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8화 (8/250)

8화.

시우는 잠시나마 도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름 아닌 SH그룹이라는 말.

그리고 합방이라는 말.

그게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SH그룹은 대한민국의 초거대기업이었다.

자본 총액 기준 한국 재계 서열 1위.

그 외의 시가총액 등 각종 기업 평가의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인 1위를 자랑하는 그야말로 초거대기업이었다.

대한민국의 경제, 사회, 정치, 문화.

거진 모든 분야에서 SH그룹은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런 SH그룹에서 합방 제의가 왔다?

그러니까 강도철의 채널, 무공략 채널과 합동 방송을 찍고 싶다 제의가 왔다?

“SH그룹에서 대체 왜?”

이건 도무지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산업 때문이지.

“새로운 산업?”

SH그룹이 손을 대고 있는 산업은 무궁무진했다.

중공업, 건설, 무역, 교통, 금융 등등.

대한민국 1위라는 위명에 걸맞게 거의 모든 산업에 손을 뻗치고 있었다.

-헌터 산업.

그리고 헌터 산업에도 그 손을 뻗치고 있었다.

마석과 몬스터 부산물들을 다루는 산업.

헌터 산업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 간단히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마력(魔力)이라는 신비한 힘.

몬스터 부산물이라는 지구에 존재한 적 없던 새로운 물질.

지구의 문명은 그야말로 대격변을 일으켰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힘으로 물체를 하늘로 날게 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한 몬스터의 부산물로 건물을 지을 수 있다.

건설, 무역, 교통 등등.

인류가 만들어놓은 모든 분야에 혁신을 일으켰다.

지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5차 산업.

헌터 업계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 경제를 지배한다.

과장이 섞이긴 했다만, 그런 말이 있을 정도로 헌터 산업은 모든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연히 SH그룹이 손 놓고 있을 리가 없었다.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헌터 산업에 투자했다.

하지만 결과는 영 좋지 못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실력있는 헌터들의 포섭 실패.

하위권의 헌터들이야 돈으로 어찌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S급 헌터들을 포섭할 수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유투브(YouToobe) 때문이었다.

실력 있는 헌터들이 굳이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게 만들었으니까.

자유롭게 다녀도. 제 멋대로 굴어도 막대한 부와 어마어마한 명예가 보장되니 말이다.

결국 SH그룹은 실력 있는 헌터들을 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높은 등급의 던전을 공략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품을 수 없었던 헌터들은 하나의 경쟁사와 다를 바 없었다.

헌터 산업은 결국 실력으로 통하는 법.

몬스터들의 목을 베는 건, 자본이 아니라 실질적인 힘이었다.

SH그룹은 헌터 업계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두각은 커녕 쇠퇴하기를 반복.

이제는 헌터 산업에서의 철수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최근에 SH그룹이 다시 헌터 산업에 뛰어들었다는 건 알고 있겠지.

하지만 최근 SH그룹은 다시금 헌터 산업에 뛰어들었다.

-그 일환으로 내 채널과 합방을 하는 거다.

도철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시우는 별 다른 반응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으니까.

정확히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임이 뻔히 보였으니까.

SH그룹이 다시 헌터 산업에 뛰어들었다는 건 시우도 알고 있었다.

그것도 예전보다 더욱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SH그룹이 헌터 관련 채널에 합방 제의를 하는 것은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도철의 채널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도철의 채널, 무공략 채널은 고작해야 구독자 21만 명의 채널.

물론 구독자 21만 명이 적은 수는 아니긴 했다.

하지만 많은 수는 또 아니었다.

애시당초 SH그룹 산하의 모든 직원 수를 따져보면 거진 30만 명이다.

직원들만 구독을 눌러도 뛰어넘을 숫자거늘.

뭐가 아쉬워서 SH그룹이 합방 제의를 먼저 한단 말인가.

그런데도 합방 제의가 왔다는 것.

“나더러 그 합방을 촬영해달라?”

-500을 주지.

시우가 순간 멈칫거렸다.

촬영 한 번에 500만원을 준다?

“뭘 숨기고 있는 거야?”

-숨기는 건 없어.

나, 참.

지랄도 적당히 해야 지랄이지.

시우는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다른 누구보다 강도철을 잘 알고 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강도철은 아무런 이유 없이 500을 던질 놈이 아니었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무언가 숨기고 있다.

-돈이 필요한 상황 아닌가?

그러나 500만 원은 정말이지 큰 돈이었다.

서아의 약값은 물론 생활비까지.

시우 또한 지금 당장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겐 몇 푼에 지나지 않으나 500은 시우에게 있어 굉장히 큰돈이었다.

-할 건가 말 건가.

도철의 물음에 시우는 섣불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고민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내가 그때 말했지.”

그러나 고민은 생각보다 길지는 않았다.

