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282화 (282/312)

282화. 더 강해졌다

"휴우."

개운했다.

얼마만의 수욕인지.

호북성과 안휘성의 경계에 가까운 제법 번화한 마을.

인구가 많은 곳이었기에 공야휘연은 큰마음 먹고 객잔을 잡았다.

나무는 숲에 숨기듯 사람은 사람 사이에 숨어야 한다.

그래야 추적자가 쉬이 찾을 수가 없었다.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다만 다음을 위한 준비는 해야 했다.

"중놈들이 나에 대해 조사했다면······."

여인을 쫓고 있을 터.

공야휘연을 이곳으로 오는 동안 슬쩍한 것들을 슬쩍 보았다.

남장을 위한 준비물이다.

물론 그냥 슬쩍한 것은 아니다. 값에 맞는 돈을 놓아두었다.

직접 사지 않은 것은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함이다.

남자의 물건을 사는 여인이 드문 것은 아니지만, 자신은 외지인이었으니 .

소림 땡중들이 혹여나 이 마을에서 묻고 다니다가.

무언가 단서를 잡을 수도 있으니까.

여지를 남기지 않아야 했다.

"그럼, 이제 객잔을 옮겨야겠네."

공야휘연은 옷을 갈아입었다.

가슴은 무명천으로 단단히 동여맸다.

너무 답답해서 숨 쉬는 게 어려운 느낌이 들 정도로 꽉 동여맨 후에야, 그럭저럭 남자 같은 모습이 되었다.

남은 것은 얼굴이다.

동경을 보고.

얼굴을 매만진다.

조금씩 얼굴이 변했다.

내공을 사용할 수 있다면 더 쉬웠을 터인데.

그래도 내공 없이 얼굴을 바꿀 수 있는 게 어디인가.

만환신면.

정말 천고의 기물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어, 기억에 잘 남지 않을 인상의 남자 얼굴을 만들었다.

턱 끝을 밀고 밀어 목으로 내린 후 톡톡 두드리니.

목젖이 만들어졌다.

이제 완연한 남성의 외모다.

"됐다."

만족스런 한 마디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공야휘연은 자신의 짐을 바라보았다.

"한 달이면 나을 테니까."

짐 속에 있는 여러 개의 작은 약병.

그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단번에 가루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약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깊게 숨을 들이켰다.

"아! 아!"

소리를 내더니 입을 벌리고 다시 숨을 들이켰더니.

"크윽."

신음을 흘리며 목을 부여잡았다.

목구멍 가운데가 화끈해진다.

그렇게 잠시 시간을 보낸 후.

"됐나?"

그녀의 입에서 거친 탁성이 흘러나왔다.

그냥 들어서는 쉬어버린 남자의 목소리다.

"빌어먹을 중놈들 때문에 성대에 상처까지 내다니."

내공으로 목소리를 바꿀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약으로 일부러 성대에 상처를 낸 공야휘연.

그녀는 창문으로 조용히 객잔을 빠져나갔다.

이럴 목적으로 삼 층의 방을 잡은 것이니.

이 정도는 내공이 없어도 몰래 빠져나갈 수 있었다.

객잔에는 이른 아침에 알아서 떠날 거라고 이야기해두었으니.

자신이 사라졌다고 찾거나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공야휘연은 제법 떨어진 객잔에 처음 오는 여행객인 양 방을 새로 잡았다.

셈을 치르고 삼 층의 방에 들어간 그녀는 정말로 오랜만에 푹신한 침상에 잠을 청했다.

***

깊은 밤.

소림방장 현광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이리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망설일 만큼 큰일이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하무백.

그 괴물을 상대할 방법이.

그래도 먹이가 너무 탐스럽지 않은가.

사해련주에게 재갈을 물릴 수 있는 먹잇감이.

녹옥불장을 챙겨 들었다.

소림사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는 장문영부인 녹옥불장.

이것을 사용해야 할 일이다.

"불존이시여. 이 모든 것은 모두 강호의 평화와 정의를 위함입니다. 제마멸사 파사현정. 아미타불."

