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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85화 (285/312)

285화. 관천사화궁이라고?

공야휘연은 안휘성에 접어들었다.

호북성의 경계를 넘어서 안휘성으로 들어갈 때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름 모를 마을에 숨겨둔 자신의 애병이 자꾸 마음에 걸린 것이다.

허나 소림의 추적을 따돌리려면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선택이었다.

할아버지가 선물한 병기이자 어머니가 쓰던 병기이기에 더욱 애착이 가고 소중히 했던 것이었는데.

'가지고 오지 말았어야 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허나 정파의 영역으로 홀로 정체를 숨기고 들어오는데.

자신감을 채워주고 마음을 안정시킬 애병이 필요했다.

애병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 도움이 되었으니.

그랬기에 가지고 올 수밖에 없었다.

이내 고개를 세차게 젓는 공야휘연.

'지난 일은 잊자. 앞으로가 중요해.'

안휘성으로 들어왔다.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해야 한다.

다행인지 소림승들의 추적은 조금 느려진 것 같았다.

그러라고 가짜 흔적을 만들고, 흔적을 지우고 정말 열심히 움직였으니까.

남장까지 하고 있으니 더더욱 알아보기 힘들 것이다.

신발까지 바꿔 신었다.

남성의 발 크기에 맞춰서.

발자국의 깊이까지 신경 써서 신발 안 빈 공간에 적당한 무게까지 더했다.

허나 안심할 수 없었다.

다루에 앉아 바깥 풍경에 시선을 둔 공야휘연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이윽고 입술을 가볍게 깨무는 그녀.

'돌아갈 수밖에 없나?'

사일자뢰궁의 사기를 볼 수 있는 고수가 추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떻게 된 연유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상당히 위험한 상황.

잡혀도 죽지는 않는다.

'할아버지의 손녀니까.'

대신 사해련에 크나큰 짐을 지우게 된다.

지난날.

어머니가 지었다는 죄보다 더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사파의 지존인 사해련주의 손녀가 정파에 포로로 잡히다니.

동투제 우승을 운운할 단계는 지나갔다.

소림에게 추적을 당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자신을 쫓는 소림승들은 진심이었으니까.

공야휘연은 머릿속에 중원의 지리를 떠올렸다.

일단 무창이 있는 호북을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안휘로 넘어왔다.

이곳도 안심할 곳은 아니다.

합비에 남궁세가가 있었으니까.

'강서성을 거쳐서 호남성으로 들어간다.'

호남성 형산.

사해련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자 사파 영역의 최전방이다.

일단 그곳에 접어들면 안심이다.

다만 형산 북쪽.

장사를 중심으로 한 호남성 일대가 정파의 영역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지금껏 추적을 피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소림에서 단독으로 날 쫓고 있다.'

정천맹에서 나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로지 소림사 단독의 움직임.

그렇다면 귀환하는 길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도 있었다.

***

사제는 떠났다.

"아미타불."

현광은 염주를 굴리며 불호를 외었다.

자신이 세상에 재앙을 풀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일말의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함이다.

"모든 것은 대의를 위함이니··· 불존이시여. 아미타불."

주문이 미치는 범위는 넓고도 넓었다.

두 개의 성을 가로질러 멀어지지 않는 한은 주문으로 현황을 제압할 수 있었다.

"이제는 맹주를 움직여야 할 때인가."

현광은 다시 방장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무려 사해련주의 손녀가, 정천맹에 언질도 없이 정파의 영역에 들어와 있는 상태다.

소림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그녀를 사로잡는 것은 소림이 될 테지만, 그래도 정천맹을 움직여야 했다.

정파의 일이었으니까.

소림사 방장실에서 정천맹의 본맹이 있는 낙양을 향해 전서응이 날아올랐다.

***

"으윽······."

"이, 이럴 수가······."

제 모습을 드러낸 사일자뢰궁은 엄청났다.

그 자태와 위용이 완전히 드러났다 싶은 순간.

하무백의 오른손에 들린 활에서 그야말로 사기의 폭풍이 휘몰아쳐 나오고 있었다.

이대제자와 삼대제자는 물론이거니와 연진까지 내공을 끌어올려 사기의 폭풍에 저항했다.

한순간의 폭풍이 지나가고.

연진이 분노에 가득 찬 외침을 토해냈다.

"하무백 네놈이 정파를 배신하고 사파의 무공을 익혔단 말이더냐!!"

허나 하무백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자신의 손에 들린 활을 바라볼 뿐.

'이 활은······.'

"소림의 제자들은 즉시 나한진을 펼쳐 정파를 배신한 저 악적을 포위하라!"

연진의 명령에 소림승들은 나한진을 구성하며 하무백을 둘러쌌다.

