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다.
한마디로 끼리끼리 논다는 의미.
이는 친구 관계는 물론, 배우자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예쁘고 능력 있는 여자는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는 예쁘고 능력 있는 여자와.
그 유전자를 이어받은 자식들은 또 다시 그렇게.
그런 선순환이 반복되어가며 세대가 거듭될수록 거진 완벽에 가까운 유전자가 탄생한다.
그리고 능력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SH그룹.
그런 SH그룹의 막내 손녀딸, 한채린.
어깨까지 내려오는 살짝 웨이브 진 머리.
도화지처럼 새하얀 피부와 유려한 몸매.
얼음장처럼 느껴지는 차가운 분위기 속 흘러나오는 청순함까지.
‘예쁘긴 하네.’
한채린을 직접 본 첫 감상은 단연 이러했다.
조금의 주접을 떨자면 웬만한 연예인이나 배우를 압살할 정도?
모르긴 몰라도 연예계로 데뷔했으면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을 터였다.
그런데 SH그룹의 손녀딸이 뭐가 아쉽다고 그럴까.
어디까지나 주접과도 같은 상상일 뿐이었다.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시우가 빤히 얼굴을 바라보자 한채린이 물어왔다.
감정 하나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한 어투와 얼굴.
저게 로봇인지 사람인지 원.
“아뇨. 그런 건 아니고… 혼자 오신 건가요?”
“네.”
시우의 물음에 한채린이 짧게 대답했다.
차갑다 못해 냉혹하기까지한 어투.
사람이 아니라 진짜 로봇이 아닌 건가 싶었지만 아무튼.
‘하기사, S등급의 개성을 두 개나 각성했는데 누가 누굴 경호한다고.’
마력이라는 신비한 힘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해주었다.
가녀리다 생각되는 여인이었으나, 한채린은 각성과 동시에 A급 헌터를 받은 천재.
그 A급이라는 말도 지금 당장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몇 년 안쪽으로 S급 헌터가 확정되어있다시피한 희대의 천재였다.
그래도 운전기사나 비서 정도는 같이 있을 줄 알았거늘.
한채린의 성격인 건지 그녀 이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바로 출발할게요.”
한채린은 그 말을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냉담하게 느껴지는 분위기에 시우는 괜시리 멋쩍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떠나가는 그녀의 뒤를 도철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시우를 지나치며 툭, 말을 꺼냈다.
“괜히 쓸데없는 관심 갖지 마라.”
“관심은 무슨.”
시우는 어련하겠냐는 듯 답을 해 보였다.
남자로서 예쁜 여자에게 눈길이 가는 건 사실이나 딱 그뿐이었다.
그럼에도 관심이라 한다면 TV 속 연예인을 대하는 관심에 지나지 않았다.
애시당초 시우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그나마 접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같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
지금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
그것을 제외하고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시우는 한낱 카메라맨이자 영상 편집자.
한채린은 SH그룹의 막내 손녀딸.
“내 할 일이나 해야지.”
여러모로 사는 세계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 * *
크워─! 크워어어─!!
소름이 돋는 끔찍한 괴성.
새까만 피부.
3M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와 우락부락한 근육.
무려 B+등급에 달하는 검은 트롤.
“검은 트롤을 상대하실 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그 앞으로 도철이 여유롭게 걸어나왔다.
그런 도철의 뒤로 도철과 함께하는 3명의 헌터들이 대열을 갖추었다.
크워어어어──!!!
검은 트롤의 괴성이 더욱 격렬해졌다.
그러나 도철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검은 트롤의 재생 능력은 다름 아닌 피에 있다는 것. 비단 검은 트롤뿐만이 아니라 트롤이라는 모든 종족에 해당되는 특성입니다.”
크워어어어어어─!!
더 이상 도철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검은 트롤이 크나큰 괴성을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B+등급의 검은 트롤.
협회에서 권장하는 기준은 A-급 헌터였다.
최소 A-급은 되어야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혼자서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준이 A-급.
다굴을 친다면 그 기준은 현격히 내려간다.
그리고 공략법을 알고 있을 때는 그 난이도가 더욱 내려갔다.
도철과 헌터들은 합을 맞추며 검은 트롤을 상대했다.
힘겨운 전투였으나 결국 서걱─!
도철이 접전 끝에 검은 트롤의 목을 베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목이 잘려나갔다함은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검은 트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사항이었다.
꾸르르르륵!
기괴한 소리가 들려오며, 잘려진 트롤의 목덜미가 들썩거렸다.
그리고 다시 꾸르륵, 꾸르르르륵.
검은 트롤의 목 부근으로 살점들이 엉겨붙기 시작했다.
목이 잘려나가도 재생을 하는 회복력.
실로 불사(不死)의 존재라 할 수 있었다.
불사의 재생력으로 인해 B등급 몬스터들 중에서도 최상등급 B+로 분류된 검은 트롤.
“보통은 재생 자체를 할 수 없도록 전신을 갈가리 찢어버리는 것이 알려진 공략법입니다만….”
