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301화 (301/312)

301화. 상극?

새하얗게 불타오르는 검.

백화(白火).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땅을 박차 허공으로 솟구치는 하무백.

그대로 허공을 즈려밟고 현황을 향해 쇄도했다.

현황 역시 자신의 기운을 끝까지 끌어올렸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는지 현황도 필사적이었다.

하무백이 현황의 정면에 도착한 것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검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이미 몇 번이나 사용했던 초식.

무극여의팔절검해 일 절.

개천.

현황은 이 초식을 몇 번이나 상대했다.

그랬기에 자신이 있었다.

이전에는 소림권법으로 맞부딪혔다면.

이번에는 달랐다.

암혼멸세파황권.

지금의 현황을 있게 한 권법이다.

그것도 허무의 조각을 더한 공허식.

심연이 이끄는 대로 주먹을 움직였다.

검디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서 하무백의 새하얀 검강에 부딪쳤다.

파지직.

현황의 눈썹이 꿈틀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반응이 일어난 탓이다.

현황 역시 모든 기운을 끌어 최강의 권법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응당 상대방을 압도하거나.

대등하다면 콰앙하는 격돌음이 들리거나 해야 할 텐데.

파지직이라니.

'흡사 불에 타는 듯한······.'

현황이 그런 생각을 떠올린 순간.

정말로 하무백의 검은 현황의 기운을 태워 불사르고 있었다.

"어, 어떻게······."

대경한 현황.

허나 하무백의 검은 거침이 없었다.

현황의 기운을 찢어발기며 불태우고 있었다.

"이익."

넘실거리는 검은 기운이 촉수가 되어 하무백을 향해 날아갔다.

그 움직임은 하나같이 파황권의 투로를 따르고 있었다.

네 쌍의 촉수 주먹이 하무백의 사방을 에워쌌다.

파지직. 파직. 파지직.

그럼에도 일 절 개천은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이 현황의 기운을 불살랐다.

이어서 펼쳐진 이 절.

단하(斷霞)!

거대한 검격은 단번에 현황의 기운이 만든 여덟 개의 촉수를 모두 잘라버렸다.

곧바로 다시 생기는 검은 기운의 촉수들.

이번에는 두 배인 열여섯이었다.

그러나 그뿐.

단하는 거침이 없었다.

새하얗게 타오르는 백화검강(白火劍罡)은 현황이 뿜어내는 기운을 그대로 모두 잘랐다.

현황은 끊임없이 검고 음울한 암흑과도 같은 기운을 뿜어냈지만.

이내 모두 잘려 불살라졌다.

"크아아악!!!"

분노에 찬 현황이 괴성을 질렀다.

그의 칠공에서마저 검은 기운이 꿈틀거리며 흘러나왔다.

그 모습은 무척이나 기괴하면서도 사이했다.

인간이 아니었다.

마인(魔人)?

마인이라 하기에는 훨씬 끔찍한 모습이다.

저기에 비하면 마인은 귀여울 지경.

마귀(魔鬼)?

그래.

마귀였다.

마인이라 하면 그래도 사람의 범주.

지금 현황의 모습은 인외의 존재처럼 보였다.

소림승들은 경악에 휩싸였다.

어떻게 사람이 저런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저건 불존께서 이르신 육도 중 지옥에나 가야 존재할 야차, 마귀 따위의 모습이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소림승들은 연신 불호를 외웠다.

두 눈을 감고 불존을 찾았다.

눈앞에 마귀가 나타났으니 당연한 반응.

현광은 멍한 눈으로 현황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재앙··· 마귀로고······. 사부님. 사부님이 옳으셨습니다. 대체 어디까지 보셨단 말씀이십니까···.'

현광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방장. 내 유지를 남길 것이오. 참회동의 가장 깊은 곳에 가둔 현황. 그를 절대 풀어주지 말라는 유지를요.

이미 방장의 자리를 제자인 현광에게 물려주었던 광해성승.

자신의 제자이기 이전에 소림의 방장이었기에 하대하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사부님.

-헌데. 내 유지라 할지라도. 전대 방장의 유지라 할지라도 깨어질 수가 있지요.

현광은 두 눈을 내리깔았다.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 경우가 무엇인지 광해성승도 알고 현광도 알았다.

다만 둘 모두 그것을 입에 담지 않을 뿐.

정말 그게 이루어진다면, 광해로서는 제자에게 배신당하는 꼴이고, 현광은 사부를 배신하는 참담한 일이었으니.

