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시우는 한채린과 함께 던전 안을 누볐다.
그렇게 숲의 풍경을 헤치며 걷던 도중.
시우는 한채린이 자꾸만 손목을 좌우로 꺾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보아하니….
‘건틀렛의 사이즈가 미묘하게 안 맞는 것 같은데.’
시우가 만든 건틀렛을 착용하고 있는 한채린.
그리고 저 건틀렛은 시우의 손 사이즈에 맞게 제작한 것이었다.
한채린의 손 사이즈와 맞지 않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그걸 그대로 끼고 있어?’
시우는 의문을 느끼며 한채린에게 물었다.
“그 건틀렛. 혹시 사이즈가 안 맞으신가요?”
“조금요.”
한채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이즈 조정하시지.”
“......?”
그러자 한채린이 걸음을 뚝, 멈추었다.
시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
마치 ‘사이즈 조정이요?’ 라고 묻는 듯한─.
“사이즈 조정이요?”
확실히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런 한채린의 물음에 시우는 순간 뭔가 싶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이즈 조절 기능이 있다는 걸 설명 안 해줬구나.’
경매에 내놓으면서 힘 증폭 기능만 설명한 것 같았다.
시우는 괜시리 미안함을 느끼며 말했다.
“누가 사용할지 몰라서 제 손 사이즈에 맞췄거든요. 벗겨질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불편하셨을텐데.”
시우는 그렇게 말하며 한채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한채린의 손을 잡아 건틀렛 손등 위에 도드라진 부분을 꾹, 눌렀다.
그러자 철컥!
“어…?”
한채린이 놀란 눈을 떠 보였다.
“이걸 어떻게…?”
“AS 서비스입니다.”
시우는 가볍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정작 한채린은 가볍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런 기능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시우 씨가…?”
“그야 제가 만들었으니까요.”
“......네?”
한채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그리고 껌뻑껌뻑.
그야말로 세상 놀란 눈치였다.
시우는 되려 의문을 느끼며 한채린에게 물었다.
“혹시 숨겨야 하는 거였습니까?”
“......”
한채린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정확히는 그걸 왜 저한테 물으시는 거죠?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
“이걸 시우 씨가 만들었다고요?”
아쉽게도 이번엔 아니었나보다.
“네.”
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한채린은 꽤나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럼 서팔광 장인께서 인정한 장인이라는 사람이….”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아저씨랑 같은 공방에 있기는 합니다.”
한채린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표정에는 충격이라는 감정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어째 1년치 감정을 오늘 모두 발산하는 것만 같았다.
괜시리 새어나오는 웃음.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흠칫.
시우의 감각으로 끔찍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존재감을 느꼈을 때.
시우는 이미 그것에 압도되어있었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공포.
삶이 걸려있는 죽음의 사선에 서 있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모든 증오와 악의 그리고 광기가 공간을 잠식하며 옥죄어온다.
머릿속으로 쉼없이 경종이 울려온다.
치명적인 본능이 경고한다.
크르르르….
움직이면
죽는다.
* * *
근육은 빳빳하게 굳어버리고.
날카롭게 선 정신이 전신을 옭아맨다.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머릿속을 헤집는다.
시우는 이를 까득, 씹었다.
그것도 모자라 안쪽의 볼 살을 씹었다.
아찔한 통증에 멈춰있던 몸이 움직였다.
비릿한 혈향에 굳어진 감각이 하나하나 되살아난다.
시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울창한 숲 사이로 드리운 어둠.
그 어둠 사이로 붉디붉은 안광이 타오르고 있었다.
단지 마주 바라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정신이 마비될 것만 같았다.
이윽고 어둠 속의 존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흑색 갈기의 거대한 늑대.
주변으로 형체화 되어 피어오르는 칠흑의 아우라.
느껴지는 끝없는 흉악함.
다르…다.
차원이 다르다.
그 동안 시우가 마주했던 그 어떠한 몬스터와 비교할 수가 없다.
시우의 볼 위로 주륵,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뒤로 물러나세요.”
한채린이 한 발 나서며 검을 뽑아들었다.
마주 기세를 피워올리며 흑색 늑대와 대적했다.
그 순간 떠오르는 의문.
한채린이 저 흑색 늑대를 이길 수 있는가.
모르겠다.
그렇다면 시우가 합세한다면 어떠한가.
이 또한 모르겠다.
그렇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
‘싸워서는 안 돼.’
승산을 점칠 수가 없는 싸움이다.
무엇보다 이쪽은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곳에 온 건 그저 어떤 몬스터인지 확인하고자 함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당장의 싸움은 피해야 한다.
결정을 내린 시우는 전신의 힘을 폭사시켰다.
꽈드드드득!
온몸의 근육이 폭발하며, 끔찍한 힘이 터져 나온다.
근조직에 과부하가 걸리며 아스라진다.
그러나 조금은 버틸 수 있다.
한채린이 놀란 눈으로 시우를 돌아봤다.
