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하제일 무공교관-305화 (305/312)

305화. 사도이지요

자신을 쏘아보는 하무백의 시선.

보통 날카로운 것이 아니었기에, 현길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보여준 엄청난 신위의 영향 때문이기도 했다.

자신이 아무리 주먹을 두드려 꽂아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었던 현황의 단전.

그것을 어마어마한 힘으로 찍어 눌러 터뜨리지 않았던가.

그 순간 하무백이 보여준 기운의 크기란.

도무지 가늠되지를 않았다.

어찌 인간의 그릇으로 저 정도의 기운을 담을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 정도.

세상의 모든 기운을 현황 사형의 단전에 쑤셔 박는 것 같았으니.

"너도냐?"

하무백의 물음.

허나 현길은 한번에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너도 그 빌어먹을 새끼를 만났냐고."

"누구를 말씀하심인지······."

짐작이 가는 게 있었으나 확실히 하기 위해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

"심연. 그 빌어먹을 새끼."

현길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걸로 되었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대답을 들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뭐, 이미 그럴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지만.

"역근세수경에도 그 빌어먹을 새끼가 있었던 거냐?"

"······."

현길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무백은 그런 현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뭐, 이 새끼처럼 잡아먹히진 않은 것 같으니."

그곳에는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버린 현황의 주검이 있었다.

"나중에 좀 조용한 곳에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도록 하고. 난 이곳에 온 볼 일을 마저 끝내야지."

저벅. 저벅.

하무백이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현광이 있었다.

자신에게 두둥실 떠올라 날아든 봉인구 세 개를 안고서.

"현광. 너 뭐라 지껄였었지?"

하무백이 사나운 기세로 물었다.

"무림공적 광사괴승을 풀어준 적도 없고, 놈이 스스로 달아난 거다?"

사나운 기세가 현광 주위로 집중되었기에 그의 근처에 있던 소림승들이 비틀비틀 물러났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멸마나한대진은 이미 그 대형이 무너진 지 오래다.

하무백과 현황의 전투가 미치는 여파가 워낙에 강력했어야지.

그렇게 사방 일 장의 공간 안에 오직 하무백과 현광만이 마주하고 있었다.

소림사의 중심에 있는 장문인이 기거하는 공간.

방장실과 꼭 같은 넓이였다.

처음 하무백이 발을 디딘 곳이 소림사의 중심, 방장실이다.

현광이 방장실의 문을 열고 나와 하무백과 대치했었다.

그때와 비슷한 그림이다.

허나 그때와 지금.

서로 마주했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외다."

대답하는 현광의 두 눈이 잘게 떨렸다.

방금까지 보고 겪은 탓에 도무지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피식.

하무백이 조소를 머금었다.

"그리 거짓을 밥 먹듯 쉬이 말하니. 사부에게 역근세수경도 전수 받지 못한 게지."

아픈 곳을 쑤셔 파는 하무백의 말.

현광이 이를 꽉 물었다.

"지금 네가 들고 있는 봉인구. 그리고 네놈이 조금 전까지 중얼거리던 주문. 네놈은 마음만 먹으면 현황 저 새끼를 제압할 수 있었어. 그 주문의 유효 거리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하무백의 시선은 긴고아, 금고아, 금고아에 머물러 있었다.

그저 황금빛의 쇠구슬로만 보이는 셋.

빛깔이 미묘하게 달랐다.

백광이 살짝 섞여 백금빛을 은은히 비치는 긴고아

가장 찬란한 황금인 양, 황금빛을 진하게 빛내는 금고아(金箍兒).

은은한 적빛이 감돌아 섬뜩한 느낌을 주는 금고아(禁箍兒).

하무백은 그 명칭까지는 몰랐다.

다만 지닌바 미묘하게 다른 기운과 빛깔 덕에 머리와 심장, 단전을 봉인하고 있던 것들이 각각 무엇인지 구분하고 있을 뿐.

"제압하고 봉인할 수 있는 놈을 그냥 그리 풀어두었다는 것 자체가, 네놈이 놓아주었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

"궤변이외다."

여전히 잘게 떨리는 현광의 눈.

"아닙니다. 사형. 그렇지 않지요. 아미타불."

그때.

현길이 끼어들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 중 유일하게 참회동의 진실을 두 눈으로 보고 온 이.

거기에 제 위력을 내는 데는 실패했다지만, 역근세수경을 익혀 하무백이 지금 내뿜는 기세를 버틸 수 있는 이.

그게 바로 현길이었다.

