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키에에에엑!!”
던전 전체를 울리는 소름끼치는 괴성.
바라본 그곳엔 2M 남짓의 거대한 거미형 몬스터, 아라크네들이 밀집해있었다.
“키에에에엑!”
“키엑! 키에에엑!”
앞선 아라크네의 괴성에 주변의 아라크네들이 하나 둘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아라크네들은 도합 10마리.
수 십쌍에 달하는 거미의 눈들은 붉디 붉은 광채를 번뜩이며 어둠에 덧칠하듯 뜨여졌다.
“보다시피 아라크네들은 이렇게 무리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
목소리가 들려온 곳엔 한 명의 사내와 세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생긴 건 누가 봐도 거미처럼 생겼고, 실제로도 거미종으로 분류됩니다만. 지구에서 살아가는 거미와는 특색이 전혀 다른 놈들이죠. 그 예시로 이놈들은 상대와 싸우기보다는 사냥을 하는….”
“키에에에에엑!”
그 순간 터져나온 끔찍한 괴성이 사내의 말을 끊어버렸다.
이윽고 10마리의 아라크네들이 일시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갑작스러운 아라크네의 행동에 사내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두 전투 준비!”
챙!
사내가 무기를 뽑아들며 달려드는 아라크네 무리를 향해 거침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 사내를 따라 세 명의 사람들도 저마다 무기를 뽑아들어보였다.
10대 4의 싸움.
수 적으로는 상당히 열세였으나 사내와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서걱!
가장 먼저 사내가 휘두른 검에 앞선 아라크네가 반으로 갈라졌다.
서걱! 콰직!
그런 사내의 뒤를 따라 이어진 공격들.
순식간에 아라크네들의 절반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키엑?”
동족들이 맥없이 스러지자 아라크네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황한 아라크네들 사이로 사내가 뛰어들어갔다.
서걱! 콰직!
섬뜩한 절삭음과 파육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그렇게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쿵! 쿵!
아라크네들이 진한 녹색 피를 흘리며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거진 학살에 가까운 전투.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현장에는 오직 사내만이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서슴없이 뛰어든 사내.
아라크네들의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사내는 숨을 헐떡거리며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순간.
“컷!”
흐름을 끊는 외침이 들려왔다.
그 외침과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내가 인상이 와락, 찌푸렸다.
“하, 씨발.”
그리고 내뱉어진 욕지거리.
“아라크네가 거미줄부터 분사를 한다고?”
사내는 전신으로 뒤집어쓴 아라크네의 피를 신경질적으로 내려다봤다.
“냄새 한번 엿 같네 진짜.”
사내는 와락 찌푸려진 인상과 함께 연이어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런 사내와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진 곳.
삼각대에 거치된 카메라와 그 뒤에 카메라를 잡고 서 있는 한 남자.
사내는 시선을 들어 짜증 섞인 눈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야. 맹시우.”
“......”
“대답 안 해?”
“...... 죄송합니다.”
사내의 싸늘한 말에 카메라를 잡고 있던 남자, 시우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시우의 반응이 탐탁지 않았던 걸까.
“내가 대답하라고 했지. 누가 죄송하라고 했어?”
사내가 성큼, 걸음을 옮겨 시우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뻐억!
발로 시우의 복부를 걷어차버렸다.
“커헉!”
시우가 단말마를 터트리며 콰당탕!
바닥으로 아무렇게나 쳐박혔다.
“일어나 이 개새끼야. 그렇게 나자빠져있으라고 네 월급을 따박따박 주는 줄 알아?”
“죄, 죄송합니다.”
시우는 황급히 자세를 바로했다.
고통으로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조사 똑바로 안 하지?”
“그게….”
“아라크네는 처음에 거미줄을 내뱉는다며? 거미줄 대비하는 장면 찍으려고 사들인 장비가 얼만지는 알기나 해?”
사내는 으르렁거리며 일갈했고.
시우는 그런 사내의 말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속으로 할 말이야 차고 넘치기는 했다.
아라크네의 성향 분석은 그야말로 완벽했으니까.
일반적인 아라크네들의 전투 방식은 ‘싸움’이 아니라 ‘사냥’이었다.
따라서 아라크네는 가장 먼저 거미줄을 뿜어 상대를 옭아맨다.
그렇게 거미줄에 묶여 무력화된 상대에게 독을 주입하여 천천히 죽음에 이르게 한다.
거미줄에 걸려들기만을 기다리는 일반적인 거미와는 달리 말 그대로 사냥을 하는 아라크네의 특성.
그렇기에 방금 전과 같이 무작정 달려드는 경우는 없었다.
