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298화 (298/312)

298화. 장경각?

하무백이 한 말에 소림승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무림공적을 왜 소림에 와서 찾는단 말인가.

광사괴승.

무림대전 이전의 희대의 무림공적이라는 풍문을 들은 이들은 소림에도 제법 있었다.

다만 그들은 현황을 광사괴승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가 소림 출신인 것은 몰랐다.

문파의 치부였기에 철저히 함구하고, 감췄으니까.

현황이라니.

현자배면 현 방장과 같은 배분.

그런 어른이 있다는 것은 소림으로 입적한 이후 들은 적이 없다는 얼굴들이다.

갑자기 난입해서 헛소리하는 인간이라니.

다만.

현자배의 승려들.

그리고 연자배의 제자들 중 연배가 많은 이들.

이들의 안색이 변했다.

사문의 치부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는 이들이다.

그들은 당연히 광사괴승이 소림 출신이라는 것과 그 법명이 현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부 연자배의 제자들은 그저 광사괴승이 현자배의 소림승이라는 것만 알고 있기도 하였고.

저 인간이 갑자기 나타나 다짜고짜 현황을 찾고 있으니.

광사괴승이라 칭하기 전에 법명을 정확히 말했다.

다 알고 있다는 뜻.

소림의 치부를 알고 찾아온 저놈의 목적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 무슨 말이오? 하 시주. 무림공적을 왜 소림의 본산에서 찾는 것이오? 본사의 참회동에 가둬 둔 마두와 공적들이 있긴 하오만."

"현광. 네놈이 풀어준 네 사제. 그놈이 소림에 돌아왔을 텐데? 잊혀진 무림공적 광사괴승, 현황."

하무백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는 현광.

무례한 하무백의 모습에 분노하다가 방장의 사제가 무림공적이라는 말에 놀라는 소림승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소이까?"

현광이 하무백을 노려보았다.

"네 사부. 광해성승께서 유언까지 남겨 절대 풀어주지 못하게 한 놈을 잘도 풀어주었구나. 선사의 유지까지 어겨가며."

계속되는 하무백의 말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생겨났다.

갑자기 난입한 침입자가 쏟아내는 말은 쉬이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과연 저 말도 안 되는 말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소림승들의 소란이 웅성거림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무백은 명분을 쌓기 위해 개방에게서 얻은 모든 정보를 풀어놓았다.

"대체 어떻게 선사의 유지를 어길 생각을 한 것이지. 전대 방장이신 광해성승의 유지는 현 방장인 현광 네놈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아!"

말을 쏟아내던 하무백은 말을 하던 중에 깨달았다.

"방법이 있었겠군. 방장이니. 녹옥불장의 권위를 사용하면 되는구나!"

하무백의 말은 모든 소림승들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의도적으로 내공을 가득 실어 소림사 경내 곳곳에 퍼질 수 있게 하고 있었으니까.

해우소를 청소하는 승려들까지도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말이 지나치시외다. 하 시주."

현광은 묵묵히 대꾸했다.

"하면? 참회동의 그놈을 보여줄 수 있는가?"

"소림의 일이고, 소림의 금지요. 외부인인 하 시주가 관여할 바가 아니외다."

단호하게 말하는 현광.

그는 하무백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현광은 지금 하무백을 도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분쟁에 대한 명분은 자신들이 우위다. 하무백은 그저 소림에 난입한 무뢰배일 뿐인 것이다.

거기에 하무백이 먼저 손을 쓴다면, 그 명분은 더욱 확고해진다.

게다가 현황을 자신이 풀어주었다는 증거 따위는 없었다.

녹옥불장의 권위를 사용했지만.

그것은 현황에게 정당하게 잠시 풀어준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명분.

현황과 단둘이 있을 때 녹옥불장의 명으로 풀어준 것이니.

혹여나 훗날 장로나 원로들이 이번 일을 문제 삼을 때를 대비한 것이기도 했다.

결국.

현황이 스스로의 힘으로 도망을 친 것인지.

아니면 현광이 풀어준 것인지.

증명할 방도가 없었다.

그저 그놈이 도망쳤다고 하면 되는 것.

그때.

나서는 이가 있었다.

현축.

장경각주이다.

그는 현광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스스로의 의사로 나선 것이다.

하무백의 저런 행패나 다름없는 행동에도.

현황이라는 법명에, 생각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장 사형! 혹시 장경각의 침입자가 현황 사형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의문이 모두 풀립니다. 그렇다면 현황 사형이 참회동을 탈주했다는 것인데··· 어찌 그것이 가능할지······."

하나의 의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생각했는데, 더 큰 의문이 튀어나온 꼴.

현축의 개입에 현광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가 유도하려던 현황의 탈주.

그것은 현축이 나서서 말한 것이다.

제자들의 믿음을 한가득 받는 장경각주 현축이 말이다.