나직이 불호를 왼 현광은 방장실을 나섰다.

그의 걸음이 향하는 곳은 소림사가 자리한 소실봉의 중턱.

기암절벽이 가득한 곳이다.

참회동.

죄를 지은 소림의 제자가 면벽하며 참회하도록 가두어 두는 곳.

그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방은 비어 있었다.

이곳에 올 정도로 큰 죄를 지은 제자가 거의 없는 탓이다.

참회동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의 암동.

철문으로 굳건히 닫혀 있었다.

"클클클. 오랜만이외다. 사형. 무슨 일이시오이까?"

철문 안에서 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광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목소리만 들어도 내기가 흔들렸으니.

'아미타불.'

현광은 내공을 끌어 올렸다.

철컹.

굳게 잠긴 여러 개의 자물쇠를 풀고, 철문을 열었다.

내부는 악취가 가득했다.

한 승려가 있었다.

머리에 붉은빛이 감도는 금속환이 씌워져 있었고 등 뒤의 명문혈에는 굵은 쇠사슬이 박혀 있었다.

양쪽 어깨의 견정혈 역시 뚫려서 가는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그 쇠사슬은 암동의 벽에 깊게 박혀 그 승려를 금제하고 있었다.

붉은 눈썹의 승려는 두 눈동자에도 붉은 기운이 번들거렸다.

"여전하군. 사제."

현광의 말에 사제라 불린 적미승, 현황은 빙그레 웃었다.

"크크크. 내가 달라질 게 무에 있겠소이까? 이렇게 만들어 준 덕에 그저 명상만 할 뿐이오."

그의 몸에서 기이한 기운이 넘실넘실 피어올랐다.

'더 강해졌다.'

명문혈을 제압했다.

거기에 단전과 심장, 머리에 금제까지 가했고.

그런데도 저리 강해지고 있다니.

'이제는 나도 제압할 수 없을 지경이구나······.'

염주를 쥐고 있는 현광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장경각의 학승이던 사제다.

마공을 발견하고 익혀 저 지경이 되어 천하를 어지럽혔다.

광사괴승(狂邪怪僧).

당시 천하에 악명을 떨친 사제의 별호다.

결국 사부께서 직접 사제를 제압하여 소림으로 압송하셨다.

그 결과가 암굴로의 유폐.

금제를 가하고 견정혈과 명문혈에 저렇게 쇠사슬까지 박아 넣었다.

헌데.

소림의 온갖 금제를 다 사용했지만, 일 년을 버티는 것이 없었다.

금제가 풀릴 때면 사제는 점점 더 강해졌다.

결국 사부는 십여 년 전 결단을 내리셨다.

혈교와 마교가 천하를 어지럽히는 와중에 사제가 그들과 접촉이라도 하게 되는 날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림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 있던 봉인구.

불존께서 천하를 어지럽히는 마귀 요괴를 봉인하는 데 사용하셨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봉인구 세 개.

그것을 사용했다.

하나로는 부족하여 결국 셋을 모두 사용했다.

그제야 사제 현황을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사제는 야금야금 강해져서, 결국 지금은 현광의 경지를 뛰어넘은 것으로 보인다.

현광의 현 경지는 사부께서 현황을 제압할 때보다 강했다.

'이 결정이 맞는 것일까?'

사제를 보는 순간 잠시 결정이 흔들렸다.

이렇게 강해졌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저런 사제라면 하무백, 그자를 제압하거나 제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겼다.

이율배반적인 감정이다.

애초에 사제를 죽이지 않고 살려둔 이유가 무엇이던가.

이런 만약의 사태가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해서 치열했던 지난 전쟁에서도 이곳에 가둬두지 않았던가.

풀어줬다가 마교나 혈교 쪽에 붙어 버릴 위험도 있었기에 봉인해둘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봉인을 더 강하게 했었다.

'이악제악(以惡制惡), 이마제마(以魔制魔)로다.'

