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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84화 (284/312)

284화. 사, 사일자뢰궁!

"머, 멈춰라!!"

갑작스러운 하무백의 행동에 연진이 몸을 날려 주먹을 뻗었다.

콰콰쾅!

연진의 주먹에서 권력이 쏟아져 나왔다.

백보신권.

소림 칠십이종절예 중 하나가 그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하무백은 무심한 얼굴로 우물의 덮개를 부순 주먹을 꺼내 마주 휘둘렀다.

콰콰쾅!

역시나 쏟아지는 권력.

쾅!

두 사람이 뿜어낸 권력은 허공에서 부딪혔고.

"크윽."

연진은 몸을 날렸던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가 힘없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의 입가에 가는 핏줄기가 보였다.

단 한 번의 격돌로 내상을 입은 것이다.

"하 시주! 정녕 소림의 행사를 방해하시겠다는 겁니까?"

연진이 하무백을 향해 분노를 담아 외쳤다.

하무백은 피식 웃었다.

"소림이 뭐라고."

그 말에 젊은 소림승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눈앞에서 사문이 무시당한 것에 분노한 것이다.

"그리고 행사는 무슨. 너희가 찾는 사람 여기에 없어."

하무백이 여상한 말투로 말했다.

"그 무슨······."

연진이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 우물에 숨어 있는 여시주를 빼돌리려는 생각 아닙니까?"

의심 가득한 눈빛.

하무백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연진을 바라보았다.

"내가 왜? 그렇게 귀찮게? 정말 내가 너희가 쫓는 사람을 도울 생각이라면 그냥 너희들 다 쓸어버리는 게 훨씬 편한데?"

젊은 소림승들의 얼굴은 당장 터질 것만 같았다.

그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무시도 이런 무시가 없었다.

허나 연진은 입술을 깨물 뿐 더 대꾸하지 않았다.

하무백의 말이 사실임을 아는 까닭이다.

"하면 대체 왜 저희 앞을 막아서는 겁니까?"

"말했잖아. 나도 여기에 볼일이 있다고."

그 말을 끝냄과 동시에 하무백은 우물의 덮개를 그대로 벗겨 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제법 큰 바위와 자갈들이다.

말라서 폐쇄한 우물의 전형적인 모습.

"잘도 덮어놨네."

짤막한 감상.

그때 연진이 슬금슬금 하무백의 곁으로 다가왔다.

하무백은 굳이 연진을 제지하지 않았다.

조금 전이야 다짜고짜 먼저 주먹을 휘둘렀으니 받아쳐 준 것이다.

아마 내부가 상당히 진탕되었을 것이다.

지금 저렇게 서 있는 것만도 엄청난 인내력을 발휘하는 중일 터.

우물의 내부를 확인한 연진의 인상이 굳었다.

당연했다.

사람이 숨어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여전히 그의 두 눈에 사기가 보이고 있었다.

반야보리심안이 틀리지는 않을 터.

그런 연진이 반응은 무시한 채 하무백이 손을 뻗었다.

능공섭물이 펼쳐졌다.

적당한 크기의 바위와 자갈이 두둥실 떠올라 우물 밖으로 치워졌다.

그리고 드러난 모래와 흙바닥.

피식 웃은 하무백이 여전히 손을 뻗은 채 물끄러미 모래 바닥을 바라보자.

바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들썩들썩하던 곳에 무언가가 솟아오르나 싶더니.

그대로 솟구쳐 하무백의 손에 잡혔다.

그것은 평범한 외양의 철궁이었다.

"그, 그것은······."

연진이 두 눈을 부릅떴다.

자신의 눈에 보인 사기가 저 활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기가 저렇게 흘러나오는 활이라니.

분명 자신들이 쫓는 이가 지니고 있던 것이리라.

설마 이곳에 저것을 저리 숨겨두고 떠났을 줄은.

"사, 사일자뢰궁!"

하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볼 일은 이것이라."

사기를 저렇게 줄줄이 흘려내고 있는 병기라니.

불길했다.

여간 불길한 게 아니다.

저런 병기는 반드시 회수해서 소림 깊숙한 곳에 봉인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건만.

저것을 들고 있는 놈이.

하무백이다.

"하 시주."

연진이 하무백을 불렀다.

"안 돼."

어떤 생각인지 안다는 듯, 하무백은 어림도 없다는 듯 말했다.

"그, 그것은······."

"아, 그건 네 생각이고. 아니면 네놈들이 먼저 꺼내지 그랬어?"

"강호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연진이 어떻게든 하무백을 설득하려 했다.

허나 그 명분은 하무백에게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다.

지금껏 이 사일자뢰궁은 사해련에 있었다.

그렇다고 강호에 안녕과 평화가 없었던가?

혈교와 마교 놈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로 강호는 나름 평화로웠다.

오히려 저 잘난 놈들이 서로 잘났다고 싸워댄 것 때문에 안녕과 평화가 흔들렸으면 모를까.

