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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무공교관-300화 (300/312)

300화. 너는 무엇이냐?

현길은 참회동을 나섰다.

이곳에 갇혀 있던 이는 현황 단 하나.

때문에 경계도 없었다.

그저 숭산의 험준한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질 뿐.

이곳에 갇힐 정도로 큰 죄를 지은 이가 현황 외에는 없었다.

광해성승의 금제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겼기에 가장 깊숙한 암동에 가둬 두었다.

홀로 이곳에 갇혀 있는 고독 또한 커다란 징벌이었기에 경계도 세우지 않은 것이다.

여기를 아는 이들은 현자배뿐이다.

연자배 중 현황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들도 이 참회동의 위치는 몰랐다.

참회동이 이곳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였기에.

현길의 시선이 준극봉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울림과 떨림, 기파의 진동이 이곳까지 전해지고 있음이니.

가히 인세의 경지를 넘어선 괴물들의 싸움이었다.

그곳을 바라보던 현길이 담담히 자신의 내면을 마주했다.

그곳에는 스스로를 심연이라 칭한 존재가 현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정을 내렸나? 애타게 나를 찾고서 정작 만난 후 도망을 친 겁쟁이여?

두 달 만에 다시 조우한 심연.

'너라는 존재는 대체 무엇이냐? 어찌 무공이 의지를 가진단 말인가?'

현길의 물음.

-풋. 하찮은 놈이로고.

돌아온 것은 조소였다.

'오히려 네놈이야말로 마구니가 아니냐?'

-마구니라니. 마구니라니. 아니란 것은 하찮은 겁쟁이, 네놈이 더 잘 알 터. 마구니란 결국 네놈의 번뇌일지니.

현길이 눈살을 찌푸렸다.

역근세수경을 깊게 깊게 파고들어 조우한 존재다.

그 존재가 마구니일 리는 없었다.

역근세수경 속에 마구니라니.

정말 그렇다면 그것은 역근세수경을 잘못 익힌 자신의 번뇌 때문인 것이다.

-나는 태초의 수많은 파편 중의 하나. 그것의 의식이다. 나의 의지는 곧 태초의 의지. 그 힘을 받아들이겠느냐? 인연자여?

처음 심연을 조우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이다.

태초.

광해성승이 알려 주었던 존재.

그랬기에 그곳에 도달했음을 기뻐해야 했으나 현길은 덜컥 겁이 먼저 났다.

무공이 이런 의지라니.

아무리 태초가 세상의 시작이라지만 과연 가능한 일일까란 의문과 고민.

그것으로 두 달을 보냈다.

그 결정을 강요한 것은 태초의 심연이 아니었다.

오히려 방장사형 현광의 행동과 타락한 사형 현황의 무지막지한 모습이었다.

그간의 고민은 길었으나.

결정은 빨랐다.

광해성승의 유지를 받들어야 했다.

'받아들인다.'

현길이 대답함과 동시에.

그의 단전에서 찬란한 빛이 잠시 발했다가 사라졌다.

그 후.

현길은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본질.

이라는 세상을.

현길은 곧장 땅을 박찼다.

타락한 사형, 현황을 선사인 광해성승의 유지에 따라 열반에 들게 해주기 위해서.

***

하무백의 검이 다시 움직였다.

그의 입가에 어린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천진난만한 미소였다.

정말로.

이 순간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그런 미소였다.

얼굴 가득 어린 미소에 어울리는 가벼운 움직임을 보이는 검.

봄바람 살랑이듯 불어 나가는 기운은 순식간에 거대한 그물을 만들었다.

현황을 모든 방위에서 옥죄어 부수겠다는 기세.

현황은 자신을 둘러싼 새하얀 검강의 그물에도 여전히 두 주먹을 움직였다.

칠흑 같은 어두운 강기가 하무백의 검강의 그물에 부딪혔다.

쾅! 쾅! 쾅!

어마어마한 폭음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주춤주춤 물러서는 현황.

"쿠오오오오!"

기합인지 괴성인지 모를 소리가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고.

기어코.

검강의 그물 한쪽을 찢고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현황이 빠져나간 허공.

쇄혼은 급속도로 한점을 향해 모여들어.

파사삭.

그대로 그 범위에 든 모든 것을 부숴버렸다.

"후우. 후우. 후우."

현황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자신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지 아찔했다.

그가 하무백을 노려보았다.

"알 수 없는 놈이로고. 심연을 만나지 못했음이 분명한데. 어찌 이런 강함을 보인단 말인가······. 쯧."

의문이 현황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하무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다음 공격을 이어갈 뿐이다.

여전히 재미있었다.

쇄혼의 그물이 찢길 줄이야.