이렇게 달려드는 경우는 거미줄이 통하지 않았을 때.
한마디로 이판사판일 경우에나 하는 싸움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상대와 조우하자마자 이판사판으로 달려든다?
“이런 경우는 저도 들어본 적이….”
이건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경우였다.
정말 단언할 수 있었다.
몬스터에 관해서라면 협회보다 더 자세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시우가 이 헌터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무기였으니까.
“그래서 네 잘못은 아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럼 씨발 내 잘못이다?”
“...... 죄송합니다.”
시우는 사내를 향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분석과 조사는 완벽했으나 어쨌든 예상치 못한 상황은 벌어졌다.
물론 그것에 시우의 잘못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눈을 부라리는 사내, 강도철.
도철은 B등급의 헌터임과 동시에 ‘무공략(무엇이든 공략해드립니다.)’ 채널의 실질적인 주인이었으니까.
한마디로 도철은 시우의 고용주였다.
도철이 갑. 시우가 을.
갑이 뭐라 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을은 그저 고개를 숙여야할 뿐이었다.
“..... 죄송합니다.”
“누가 맹씨 아니랄까봐. 맹해가지고는.”
도철은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차보였다.
“됐고. 바로 카메라 챙기고 따라와. 더 깊이 들어가서 영상각 다시 뽑을거니까.”
“예? 더 진행하신단 말씀입니까?”
“그럼. 여기서 돌아가랴?”
사실 그랬으면 하는 것이 시우의 바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 아라크네의 행동은 너무도 이상했으니까.
과장하나 섞지 않고 단 한 번도 보고된 적이 없는 행동이었다.
희귀하게나마 볼 수 있는 현상조차 아니다.
말 그대로 단 한 번도 보여진 적이 없는 행동.
이건 결코 무시할 것이 아니었다.
100여년 전, 갑작스레 지구에 열린 차원 게이트.
생전 처음 보는 마물들에 인류는 멸망의 위기까지 갔으나 각성자라는 힘을 통해 극복해낼 수 있었다.
이후 몬스터와 마나라는 새로운 지식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
이는 5차 산업 혁명이라 불리며 지구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던전은 지금까지도 미지로 가득찬 공간이었다.
심연의 바닷속과 같은 곳.
던전에는 아직 인류가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 즐비했다.
따라서 방금 전, 아라크네의 기이한 행동.
무언가 알지 못하는 것이 이 던전 안에 도사리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위험 부담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도철의 생각은 달라보였다.
아니,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영상각 뽑아야 돼.”
뭐, 어찌보면 유투버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기도했다만.
“그리고 고작 아라크네 던전에 쫄기는.”
아라크네는 C+등급으로 분류된 몬스터였다.
그리고 도철은 B급 헌터.
여기에 도철과 함께하는 세 명의 C급 헌터까지.
위험 상황이 있어도 충분히 대처 가능한 전력이었다.
방금 전의 돌발 상황도 무리없이 처리하지 않았는가.
“차라리 조금 전 전투를 이번 주 영상으로 올리면….”
“고작 C+등급 몬스터에 고전하는 걸 누가 본다고?”
솔직히 그건 그랬다.
“무엇보다 내 채널 컨셉이랑 안 맞잖아 이 새끼야.”
또한 도철의 채널과 컨셉이 맞지 않기도 했다.
도철의 채널, ‘무공략(무엇이든 공략해드립니다)’은 몬스터를 공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채널이었으니까.
몬스터를 학살하는 영상이라면 또 모를까.
고전하는 건 여러모로 컨셉과 맞지 않았다.
솔직히 학살 영상을 보려면 천상계라 불리는 A급 헌터들의 채널.
혹은 인간의 정점이라 불리는 S급 헌터 채널 영상을 보겠지.
“그리고 사들인 장비 값. 네가 다 책임질거 아니면 입 닥치고 따라와.”
도철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고는 자리를 떠나갔다.
시우는 결국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우가 장비를 챙기려던 순간.
“맹시우, 저 새끼. 가만보면 답답하다니까.”
시우의 귓가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철과 더불어 무공략 채널을 일구어가는 다른 헌터들.
카메라 구도를 잡느라 시우와 거리가 제법 있었다.
속삭이면 들리지 않을 거리였건만 저들의 목소리는 뚜렷하게 들려왔다.
일부러 들으라고 크게 낸 소리였다.
“하긴, 일반인에 불과한 편집자 새끼가 뭘 알겠어.”
“그래도 쟤 각성은 했잖아. 무개성이라서 그렇지.”
“아 참. 그랬었지.”