악으로 악을 제압하고, 마로써 마를 제압한다고 되뇌는 현광.

"한 가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현광이 담담히 말했다.

"해줘야 할 일? 큭큭. 재미있구려. 수십 년을 이곳에 이리 가둬두고는 이제 와서 해줘야 할 일이라······. 내가 순순히 따를 것 같소이까?"

"금고아(金箍兒)를 풀어주마."

담담한 현광의 말.

그 말에 현황은 두 눈을 부릅떴다.

"호오. 내 심장을 옥죄고 있는 그것을 풀어주겠다는 게요?"

현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사형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아무리 방장이라 하지만 사부께서 내린 명이 있을 터인데?"

전대 소림 방장인 두 사람의 사부 광해의 유명을 말함이다.

"사부의 유명이 지엄하기는 하다만."

현광이 챙겨온 녹옥불장을 꺼내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현황.

소림에서 가장 지고한 권위를 가진 녹옥불장이라면 사부의 유명을 멈출 수 있었다.

"크크. 어떤 일인지 모르겠소이다만. 이왕 풀어주는 거 머리랑 단전에 있는 것도 풀어주는 것이 어떻소이까?"

"마하반야 바라밀다 심경 관자재보살 행심 반야 바라밀다······."

대답 대신 반야심경을 읊조리는 현광.

그 중얼거림에 현황은 대번에 사색이 되었다.

"그, 그만······."

허나 현광은 멈추지 않았다.

시작은 반야심경이었으나, 곧 현광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달라졌다.

심경이 아닌 주문으로.

"긴고주(緊箍呪), 금고주(金箍呪), 금고주(禁箍呪)······."

"크아악!!!!!"

그와 동시에 현황을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한 손은 머리를, 한 손은 심장을 부여잡은 채 부들거렸다.

눈이 까뒤집어진 채로 거친 숨을 토해내며 비명을 지르는 현황.

"끼아악. 으헉. 끄악!!!"

이내 온몸을 버둥거린다.

현광은 무심한 얼굴로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긴고주, 금고주, 금고주, 긴고주, 금고주, 금고주······."

"사, 사형. 끄헉. 제발, 제발. 그만! 그만! 끄아아악!"

그러고도 얼마간 더 주문을 왼 후에야 현광은 입을 다물었다.

"크헉. 헉헉. 아악. 학학."

현황은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 이······."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차마 꺼내지 못하고 현광의 입만 바라보았다.

언제 다시 주문을 욀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이다.

"긴고아(緊箍呪), 금고아(金箍呪), 금고아(禁箍呪). 셋 중 하나만 풀어주더라도 그 고통이 조금은 줄어들 텐데?"

틀린 말은 아니다.

머리와 심장, 그리고 단전.

세 곳이 동시에 옥죄어지며 당장이라도 터트릴 것만 같은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사라진다면?

"씨발."

생각을 하던 현황이 욕설을 내뱉었다.

똑같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긴(緊)고아, 금(金)고아, 금(禁)고아.

셋 중 하나만 하더라도 죽음보단 더한 고통을 주는 봉인구다.

그 셋이 모두 현황을 봉인하고 있고.

하나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둘이 남는다.

셋이 주는 고통이나, 둘이 주는 고통이나 다를 게 없다.

"됐소이다. 셋이나, 둘이나."

현황은 두 눈을 감았다.

들을 것도 없다는 태도다.

그런 사제를 지그시 바라보는 현광.

이내 그의 입이 다시 열린다.

반야심경의 구절이 흘러나온 후.

"긴고주, 금고주, 긴고주, 금고주······."

주문이 흘러나오고.

현황은 다시 한번 지옥 같은 고통에 두 눈이 뒤집혔다.

잠시 후.

"어떤가? 사제?"

담담히 묻는 현광.

"헉.헉.헉. 내 이 개 같은 봉인에서 풀리는 날이 온다면 말이다······. 가장 먼저 현광! 네 놈을 갈가리 찢어발길 것이다······."

