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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288화 (288/312)

288화. 저쪽이란 말이렷다

막 경계를 넘어 안휘성에 접어드는 찰나.

연진은 우뚝 멈춰 섰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제자들 역시 그대로 멈춰 섰다.

연진은 자신들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불길하면서도 엄청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항산이 조심스레 물었다.

소림승들 중 그 누구도 아직 그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다.

"무언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연진이 바라보는 곳은 호북성 방향.

그는 두 눈에 반야보리심안을 운용했다.

혹시나 하는 심정에서였다.

그리고.

기척이 느껴진 곳을 바라보는 순간.

"이, 이게 대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중얼거렸다.

심안에 보인 기운.

분명 사공의 기운은 아니다.

그렇다고 정공의 기운 역시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

다만 어마어마하게 거대했다.

사기에만 반응하는 반야보리심안에 보인다고 하면 사공임이 맞을 터인데.

사공은 아니었다.

심안의 반응이 사공이 아니라고 하고 있으니.

그런데 심안에 보이고,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까?"

연진의 반응에 항산이 다시금 물었다.

"모두들 진을 펼치고 경계해라."

연진의 명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제자들.

다만 의구심을 가진 얼굴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방향이 뒤쪽이었다.

자신들이 지나온 곳.

그곳에 경계할 것이 대체······.

쿠쿠쿠콰콰콰쾅!

그때 그들의 귓가에 들리는 요란한 파공성.

의구심은 긴장으로 바뀌었다.

연진은 한 곳을 잔뜩 노려보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대한 기운.

"응?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생각보다 제법이구나."

허공에서 뚝 떨어진 붉은 눈썹의 괴인.

아니, 괴승.

그는 가사를 두르고 있었다.

그것도 소림의 가사를.

그 모습에 소림승들은 깜짝 놀랐다.

이제는 그들도 그가 뿜어내는 불길하면서도 음습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아미타불. 어디서 오신 고인이신지요?"

연진이 조심스레 물었다.

"크헐헐. 네놈은 사문의 존장도 몰라보는 것이더냐?"

돌아온 대답에 연진은 당혹스러웠다.

상대가 다 헤져버린 소림의 가사를 걸치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이 소림의 제자라는 증거는 아니었다.

가사 정도야 저자거리에서 똑같이 만들어 파는 상인들도 있었으니까.

게다가 존장이라니.

연진은 자신의 윗대인 현자배 전원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 중 눈앞의 괴승과 같은 이는 없었다.

"허어. 오랜 세월이 흐르기는 한 것 같구나. 네놈은 연자배 같은데······."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눈빛이 연진에게로 향했다.

"네놈은 정녕 나를 모른단 말이더냐?"

다시 묻는 괴승.

그 음성이 사나워져 있었다.

연진은 당혹스러웠다.

적어도 소림의 승적에 이름을 올린 현자배 중 자신이 얼굴을 모르는 이는 없···

아니다.

하나 있었다.

'서, 설마······.'

연진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적미의 괴승을 바라보았다.

그럴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참회동에 갇혀 있을 터인데······.'

그것도 전대 방장께서 유언까지 남기셨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 있다고.

저리 멀쩡하게?

'보, 본산은 괜찮은 것인가······.

자신의 기억에 따른다면, 눈앞의 이 사숙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소림사에 무슨 사달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흥. 이제야 알아본 모양이로구나."

"소림 제자 여, 연진이 사, 사숙을 뵙습니다······."

갑작스러운 연진의 행동에 소림승들은 혼란에 빠졌다.

연진의 사숙이라면 현자배.

그들도 현자배에 저런 괴승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다만 항산만은 경악한 얼굴을 애써 숨기고 있었다.

'어, 어떻게··· 참회동에서 나오는 것이 불가능할 텐데······.'

장경각 깊숙한 곳에는 저 사숙조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었으니.

"그래. 이제야 제대로 존장을 알아보는구나. 네놈들이 쫓던 그 년에 대해 말해 보거라. 시간이 얼마 없다."

"네?"

연진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들이 추적하는 여인에 대해 말하라니.

"쯧. 장문사형이 그 년을 잡아오라 나를 보낸 것이다. 하 뭐시기라는 놈 때문에 네 녀석들이 못 잡을 것 같다고."