그리고 연진은 항산에게 전음을 보냈다.

[너는 즉시 이 모든 사실을 전서응을 통해 본산에 알려라.]

사공에만 반응하는 사일자뢰궁을 하무백이 깨운 것을 말함이었다.

항산은 나한진에서 빠져나와 주춤주춤 움직였다.

하무백은 그런 소림승들의 움직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는 옛 기억 속을 헤매고 있었으니까.

"나도 저 아이랑 비슷한 나이의 딸이 있단다."

천상의 선녀가 이리 아름다울까 싶은 여인이 살풋 웃었다.

아니, 정말로 천상의 선녀가 아닐까?

그런데 선녀도 아기를 낳던가.

어렸기 때문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망상을 하며 눈앞의 은인을 바라보았다.

무복 차림임에도 단아하면서 고아해 보였다.

거지나 다름없는, 엄밀히 말하면 거지인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귀한 사람 같았다.

그런 사람이 자신과 동생을 도와주었다.

그것도 단지 동생이 딸과 비슷한 나이라는 이유로.

지금껏 도와준 사람도 있었고, 해코지한 사람도 있었다.

무시한 사람은 부지기수였고.

그런데 이런 고귀한 선녀가 자신들을 도와주다니.

"일단 나와 함께 움직이자꾸나. 내가 떠나면 저것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선녀가 한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자 후다닥거리면서 움직이는 거지 무리의 소리가 들렸다.

"네······."

품에 설란을 안은 어린 하무백은 겨우겨우 대답했다.

"히끅. 흑. 흑."

울고 있는 동생을 달랠 생각도 못 하고.

"저런. 괜찮단다. 이리 온."

선녀는 하무백에게 싱긋 웃어주고는 설란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토닥이며 설란을 달랬다.

아이가 있다는 말은 사실인지 그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익숙해 보였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셨으면······.'

문득 그런 생각에 하무백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무백은 눈앞의 선녀가 설란을 달래는 모습을 눈에 담아 두었다.

언제고 은혜를 갚으려면 꼭 기억해둬야 했으니까.

그렇게 눈에 담은 모습.

어깨에 빗겨 멘 활이 있었다.

백금빛으로 빛나는 용의 형상을 한 활이.

지금 자신의 손에 들린 바로 이것과 같은 형상을 한 활이 말이다.

옛 기억의 바닷속에서 빠져나온 하무백.

그는 가볍게 땅을 박찼다.

소림승들이 만들어 둔 나한진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몸을 날린 하무백이 착지한 곳은.

슬금슬금 물러나고 있던 항산의 바로 앞이었다.

"으힉!"

갑자기 나타난 하무백의 신형에 깜짝 놀란 항산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누구라고 했었지?"

"네? 네?"

"용의 형상을 한 이 활을 사용한 마지막 사람."

"아, 아··· 관천사화궁입니다."

항산이 더듬더듬 대답했다.

"저 악적을 잡아라! 항산을 구해야 한다!"

연진의 외침과 함께 소림승들이 하무백을 향해 몰려왔다.

"날파리 같은 것들이··· 방해하지 마!"

분노에 찬 하무백이 왼팔을 휘둘렀다.

콰콰콰콰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소림승들 앞의 땅이 깊게 파였다.

흙먼지를 뒤집어 쓴 소림승들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깜짝 놀란 몇몇 이들은 주저앉기도 했다.

연진은 경악한 눈으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귀찮은 날파리 쫓듯 휘두른 팔 한 번에 드러난 광경은.

"괴, 괴물이로고··· 아미타불······."

"거기 그대로 있어라. 한 번 더 방해하면 그때는 죽는다."

하무백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살기가 폭사했다.

"힉!"

"따, 딸꾹."

살기를 견디지 못한 몇몇 제자들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연진은 하무백의 경고에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저 인간이 저렇게까지 말했다면, 반드시 실천했으니까.

즉, 움직이면 정말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다만 저놈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는 확인을 해야 했다.

지금 항산을 해하려 하는 것이라면 당장에라도 달려들었겠지만.

지금은 무언가를 물어보려 하고 있는 듯하였으니.

하무백 바로 앞에 있는 항산 역시 부들부들 마찬가지로 몸을 떨고 있었다.

엄청난 살기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관천사화궁이라고?"

하무백의 시선이 다시 항산에게로 향했다.

"···네······."

항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무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관천사화궁.

기억에 없는 이름이다.

적어도 자신이 무림에 투신한 후 들은 적이 없었다.

"관천사화궁이 사용할 때 이 활이 백금빛으로 빛났다고 했지?"

항산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칠채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백금빛보다 더 영롱하고 신비로워 보였다.

"관천사화궁이 누구지?"

