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38화 (38/250)

38화.

딸랑.

서팔광이 공방의 문을 열자 경쾌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들어왔음을 알리는 종소리.

서씨 공방을 개업하고 거진 10여년 동안 손님을 알려오던 종소리였다.

그렇기에 서팔광에게는 익숙지 않은 소리이기도 했다.

서팔광은 공방이 열려있을 때 외출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만남이 있어도 공방에서 만나거나.

그렇지 않으면 공방의 문을 닫고 나가거나.

절대로 누군가에게 공방을 맡긴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서팔광이 직접 종소리를 낸 경우는 없었다.

앞으로 평생 그러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거늘.

괜시리 새어나오는 웃음.

서팔광은 공방 안쪽으로 발걸음을 디뎠다.

그러다 문득.

“......?”

서팔광은 공방 안에 흐르는 이상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화륵, 화르륵!

안쪽에서는 용광로의 불길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시우가 장비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공방을 이용하고 있는 것.

처음엔 굉장히 어색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한 일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무언가 이상하다.

무려 10년을 함께 해온 공방이다.

공기의 흐름만 봐도 평소와 다름을 서팔광은 알 수 있었다.

서팔광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상함을 느낀 두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첫 번째.

“넌 또 왜 온거냐.”

공방 한쪽에 소은이 있었다.

소은은 공방과 어울리지 않는 여인이었다.

공방은 열정과 노력 그리고 영혼이 머무는 공간.

물론 여인이라는 사실이 공방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열정과 노력, 그리고 영혼에 있어 성별은 전혀 중요치 않았다.

여인도 얼마든지 장인(匠人)이 될 수 있었다.

서팔광이 말하는 여인은 단순히 소은의 성별을 지칭할 뿐.

어울리지 않다고 말한 건 소은이라는 사람 차제를 의미했다.

제 입으로 뻔뻔히 말하기는 하다만 소은은 미모의 여인이었다.

그리고 미모의 여인이 공방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가녀리고, 청초하고, 아름다운.

공방의 열정과 노력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그래도 뭐.

어디까지나 공방의 열정과 노력에 어울리지 않는다뿐.

소은은 자신 바 위치에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즉, 상인으로서 그 누구보다 열정과 노력을 쏟아붓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사실.

소은이 공방에 있는 건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자주 있어왔던 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서팔광이 이상하다 느낀 이유는 이것에 있었다.

“에에…?”

소은이 고장 났다.

사람에게 고장 났다는 말이 뭔 개소린가 싶지만 진짜 그러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살짝 벌린.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한 모습.

“에, 에에…?”

진짜로 고장 난 것만 같았다.

뇌 속의 부품이 하나 빠진 것 마냥 말이다.

“왜 그러느냐?”

서팔광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언제나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던 소은이건만.

지금 이 나사 빠진 모습은 대체 뭐란 말인가.

고장 난 소은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있었다.

서팔광은 그런 소은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 응?”

서팔광은 소은이 고장 난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망치를 잡고 까앙─!

단조질을 하는 시우의 모습.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평소 장비를 제작하던 모습과 똑같았다.

“......!!!”

그런데… 다르다.

평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무엇이 다른지 콕 집어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같은 야금술의 길을 걷는 대장장이로서 보이는 감각.

그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말하고 있었다.

화륵, 화르륵!

시우는 지금 영혼을 불어넣고 있다고.

시우는 단조질 한 재료를 용광로에 집어넣었다.

뜨거운 열기가 휘몰아치며 시우의 얼굴 앞까지 피어올랐다.

그러나 시우는 피하지 않았다.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재료를 가까이 마주했다.

온도를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얼마나 집중을 하는지 서팔광이 왔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시우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 허어.”

서팔광조차 넋을 놓아버릴 지경이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혼이 빼앗겨버렸다.

그렇기에 저건 더 이상 야금술이라 할 수 없었다.

하나의 예술.

더하여 서팔광은 말할 수 있었다.

시우는 지금 장인(匠人)의 혼을 불태우고 있다고.

장인(匠人)이라 함은 보통 숙련된 기술자를 일컫는다.

그러나 서팔광이 생각하는 장인은 결코 숙련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가지 분야에 종사한 경력만 길다 하여 장인(匠人)이 아니다.

단순히 좋은 결과물만 만든다고 하여 결코 장인(匠人)이라 할 수 없다.

진정한 장인(匠人)이란, 혼(魂)을 담아내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배워나가는 정신이다.

서팔광의 ‘장인(匠人)’은 그러했다.

그래서 서팔광은 스스로를 장인(匠人)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자본과 타협한 대장장이일 뿐이었으니까.

서팔광이 인정한 장인(匠人)은 딱 한 명.