강호에 나온 후 몇 번 펼친 적이 없다지만.

이렇게 찢고 나온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다음은.

당연히.

오 절.

파천(破天).

과연 이것은 어찌 대응할까?

기대가 되었다.

놈은 분명히 혈교 교주나 마교 교주 이상의 대응을 보여 주고 있었다.

지닌 무공의 위력 자체만 생각한다면.

현황 저놈의 수준은 아직은 개홍천이나 석원초에 미치지 못했다.

즉.

하무백은 아직 온전히 모든 힘을 쏟아붓지는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하무백은 당시의 하무백의 경지를 뛰어넘은 상태였으니.

쿠오오오오오.

하무백의 손을 떠나 허공에 떠오른 검.

새하얀 검강이 진하디진해져.

검과 검강을 구분할 수조차 없이 되었을 때.

검이 그대로 현황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일검에 모든 것을 파괴한다.

하늘마저 부술 수 있는 위력의 초식.

오 절. 파천.

그것이 날아갔다.

현황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어떤 무공으로 막아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위력의 검이 자신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어찌. 저토록 강한 기운을. 심연을 만나지 못했다면, 파편의 온전한 힘을 손에 넣지 못할 텐데······. 말도 안 되는.'

경악한 기색이 역력한 눈빛.

현황은 전신의 내공을 끌어올렸다.

내공일까.

기운일까.

그의 단전에 얽힌 세 가지 파편이 서로를 물고 휘돌았다.

암흑. 혼돈. 허무.

세 가지가 삼태극의 형상을 그리며 점차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동일한 크기의 암흑과 혼돈.

그들보다는 미약한 허무.

심연.

그것이 현황에게 속삭였다.

현황의 뇌리 속에 무언가를 밀어 넣었다.

천수사리보리경.

그것에 숨어 있던 허무의 조각을 얻었을 때 모든 것을 얻었다고 여겼건만, 아니었던 것이다.

단전에서 휘도는 삼태극의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수단.

무공.

심연이 뇌리에 박아 넣고, 전신이 심어준 그것.

암혼멸세파황권(暗混滅世破荒拳).

현황이 장경각에서 처음 조우한 바로 그 무공.

그것이 한 단계 진화했다.

암혼멸세파황권 공허식(空虛式).

그것이 현황의 손끝에서 펼쳐졌다.

이번에는 소림승들 중 그 누구도 현황의 무공을 알아보지 못했다.

지금껏 소림 칠십이종절예 중의 무공을 사용하던 현황이 생소한 무공을 꺼내든 것이다.

주먹과 강기의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칠흑 같은 강기 그 자체가 된 주먹이.

하무백의 검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앙!!!

천지가 떨어 울렸다.

폭풍이 휘몰아쳐 사방을 모두 파괴할 듯 뻗어나갔다.

"크윽."

"으윽."

그 폭풍의 여파가 소림승들을 덮쳤다.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저항했으나.

일부는 피를 토하는 내상을 입기도 했다.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준극봉을 넘어 숭산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하무백은 거칠게 휘몰아치는 거대한 기운의 폭풍, 그 중심을 바라보았다.

검은 기운이 온몸에서 넘실거리는 현황.

그의 두 눈은 시꺼멓게 물들었다.

눈 전체가 시꺼먼.

흡사 지옥의 괴물을 보는 듯한 모습이다.

현황의 눈이 하무백에게로 향했다.

파지직.

허공에서 눈이 얽힌 두 사람.

"이거 고맙다고 해야 하나? 덕분에 한 단계 더 강해졌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분 나쁜 검은 기운의 아지랑이.

조금 전 현황이 허무의 작은 조각 하나를 막 흡수한 참이었다면.

지금은 그것을 자신의 힘에 합일시킨 상태였다.

'저 정도면 더 강할지도 모르겠군.'

비교의 대상은 개홍천과 석원초.

지금 현황은 무림대전으로 천하를 혼란에 빠뜨렸던 원흉 두 사람을 뛰어넘었다는 평을 내리는 하무백이다.

이윽고 폭풍이 잦아들었다.

현황의 모습을 이제는 모든 소림승들이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현광은 두 눈을 부릅떴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리고 연신 불호를 외웠다.

자신이 정녕 재앙을 세상에 풀어 놓았다 생각한 것이다.

이제는 현광의 경지를 현황이 아득히 뛰어넘었다.

언젠가.

무림대전 당시 잠시 조우했던 마교 교주 석원초.

그가 내보이던 기세, 그것보다 더 강한 위압감이 현황의 몸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하무백이 힐끔 그런 현광을 쳐다보았다.

저놈은 제가 풀어줘 놓고는 현황이 탈주했다고 우기고 있는 중.