"그렇게 강호의 안녕과 평화가 걱정되면 힘으로 빼앗아 가 보던가?"

하무백이 사일자뢰궁을 연진의 눈앞에서 흔들며 말했다.

연진은 이를 악물었다.

말이 안 통하는 놈이다.

힘은 더 안 통하는 놈이고.

"네 이놈!"

그때 분노를 참지 못한 젊은 승려 하나가 하무백을 향해 몸을 날렸다.

조금 전.

연진이 하무백과의 격돌에서 내상을 입은 것을 보았음에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대금강권의 초식이 젊은 승려의 손에서 펼쳐졌다.

"머, 멈춰라! 항진!"

연진이 다급히 외쳤으나 이미 그 주먹은 하무백의 얼굴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가사를 터뜨릴 듯 부푼 근육에 거대한 덩치.

파랗게 민 머리가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그가 중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그야말로 대금강권에 어울리는 체구였다.

허나.

파직.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는 오른손을 감싸 쥐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의 오른손 손가락은 전부 제각각의 방향으로 휘어져 있었다.

모두 부러졌다.

하무백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었는데.

"무, 무슨 호, 호신강기가······."

연진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괴물이다.

항진이 이대제자라고는 하지만, 그 권의 위력만큼은 일대제자 못지않았다.

그런 항진의 대금강권을 단순히 호신강기만으로 막았다.

오히려 항진의 손가락이 박살이 났다.

다섯 손가락이 모두 부러졌으니.

호신강기의 반탄력이 그 정도로 강했다는 의미.

저 괴물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는데 항진은 저 지경.

"쯧."

하무백은 그 모습에 가볍게 혀를 한 번 찼다.

그리고 연진을 바라보았다.

염주를 쥔 연진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 한 번으로 하무백은 똑똑히 보여 주었다.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그럼에도 덤빌 거냐고 묻고 있었다.

이대제자와 삼대제자들이 조금씩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항진이 당하는 모습에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직 한 사람.

항산 그만은 처음부터 평온한 표정이다.

그의 시선은 하무백이 아닌, 하무백이 가지고 있는 활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게··· 사일자뢰궁······.'

사파의 병기라고 하지만, 전설의 병기다.

사파에서 가장 강한 열 개의 병기.

거기에 사해련주의 병기.

그 전 소유자는 사파제일궁.

전설적인 병기를 직접 보고 있으니 호기심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그의 그런 호기심이 장경각의 역사서를 탐독하게 하였는데.

지금은 하무백의 손에 시선이 고정되어 움직일 줄을 몰랐다.

항산의 시선을 느끼지 못할 하무백이 아니었다.

하무백이 고개를 돌렸고, 항산과 눈이 마주쳤다.

"윽."

깜짝 놀란 항산이 뒤로 한 발 주춤 물러났다.

연진 사숙과만 상대하고 있어서 몰랐는데.

무슨 사람 눈빛이 저렇단 말인가.

담담히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항산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뭐지?"

하무백이 말하자 연진이 한 걸음 옆으로 옮겼다.

그렇게 항산의 앞을 막으며 하무백의 시선을 가렸다.

"연진. 당신 말고. 거기 뒤에. 뭐지?"

하무백이 항산을 꼭 집어 말했다.

"우리는 이만 물러가겠소이다. 하 시주."

연진이 황급히 말했다.

멋모르고 덤비던 항진이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무백이 항산을 지목했다.

항산에게 무슨 사달이 날지 몰랐기에, 제자를 보호하기 위해 후퇴를 선택한 것이다.

"갈 때 가더라도. 물음에 답은 해줘야지? 그렇게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면 말이야. 응?"

하무백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항산을 향해 있는 그의 눈빛.

재촉하고 있었다.

어서 그 이유를 말하라고.

항산은 그 재촉을 버티지 못했다.

"저, 그······."

"멈춰라."

항산이 막 입을 열려 할 때 연진이 다급히 막았다.

어디까지나 제자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멈추는 건 연진 당신이 멈추고."

하무백의 기세가 일순 연진에게 집중되었고.

"큭 "

연진은 이를 악물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말해. 왜 그렇게 이것을 바라보고 있었지?"

하무백이 사일자뢰궁을 슬쩍 들었다.

항산의 시선이 사일자뢰궁을 따라 움직인다.

"항산······?"

연진이 그런 항산을 보았다. 하무백의 기세는 어느새 거두어져 있었기에.

"안 잡아먹으니까. 연진 당신은 좀 빠져 있고. 이 활이 왜?"

"어, 저··· 그 서책에서만 보던 신병이 직접 눈앞에 있어서······."

우물쭈물 답하는 항산.

하무백이 평범한 철궁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활이 가지고 있는 기운으로 이것이 사일자뢰궁임을 알아보았다.

실물을 본 건 하무백 역시 공야휘연을 만났을 때가 처음이었다.

병기라는 것에 딱히 큰 관심이 없는 하무백이다.

