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머릿속이 잠깐 혼란스러워졌다.
시우는 다시 한 번 감각에 집중했다.
그리고 확신에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강도철을 따라다니던 3명의 헌터.
김지우, 도은아, 지민철.
일명 강도철 패거리들이 이곳 던전에 와 있었다.
‘저 녀석들이 여길 어떻게…?’
그렇기에 시우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던전은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된다.
헌터 관리국에서 던전을 할당받아야지만 입장할 권한이 주어진다.
한마디로 시우가 던전을 할당받은 이상 다른 헌터들은 입장할 수 없었다.
물론 간혹가다 겹치는 경우는 있었다.
관리국의 직원이 실수로 같은 던전을 양쪽의 헌터들에게 할당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기는 한다.
그런 우연이 어쩌다 발생하기는 한다.
‘하필이면 강도철 패거리들이랑 겹쳤다고?’
그런데 이걸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곳, 흡혈박쥐 던전은 E+등급의 던전이었다.
그리고 강도철 패거리들은 모두가 C급의 헌터.
저들이 뭣하러 E+등급의 던전에 들어온단 말인가.
이건 몰래 들어왔다고 밖에 생각될 수 없었다.
정확히는 시우를 따라 들어왔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무슨 꿍꿍이지.’
그리고 그게 좋은 의도는 아닐 터였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악의를 지니고 있다.
‘어떻게 할까.’
시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C급은 그리 높은 등급의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냥 낮은 등급의 수준도 아니었다.
경력 좀 쌓았다.
헌터 냄새가 물씬 나기 시작한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수준이 C급부터였으니까.
베테랑까지는 아니나 한 사람 몫을 하는 수준이 바로 C급.
그런 C급이 무려 3명이었다.
반면에 시우는 E+급.
곧 있으면 승격을 앞두고 있기는 하나 그래봤자 D-급이다.
C급과는 몇 단계나 차이가 나는 수준이었다.
객관적으로 시우가 어찌할 수 없는 상대다.
물론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었기에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글쎄.
정말 웃기지도 않는 소리가 아닐까?
애초에 대화를 할 거였으면 굳이 이럴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그냥 적당한 카페에서 만나면 되거늘.
그럼에도 몰래 던전에 따라 들어왔다는 것.
던전은 고립된 세계다.
인터넷망도, 통화권도 없는 공간.
사람 하나 죽어나가도 알 수 없는 공간.
이곳은 그야말로 무법지대다.
그리고 그것은.
‘무슨 꿍꿍이인지 족쳐봐야겠네.’
이쪽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 * *
어두컴컴한 동굴 안.
앞서가던 김지우가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맹시우, 새끼가 여기 들어온 거 확실해?”
던전에 들어온지도 벌써 10여분.
아무리 조심스레 움직였다고는 하지만 벌써 만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확실해. 분명 이 던전에 들어가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지민철은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이 봤어. 적어도 잘못 본 건 아니야.”
옆에 있던 도은아 또한 지민철의 말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그런데 왜 안 보여?”
“낸들 어떻게 알아. 어쩌면 흡혈박쥐한테 뒤졌을지도 모르지.”
“하긴, 그 새끼 F등급도 못한 무개성의 각성자였지.”
김지우는 비웃음을 흘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병신 새끼가 무슨 자신감으로 E+등급의 흡혈박쥐 던전에 들어온 거지?”
“기가 막힌 흡혈박쥐 공략법을 만들었나보지. 맹시우 걔. 다른 건 다 병신이어도 잔머리 하나는 괜찮았잖아.”
“하긴.”
김지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마따나 시우의 공략법 하나는 알아줬으니까.
“그래도 영상 보니까 마냥 공략법만 믿는 건 아닌 것 같던데.”
세공남인가 뭔가하는 유투브 채널.
벌써 구독자 3천명이 넘어가고 있는 채널은 지금도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었다.
우연찮게 알고리즘에 의해 영상을 보고 어찌나 놀랐던가.
무엇보다 그 영상 속에서 보인 시우는 확실히 달랐다.
