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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44화 (44/250)

44화.

식탁에 마주한 시우와 김민재.

집에 마땅히 앉을 자리가 여기 식탁밖에 없었다.

“녹차랑 커피. 어느 쪽이 더 좋으세요?”

주방에서 서아가 김민재에게 물었다.

김민재는 살며시 손사래를 치며 답을 해 보였다.

“갑자기 찾아온 것도 죄송한데 커피는 뭘요. 물이면 충분합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는데….”

“정말 물이면 충분합니다.”

단호한 김민재의 말에 서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는?”

“나도 물이면 돼.”

뒤이어 서아가 물잔에 물을 따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아가 시우와 김민재 앞에 물잔을 내려놓았다.

시우와 김민재는 그때까지도 식탁에 가만히 마주 앉아 있었다.

왜인지 어색한 이 분위기.

그래서인지 김민재가 몸을 자꾸만 꼼지락거렸다.

의자가 불편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던 찰나.

“실례지만 혹시 사자마자 후회하는 의자는 없습니까?”

“사자마자 후회하는 의자요?”

시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김민재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팔걸 이 의자.”

“......?”

저게 뭔 개소리─.

아니, 뭐라는 거야?

정신이 일시에 출타하며 멍해졌다.

멍한 시야로 씰룩.

김민재의 꾹 다문 입가가 좌우로 씰룩거렸다.

표정은 왜인지 뿌듯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굉장히 대견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

그러니까 지금 농담한 거야?

시우는 어이가 승천하는 기분이었다.

서아도 당황스러운지 물잔을 내려놓던 자세로 굳어 있었다.

두 눈을 끔뻑끔뻑, 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웃자니 어처구니가 없고.

안 웃자니 왜인지 실례인 것 같은 기분.

“세, 센스가 좋으시네요.”

“별 말씀을.”

김민재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뭐, 그래도.

덕분에 분위기가 약간은 풀어지긴 했다.

다른 쪽으로 말이다.

“해서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시우가 묻자 김민재가 곧장 입을 열었다.

“채린 아가씨께서 시우 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저를요?”

“그렇습니다.”

김민재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반면에 시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한채린이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물론 안면이 있기는 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안면만 있다뿐이었다.

이렇게 직접 찾아올 정도의 인연은 아니었다.

“이유가 무엇이죠?”

“시우 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 도움이요?”

김민재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소식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얼마 전에 채린 아가씨께서 S-등급 던전 레이드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실패했죠.”

“기사글을 보기는 했습니다만.”

“아가씨께서는 다시 던전에 재도전하려 합니다.”

“음…..”

이어진 김민재의 말에 시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던전에 재도전을 한다는 한채린.

그리고 시우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

“제게 공략법을 만들어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김민재가 정확히 짚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트롤 던전에서 보여 주었던 시우의 공략법.

한채린은 그것이 시우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양인데….

“S-등급은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만. 아니, 그보다 던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죄송하지만 그 사정까지는 제가 듣지 못했습니다. 시우 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밖에….”

김민재는 난색을 표하며 재차 말을 이었다.

“본래라면 아가씨께서 직접 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보는 눈이 많은 터라. 이 부분은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김민재가 시우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시우 또한 그런 김민재를 이해했다.

정확히는 김민재를 보낸 한채린을 이해했다.

현재 한채린은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SH그룹 사옥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있을 터.

이런 상황에서 한채린이 움직이면 기자들 또한 득달같이 달라붙을 건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기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시우의 집에 방문한다?

‘나까지 괜히 엮여서 골치 아파지지.’

여러모로 김민재를 보낸 건 잘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 시우는 딱히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되려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었다.

아무튼.

“아가씨와 한번 이야기라도 나눠주실 수 있으십니까.”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면 한채린을 만나봐야한다는 뜻이었다.

잠깐의 고민.

그러나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냄새가 났으니까.

‘조회수 달달한 유투브 각의 냄새가 난다.’

물론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투버의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아무리 못해도 최소 100만 조회수 따리라고.

“서아야, 오빠 잠깐 다녀올게.”

“응. 조심히 다녀와.”

시우는 김민재와 함께 집을 나섰다.

* * *

SH헌터 길드 사옥.

그 최하층에 위치한 훈련장 겸 연무장.

쐐액! 쐐애액!

그곳엔 공기를 찢는 듯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공간을 가르는 한 자루의 검.

‘확실히 오렐리안은 오렐리안이네.’

시우는 나지막히 감탄을 터트렸다.