마스터(Master) 오렐리안.

그리고 서팔광은 그런 마스터 오렐리안의 작업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화륵, 화르르륵!

까앙─! 까아앙─!

똑같…다.

아니, 아니다.

결코 똑같지 않다.

되려 오렐리안이 뒤쳐진다.

실로 말이 안 되는 생각이다.

마스터 오렐리안의 야금술은 인간이 닿을 수 있는 최정점의 경지였으니까.

그렇기에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서팔광은 시우의 야금술을 보며 저도 모르게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감히 닿을 수 없는.

아득한 너머의 경지.

“에, 에에…??”

“허, 허어…??”

서팔광은 소은과 마찬가지로 고장이 나 버리고야 말았다.

* * *

<일회용품을 만들었습니다.>

<신[神]의 야금술(SS)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신[神]의 야금술(SS) 숙련도 10.43%[+5%]>

스마트폰 화면으로 떠오르는 알림창.

“후아…!”

시우는 그때서야 기나긴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확, 풀어지는 긴장.

얼굴은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용광로의 열기를 코앞에서 마주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얼굴이 익어버리는 불상사는 면할 수 있었다.

‘헤라클레스의 개인 PT가 확실히 효과가 있단 말이지.’

폭발적으로 성장한 괴력[怪力](SS)의 숙련도.

그에 따라 강화된 시우의 신체는 용광로의 뜨거운 열기에도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건 그렇고….”

시우는 스마트폰에 떠오른 알림창을 바라봤다.

“일회용품이라니.”

시우는 맥이 탁, 하고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건틀렛을 만들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으니 말이다.

적잖은 노력 정도가 아니었다.

정말이지 혼신의 힘을 다했다.

시우가 직접 사용한다고 생각하며 심혈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데 일회용품이라니….”

한 번 쓰고 버린다는 뜻 아닌가.

혼신의 힘을 다한 역작이 이런 취급을 받으니 기운이 날래야 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뭐.

다른 의미로 한 번은 써봄지하다는 뜻 아닌가.

그 기준이 헤파이스토스라는 걸 생각하면 나름 괜찮은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아니, 괜찮은 결과는 무슨.

“세, 세, 세, 세상에…!”

“자, 자네… 어떻게 그런…!”

실로 어마어마한 장비라 할 수 있었다.

바라본 그곳엔 소은과 서팔광이 있었다.

그리고 둘 모두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은 쩌억, 벌어져 땅과 닿을듯 했고.

두 눈은 충격으로 벌어져 곧 찢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마치 부녀지간이 아닐까?

절로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똑같은 표정들이었다.

시우는 실소를 한 번 흘리고는 소은에게 물었다.

“소은 씨. 이거 얼마 정도에 팔 수 있을까요?

“네, 네? 그거… 파시게요?”

그러자 소은이 당황하며 답해보였다.

시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소은이 천천히 다가왔다.

“이, 이 정도면….”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건틀렛의 상태를 살피더니.

“제, 제 역량으로는 감당이 안 돼요….”

소은이 판매를 포기해 버렸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 소은물산을 이용하는 고객층에서… 이 정도의 장비를 구매할 정도의 사람이 없어요.”

한마디로 급이 안 맞는다는 뜻이었다.

좋은 쪽으로 말이다.

아니, 나한텐 나쁜 쪽인가?

아무튼.

“어….”

시우는 상당히 곤란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팔지 못하면 이 건틀렛을 만든 의미가 없었으니까.

뭐, 시우가 직접 사용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지금은 공자 채널 멤버십도 가입하고.

화타 멤버십 구독료도 내야하고.

신의술[神醫術](S+) 숙련도를 위한 약초들도 구입하고.

서아 약값도 내야 하고.

월세도 꼬박꼬박 내고.

밥도 먹고, 옷도 입고.

또 숨도 쉬고….

[계좌 잔고] - 40,450,000 ₩

그러나 현재 가진 돈으로는 택도 없었다.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파세요. 어차피 일회용품인데요.”

“에? 일회용품…?”

그러자 소은의 표정이 벙쪄버렸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은 표정이었다.

“부담 갖지 말라는 의미였어요.”

“그, 그쵸? 이게 일회용품이라니. 말이 안되죠.”

소은은 그때서야 벙찐 표정을 풀어보였다.

“시우 씨가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소은은 썩 자신이 없어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자네, 혹시 그 장비를 팔 생각이면… 한채린 양에게 팔면 어떠한가.”

“네?”

서팔광의 목소리에 시우는 뭔가 싶었다.

“한채린이요?”

갑자기 한채린이 왜 나온단 말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서팔광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니 꽤나 당황스러웠다.