그랬기에 하무백과 현광만이 있는 사방 일 장의 공간 속에 들어설 수 있었다.

하무백의 시선이 그런 현길에게로 향했다.

"나는 하 시주가 현황 사형과 한창 싸울 때. 참회동에 다녀왔소. 사형."

잘게 떨리던 눈이 이제는 거칠게 떨린다.

설마 이 난리통에 그곳까지 가볼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참회동은 너무도 깨끗했소. 무림공적이라는 광사괴승이 탈출을 한 곳답지 않게 말이오. 하물며 현황 사형이 갇혀 있던 방의 문조차 너무도 멀쩡했지요."

하무백이 다시 현광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현황 사형의 힘을 억제하는 금쇄 역시 풀려서 사라졌지요."

탈출이라면, 금쇄를 뜯어낸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건만.

깨끗해도 너무 깨끗했다.

주춤.

현광이 한발 물러섰다.

철커덩.

그때 그의 소매에서 울리는 소리.

물러서면서 세 개의 봉인구를 소매 속으로 챙겼는데.

무언가가 부딪혀서 울린 소리다.

헌데 그것은 봉인구끼리 부딪힌 청아한 소리가 아니었다.

흡사 묵직한 쇠사슬 같은 것에 부딪힌······.

"금쇄가 거기 있나 보군."

하무백이 현광의 소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것은 현길도 마찬가지.

현황을 금제하고 있던 쇠사슬, 금쇄를 현광이 가지고 있다?

너무 명백한 증거다.

"너 같은 새끼가 소림 방장이라니. 쯧."

실망이 가득한 눈이요, 목소리였다.

소림방장 현광대사.

하무백이 나름 인정하는 인물이었다.

지난 두 번의 무림대전에서, 가장 선봉에 서서 혈교와 마교의 무리들을 때려 부쉈으니까.

같잖은 핑계를 대며 제자들 뒤에 숨어 있던 다른 정파 문파의 장문인이나 문주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그 모습에 하무백은 그를 한 명의 무인으로 인정했었다.

허나 그 모습이 가짜였을 줄이야.

하무백은 현광의 개인 사정을 몰랐다.

무림대전에서 그가 보여준 그 치열하고 열과 성을 다한 모습이.

결국은 개인의 원한을 갚기 위함임을 몰랐던 것이다.

현광에게는 사파나 혈교, 마교 모두 똑같은 존재였음을.

복수의 대상이었음을 말이다.

현광이 현길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너는 왜 끼어들어서 훼방을 놓느냐는 눈빛.

정녕 소림의 제자가 맞냐는 질책이 담긴 눈빛.

현길은 그 기색을 읽었다.

"척마멸사 파사현정. 소림의 길을 갈 뿐이외다. 사형. 사형이 한 짓은 바른길이 아닙니다. 사도이지요. 아미타불."

"······."

적막이 내려앉았다.

고요했다.

소림승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침묵했다.

그럴 수밖에.

소림사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소림의 장문방장 현광대사다.

헌데 그에게 바른길이 아니라 말하는 소림의 제자가 나타났다.

방장이 사도를 걸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현길이다.

역시나 제자들의 인망을 두텁게 얻고 있는 이

더욱이 광해성승으로부터 역근세수경을 전수받은 이.

대체 누가 옳은지 판단이 되지 않았기에 침묵을 택한 것이다.

아니, 판단했기에 침묵을 택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소림의 방장이다.

그를 욕하는 것은 곧 소림을 욕하는 것이었기에.

"아까 하려다 못 한 게 있었지?"

하무백이 현광에게 말했다.

세 개의 봉인구를 품에 챙긴 현광은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하무백을 바라보았다.

"저 새끼가 나타나는 바람에 네놈이 나에게 못 한 게 있지 아마?"

현광은 장경각에서 마공의 기운을 느꼈다는 소리를 했다고 하무백에게 금강여래불광대수인을 펼쳤었다.

"딱 한 대다. 막아 봐라."

그 말을 하고서 하무백은 뒤로 훌쩍 물러섰다.

그리고 그가 취하는 움직임.

현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소림의 제자라면, 한 번 보았다면 절대 모를 수 없는 동작.

금강여래불광대수인의 기수식이다.

소림의 삼대신공 중 하나이기에, 익힌 이는 거의 없었지만.

그 기수식만은 제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다들 알고 있는 동작.

하무백은 현황이 펼쳤던 그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건방진······."

현광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도 잊고 분노가 치밀었다.

저놈은 지금 소림을 농락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현광의 몸에서 금빛 기운이 솟아올랐다.