저번에 볼 때도 범상치 않아 보이긴 했었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신[神]의 야금술(SS)을 배운 지금.

오렐리안이 왜 마스터(Master)라 불리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헤파이스토스에 비하면 어림도 없지만.’

어쨌든.

쐐애액!

한채린은 연무장에서 수련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흐르는 땀방울.

거친 숨소리.

시우가 온 것조차 모를 정도로 한채린은 무아지경에 빠져있었다.

그래서일까.

“아가씨를 불러오겠습니다.”

“아뇨. 조금 기다리죠.”

시우는 한채린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무아지경의 수련.

그 정도로 집중하는 수련에서 얻어지는 것은 많았으니까.

얼마 전에 시우도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저야 조금 기다리면 되지만, 채린 씨는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닐 수 있습니다.”

시우의 말에 김민재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

시우는 그런 김민재를 뒤로한 채 한채린의 수련을 잠시 감상했다.

‘내가 만든 건틀렛을 착용하고 있네.’

왜인지 뿌듯한 기분.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한채린의 수련을 더더욱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확실히 체계적이지 않네.’

시우는 한채린의 검을 이렇게 정의 내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한채린의 검술은 단순했다.

물론 시우는 검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통찰력(S+)과 더불어 헤라클레스의 신투술을 견문하며 안목이 높아졌기 때문일까.

‘단순해.’

한채린의 검술이 단순해 보였다.

정확히는 검술이라 부를 수도 없었다.

한채린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마땅한 검술을 배우지 못했다더니.’

처음엔 몰랐었다.

그냥 한채린이 대단하게만 느껴졌었다.

그런데 헤라클레스에게 배우며 안목이 늘어난 덕분일까.

이렇게 보니 확, 티가 났다.

그렇기에 본래라면 조잡하게 느껴져야만 했다.

하지만 한채린의 개성 중 하나인 검재[劍材](S).

검에 대한 재능이 그 조잡함을 하나의 검술로 만들어 버렸다.

시우에 비유하자면 괴력[怪力](SS)만을 사용하고 있는 격.

그 괴력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신투술[神鬪術]이 없었다.

하지만 조잡함에 기반한 검술은 결국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천재적인 재능이 있으나 그 재능이 꽃 피우질 못하고 있었다.

새끼 드래곤이 아무런 가르침도 못 받고 있는 셈이었다.

아마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운다면 한채린은 어마어마한 성장을 할 터.

허나 그건 돈으로 어찌할 수가 없었다.

상급의 무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유일한 방법이 문파의 제자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채린이 뭐하러 그러겠어.’

정확히는 SH그룹이 그걸 허락하지 않을 터였다.

문파의 제자가 되면 한채린은 더 이상 SH그룹의 사람이 아니게 되니 말이다.

해당 문파에 소속되어 문파의 이름으로 활동해야만 했다.

그걸 SH그룹이 허락할 리가 만무했다.

‘배경이 빵빵한 게 마냥 좋은 건 아니구나.’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채린 정도라면 갓튜브의 무공들을 배워도 습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갓튜브에는 검(劍)을 사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 중 몇 명만 꼽자면….

『<랜슬롯>: 고민 상담 ‘엑스칼리버 vs 왕비, 기네비어’ 아서 폐하께서 저보고 선택하라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서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원탁의 기사.

그 중 최강의 기사라 불리는 호수의 기사, 랜슬롯.

『<지크프리트>: 마룡, 파프니르. 3분 11초 컷! 드래곤 전문 공략러의 꿀팁을 낱낱이 공개합니다!』

신검[神劍] 발뭉(Balmung)의 주인.

최초의 용살자라 불리는 드래곤 슬레이어, 지크프리트.

『<항우>: 유방 놈 잡아다가 사면한가(四面漢歌) 시켜봤다.』

한 사람이 만 명을 대적하는 무력.

만인지적(萬人之敵)의 패왕, 항우.

이처럼 수많은 이들이 갓튜브에 있었다.

S급 헌터들을 따위로 만들어버리는 무신(武神)들이 즐비해있었다.

‘영상들이 좀 정신이 나가 있긴 했다만….’

그래도 저들은 모두 진짜였다.

대충 찍은 인물들의 무공이라도 최상급 무공과 비교가 안 된다.

한채린이 그 무공을 배울 수 있다면?

한채린은 더 이상 새끼 드래곤이 아니었다.

완전한 드래곤으로의 각성.

하지만 아쉽게도 갓튜브의 무공은 시우만 배울 수 있었다.

한채린은 배울 수조차 없─ 아니, 아니지?