입에 올릴 수가 없었다.

-방장. 심마를 다스리시오. 속세의 연은 이제 잊고 심마 또한 태워버리시오.

-이미 모두 태우고 잊었습니다. 사부님.

현광의 대답에 광해성승은 지그시 자신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광은 감히 스승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미처 느끼지 못하는 심마가 가슴 속 깊은 곳에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 방장은 부디 계속해서 정진하시오. 그러지 않고 그 심마가 고개를 드는 날, 재앙은 마귀를 불러올 수도 있음이니.

현광은 사제의 모습에서 저것이 재앙이고, 마귀임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사제를 참회동에서 꺼낸 것이 척마멸사 파사현정의 대의를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멸족시킨.

사파에 대한 복수심의 발로였음을.

스승에게 거짓을 고하고 숨겼던 심마의 현현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부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전하지 않은 것일 터.

사제를 제압할.

최후의 심득을.

분명 사부는 그러한 심득을 얻고 궁구하고 있었다.

열반에 드는 그 순간까지도.

하지만 현광 자신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었으니.

모두 자신이 못난 탓이다.

지금 현황의 저 모습을 보고 나니 이제야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아미타불······."

나직이 불호를 외우는 현광.

그는 두 눈을 떠 현황을 직시했다.

저 마귀가 괴물을 쓰러뜨리고 세상으로 나가고자 한다면 이곳에서 막아야 했다.

그것이 그의 사명이었다.

"모두들 멸마나한대진을 준비해라."

현광의 명에 이곳에 모인 소림승들은 내공을 끌어올리면서 움직였다.

방장의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고 펼칠 수 있도록.

사악한 존재를 멸하기 위한 나한대진.

불존의 힘을 극대화하는 성스럽고도 고결한 진법이었다.

그때.

"사형은 아직도 심마에서 벗어나지 못하셨구려. 아미타불."

갑자기 들려온 말에 현광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 현길. 자리를 비웠다가 이제야 나타나고서는."

참회동에서 돌아온 현길은 안타까운 눈으로 사형 현광을 바라보았다.

"사형이라면. 지금 당장 현황 사형을 제압할 수 있지 않소이까? 그런데 왜 하지 않은 것입니까? 심마 때문 아닙니까? 하무백. 저 자를 현황 사형이 제거해주기를 바라서."

정곡을 찌르는 현길의 말.

그랬다.

조금 전 현광의 반성도, 결국은 반성하는 척일 뿐이었다.

세 개의 봉인구는 여전히 현황의 몸에 있었다.

주문만 외우면 단번에 제압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멸마나한대진을 준비하라 일렀다.

저 싸움이 끝난 이후에 개입하겠다는 것.

현길은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사형은 여전히 사파를 미워했다.

파사현정이 아니라, 그저 개인의 원한 때문에.

그리고 사파와 한통속이라 생각되는, 사파를 돕고 있는.

절대강자인 하무백을 제거하고 싶어 했다.

마귀가 된 사제의 손을 빌려서라도.

그런데.

그것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듯했다.

지금 전황이 그러했다.

새하얗게 불타오르는 검을 휘두르는 하무백이 연신 현황을 몰아붙이며 압도하고 있었으니까.

'대체 저 시주는 어떻게······.'

현길의 두 눈에 의구심이 떠올랐다.

이전에는 그저 괴물같이 강해 보이기만 했다.

그러나 심연을 받아들인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류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저 자는 심연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 힘의 끝을 본 듯한 엄청난 위용을 보이고 있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심연도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것이 느껴졌으나.

현길은 그런 심연을 억눌렀다.

그의 힘을 받아들인 것은 오직 현황을 열반에 들게 하기 위함이다.

그 외의 다른 일에 심연의 힘을 빌릴 생각 따위는 없었다.

과연.

하무백.

저 자가 심연의 힘 없이 현황 사형을 열반에 들게 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

"어, 어떻게 이럴 수가······."

현황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하무백이 펼친 삼 절 분뢰.

정말이지 현황의 기운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끊임없이 넘쳐흐를 것만 같던 기운도 이제 조금씩 줄어들고 있음이 느껴졌다.

반면 저 빌어먹을 놈의 기운은 넘쳐흐르고 있었다.

대체 저 괴물은 뭐란 말인가?

어떻게 저럴 수가.

지금 자신의 수준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저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형, 사제, 사질들의 얼굴이 말해주고 있었다.

