墨梨花) 공야휘연.
무림오화의 한 사람이자, 사해련주 공야장천의 손녀.
그녀와 이름이 같았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을 지웠었다.
담당 교관의 말로는 한 번 보면 기억에 남을 만큼 못생겼다고 했으니까.
무림오화 중 한 사람인 공야휘연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내공도 금제한 마당에, 얼굴을 바꿀 방법이 있다면?'
팽도율은 진실에 가깝게 접근했다.
허나 그뿐이다.
그걸 알아냈다 한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골치만 더 아파졌을 뿐.
부디 하무백이 잘 해결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
"이쪽인 듯합니다. 사숙."
이대제자의 말에 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추적술을 익히고 있는 항오다.
승려가 추적술이라니.
소림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제마멸사(制魔滅邪) 파사현정(破邪顯正).
마를 제거하고 사를 멸한다.
사악한 것을 깨뜨려 바름이 나타나게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요, 나아가야 할 길이다.
결국 부처의 대자대비를 이루는 길인 것이다.
그것이 소림사의 길.
제마멸사를 위해.
사악한 것을 멸하기 위해.
소림 무승들은 각자 갖가지 잡술을 익혔다.
이대제자 항오는 그 중 추적술을 익힌 것이다.
"항오가 앞장서라. 쫓는다."
그들의 속도는 확연히 느려졌다.
흔적을 찾아야 했으니까.
공야휘연 역시 조심스레 움직였으나.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내공이 금제 당했기에.
흔적을 지우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흔적을 지운 흔적이 남았으니까.
그럼에도 공야휘연은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
그녀는 쉬이 추적할 수 없는 곳으로 조심스레 스며들었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관도를 주로 이용했고.
그렇게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갈 때마다.
공야휘연은 얼굴을 바꿨다.
추적자라면 당연히 자신의 인상착의에 대해 알아보았을 테니.
그렇게 공야휘연은 서서히 무창과 목란산에서 멀어져 동쪽으로 움직였다.
북쪽은 숭산이 있는 하남성이기에.
그녀는 방향을 안휘성 쪽으로 잡았다.
전서응은 빠르게 날아 사해련에 도착했다.
두 번째 전령이 출발하고 며칠이 흐른 뒤다.
문인백송이 전서를 가지고 공야장천을 찾았다.
그의 얼굴은 심각했다.
"하무백이 도와주기로 했다는군요."
좋은 소식임에도 문인백송의 목소리에는 긴장이 어려 있었다.
"그게 무슨 소용인가. 칠채봉환을 가지고 갔으면 아무리 그 괴물이라도 기척을 감지할 수 없을 터인데. 사파의 내공이 금제 당했으니."
공야장천이 지극히 당연한 말을 했다.
칠채봉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두 번째 전령을 보낸 것이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소림사?"
그들이 무창으로 향했다는 정보는 이미 입수한 터다.
소림의 움직임은 사파 전체적으로 큰일이었기에 하오문이 빠르게 알려온 것이다.
"그들이 무창을 나와 어딘가로 향했다는군요."
"그게 왜?"
"소림사에서 무창으로 사람을 보낸 이유는 하나입니다. 저희가 보낸 전령에 대한 정보 때문이지요."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무창을 떠났습니다. 해평소를 찾지도 않고요."
공야장천의 눈썹이 휘청했다.
"보고한 방향을 보니. 목란산 방향입니다."
"그곳에 무언가 있던가?"
"교룡관의 하투제가 열리는 곳이지요."
해평소는 몰랐으나.
사해련은 이미 파악하고 있던 정보다.
"그 땡중들이 갑자기 왜······."
목표로 삼은 사해련의 전령은 놔둔 채 소림승들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니.
"그놈들이 그런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보일 명분은 하나이지요. 제마멸사 파사현정. 즉, 다른 사파나 마교, 혈교의 움직임을 감지한 것입니다."
문인백송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사해련의 눈과 귀는 천하에 뻗어있다. 정천맹과 마찬가지로.
그런 그들의 귀에 마교나 혈교의 특별한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사파의 움직임이야 사해련의 손바닥 위의 일.
"그러니 소림이 갑자기 무창을 떠날 일이 없어야 정상이지요."
"그렇지."
"저희도 모르고 있는 사파 무인의 움직임을 찾은 것이 아니라면요······."
침중한 얼굴이다.
그 표정에 공야장천의 얼굴에 설마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현재 사해련이 놓치고 있는 사파 무인은··· 휘연 아가씨입니다."