일반적으로 각성과 동시에 저마다 특별한 능력이 주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마다 모두 제각각이었다.
사람의 지문처럼 모두 달랐기에 그를 ‘고유 능력’ 혹은 ‘개성’이라 칭했다.
시우 또한 각성을 한 각성자였다.
그러나 각성한 능력은 무(無)개성.
말 그대로 아무런 개성이 없었다.
일반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존재.
헌터 업계에선 하등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시우는 필사적으로 몬스터들을 분석했다.
그로써 헌터들에게 빌붙어 살아남을 수는 있었다.
“병신새끼.”
모욕적인 비웃음이 들려왔다.
그러나 시우는 애써 못 들은 척.
주섬주섬, 카메라와 장비를 챙길 뿐이었다.
* * *
아라크네의 공략 영상을 찍기 위한 던전의 탐사는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던전 안 쪽으로 얼마나 향했을까.
‘이상한데?’
시우는 아까부터 느껴지던 위화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던전 내부로 진입한 지 거진 30분이 지난 시점.
‘한 마리도 없다고?’
지금까지 만난 아라크네가 한 마리도 없었다.
물론 이런 상황은 없는 경우가 아니었다.
드물지만 간혹가다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상황.
단 한 번도 보고된 적 없었던 아라크네의 기이한 행동.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라크네는 싸움이 아니라 사냥을 한다.
그렇기에 첫 행동은 반드시 거미줄 분사다.
아라크네가 사냥감에 달려드는 건 최후의 수단.
상황이 이판사판일 경우에나 하는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아라크네는 조우와 동시에 달려들었다.
엄밀히 따지면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만을 따졌을 때의 일이었다.
오른손잡이가 어느 날 갑자기 왼손으로 밥을 먹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 생각하면 딱 알맞았다.
말마따나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얼핏 보면 사소한 일.
그러나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임은 분명했다.
매일 같이 오른손을 쓰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왼손으로 밥을 먹는다.
다른 이들은 별 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아닐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은 위화감을 느낄 터였다.
남편은 그 누구보다 아내를 잘 알고 있으니까.
지금 시우가 느끼고 있는 위화감 또한 그와 같았다.
얼핏보면 사소한 일.
그러나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
시우가 알고 있는 아라크네와 다르다.
아라크네들의 행동이 너무도 이상하다.
하지만 특수한 상황이 벌어져있었다면…?
그럼 이야기는 또 다르다.
아내가 오른손을 쓸 수 없는 상황.
오른손을 다쳤거나, 깁스를 한 상황.
그럼 왼손을 사용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건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아라크네들이 이미 이판사판인 상황이었다면?’
그러면 앞선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된다.
확인이 필요하다.
시우는 황급히 카메라를 꺼내 녹화된 영상을 재생했다.
-키에에에에에엑!!
영상 재생과 동시에 10마리의 아라크네들이 달려들었다.
번뜩이는 붉은 광채와 터져나오는 괴성.
당시엔 느끼지 못했지만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겁에 질려있어?’
영상 속 아라크네들은 겁에 질려있었다.
그렇기에 저건 달려드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과정에서 도철의 무리들이 길을 막고 있던 것뿐.
아라크네들은 즉.
너희들 따위는 상대할 시간이 없으니 당장 비키라는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아라크네들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그런데 이건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몬스터에게는 공포라는 감정이 없었으니까.
잡아먹어야 하는 먹잇감.
몬스터에겐 본능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몬스터가 공포에 떠는 경우가 있기는 있었다.
정확히는 딱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 할 수 있겠다.
치명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압도적인 공포.
혹은 그런 존재를 마주했을 때.
그렇기에 아라크네가 공포에 질렸다는 것.
그것은 단 한 가지 경우를 시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 깊숙한 곳 어딘가.
지금 시우가 발걸음을 향하는 곳. 저 안쪽 어딘가.
치명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실로 압도적인 공포가 있다는 뜻이다.
‘도망쳐야한다.’
시우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아라크네들이 도망쳐야만 했던 압도적인 공포.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최소 S급. 어쩌면 그 이상.
마주하는 순간.
끝장이다.
어째서 그런 존재가 아라크네의 던전에 있는지는 모른다.
그런 존재가 정말 존재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의문을 가질 여유 따위는 없다.
시후는 고개를 홱, 치켜들었다.
그리고 앞서 걸어가는 도철과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도망─!”
하지만 시우의 말이 완성되기도 전.
쿠르르르릉…!
던전 전체를 크게 울려오는 진동과 함께.
“키에에에에에에엑!!!”
앞선 어둠 속에서 소름끼치는 괴성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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