이제 하무백이 아무리 현광 자신이 현황을 풀어주었다고 주장해도 제자들은 그가 탈주했다 생각할 것이다.

"장경각?"

하무백의 기감이 순식간에 장경각을 훑었다.

그곳에 남아 있는 잔향.

천수사리보리경이 뽑혀 가며 남긴 아주 희미한 허무의 잔향.

하무백은 그것을 느꼈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마교 교주.

석원초의 천마신공에 묻어 있던 것과 유사한 잔향이었는데.

그것을 깨닫는 순간.

벼락같이 하무백의 뇌리를 꿰뚫는 깨달음이 하나 더 있었으니.

'운뢰······.'

바로 단목운뢰의 무공이었다.

허무호연심결.

거기에서 느꼈던 어딘가 익숙한 느낌.

그 익숙함의 정체가 바로 천마신공이었다.

정파인 단목세가의 무공답게 광명정대(光明正大)한 성격을 띠었기에.

그 익숙한 느낌에도 미처 마교의 천마신공을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하무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재미나군. 소림사에 마공과 비슷한 흔적이라니······.'

하무백의 역린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입가에 차갑디차가운, 살기 가득한 미소가 걸렸다.

하무백이 현광을 직시했다.

"설명이 필요할 듯한데?"

자신을 향한 물음에 잠시 염주를 굴리는 현광.

이것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설마.

하무백이 소림에서 마공과 유사한 흔적을 느낄 줄이야.

더 큰 문제는 마교와 혈교를 상대로 눈이 돌아버린 하무백이다.

하무백이 어떤 괴물인지 지난 전쟁, 무림대전 때 현광은 똑똑히 보았다.

지금과 똑같은 눈.

똑같은 살소였다.

마른침이 절로 넘어가는 상황.

"아미타불. 그런 참담한 말이라니. 하 시주. 도가 지나치다! 어찌 대소림, 그것도 장경각에서 마공의 흔적을 운운하는 겐가!"

현광은 일단은 강하게 부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외침에 현축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경각주인 현축이 누구보다 분노할 말이었다.

장경각에서 마공이라니!

그때.

고오오오오.

하무백 주변의 공기가 울음을 흘렸다.

"대화는 여기까지야. 현황. 그 새끼 당장 데려와라. 아니면 기어 나오게 해주마."

급작스러운 변화.

하무백은 어느새 검을 뽑았다.

역수로 그러쥔 검에는 어느새 암흑보다 새까만 묵강이 가득 맺혀 있었다.

그대로 검을 치켜든 하무백.

"갈! 감히 소림의 경내에서 멋대로 검을 뽑아 들다니!"

현광이 그 즉시 전신의 내공을 급격히 끌어올렸다.

그의 가사가 잔뜩 부풀어 펄럭였다.

양손에 영롱하게 맺히는 금빛 강기.

신성하고도 거룩한 기운.

금강여래불광대수인(金剛如來佛光大手印).

소림 칠십이종절예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소림삼대신공.

그 중 소림제일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장법이다.

지난 전쟁에서 하무백 역시 감탄했던 어마어마한 장법.

그것의 기수식이 펼쳐지며 이제 곧 하무백을 향해 금빛 강기가 날아올 참이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하무백의 움직임이 멈췄다.

현광의 금강여래불광대수인 때문이 아니었다.

기감 때문이었다.

소실봉 곳곳을 탐색한 기감은 그 방향을 돌려 준극봉 쪽으로 향하던 중.

진득한 기운을 느낀 것이다.

"거기냐?"

검을 든 채 하무백은 땅을 박찼다.

하무백의 입에서 거칠게 토해지는 창룡음!

갑작스러운 상황에 소림승들은 멍한 얼굴이었으나.

현광은 그러지 않았다.

"어딜 도망가느냐!"

어디로 가는지 안다.

그러나 저 모습은 도주처럼 보여야 했다.

현광 역시 땅을 박찼다.

그의 입에서 토해지는 명.

"금강나한은 나를 따르라!"

곧 서른여섯의 승려가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뒤로 현광의 명이 없는데도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모두 현자배의 고승들.

그들 역시 하무백을 이대로 그냥 보낼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하무백이라 하나.

그는 소림에서 선을 많이 넘었다.

혈교 교주와 마교 교주를 쓰러뜨린 소휘웅이라 할지라도 소림에서 이럴 수는 없었다.

그런데 고작 호천단주가.

감히.

잠깐이나마 보여준 기운은 무시무시했으나.

이곳은 소림이고.

자신들은 소림의 제자였다.

콰콰콰콰콰!

공기를 부수며 치달리는 하무백.

그는 현황이 어두운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곳을 향해 곧장 달렸다.

'다르다.'

안경 인근에서 조우했을 때와 기운의 질과 위력이 모두 달랐다.