병기를 가려 쓰는 경지는 아득히 넘었기에.

하무백이 히죽 웃었다.

소림의 중놈 주제에 병기를 보고 저리 눈을 빛내는 녀석이 재미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사파의 병기 아니던가.

"사도십병?"

"네. 십 년 전 새로이 편찬된 무림병기백서에서 이르기를······."

하무백의 물음에 항산이 두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그 모습에 연진을 비롯한 소림승들은 살짝 질린 기색이었다.

항산이 저런 것에 관심이 많고 공부도 깊게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저럴 줄이야.

"해서, 사용자의 경지에 따라 활의 형태가 변하는 천고의 신병이라 합니다. 그 본모습을 완전히 드러냈을 때는 백금빛으로 은은히 빛나며 화려한 용의 형상을 한다고. 그 마지막 형상을 보여 준 것이 관천사화궁이 사용할 때라 합니다."

하무백도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소림승이 저런 모습이라니.

저놈은 중이 되면 안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호기심도 들었다.

사용자의 경지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병기라니.

공야휘연의 경지도 그 나이대에서는 낮은 것이 아니었는데, 평범한 철궁의 모습이었다.

그 정도 경지는 평범하다고 활이 평가한 것이다.

병기 주제에 무인의 경지를 평가한다는 것이 재미있으면서도 같잖았다.

"방법은?"

"네?"

하무백의 물음을 얼떨결에 되묻는 항산.

"이 활의 형상을 변화시키는 방법."

"아. 사일자뢰궁의 주인이 내공을 불어넣으면 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만. 사도십병이라 불리는 만큼 사공(邪功)에만 반응한다고 합니다. 어설픈 정파의 무인이 사일자뢰궁의 주인이 되려 시도하다가는 오히려 궁의 사기에 먹혀버릴 수도 있다고······."

항산이 설명을 주욱 이어 나갔다.

들어야 할 내용은 들었음에도 항산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참 말이 많은 중놈이다.

항산의 말은 무시한 채 하무백이 사일자뢰궁에 내공을 밀어 넣었다.

"어엇.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 궁은 사파의 무공에만 반응을······."

하무백이 사일자뢰궁에 내공을 불어넣는 기색임을 눈치챈 항산이 다급히 말했다.

하무백 정도의 경지라면 사일자뢰궁에 먹히는 일은 없겠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 행동이라 생각했기에.

그런데.

우웅······.

활이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에 놀란 연진이 황급히 항산을 돌아보며 물었다.

"사공에만 반응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맞습니다. 사도십병이 사도십병이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것입니다. 사파의 무인들만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연진의 두 눈이 떨렸다.

하무백의 내공에 사일자뢰궁이 반응하는 듯한 모습이었기에.

"하, 하시주가··· 허면 사, 사공을 익혔다는······."

이렇게 중얼거리던 연진이 깨달았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서 사파의 그 악적을 찾는 것을······."

사파의 무공을 익힌 정파의 고수라니.

이것은 명백한 배신이었다.

해서 하무백을 바라보는 연진의 두 눈에 분노의 기운이 자리했다.

'본산에 알려야 한다.'

연진은 결정을 내렸다.

이 소식을 소림에 전한 후, 전원 옥쇄하는 한이 있더라도 저 배신자의 걸음을 막겠다 굳게 마음먹었다.

연진이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하무백은 사일자뢰궁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낮은 떨림 후.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 부신 빛을 터뜨렸다.

갑작스러운 섬광에 활을 보던 이들은 두 눈을 감았다.

빛이 사라진 후.

항산의 말대로였다.

승천하는 용의 형상을 한 화려한 활이 하무백의 손에 들려 있었다.

"어엇?"

허나 그 설명과 다른 것이 있었다.

그랬기에 놀란 항산.

분명.

백금빛으로 빛난다고 했다.

새하얀 백금색의 궁은 맞았다.

허나.

신비롭고 영롱한 칠채로 빛났다.

백금빛이 아닌.

"어, 어찌······."

강호 병기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했다는 무림병기백서의 내용이 틀릴 리가 없는데.

서책과 다른 모습. 기록에 없는 모습이다.

"서, 설마?"

항산은 번득 머리에 스치는 생각에 깜짝 놀랐다.

어쩌면 지금까지 사일자뢰궁이 보여 주었던 모습 중 최고 경지가 백서에 기록된 것이고.

지금 하무백이 보여주는 형상은 그 경지마저 뛰어넘은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소림승들은 진정한 본모습을 드러낸 사일자뢰궁의 모습에 넋을 놓았다.

사파의 병기인데.

저 신성해 보이기까지 한 형상이라니.

하무백 역시 멍한 눈으로 사일자뢰궁을 바라보았다.

'이, 이건······.'

사일자뢰궁을 쥔 하무백의 손이 잘게 떨렸다.

눈가 역시 파르르 떨렸다.

하무백이 항산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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