여전히 당혹스러운 이야기다.

장문사형이라 함은 방장 현광 사숙을 이르는 말일 터인데.

아무리 방장이라 할지라도 마음대로 저 괴물을 풀어줄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연진은 순순히 지금껏 알아낸 사실을 이야기했다.

얼굴은 몰라봤지만.

광사괴승에 대한 것만큼은 그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광사괴승 현황은 안휘성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쪽이란 말이렷다. 크크크."

그의 몸에서 기운이 넘실넘실 피어올랐다.

두 눈이 더욱 새빨갛게 물들었다.

붉은 안광이 쏘아져 나왔다.

"어떤 방법으로 기운을 금제하더라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 법. 본질을 찾으면 금세 보일 터다. 크크크크."

그렇게.

멀리.

더 멀리.

살폈다.

사공을 익힌 여인의 흔적을 쫓아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거대한 기운 하나.

"흐음. 저놈이 하 뭐시기라는 놈이겠군."

당연할 터.

자신이 나서야 할 정도로 거대한 기운은 그것 하나밖에 없었으니.

잠시 그 대상을 바라보던 현황이 인상을 찡그리는가 싶더니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나. 그래. 크흐흐흐. 나랑 비슷한 놈이었어. 그러니 당할 수가 없는 게지. 크흐흐흐."

연진은 현황이 말하는 하 뭐시기가 하무백임을 알았다.

그의 기운을 지금 현황이 느꼈다는 것이 놀라웠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는 것에서 다시 한번 놀랐다.

어찌.

현황은 주변의 반응에는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앞을 살폈다.

이윽고.

"크흘흘흘. 남장을 했구나. 남장을 했어. 찾았다. 찾았어."

현황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연진을 비롯한 소림승들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의문이 가득한 얼굴.

허나 현황은 그런 의문 따위는 풀어줄 생각이 없다는 듯.

몸을 훌쩍 날려 허공으로 사라졌다.

콰콰콰콰쾅!

그가 몸을 날리자마자 요란한 파공음이 울렸다.

연진은 멍하니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사, 사숙··· 대체 저분은······."

제자 중 누군가가 얼빠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알 거 없다. 다만, 대체 어떻게······."

방장이 풀어준 것 같은데.

그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선사의 유지가 남아 있는데?

혼란에 빠진 연진 곁으로 항산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아마도··· 녹옥불장을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항산의 말에 연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그 수가 있었다.

얼마나 당황했으면 녹옥불장을 잊었을까.

그런데.

"네가 어찌······."

연진의 말에 항산이 쓴 웃음을 지었다.

"장경각에 기록이 있었습니다."

모든 설명이 되었다.

항산이라면 능히 그 기록을 찾아 읽었으리라.

"후우."

연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찾았다면, 그곳이 어디인지 말이나 해주고 떠났으면 좋았으련만.

아무리 그가 나섰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음이니.

"우리도 계속 간다."

연진의 명에 소림승들은 다시 움직였다.

소림승들이 떠난 곳.

이 각 후.

우문가율이 그곳에 도착했다.

자리를 확인한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불길한 기운은 잠시지만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확인을 위해 이곳에 왔더니.

많은 이들이 잠시 멈춰있었던 흔적이 있었다.

동쪽으로 이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흔적.

그들이 이동해왔던 흔적까지 확인하니.

정체가 짐작이 되었다.

"소림사."

딸아이의 뒤를 쫓고 있다는 소림승들이리라.

그 불길한 기운이 이곳에서 소림승들과 만났다.

허나 아무런 사달도 없었다.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 후 소림승들도 동쪽으로 움직였고.

혼란스러웠다.

사파인 우문가율 자신이 이리 불길하게 느낄 기운의 주인이라면.

당연히 소림과 적대할 터인데.

그런 흔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곳에서 서로 담소를 나눴다 해도 믿을 정도.

자신의 육감이 맞는 듯했다.

그러지 않기를 바랐건만.

그 불길한 기운은 휘연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정확히는 휘연을 쫓고 있는 듯했다.