“너 같은 쓰레기랑은 두 번 다시 일 안한다고.”

뚝.

시우는 그대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 * *

통화를 끊고 곧바로 번호를 차단했다.

500은 솔직히 큰 돈이긴 했다.

특히나 촬영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금액치고는 상당했다.

“안 해.”

하지만 시우는 강도철과 일할 생각이 없었다.

강도철은 사람을 죽이려했던 살인자다.

그것도 서슴없이 사람을 미끼로 던지는 미친 싸이코패스.

보나마나 무슨 이상한 꿍꿍이가 있을 터였다.

어쩌면 던전 사고를 위장한 살인을 저지를지도 몰랐고.

“그 새끼랑 다시 일하느니 차라리 굶어 죽고 말지.”

시우는 그렇게 생각을 털어버렸다.

“그보다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는 해야하는데….”

시우는 스마트폰을 조작해 남은 계좌잔고를 확인했다.

[계좌 잔고] - 34,720₩

3만 4천원.

갚을 빚은 없다지만 사실상 빚만 없다뿐.

내일은 커녕 오늘 먹고살 돈이 없었다.

그리고 500이면 상당한 여유가 될 터.

시우도 모르게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다.

“에이, 아니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었다.

시우는 아쉬움을 애써 삼키며 구직 공고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영상 편집 관련 모집 공고를 살피던 그때.

“아니지?”

머릿속으로 번뜩이는 생각 하나.

“굳이 일자리를 구해야 하나?”

마냥 놀고 먹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굳이 편집자로서 일자리를 구해야 할까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직접 던전을 공략하면 되잖아.”

시우가 직접 하면 되지 않은가.

유투브 채널을 직접 운영하는 것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직접 던전에 들어가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는 있지 않은가.

유투브 영상 수익은 어마어마했다.

그렇다고 몬스터 사체 부산물로 얻는 수익이 적다는 뜻은 또 아니었다.

E등급 던전 하나만 털어도 최소 수십만 원.

어쩌다 마석이라도 나오는 날엔 수천만 원은 벌 수 있었다.

그렇기에 E등급 던전이라도 쉬이 볼 것은 아니었다.

쉬웠다면 개나소나 모두 던전을 공략했겠지.

기본적으로 각성을 해야했고 또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그리고 시우는 무(無)개성의 F등급도 되지 못한 각성자.

그 동안 시우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갓튜브(GodTube)】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현재 시우가 구독한 채널, 제갈공명과 헤라클레스.

<통찰력(S+) 숙련도 0.1%>

<괴력[傀力](SS) 숙련도 0%>

무려 S+등급와 SS등급의 개성이었다.

이건 세계적인 S급 헌터들도 가지지 못한 등급의 개성이었다.

“숙련도를 올려야하긴 하지만….”

이 숙련도를 올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시우도….

바로 그때.

“시우 총각.”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시우가 퍼뜩, 상념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

월세방의 주인집 아주머니가 시우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일 나가는 거야?”

“아, 그… 네.”

시우는 대충 얼버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는요? 장 보러 가시는 길이에요?”

“아, 나는 그게 말이지….”

시우의 물음에 아주머니가 뜸을 들였다.

살짝, 시우의 시선을 회피하는 것이 이상하던 찰나.

“사실 시우 총각한테 가려고 했어.”

“저요?”

“그… 내가 웬만하면 이런 말 안하려고 했는데… 이번에 밀린 월세 때문에.”

“아.”

월 50의 셋방.

사실 거진 3달 치가 밀려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보증금도 다 까먹고 없는 상황.

다른 곳이었다면 당장 내쫓겼을테지만 시우의 사정을 아는 주인집 아주머니가 정말 많이 배려를 해줬다.

월세가 밀려도 많이 눈 감아주었고.

전기세와 가스비 그리고 수도세까지.

알게 모르게 대신 내주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 딸이 이제 고3이라. 여기저기 들어가는 돈이 많아서….”

충분히 이해한다.

아니, 이해하다 못해 그동안 감사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시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당장 돈을 구할 방법은 없었지만….

“한 달 안에 밀린 것까지 반드시 드릴게요.”

그래도 한 달 정도면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았다.

다름 아닌 갓튜브에서 얻은 개성.

방금 전까지 상상하고 있었던 그 일.

개성의 숙련도를 올려 던전을 공략한다.

그 준비 시간으로 한 달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시우에게는 완벽에 가까운 공략법이 머릿속에 있었으니까.

헤라클레스의 개인 PT 이벤트가 당첨된다면 기간을 더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첨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미안해. 사정 힘든 거 다 아는데.”

“아주머니께서 미안해 하실 게 있나요. 제가 더 죄송하죠. 아니, 감사하죠.”

“그래도 정 못 구한다 싶으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말해. 사람이 중요하지 돈이 중요하겠어.”