도철은 그러면서 재생하고 있는 검은 트롤을 향해 터벅, 걸어갔다.
그 짧은 순간에 검은 트롤은 잘린 목의 재생을 거의 끝마치고 있었다.
“트롤의 재생력이 혈(血). 즉 피에 있다는 사실만 알면 그럴 필요가 없죠.”
도철은 검은 트롤 앞에 서서 차분히 검을 들어보였다.
그리고는 머리가 아닌 가슴 부근.
즉, 심장이 있는 곳을 향해 거침없이 검을 내질렀다.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도철의 검이 박혀들어갔다.
하지만 가죽을 온전히 뚫어내지 못한 걸까.
도철은 몇 번이나 검을 심장 부근에 찔러넣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을까.
일순간 재생을 하던 트롤의 움직임이 뚝, 하니 멈추었다.
그리고 꾸륵!
파괴된 심장을 재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실로 경이로운 재생력.
“보이십니까. 아까보다 재생력이 느려진 것을요.”
하지만 그 재생이 느려져있었다.
“심장이 파괴되어 피를 전신으로 공급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재생력이 약해진다는 뜻이죠. 그러니 이때, 머리를 타격하시면 됩니다.”
이어 도철이 재생이 이루어진 트롤의 머리를 베어냈다..
역시나 검은 트롤의 가죽을 쉽게 뚫지 못해 몇 번이나 그 과정을 반복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걱─!
검은 트롤의 머리가 잘렸고, 더 이상의 재생을 해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죽음.
“공략법을 알면 이렇게 효율적으로 사냥할 수 있죠.”
도철은 어떻냐는 듯 제스처를 취해보였다.
마치 정말 쉽죠? 하는 듯한 모습.
‘예나 지금이나. 저 놈은 변하질 않았네.’
시우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쳐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도철이 행한 모든 것.
그러니까 도철이 말한 검은 트롤의 공략법.
그 모두가 시우가 혼자서 분석한 것이었으니까.
한마디로 도철은 시우가 분석한 정보를 읊은 것에 불과했다.
마음 같아선 한껏 비웃어주기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뭐.
‘5천만 원 받았으니까.’
그 값에는 저 허세의 허락 또한 포함되어있던 터라 시우는 별 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렇군요.”
시우의 생각 뒤로 청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라본 그곳엔 한채린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한채린 님이라면 보다 쉽게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아! 마침 저기 하나 보이네요. 어떻게. 한 번 직접 해보시겠습니까?”
도철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한채린에게 말했다.
그 가식적인 모습에 시우는 구역질이 나왔지만 이것도 뭐.
‘5천만 원 받았으니까.’
그 값에는 구역질을 참는 것도 포함되어있어 시우는 꾹, 눌러 참을 수 있었다.
“그러죠.”
한채린이 가볍게 대답하며 앞으로 나서보였다.
그리고 타닥!
한채린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
“......?”
자리에 있던 모두의 표정이 붕, 떠올랐다.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만 같은 한채린의 모습.
뭔가 싶은 것도 잠시.
크워어어어어─!
한쪽에서 검은 트롤의 괴성이 들려왔다.
시우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그리고 카메라에 잡힌 장면.
피하고, 찌르고, 베어낸다.
스륵, 콰직, 서걱.
이게 끝이었다.
단 세 가지 동작.
그리고 세 가지의 소리.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트롤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쓰러진 검은 트롤은 그 이상으로 움직임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 위로 한채린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략법을 알고 나니 확실히 수월하네요.”
아니, 이건 공략법의 유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거 같은데.
시우는 그렇게 말하려던 것을 꾹, 눌러참았다.
아니나 다를까 도철을 비롯한 다른 헌터들도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사실 검은 트롤의 재생력도 재생력이었지만 그 본연의 강함도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거대한 덩치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힘.
질기다 못해 강철과도 같은 가죽.
B급인 도철조차 검은 트롤의 가죽을 쉬이 베어내지 못하지 않았는가.
그것도 다굴을 쳤기에 망정이지.
도철 혼자였다면 쉬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검은 트롤의 가죽을 뚫고 타격을 주기도 어렵다.
그렇게 어렵게 베어내도 순식간에 재생을 해 버린다.
까다롭다 못해 미치고 팔짝 뛰는 몬스터라 할 수 있었다.
해서 검은 트롤을 A-등급으로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한채린은 검은 트롤의 가죽을 두부 베어내듯 베어내버렸다.
그리고 심장과 머리.
정확한 타격으로 깔끔하게 찌르고 베어냈다.
과연 천재는 천재라는 것일까.
물론 그런 이유도 없잖아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어보였다.
“평범한 검이 아니군요.”
한채린이 사용하는 검(劍).
시우의 말에 한채린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유려하게 빠진 검신은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보였다.
“마스터 오렐리안이 제작한 검인가요?”
“그걸 어떻게…?”