예전의 시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야 그걸 믿어? 딱 봐도 주작이잖아.”
이들은 그 영상을 믿지 않았다.
시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서 시우라는 사람을 겪어봤으니까.
F등급도 되지 못한 무개성의 각성자.
각성자라 부르기도 민망한 병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어쩌면 여기 던전도 세트장처럼 꾸며놓은 거 아니야?”
셋은 그렇게 낄낄거렸─.
“그래서.”
일순간 들려온 목소리.
셋은 화들짝 놀라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주작인지 아닌지 확인하러 온 거냐?”
바라본 그곳엔 시우가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셋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거렸다.
놀라기도 놀랐거니와 전혀 인지하지 못했으니까.
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바로 직전까지 시우의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강도철은 안 보이는데… 강도철은 어디에 있냐.”
뒤이은 시우의 물음에 셋은 답을 해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당황 섞인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뭐, 순순히 말할 거란 생각은 안 했어. 말해도 믿지 않을 생각이었고.”
이윽고 시우가 주먹을 가볍게 말아쥐어보였다.
저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우리랑 싸우겠다고?”
김지우가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소리쳤다.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우습게 보이는 것도 정도가 있지.
“네 까짓 병신 새끼가 대체 뭘 할 수 있─.”
비아냥이 뚝, 끊어졌다.
꽈직, 무언가 뜯어지는 소리.
“─다고?”
시우는 어느샌가 눈앞에 서있었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시우의 모습에 김지우는 두 눈을 크게 떠보였다.
안 보였다.
눈에 보이기는 커녕 움직였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실로 말이 안되는… 속도다.
느끼는 경악.
그것은 혼란과 가중되어 김지우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뻐어억─!
복부를 때리는 커다란 충격.
날아간 몸이 땅바닥을 나뒹굴렀다.
전혀… 전혀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허헉…! 크허헉…!”
숨이 내쉬어지지 않았다.
끔찍한 격통에 정신이 드문드문 끊긴다.
몸이… 몸이 도무지 움직이질 않는다.
“쿨럭…!”
입가로 터져 나온 핏물이 바닥으로 쏟아져내렸다.
쏟아진 핏물 사이로 군데군데 살점들이 섞여있었다.
방금 전의 타격으로 내장의 어딘가가 크게 잘못된 모양이었다.
“어, 어…?”
“무, 무슨…?”
도은아와 지민철의 표정이 멍해졌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머리가 한 박자 늦게 이해하고 있었다.
시우는 대응하지 않았다.
그 둘을 무시하고 꽈앙, 땅을 박차며 김지우에게 달려들었다.
빠아악─!!
축구공을 걷어찬 것만 같은 굉음에 김지우의 몸이 들썩거렸다.
그리고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죽은… 건가?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도은아와 지민철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실로 압도적인 폭력.
“이런 젠장!”
“이 새끼가!”
그때서야 도은아와 지민철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뻐어억─!!
도은아의 옆에서 샌드백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떨리는 눈빛으로 옆을 바라본 시선.
그곳엔 휘둘러친 시우의 주먹에 지민철의 얼굴 관절이 기이하게 꺾여있었다.
맥없이 날아간 지민철의 몸뚱이가 동굴의 벽에 쳐박혔다.
축, 늘어진 지민철은 역시나 더 이상의 움직임을 내보이지 않았다.
“이, 이게 대체….”
무언가… 잘못 되었다.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 되었다.
시우는 도은아의 옆에 서 있었다.
가만히 시선을 들어 도은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번뜩이는 광채.
한 마리의 포식자와도 같은 눈빛은 다음 먹잇감은 너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자, 잠깐…!”
도은아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압도적인 폭력에 반항할 생각조차 일지 않는다.
도은아는 들고 있던 무기를 바닥에 떨구며 빌듯이 말했다.
“마, 말할게! 다 말할게!”
그러나 시우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도은아는 뒷걸음질을 쳐보였다.
그러다 다리에 힘에 풀려 철푸덕, 주저앉아버렸다.
주저앉은 자세에서도 계속해서 뒤로 걸음질 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시우가 천천히 다가오며 말한다.