이 말 많은 중놈이라면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 그녀의 이름은 우문가율이라 합니다. 사파제일궁으로 사해련주 공야장천의 며느리이기도 하고요. 혈교와의 전쟁······."

하무백의 물음에 어느새 살기로 인한 공포도 잊고 설명에 열중하는 항산.

그의 설명에 하무백은 두 눈을 빛냈다.

'공야장천의 며느리!'

항산의 설명은 이어졌다.

"죄를 짓고 사해련에 유폐되어 지금은 잊혀졌습니다."

"죄?"

다시 묻는 하무백.

"그것이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집결 장소에 도착이 늦었다고······. 그 때문에 사해련이 혈교에 크게 패했다는 기록입니다."

기억을 더듬으며 말하는 항산.

하무백은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 것이다.

"이것도 인연이란다. 바쁘기는 하다만, 너희가 안전한 곳에 가는 것을 확인해야만 내 마음이 편하겠구나. 그러지 않으면 걱정에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질 것 같지 않아."

그때 그녀는 바쁘다고 했었다.

하무백과 하설란을 돕느라 시간을 지체했고.

'설마 그 때문에?'

하무백의 머릿속에 작은 의문이 떠올랐다.

'공야 영감에게 확인해 봐야겠군.'

이번 일이 끝난 다음 행선지를 사해련으로 정했다.

교룡관으로의 복귀가 늦어지겠지만.

이번 일은 하무백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은인에 대한 단서를 찾았으니까.

적어도 이제는 우문가율이라는 이름은 알게 되지 않았는가.

하무백이 슬쩍 연진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연진이 움찔했으나 여전히 분노한 눈빛을 쏘아내고 있었다.

"멍청한 놈. 내 몸 어디에서 사기가 느껴진다고. 반야보리심안이 고작 그 정도였나?"

하무백이 연진을 비웃었다.

그 말에 발끈하려던 연진은 반야보리심안을 운용해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그리고 깜짝 놀랐다.

당연했다.

하무백에게서는 단 한 톨의 사기도 느낄 수가 없었으니까.

당장 오른손에 들고 있는 저 활에서 어마어마한 사기가 흘러나오고 있음에도 하무백의 몸은 깨끗하기만 했다.

"사기에만 반응한다는 활이건만······."

"그건 나도 모르지. 왜 내 내공에 반응한 건지는."

하무백이 연진을 노려보았다.

"어이없는 헛소리에 당장이라도 박살을 내주고 싶다만. 너희들 모두 이 녀석 덕에 살았어."

하무백은 항산의 어깨를 한번 툭 치고는 몸을 날렸다.

어서 빨리 공야휘연을 찾아야 했다.

항산에게 들은 사실들이 말하고 있었다.

공야휘연이 은인의 딸이라고.

이제는 공야휘연을 찾는 목적이 달라졌다.

'안전하게 사해련으로 데리고 간다.'

그것이 작게나마 은혜를 갚는 길이다.

그때 그녀가 아니었다면.

하무백과 하설란.

그 거지새끼들에게 어떤 꼴을 당했을지 알 수 없었으니까.

두 사람은 어쩌면 세상에 없을지도 몰랐으니까.

***

"크하하하하하!!"

밤하늘을 울리는 광소가 터져 나왔다.

쿠콰콰콰콰쾅!

그리고 이어서 공기를 찢어발기는 커다란 파공음까지.

현황은 한껏 웃으며 땅을 치달렸다.

이 얼마 만에 느끼는 상쾌한 바깥 공기란 말인가.

눅눅하고 음침한 암동의 공기와는 전혀 달랐다.

"호북성 목란산이라고 했던가? 크흐흐흐."

마음 같아서는 천천히 움직이고 싶었다.

그럴 수 없는 것이 원통할 뿐이다.

"쫌생이 같은 사형 같으니라고."

현광이 현황에게 준 시간은 닷새.

그 안에 소림으로 돌아오거나 공야휘연을 생포했다는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면 주문을 외울 거라 고했다.

목란산이라는 곳은 주문이 닿는 범위 안.

해서 빨리 달릴 수밖에 없었다.

허공을 달리는 그의 신형은 빨랐다.

엄청나게 빨랐다.

그렇게 달리는 현광의 두 눈이 붉게 빛났다.

"사파의 젊은 여인이라 했겠다."

그의 눈이 빛을 토하며 사방을 살폈다.

기감이 아닌 눈으로 보는 세상이다.

그것도 본질을 보는 눈.

장경각의 그 신서를 보는 순간 얻게 된 능력 중 하나였다.

멀리.

희미하게 사기가 보였다.

아주 진득하게 피어올랐다.

"크흐흐흐."

현광은 괴소를 흘리며 더욱 빠르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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