어쨌든 저 새끼를 가둬놓고 있었다면 분명 금제할 수단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렇게 구경만 하고 있었다.

뭐, 상관없었다. 지금은.

모처럼 재미있었으니까.

물론 그 대가는 추후 치러야 하겠지만.

하무백의 검이 돌아왔다.

여전히 시린 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타핫.

바닥을 박차는 현황.

그의 주먹이 사나운 기세를 뿜어내며 하무백을 덮쳤다.

암혼.

멸세.

파황.

공허.

각각의 오의를 담은 주먹이 무섭고도 흉흉한 기운을 흩뿌렸다.

히죽.

하무백이 웃었다.

저 기분 나쁜 권법.

저 중 하나가 보여 주는 오의.

그것은 무극여의팔절검해 중 하나와 비슷한 분위기였으니.

과연 어느 쪽이 더 강할까?

소림승들이 몰라보는 것을 보니, 저것이야말로 저놈만의 독문 권법일 터.

하무백이 허공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검이 움직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염세적인 기운이 담겼다.

무극여의팔절검해 .

육 절.

멸세(滅世).

세상을 멸한다는 그 검의 기운은 현황의 암혼멸세파황권의 한 부분과 묘하게 유사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근원은 전혀 다른 기운이었으나.

검과 주먹이 거칠게 다투었다.

당장 상대의 목숨을 단번에 끊겠다는 기세로 치명적인 급소만을 노리고 공격하는 두 사람.

그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번번이 상대에게 막혔다.

콰콰쾅!

콰쾅!

거대한 기운의 충돌이 연신 사방을 울렸다.

소림승들은 주춤주춤 물러나 어느새 상당히 멀어진 채다.

서걱.

하무백의 검이 현황의 옷자락을 베었다.

퍽.

현황의 권강이 하무백의 어깨 자락을 스쳤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두 사람.

무려 반 각의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공세를 이었다.

일체의 방어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

공격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

하무백의 입가에 걸린 천진난만한 미소는 더 이상 짙어질 수 없을 만큼 짙어졌다.

현황의 두 눈은 더 이상 검을 수 없을 만큼 검게 변했다.

억겁의 깊이를 가진 무저갱마냥 검고도 검은 눈.

쿠아아앙! 쾅!

서로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두 사람의 공격이 부딪혔고.

결국 뒤로 물러난 둘.

이번 공방에서는 누구도 우위를 잡지 못했다.

"너는 어떤 존재지? 분명 나와 같은 근원의 힘을 가지고 있으나. 그 힘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 나를 만나지 못했으니. 그런데 나 못지않게 강하다. 너는 무엇이냐?"

현황이 하무백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내용이 묘했다.

현황이 묻는 것이되 현황 홀로 묻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심연이라 불렸던 그것.

그것이 현황의 자아에 뒤섞여 있었다.

"지금 네놈 상태를 보아하니 나를 만나지 않는 것이 맞는 것 같군. 자아를 침범하는 힘이라니."

하무백이 흥이 식었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까지는 제법 재미있었지만.

자신을 잃게 되는 무공이라면.

더 이상 지금까지와 같은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개홍천도, 석원초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자아는 견고하게 유지했으니까.

혈공과 마공이라는.

희대의 사이한 무공을 익혔음에도 그랬던 그들이다.

지금 저놈은 당시의 그들보다 강했을지는 몰라도.

실상은 약했다.

무공 따위에게 자아의 일부를 빼앗겼으니.

"훗. 어차피 내 힘을 파훼하지 못하기에 나를 찾아온 주제에."

현황의 조소.

그제야 하무백은 재미에 심취해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공야휘연.

그녀를 잠식하고 있는 기운.

그러고 보니 지금 저놈의 몸에서 넘실넘실 피어오르는 기운과 비슷했다.

지금 보이는 기운이 좀 더 지독했지만.

"뭐, 방법은 찾으면 되겠지. 당장 못 한다고 앞으로도 못하란 법은 없으니까. 마음이 급해져서 네 놈을 찾았다만. 지금 그 꼴을 보니. 글쎄. 그냥 네놈을 쳐죽이는 것이 맞는 것 같군."

하무백의 기세가 변했다.

더욱 농밀하고 거친 기운이 피어올랐다.

"개홍천."

뜬금없이 하무백의 입에서 흘러나온 전대 혈교 교주의 이름.

"석원초."

이번에는 전대 마교 교주의 이름이다.

둘의 대치를 지켜보던 소림승들의 얼굴에 의문이 어렸다.

갑자기 왜?

그런 의문.

"그둘은 그래도 일곱 번째, 여덟 번째까지 봤었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

"하지만 네놈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하무백의 검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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