“사지 멀쩡한 놈의 말은 믿지 않는 편이라.”
시우가 발을 크게 들어 올렸다.
그대로 내리찍음과 동시에 쩌저적─!
사람의 신체에서 들려올 수 없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 * *
“그러니까. 강도철이 나 족치고 오라고 시켰다?”
“그, 그래애… 아, 아뉘 그, 그러쓰니다.”
도은아가 퉁퉁 부은 얼굴로 간절하게 애걸했다.
여인에게 좀 과한 처사였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털어내었다.
‘나 죽이려고 한 사람한테 뭔.’
물론 시우를 죽이려고 했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던전에 몰래 따라 들어왔다는 것.
그리고 던전은 사람 하나 죽어나가도 모를 고립된 세계라는 것.
무엇보다 이들은 한 번 시우를 죽이려고도 했다는 것.
아니라고 박박, 우겨도 뻔히 보이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도은아는 C급 헌터다.
연약한 여인처럼 보이나 그 실속은 인간 병기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보라.
시우의 일격에도 멀쩡히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힘 조절을 하기는 했다만 그래도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건 쉬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강도철 이 새끼. 날 확인하려고 이 놈들 보낸 거네.’
시우는 강도철 패거리들의 목적을 알아낼 수 있었다.
정확히는 강도철의 꿍꿍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영상 속에서 보인 시우의 모습.
그 모습이 진짜인지를 확인하고자 이 놈들을 보낸 것이었다.
영상에서 보이는 시우의 모습은 예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시우를 알고 있던 자들이라면 ‘뭐? 그 병신 새끼가?’ 라며 믿지 않을 내용이었다.
그런데 강도철은 그렇지 않았다.
어쩐지 강도철이 안 보인다 싶었다.
“그런데 왜 강도철이 나한테 관심을 갖지?”
“모, 모라요… 저, 저도 그거는….”
도은아는 몸을 벌벌, 떨며 답을 해보였다.
시우는 그런 도은아를 노려보며 살며시 주먹을 말아쥐었다.
“지, 지짜에요…! 지짜! 지짜 모라요!!”
그러자 도은아가 기겁을 하며 고개를 맹렬히 저어보였다.
더하여 울며불며 시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연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연기를 할 정신 머리도 없어보였다.
한마디로 진짜로 모르는 것 같았다.
사람을 패는 취미는 없었기에 시우는 한숨을 내뱉으며 주먹을 풀었다.
“강도철이 어디에 있는지는? 그건 알겠지?”
“그, 그건….”
“아니, 됐다.”
시우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시우를 개무시하며 직접 올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확인을 할 정도로 강도철은 신중하고 또 약은 놈이었다.
그런 놈이 아무런 대비가 없을까.
시우는 널브러진 지민철과 김지우를 손가락을 가리켰다.
“쟤네들 알아서 챙겨 나가.”
“네, 네? 주, 주근 거… 아니어써요…?”
“안 죽었어.”
던전에서의 살인은 던전 사고로 충분히 위장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이번엔 이들이 던전을 몰래 따라들어온 상황이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우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살인이 껄끄러운 면도 없잖아 있었다.
몬스터를 펑펑, 터트리던 놈이 이런 말하긴 우습다만 그래도 몬스터와 사람은 다르다.
물론 이들은 시우를 먼저 죽이려 했던 자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살려둘 만큼 당연히 시우는 자비롭지 않았다.
그럼에도 굳이 살려두려는 이유는 역시나 간단했다.
“가서 강도철한테 전해.”
이들의 뒤를 몰래 밟아 강도철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면 강도철이 무언가를 대비할 틈을 주지 않고 잡을 수 있을테니까.
시우는 도은아의 턱과 입을 덥썩, 움켜쥐었다.
“다음엔 너도 이렇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대로 꽈직─!
하관 전체를 짓뭉개버렸다.
으으으으읍─!!
끔찍한 고통에 도은아가 몸을 파르르, 떨어 보였다.
하지만 이 고립된 던전 안에서 그 비명을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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