우문가율이 말라서 쩍쩍 갈라진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몸을 솟구쳐 달렸다.

지칠 대로 지쳤지만.

그녀의 두 눈만은 형형히 빛났다.

***

안휘성 안경(安慶).

장강 중류 좌안에 위치한 수운이 발달한 도시다.

포구에는 장강 상류와 하류로 오가는 수많은 배들이 모여 있었다.

상선들은 짐을 싣고 내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꾼들과 상인들, 그리고 배를 타고 떠나려는 사람들까지.

안경의 포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수운으로 발달한 도시다운 모습이었다.

하무백은 지금 안경 포구에 도착해 있었다.

정신없는 포구에 자리한 한 다루.

하무백은 이곳에 있었다.

언제고 이곳에 나타날 공야휘연을 기다리며 기감을 안경 전체에 퍼뜨렸다.

안경으로만 기감을 한정한 것이다.

현재 공야휘연은 칠채봉환으로 내공을 금제한 상황이다.

봉인된 탓에 내공이 단 한 줌도 없는 상태.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과 똑같은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기척으로 찾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

허나 하무백에게는 달랐다.

처음에는 하무백 역시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겼으나, 고민을 해보니 수가 있었다.

칠채봉환으로 금제한 공야휘연을 눈앞에서 본 덕이다.

그녀는.

내공이 없었다.

한 줌이 아닌 단 한 톨도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아무리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람이라면 아주 적은 양의 내공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선천진기로부터 발원한, 태어나 자라고 움직이면서 자신도 모르게 형성되는 극미량의 내공.

그것이 있기에 무인들이 내공을 느끼고 무공을 익히는 것이 가능하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어찌 내공을 느끼고 쌓겠는가.

모든 사람이 선천진기에서 비롯된 극미량의 내공이나마 가지고 있기에 내공을 느끼고 쌓는 것이 가능한것이다.

그런데 내공이 봉인된 공야휘연은 내공이 아예 없었다.

그런 극미량의 내공마저.

모조리 칠채봉환에 의해 봉인되었기에.

강호인들 사이에 있었다면, 그저 무공이 없는 보통 사람이라 느껴지겠지만.

무공이 없는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공야휘연은 내공이 아예 없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다만 그 극미량의 내공과 아예 없는 상태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 지닌 내공이라는 것이 아예 없는 것과 다를 게 없을 정도의 극미량인지라.

그것을 구분해내려면 아무리 하무백이라 할지라도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감의 범위가 제한되는 것이다.

넓게 펼친 기감에서는 그 정도의 구분은 불가능했으니.

안경이라는 곳이 드나드는 사람이 많은 수운 도시라는 것이 애로 사항이기는 하였으나.

이 정도 범위라면 능히 가려낼 수 있었다.

다만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터.

그랬기에 하무백은 다루에 앉은 채 무심히 기감에 집중하고 있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던 차는 차갑게 식은 지 오래였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자신의 계산대로라면 하루 이틀 안에 도착해야 했다.

하무백이 안경에 도착한 것은 어제였으니까.

안경에 한정지어 기감을 펼친 하무백.

그 속에서 공야휘연을 찾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척을 살폈기에.

안경 밖의 상황은 느끼지를 못했다.

어마어마한 기운이 안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음에도 하무백은 그 사실을 몰랐다.

본래의 하무백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기운이다.

불길함에 더해 거대했으니까.

헌데 지금은 모든 기감을 안경에 집중한 상황.

때문에.

몰랐다.

그것이 하무백의 실수 아닌 실수였다.

***

공야휘연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회녕을 지나 계속해서 움직인 끝에.

드디어 안경이 코앞이기 때문이다.

현재 그녀의 외양은 썩 좋지 않았다.

빠르게 이동하느라 초라해질 대로 초라해져 있었다.

회녕도 밤늦게 도착하여 아침 일찍 떠나지 않았던가.

안경에 들어서서 배만 탄다면.

일단 푹 쉴 수 있을 터.

그리고 배에서 내린다면 수욕도 가능할 터다.

그 생각에 공야휘연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른 것이다.

현재 빠른 속도로 그녀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존재에 대해서는 모른 채.

내공을 금제한 현 상황에서는 알 방도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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