그러자 한채린이 꽤나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검은 트롤을 잡을 때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길래 로봇인 줄 알았건만.
아무래도 사람은 맞는 것 같았다.
뭐, 어쨌든.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검이니까요.”
정확히는 한채린의 부족함을 채워준 검이라 할 수 있겠다.
한채린의 재능은 가히 천재적이나 확실히 경험이 부족해보였다.
아직 각성자로서의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해야할까.
그도 그럴 것이 검을 사용하는 각성자들이 다루는 힘.
흔히 오러 소드(Auror Sword)라 부르는 힘.
한채린은 그 힘을 완벽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오러 소드 없이 검은 트롤의 가죽을 단번에 베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부족함을 저 검(劍)이 메워준 것이었다.
당연히 그런 검(劍)은 세상에 몇 없었고.
그런 검(劍)을 만들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야금술 마스터(Metallurgy Master), 오렐리안.
각성자의 각성은 전투 직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즉, 개성에는 생산 직종에 관련한 개성 또한 존재했다.
그 수많은 생산 직종 각성자 중 야금술이라는 분야.
다시 말해 세계 최고라 불리는 대장장이가 바로 야금술 마스터(Metallurgy Master), 오렐리안이었다.
“오렐리안께 인정을 받으신 모양이군요.”
그리고 오렐리안은 아무에게나 장비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
그 왜. 있지 않은가.
장인의 정신이니 뭐니 하는 것들 말이다.
오렐리안은 자신이 인정한 이에게만 장비를 만들어 주었다.
따라서 한채린이 오렐리안의 검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
그건 한채린의 재능이 천재적임과 동시에 한채린의 인성 또한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오렐리안은 실력과 재능만큼이나 인성을 중요시했으니까.
자신의 장비가 악인의 손에 다뤄지는 것이 싫다나 뭐라나.
돈 많이 준다는데 선(善)과 악(惡)이 무슨 의미가 있냐 만은.
아니, 돈 많이 주는 쪽이 선(善)이지 않을까 싶지만 뭐, 아무튼.
“그래도 가격이 싸지는 않았을텐데….”
“237억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뭐, 뭐? 얼마?
237억?!?
역시나 돈 많이 주는 쪽이 선(善)이었다.
그리고 과연 SH그룹 오너 일가의 핏줄이라는 걸까.
앞서 검은 트롤을 상대하는 모습도 그렇고.
오렐리안의 검(劍)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딜찍누와 돈찍누.
딜로 찍어 누르고, 돈으로 찍어 누르고.
‘애초에 한채린에게 공략법 따위는 필요 없었을 것 같은데.’
이미 최고의 공략법을 보유하고 있다 할 수 있었다.
공략법은 발악하는 둔재에게나 필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역시나 시우와는 사는 세계가 다른 여인.
지금 같이 던전에 들어와 있는 것조차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잠깐.’
그러다 문득 생각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무기의 값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일까.
‘나도 대장장이 기술을 배워볼까?’
자연스럽게 생각의 흐름이 이쪽으로 흘러갔다.
물론 그건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일은 결코 아니었다.
오렐리안과 같은 장비를 만드려면 천부적인 감각과 노력.
그리고 개성이라는 희대의 재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뭐.
【갓튜브(GodTube)】
까짓거 못할 게 뭐가 있을까.
개성이야 구독만 누르면 얻어질 것이고.
천부적인 감각과 노력은….
‘헤파이스토스 영상 보면서 배우면 되겠지.’
대장장이의 신(神), 헤파이스토스.
헤파이스토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었다.
그리고 올림푸스의 최고신들이 사용하는 장비란 장비는 죄다 헤파이스토스가 만들 정도로 뛰어난 장인이었다.
그야말로 야금술의 신(神).
야금술의 마스터, 오렐리안은 명함도 못 내미는 하늘 위의 하늘이었다.
어딜 마스터(Master) 따위가 신(神) 앞에 명함을 내민단 말인가.
건방지게.
어쨌거나 그런 헤파이스토스 채널을 구독해서 야금술을 배운다면?
그렇게 배운 기술로 장비를 만들어 팔 수 있다면?
한채린이 사용하는 오렐리안의 검의 가격이 무려 237억이었다.
마스터 따위가 만든 장비가 자그마치 237억.
그럼 야금술의 신(神), 헤파이스토스의 장비는 얼마를 호가할까.
아무리 못해도 수천 억은 기본.
어쩌면 수조 원에 달할 수도 있었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 수조 원을 호가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일테니까.
덩달아 시우가 쓸 장비를 직접 제작할 수도 있지 않은가.
마침 구독권도 하나 남아있겠다.
5천만 원으로 한달의 여유도 있겠다.
『<헤파이스토스>: 토르 몰래 묠니르 훔쳐서 담금질 해보기ㅋㅋㅋ.』
채널이 약간 정신이 나가있긴 했다만.
“계속 진행해보죠.”
빨리 일 끝내고 집에 가서 제대로 한번 알아봐야겠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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