“그것이 말이네….”

이어진 서팔광의 설명.

시우는 그때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채린이 장비를 구입하려고 한다라….’

한채린이 사용하는 검(劍).

직접 그 검을 본 바, 확실히 마스터 오렐리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솔직히 지금 시우가 만든 건틀렛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성능을 보조하는 정도라면야 충분히 비빌 만했다.

애초에 그럴 의도로 만든 건틀렛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채린이 S-등급 던전 레이드를 철저하게 준비하는 모양이네.’

만난 시간은 짧았지만 한채린은 모든 것에 허투루 대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과연 한채린답다면 한채린답다 할 수 있었다.

어쨌든.

“한채린이라면….”

충분히 이 장비를 구매할 여력이 되었다.

SH그룹의 막내 손녀딸.

여기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문제는 한채린이 만족을 하냐 마냐인데.

“이 정도면 충분하네. 아니, 아마 더없이 만족할걸세.”

서팔광이 저리 말할 정도면 걱정할 것은 없어보였다.

서팔광의 실력은 시우도 인정하는 바였으니까.

시우는 시선을 돌려 소은을 바라봤다.

그러자 소은이 살짝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면 당연히 그쪽에 팔아야죠. 시우씨께 이득이 된다면─ 아! 잠시만요?”

일순간 소은이 눈을 크게 떠보였다.

무언가 번뜩이는 생각이 스쳐지나간 모습.

이윽고 소은이 서팔광에게 물었다.

“아저씨. 한채린 이사가 아저씨를 찾아와 정말 그런 말을 했다는 거죠?”

“정확히는 그 비서가 온 것이지만, 같은 의미겠지.”

“그렇단 말이죠….”

소은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시우 씨. 이거 제게 맡겨주실 수 있으신가요?”

소은이 눈을 빛내며 시우에게 말했다.

시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못 팔 것 같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 시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좋은 생각이 떠올랐거든요.”

소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장비를 경매에 올릴 생각이에요.”

“경매요?”

시우는 약간 회의적인 시선으로 답했다.

경매는 경쟁을 통해 입찰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최고의 가격에 팔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경매에 참여한 이들의 재력에 따라 달라지니 말이다.

10억짜리 상품이라도 경매에 참여한 이들의 재력이 1억밖에 되지 않으면 그 물품의 최고가는 1억밖에 되질 않는다.

그렇기에 경매는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었다.

차라리 한채린에게 판매하는 것이 더 비싼 값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소은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경매에 올리면서 시장에 정보를 하나 슬쩍, 흘릴 거예요. 서팔광 장인께서도 감탄한 장비가 경매에 나온다. 이렇게 말이에요. 그럼 그 정보를 들은 한채린 이사는 어떻게 할까요?”

“그야… 어떤 장비인지 궁금해서라도 참여하겠죠?”

“바로 그거예요.”

“그게 무슨… 아!”

시우는 그때서야 소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경매는 경쟁을 통해 입찰을 한다.

그리고 경매에 참여한 이들의 재력에 따라 상품의 값이 결정된다.

재력의 수준이 낮으면 상등품도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

그러나 반대로 재력의 수준이 높으면 하등품도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SH그룹의 막내 손녀딸, 한채린.

경매에 한채린이 참여한다면?

“가장 최고점의 가격에 팔 수 있다는 뜻이 되어버리죠.”

돌고 돌아 결국 한채린에게 파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경쟁의 과정을 통해 받을 수 있는 값은 계속해서 올라간다.

“그러다 더 비싸게 사는 사람이 있으면 저희야 땡큐고요. 돈을 더 많이 준다는데 굳이 한채린 이사에게 팔 필요는 없잖아요?”

과연.

시우는 절로 감탄이 새어나왔다.

소은물산이 대한민국 최고의 물건만 취급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소은이 왜 소은물산의 대표 자리에 있는지는 알 것 같았다.

뛰어난 상인으로서의 재능.

또한 이 과정에서 소은도 크나큰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소은씨는 소은물산의 명성을 알리면서 수수료도 챙기고요.”

“헤헷…! 부정하진 않을게요.”

혀를 살짝 깨물며 답하는 소은.

하여간, 솔직한 여자였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가기도 했고.

어쨌든 이것저것 생각했을 때.

“좋습니다. 이 장비는 소은씨에게 맡기겠습니다.”

“오예쓰!”

소은은 두 주먹을 가슴께로 모아 불끈, 쥐어보였다.

“아저씨. 아저씨 이름 좀 써도 되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서팔광 장인도 인정한 장비라는 소문을 퍼트릴 때 써야해서요.”

“그러거라. 틀린 말은 아니니까.”

서팔광은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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