마교 교주를 봐도 저러지는 않을 텐데.

그런데.

그런데.

그런 자신을 이렇게 압도하고 있는 이 빌어먹을 새끼는 정말이지.

슈아아아악!

잠깐 생각에 빠진 일수유의 틈.

그 사이를 비집고 하무백의 검이 날아왔다.

스치기만 해도 자신의 기운을 불살라 버리는 저 끔찍한 검.

이번에도 여지없었다.

"크윽."

다시 한번 뒤로 물러났다.

계속해서 짓쳐 드는 검.

이제는 끔찍했다.

대체 저 힘은 무엇이란 말인가.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박빙이었다. 아니 자신이 우세한 때도 있었다.

지금은 거짓말같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며칠 전에 전력을 다해 싸웠을 때 약간의 모자람을 느꼈을 진데.

오히려 지금 아득했다.

어떻게 저놈을 상대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으윽."

다시 한번 신음을 흘리는 현황.

"네놈. 대체 그 힘이 무엇이더냐. 어찌 이리 내 힘에 상극일 수가 있지?"

현황의 물음에 피식 웃는 하무백.

허나 검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 의도가 너무도 뻔히 보였기에.

그대로 하무백의 검은 현황의 오른쪽 허벅지를 갈랐다.

파파팟!

피가 튀었다.

지금까지 압도하고 있었으나, 처음으로 현황의 몸을 갈랐다.

깊게 베이지는 않았으나.

상처가 심상치 않았다.

정말로 화상을 입은 듯한 상처였으니까.

단순히 검강에 예리하게 베이기만 한 상처가 아닌 것이다.

그제야 검을 멈추고 현황을 지그시 바라보는 하무백.

뭐, 이 정도쯤에서 잠시 어울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사이 현황은 상처 주변의 혈을 눌러 지혈했다.

신기한 상처다.

불에 탄 상처는 피가 거의 나지 않는다.

피가 흘러나와야 할 곳이 불에 타 엉겨 붙으면서 길이 막히는 탓이다.

그런데.

이 상처는 불에 탄 듯하면서도 피는 흘러나왔다.

대체.

"상극? 멍청한 새끼."

하무백의 대답에 현황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또다시 조롱이라니.

저 찢어 죽일 놈의 새끼가.

"상극이 아니라면. 어째서 네놈의 그 기운이 나의 힘을 모조리 소멸시킨단 말이냐!"

"심연 어쩌고 하는 게 말 안 해줘? 네놈의 자아까지 집어삼키는 것 같더니."

하무백의 물음에 현황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심연.

이놈이 잠잠했다.

대체 언제부터?

"상극이라 네놈이 힘을 못 쓰는 것 같냐? 멍청한 새끼. 똑똑한 놈인 줄 알았는데."

여전한 조롱.

"이유는 단순해."

화를 내려던 현황은 이어진 말에 하무백을 노려보았다.

두 눈이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내가 더 강하니까."

"뭐, 뭐라?"

납득할 수 없는 대답이다.

"네놈이 그 빌어먹을 기운을 뿜어내기 전만 해도 분명히······."

"아까는 적당히 수준 맞춰서 놀아준 거지. 제법 많은 힘을 사용하게는 했다만."

현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세 종류의 파편을 모아서 합쳤다.

물론 온전한 파편이 아니라 조각난 파편이라 하지만.

심연을 만났고, 힘의 진실을 알았다.

허무의 작은 조각이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의 그 고양감을 생각한다면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내가 말했지? 네놈은 내 검의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는 보지 못할 것이라고. 왜 그럴 것 같으냐?"

하무백의 어마어마했던 검법을 떠올린 현황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분명.

자신에게 펼치는 초식을 다시 펼치는 것 같았는데.

결과는 달랐다.

이전에는 현황이 막아내거나, 우세를 점하거나 했지만.

지금은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었으니.

"그럼. 이제 그만 가라."

하무백의 검이 다시 움직였다.

오 절 파천.

하늘이 아닌, 현황을 부숴버리겠다는 기세로 거대한 검이 현황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절대 이대로 당하지 않는다!"

현황은 단전이 부서져라 모든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의 몸은 검디검은 기운에 완전히 뒤덮였다.

오른 주먹을 전력으로 휘둘렀다.

거대한 검은 기운에서 송곳처럼 쏘아져 가는 날카로운 검은 권격.

하무백의 파천과 현황의 암혼멸세파황권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