‘내가 영상보고 가르칠 수 있지 않나?’

생각해보면… 그러긴 했다.

한채린이 갓튜브에서 배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우가 배워서 한채린을 가르치는 것은 가능했다.

‘멤버십을 추가로 가입해야 하긴 하지만….’

그리고 분명 멤버십 가입 비용이 미쳐 날뛸 터.

그런데 뭐.

‘한채린한테 받아내면 되니까.’

SH그룹의 막내 손녀딸.

대한민국 재계와 정계를 쥐락펴락하는 초거대기업.

10억이든 100억이든 나발이든 염병이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물론 시우가 한채린을 가르쳐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강료 좀 내가 받을 수도 있고.’

수강료를 받으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대충 100억 정도 받아내면 되려나?

그럼 달마다 100억 원의 수익이 생기는 셈.

수강료치고 과하다 못해 미쳐 버린 돈이긴 했다.

‘갓튜브의 무공에 100억이면 싸지.’

남들은 돈이 있어도 구하지도 못하는 걸 알려주겠다는데 말이다.

그리고 보나마나 한채린에게 상급의 무공은 절실할 터였다.

그러니 100억은 개뿔이 무슨.

1,000억을 불러도 솔직히 가능할 터였다.

그것도 매달 수강료로 말이다.

‘개꿀인데?’

이렇게 생각해보니 개꿀도 이런 개꿀이 없었다.

그야말로 연금이나 다름없었다.

일명 한채린 연금.

다만 이 연금에는 하나 문제가 있긴 했었다.

‘한채린이 나한테 가르침을 받느냐 인데.’

시우는 현재 D-급의 헌터다.

반면에 한채린은 A급의 헌터.

D-급 헌터가 A급의 헌터를 가르친다?

주객전도라는 말도 이 정도까지는 감당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결국 시우도 그 무공을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가르치려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당연히 배우기 어려울 거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할 터였다.

‘헤라클레스 신투술을 병행하면서 배우기가 힘들 텐데.’

여기에 시우가 배운 다른 개성들까지 생각하면 어우….

벌써부터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괜히 일만 주구장창 벌렸다가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지금도 조금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 않은가.

하지만.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운데.’

흐르는 꿀단지가 아까웠다.

생각해보라.

한채린 연금에 가입하면 매달 따박따박 수백 억이 들어온다.

노후 같은 건 전혀 걱정할 것이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겠는가.

‘흐음….’

어떻게 하면 한채린 연금에 가입할 수 있을까.

시우는 아주 깊은 고민에 빠졌다.

머리가 뜨거워지며 사고의 흐름이 가속화된다.

마주한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다.

통찰력(S+).

시우는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었다.

그렇게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오셨으면 말을 주셨어야죠.”

“죄송합니다. 시우 님이 아가씨의 수련을 방해하고 싶지 않으시다고 하셔서….”

한채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덧 수련이 끝난 모양.

시우는 상념을 떨쳐내며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보인 한채린의 모습은….

격한 움직임으로 숨이 거칠다 못해 헐떡거리고 있었다.

얼굴에 비 오듯이 흐르는 땀은 전신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땀에 젖은 옷은 몸에 딱, 달라붙어 유려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어….”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까.

한채린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예나 지금이나 감정 하나 없는 로봇 같았다.

그런데 왜일까.

“씻고 올게요.”

휙, 돌아서는 한채린의 뒷모습.

왜인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엿보인 것만 같았다.

* * *

“오래 기다리셨죠.”

한채린은 금방 돌아왔다.

그런데 어째 미모에도 향기가 배어나오는 것일까.

한채린에게서 은은한 비누향과 샴푸향이 느껴졌다.

물론 씻고 왔기에 느껴지는 향일 터였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한채린의 모습은 그런 착각마저 일게 만들었다.

“아니요. 그렇게 오래 기다리진 않았습니다. 그보다….”

시우는 살며시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리고 딱히 시간 끌 이유가 없었기에 바로 본론을 꺼냈다.

“제 도움을 필요로 하신다고요.”

시우의 말에 한채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별 다른 설명 같은 건 없었다.

그야말로 용건만 딱딱.

시우도 괜히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 끌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략적인 사정은 앞서 김민재에게 들었지 않았는가.

“던전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시우가 묻자 한채린이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였다.

고민을 하는 것인지 쉽사리 답을 해 보이지 않았다.

시우는 그런 한채린을 말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던전 안에는 몬스터가 없었어요.”

“뭔 개소─.”

시우는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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