요즘 듣기 정말 어려운 말이다.

그렇기에 내뱉기도 정말 힘든 말이다.

시우는 깊은 감사를 느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니에요. 한 달 안에 꼭 구해드릴게요.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주인집 아주머니와 헤어지고 난 이후.

“후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시우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 * *

집은 고요했다.

시우가 먹던 아침밥은 먼지가 쌓이지 않게 무언가에 덮어져 있었다.

통화는 짧았지만 주인집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돌아오는 것이 늦어져 서아가 덮어놓은 것 같았다.

서아는 방에 들어가 쉬고 있는 것인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약은 먹고 쉬는 건지.”

시우는 냉장고 문을 열어 서아의 약병을 꺼냈다.

그리고 병 안에 남아 있는 약의 개수를 확인했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약값을 아끼겠다고 서아가 약을 건너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으니까.

뭐, 약 몇 번 건너뛴 게 큰일이냐.

그리 물을 수도 있겠다만 서아가 앓고 있는 병은 그러했다.

혈사병(血死病).

뜻 그대로 피가 죽는 병이었다.

약을 하루라도 건너뛰면 피가 혈관 속에서 죽기 시작한다.

이 약도 상태의 악화를 늦추는 것일 뿐.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혈사병은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이었으니까.

시우는 약병을 열어 안 에 든 약의 개수를 확인했다.

“없어…?”

그런데 없었다.

약병 안에는 남아 있는 약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 것이 마지막이었나?

시우는 날짜를 한 번 차분히 되짚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약은 오늘이 아닌 무려 일주일 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서아는 약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시우가 갓튜브를 처음 접하던 바로 그날.

그날부터 서아는 약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망할 놈의 갓튜브에 빠져사느라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서아의 얼굴이 더 창백해보인다 싶었다.

왜인지 평소보다 서아가 기운이 더 없어 보인다 했었다.

굳게 닫혀있는 서아의 방문.

시우는 성큼, 서아의 방문 앞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문고리를 돌리려던 찰나.

-흑…!

방문 안쪽에서 서아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시우의 몸이 덜컥, 굳어졌다.

그런 시우의 귓가로 다시 한번.

소리 내어 울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서아가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통을 참고 있는 것이리라.

행여 방문 밖으로 새어나갈까.

그로써 시우에게 들릴까봐.

서아는 고통을 참고 있었다.

혈사병의 고통은 실로 말할 수가 없었다.

의사가 말하길, 사포로 전신의 모세혈관을 긁어내는 듯한 통증이 인다고 했다.

시우가 없었다면 소리내어 울기라도 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난 일주일.

시우는 집에만 있었다.

시우가 갓튜브에 빠져 혼자 낄낄대던 동안, 서아는 소리없이 참고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싶었다. 말하고 싶었다.

왜 약이 다 떨어졌다고 내게 말하지 않았냐.

하지만 시우는 그럴 수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약값.

그리고 없는 형편.

서아는 바보가 아니다.

시우만큼이나 현실이라는 냉혹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짐이 되는지 알고 있었다.

시우가 결코 아니라고 해도, 서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만 없다면 시우가 이런 현실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자신의 존재는 시우의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

차라리 자신이 없었다면 하는, 생각.

무조건적인 도움을 받는 이의 심정.

가족이라는 것은 결코 이유가 될 수 없었다.

되려 사랑하는 가족의 발목을 붙잡는 것만큼 스스로가 비참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우는 그렇게.

서아의 방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

한 달까지 준비할 시간.

애초에 그런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런 건 가진 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가진 것이 있는 자들이나 부릴 수 있는 여유이자 사치다.

시우의 현실은 오늘 하루조차 살아나가기 버겁다.

사람의 목숨도, 시간도 그리고 미래를 위한 준비도.

돈이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시우에게 필요한 한달이라는 시간.

그 시간을 구매할 수 있는 돈이 필요하다.

“......”

시우는 스마트폰의 연락처를 확인했다.

* * *

인근의 한 카페.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끊어버리더니.”

시우의 앞선 시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공략 채널의 주인, 강도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우의 사장이자 절대적인 갑이었다만 지금은 아니었다.

시우는 시덥잖은 눈빛으로 답을 해 보였다.

“그렇게 아니꼬우면 나오지 말든가. 왜 나왔는데?”

도철은 실소를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직접 불렀다는 건, 할 의향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래.”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 아닌 척 하는 것도 이상했으니까.

“대신 조건이 있다.”

시우의 말에 도철이 말하라는 듯 턱짓을 해 보였다.

“5천.”

“.....?”

도철의 고개가 좌로 약간 기울어졌다.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 생각하는지 눈빛이 잠깐 멍해졌다.

시우는 그런 도철에게 확인 사살을 하듯, 재차 입을 열었다.

“500이 아니라 5천을 준다는 조건이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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