금빛 강기가 그의 손에 맺혔다.

하무백이 보여주고 있는 금강여래불광대수인의 진정한 기수식이다.

기수식이 완성된 후.

두 사람은 동시에 손바닥을 뻗었다.

콰콰콰콰콰아아!!!

거대한 장력이 서로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금빛 영롱한 현광의 장력.

상아빛이 감도는 하무백의 장력.

허공에서 둘은 부딪혔고.

콰아아아!

소리가 울린 후.

하무백의 장력이 슬금슬금 현광의 장력을 파고들어 거슬러 올라갔다.

현광의 표정이 대변했다.

분명 자신의 장력과 하무백의 장력이 중간에서 기싸움을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자신의 장력 속에 스며들어 거슬러 오는 힘이라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장력을 거두자니, 그러면 하무백의 장력에 잡아먹힌다.

그렇다고 계속 이러고 있자니 정체불명의 기운이 거슬러 오고 있다.

진퇴양난의 상황.

현광이 택한 방법은.

정말 온몸의 힘을 모두 내뿜는 것이다.

장력의 위력을 더욱 거세게 하여 감히 거슬러 올 수 없게 하는 것.

허나 그런 현광의 의도를 비웃듯.

정체불명의 기운은 더욱 빠르게 거슬러 와 그대로.

콰앙!

현광의 단전을 두드렸다.

그 순간.

쩌적.

단전 전체에 퍼지는 균열.

"커헉."

현광은 피를 토하고 뒤로 열 걸음이나 비척비척 물러섰다.

어느새 하무백은 장력을 거두었다.

"쳐죽이고 싶지만. 그래도 지난 무림대전에서 네 녀석이 보여준 것이 있으니. 이 정도만 한다."

현광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기엔.

지금 그가 입은 피해가 너무 컸으니까.

당장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공에 집중했다.

균열이 더 깊어져서 단전이 쪼개지려는 걸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으니까.

그러자면 당장에 운공해야 했다.

하무백은 소림승들을 스윽 둘러보았다.

그 눈빛에 엉거주춤하는 그들.

어찌해야 할지 판단을 못 내리고 있었다.

소림 방장에 해를 입힌 인물이기에 당장에 제압해야 할지.

소림 방장이 풀어놓은 무림공적을 제거했으니 그냥 보내줘야 할지.

아니.

소림 방장이 무림공적을 풀어줬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소문을 내지 못하도록 제압해서 가둬야 할지.

그런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지만.

마지막은 결국 한 가지 물음으로 귀결되었다.

어떻게?

저 괴물을 자신들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제압하려 해도 할 방법이 있단 말인가.

소림승들의 시선이 현광에게로 향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운공에 열중하고 있었다. 저 모습만 보아도 상당히 깊은 내상을 입었음을 알 수 있었다.

금강여래불광대수인을 흉내 낸 놈에게, 금강여래불광대수인을 익히고 펼친 현광대사가 당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강호의 호사가가 이런 이야기를 떠벌렸다면 당장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치도곤을 냈을 일.

그런데.

그 일이.

벌어졌다.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졌다.

그러니 소림승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이다.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현길에게로 향했다.

그들 중 현길의 사형인 이들도 있었으나.

지금 이 자리에서 하무백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유일한 것만 같았으니.

하무백은 현황의 처참한 주검을 잠시 보았다.

그리고 현길을 향한 시선.

"뭐, 정리할 것들이 많을 테니. 나도 서둘러 처리해야 할 일도 있고."

그러면서 소림승들을 훑어본다.

마지막으로 현광을 보았다.

"소림 내부의 일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어. 너희가 알아서 할 일이지. 네 녀석은 나랑 할 이야기가 남은 거 잊지 말고."

소림의 노승인 현광.

그러나 하무백에게는 그저 네 녀석일 뿐이다.

하무백이 훌쩍 몸을 날려 사라졌다.

현길은 아직 심연에게 먹히지 않았다. 거기에 소림 최고의 신공이라는 역근세수경을 믿기로 했다.

그것을 익혀서 심연을 만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보리달마가 중원에 전했다는 절세의 신공 아니던가.

그 신공을 믿기로 했다.

잠시 다녀오는 동안은 심연에게 먹히거나 하지 않겠지.

그보다는 이쪽이 더 급했다.

현황을 제거했다고 하지만, 그가 남겨둔 기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터이니.

그렇게.

하무백은 다시 전력으로 달렸다.

목적지는 강서성 남창.

우문가율과 공야휘연이 배에서 내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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