현황의 두 눈이 분노와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런 현황의 반응에 현광의 입에서 다시 한번 주문이 흘러나왔다.

"긴고주, 금고주, 금고주, 긴고주, 금고주, 금고주······."

"끄아아아아악!!! 자, 잘못했소!! 사형!! 불민한 사제가 잠시 미쳤었소!!! 제발 용서해주시오!! 까아아아악!"

철컹! 철컹!

바닥을 뒹구는 현황의 움직임에 그를 구속하고 있는 쇠사슬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허나 현광은 주문을 그치지 않았다.

한동안의 시간이 더 흐른 후에야 주문은 멎었다.

"헉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는 현황.

그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고통에 온몸을 잘게 떨었다.

"어떠하냐?"

다시 묻는 현광.

"화, 확실히··· 셋이 더 고통스럽구려······."

둘이나 셋이나 다를 게 없다 여겼는데.

아니었다.

일부러 두 개의 주문만 외워 둘만 발동시킨 후.

세 개의 주문을 모두 외워 셋을 모두 발동시켰다.

더할 수 없는 지옥 같은 고통 위에 다시 한번 지옥의 고통이 얹어졌다.

정말로.

상상도 못 한 차이였다.

"거기에 더해 잠시 바깥세상에도 나갈 수 있을 게다."

그 말에 현황의 두 눈이 번쩍였다.

"그 말을 먼저 해줬어야지요. 사형."

이 암동에 갇힌 지도 이십 년이 넘었다.

얼마나 답답한 시간이던가.

바깥세상이라니.

"허튼 생각은 말거라."

"크크큭. 크크."

현광의 말에 현황은 그저 웃음을 흘릴 뿐이다.

"내가 해줘야 할 일이 무엇이오이까?"

"여아가 하나 있다. 사해련주와 관련이 있는."

"죽이면 되오?"

"잡아 와라. 털끝 하나 건드리지 말고."

현광이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말했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 무공을 숨기고 있다."

"그깟거 알아보는 건 일도 아니외다. 본질은 숨길 수 없는 법이니. 크크크."

이를 드러내며 웃는 현황의 기세는 섬찟했다.

"허튼짓할 생각은 하지 말고. 혹시라도 소문이 들려오는 날에는······."

"날에는?"

"내 죽을 때까지 주문만 외고 있을 거다."

듣기만 해도 살 떨리는 협박이다.

그 고통을 사형이 죽을 때까지 겪어야 한다니.

주문을 외는 장소는 상관이 없었다.

사형이라는 저 인간이 주문을 왼다는 것이 중요했다.

어디에 있는 즉각적으로 반응을 할 터이니.

그야말로 불존이 내렸다는 천고의 기물이라는 명성다운 기물이다.

"알겠소이다. 내 몸을 옭아매고 있는 이것들이 얼마나 빌어먹을 것인지는 내 잘 알고 있소이다."

"광사괴승(狂邪怪僧). 그 소문이 퍼져서는 안 될 일이다."

광사괴승.

현황이 소림을 벗어나 천하를 어지럽힐 때 얻었던 별호다.

***

동쪽으로 향하는 하무백의 얼굴이 좋지만은 않았다.

"땡중놈들. 확실히 제법이야."

목란산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듯했던 그들이.

어느새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추적 중인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하무백은 기감을 넓게 퍼트렸다.

소림승들의 기감이 잡혔다.

그들은 차근차근 움직이고 있었다.

공야휘연의 기감은 잡히지 않았다.

칠채봉환을 차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녀의 기척을 찾을 방법은 있지만, 일반적인 방법과 달랐기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힘들었다.

즉, 하무백도 현재 그녀의 소재를 모른다는 것이다.

"응?"

기감을 퍼트리던 하무백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녀의 기척은 느끼지 못했지만, 대신 다른 흔적을 느꼈다.

"설마? 아니겠지?"

그 흔적을 느낀 곳.

그곳에 그녀가 있으면 안 되었다.

소림승들이 그곳을 향해 접근하는 중이었으니까.

하무백이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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