아마도 장경각에서 느낀 그 잔향과 연관이 있을 터.

'이래서였나.'

그래서 중간에 그리 도주한 것이리라.

장경각에 남아 있는 마공 때문에.

"크하하하하하!!! 되었다!!! 크하하! 우우우우!!!"

그때.

암동에서 커다란 광소와 함께 현황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의 입에서 거친 사자후가 토해졌다.

준극봉의 험준한 절벽 앞의 허공에서 마주친 두 사람.

하무백은 지체 없이 검을 휘둘렀다.

검은 묵강이 줄기줄기 뻗어나갔다.

현황이 피하지 않고 마주 손을 뻗었다.

강기의 빛깔이 변했다.

회색빛이던 그의 강기가.

지금은 검은빛이었다.

하무백의 묵빛과는 달랐다.

어딘가 불길함이 가득 담긴 어두운 검은빛.

암(暗).

어둠 그 자체와 같았다.

콰아아앙!

절벽이 뒤흔들렸다.

돌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향해 더욱 가까이 다가서며 더욱 살벌하게 검과 주먹을 휘둘렀다.

쾅!

쾅!

콰쾅!

쾅!

준극봉이 뒤흔들렸다.

날짐승들이 푸드덕거리며 거칠게 날아오르고, 산짐승들은 흥분하여 산속을 내달렸다.

모두 하무백과 현황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그제야 준극봉에 도착한 소림승들.

그들은 하무백과 현황의 대결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어찌.

저게 인간들의 대결이란 말인가.

어쩌면.

하무백 저자가 소휘웅보다 강한 것은 아닐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의문이 누군가의 머리에 떠오를 즈음.

"혀, 현황 사형이어, 어찌······."

누군가 부릅뜬 눈으로 하무백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금쇄(金鎖)의 금제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

현길이었다.

사백인 광해성승에게서 직접 금쇄의 금제를 사사받은 인물.

그랬기에, 현황이 절대 탈주할 수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건만.

이곳에 저리 나타나 있다니.

'화, 확인해야 한다.'

금쇄의 금제가 정말로 파훼된 거라면.

더 강한 금제를 만들어내야 했다.

광해성승의 유지를 직접 들은 이는 현길, 그 혼자였으니.

글월로 남긴 유지가 아닌, 열반 그 직전에 육성으로 직접 남긴 유지를.

그랬기에 확인해야 했다.

현길은 몸을 돌렸다.

모두가 하무백과 현황의 싸움에 정신을 빼앗겼음에도.

현길은 자신의 사명을 위해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그가 향하는 곳은 참회동.

하무백이 확인하자고 했던 그곳이다.

현길은 입술을 짓씹으면서 달렸다.

그의 두 눈은 혼란에 휩싸여 흔들렸다.

달리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금쇄의 금제가 파훼되었어도 문제, 파훼되지 않았어도 문제임을.

"크하하!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연신 하무백을 향해 양주먹을 휘두르는 현황.

그의 광소가 숭산 전체에 퍼지는 듯했다.

하무백은 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현황의 말대로다.

이전과 달랐다.

몰라보게 강해졌다.

일 권, 일 권의 위력이 며칠 전과 비교가 안 되었다.

'어떻게······.'

깨달음 한 번에 불과 한 시진 만에도 몰라보게 달라지는 것이 무인이라지만.

이놈은 그런 게 아니었다.

기운 자체의 성격이 바뀌었다.

가뜩이나 음습하고 불길하던 기운이.

흉살스럽고 불결하면서도 진득한 어둠과 같았고, 공허했다.

세상 나쁜 것과 부정적인 것은 모두 모아놓은 듯한 느낌.

천마신공?

아니다.

이건 그보다 더 깊고 절망적인 무언가였다.

하무백을 향해 뻗어오는 여섯 개의 검은 기운의 촉수.

이전과 같은 형태였으나 달랐다.

하무백의 검이 그것들을 잘라냈으나.

다시금 자라 올라오는 촉수.

"이 빌어먹을 문어 대가리 새끼가."

그냥 기분이 더러워지는 공격이었다.

절로 욕설이 흘러나왔다.

"클클. 어디 그 문어 맛 좀 보거라!"

세 번째 조각을 성공적으로 흡수한 덕일까.

현황은 쉬이 흥분하지 않았다.

조롱 섞인 욕설에도 오히려 웃으며 양손을 펼쳤다.

시꺼먼 암흑이 그의 손바닥에서 열렸다.

그 기운의 운용이 하무백의 무극명륜안에 똑똑히 보였다.

기운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으나, 움직임만큼은 파악하는 것이다.

헌데.

그 움직임이.

"금강여래불광대수인?"

조금 전.

현황이 하무백을 향해 쏟아내려던 바로 그것과 한치의 다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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