쿠쿵!
심장이 내려앉는 충격이 공야장천을 덮쳤다.
소림사의 움직임의 변화.
그 하나를 단서로 문인백송은 여기까지 추리를 해낸 것이다.
"서, 설마······."
"그리 생각하니 아귀가 맞아떨어집니다. 맹룡대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요."
"그, 그··· 고기방패······?"
고개를 끄덕이는 문인백송.
"칠채봉환으로 내공을 금제한 아가씨라도요."
"아가씨는 무슨! 평소대로 말해! 호칭 생략하고 빨리."
문인백송이 공야휘연을 아가씨라 칭할 때마다 이야기의 흐름이 끊겨 공야장천의 마음을 급하게 했다.
"거기에 만환신면으로 얼굴도 바꿨고. 무창은 저희가 쉬이 움직일 수 없는 곳이니. 휘연이 있기에 딱 좋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대체 왜 그곳에 갔느냔 말이야··· 고기방패 따위를 키우는 곳에."
답답한 듯 말하는 공야장천.
문인백송은 짐작 가는 바가 있는 듯한 얼굴이다.
공야장천이 그런 기색을 눈치챘다.
"자네. 알고 있군?"
잠시 호흡을 고른 문인백송의 말이 이어졌다.
"강자존. 그 아이의 방에 있던 그것 말입니다."
공야장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파지존인 자신의 손녀다운 포부이지 않은가.
"그 아이에게 당금 천하에게 가장 강한 이는······."
"하무백."
짧은 대답.
공야장천 자신이 직접 손녀에게 그리 알려주지 않았던가.
"그리고 맹룡대의 교관 중 한 명이······."
"···하무백."
알 것같았다.
왜 그 아이가 가출해서 맹룡대로 갔는지.
천하제일인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던 거다.
강자존.
그 정점에 있는 무인을.
"그 하무백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역시나 칠채봉환으로 그 역시 완벽하게 속여 넘긴 듯합니다."
"그, 그런데 그 땡중 놈들은 어떻게 알고 추적한다는 말이야!!"
그 부분은 문인백송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저을 뿐.
정보가 부족한 탓이다.
사해련의 군사인 자신이 정보가 부족해서 생각의 흐름이 막히다니.
치욕적이었다.
'정천맹의 견제가 있더라도, 흑무단을 손을 좀 봐야겠어.'
역시 천하의 판세를 읽기 위해서는 정보가 가장 중요했다.
만약 하투제의 우승자가 맹룡대의 여생도라는 사실을, 그 생도가 활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입수했다면 문인백송의 생각이 막힐 일은 없었을 테니.
당장은 사해련에 전해지지 않은 소식이었다.
공야장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당연했다.
손녀가 소림 땡중 그 미친놈들의 추적을 받고 있다는데 어찌 멀쩡하겠는가.
"어, 어느 놈이 나왔다고 했지?"
"연진입니다."
더 안 좋은 소식.
일대제자 중 제법 강한 놈이었다.
"다, 당장 가봐야겠어. 준비해!"
그러나 문인백송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 어쩌라고. 그 아이를 그렇게 두라고?"
공야장천이 평정심을 잃었다.
논리적이고 이지적이던 그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 어서! 어서 방법을 찾아! 백송! 이 친구야! 자네는 사해련의 군사이자 지낭이지 않은가! 어서··· 제발!"
문인백송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스쳤다.
자신의 주군이 순식간에 이리도 망가지다니.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손녀를 아낀다는 것.
"진정하십시오. 련주.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서 그 아이가 소림 놈들에게 잡힌다 하더라도. 소림에서 그 아이를 어찌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 미친놈들이?"
"휘연이는 똑똑한 아이입니다. 제가 가르쳤습니다. 그렿게 잡힌다면 분명 자신의 신분을 밝힐 겁니다. 련주의 손녀라는 신분. 아무리 정파라 한들 함부로 할 수 없는 방패가 될겁니다."
맞는 말이다.
정파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사파 수장의 손녀를 죽인다?
정사대전을 벌인다는 소리였으니까.
아무리 소림이 사파에게 막 나간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다.
소림방장 현광은 생각할 줄 아는 노괴였으니까.
그제야 공야장천이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았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목숨만은 무사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어떻게든 안전하게 그 아이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공야휘연은 문인백송에게도 제자요, 손녀 같은 아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어떻게든 무사히 귀환시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