아쉽게도 그것에 응답해 줄 시간은 없었다.
시우는 하체에 들끓는 힘을 담았다.
그리고 진각을 내딛듯.
그대로 콰아아아아아앙!!!
땅거죽이 모조리 뒤집어지며, 끔찍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지진이 덮쳐온 것처럼 천지가 뒤집어진다.
숲의 잔해가 무조건적으로 박살이 나며 먼지안개가 자욱히 일어난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풍경.
바로 앞에 있던 한채린조차 시야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흑색 늑대 또한 마찬가지.
“뛰어요!”
시우는 어딘가에 있을 한채린에게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갑작스러운 외침이었다.
그러나 한채린이라면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시우는 망설임 없이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아니나 다를까, 타닥!
한채린이 시우를 따라붙었다.
흑색 늑대는?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느낄 수가 없었다.
흑색 늑대의 존재감에 모든 감각이 마비되어 있었다.
이 공간 전체에 흑색 늑대가 있는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시우를 물어뜯어 죽일 것만 같았다.
시우는 온 힘을 다하여 땅을 박찼다.
한채린 또한 그런 시우를 따라 몸을 날렸다.
휙휙,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숲의 풍경.
아우우우우우─!!
섬뜩한 늑대의 울음소리가, 시우의 귓가를 때려왔다.
* * *
우우웅.
게이트 밖으로 나오자 보이는 바깥 세상.
“하아…! 하아…!”
시우는 그때서야 긴장감을 풀 수 있었다.
뒤이어 우우웅, 게이트가 일렁이더니 한채린이 튀어나왔다.
“시우 씨 방금….”
그리고 들려온 물음.
한채린은 놀란 눈으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 않았다.
“쉬이… 사용할 수 없는 힘입니다.”
그렇기에 뭐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뭐.
실제로 쉬이 사용할 수 없는 힘이기도 했고.
한채린은 입을 꾹, 다물었다.
시우를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히 놀람과 의문으로 물들어있었다.
하지만 시우가 보스종인 검은 트롤과 대적한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
한채린은 그 이상으로 묻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시우는 되려 한채린이 더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저 몬스터를 상대로 살아돌아오셨단 말입니까?”
S-등급의 카포종.
직접 확인해본 바 그 강함은 시우의 생각 이상이었다.
그런 몬스터를 상대로 살아돌아왔다는 것.
그것만으로 시우는 한채린의 수준을 한 단계 조정했다.
심지어 한채린 혼자만이 아니었다.
한채린은 팀원들 모두를 무사 생환시켰다.
“운이 좋았어요.”
이건 운이 좋았다는 말로 퉁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시우는 다시 한 번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다시 공략하실 생각이십니까?”
직접 싸워보진 않았기에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최소 S급 헌터 5명.
그 정도의 전력은 있어야 어찌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아마 한채린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을 터.
“네. 제가 꼭 해야만해요.”
그럼에도 한채린은 단호했다.
이렇게 보니 단순히 주가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시우씨는 공략법만 만들어주시면 돼요. 사냥은 저희 팀에서 하겠습니다.”
하지만 한채린은 도무지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시우는 설득하려 했지만 금방 고개를 털어보였다.
지금 보이는 한채린의 눈빛.
정말이지 포기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어보였으니까.
그리고 뭐.
사실 시우도 100억과 100만 조회수 유투브 각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분석하는대로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시우는 그렇게 한채린과 헤어졌다.
* * *
[크르르르….]
영상 너머로 보이는 흑색 늑대의 울부짖음.
번뜩이는 광채와 주변으로 형체화 되어 피어나는 칠흑의 아우라.
바디캠으로 찍은 터라 그 몰입감이 상당했다.
그리고.
“대체 무슨 몬스터인 거야?”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였다.
S-등급의 카포종.
그러나 결국은 일반적인 몬스터가 변형을 일으킨 종이다.
그 원형이 되는 몬스터는 반드시 있다.
그리고 원형의 몬스터는 찾는다면, 공략법을 세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없었다.
협회에 기재된 논문.
몬스터 백과사전.
심지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찌라시까지.
정말이지 모든 정보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없었다.
“대체 뭐지.”
시우는 여전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통찰력(S+)의 힘을 빌렸으나 소용없었다.
“대체 뭐길래?”
시우는 점점 더 흑색 늑대의 정체가 궁금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대체 뭐냐고!”
시우는 도무지 흑색 늑대의 정체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 * *
“하악…! 하악…!”
헐떡거리다 못해 격동하는 호흡.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화면 너머 들려오는 헤라클레스의 목소리.
시우는 바닥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숨은 넘어갈 것처럼 헐떡거렸고.
근육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꿈틀거렸다.
띠링!
<헤라클레스의 운동법을 수행했습니다.>
<관련한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괴력[怪力](SS) 숙련도 5.88%[+0.14%]>
<헤라클레스 신투술[神鬪術](SSS) 숙련도 0.06%[+0.01%]>
들려오는 스마트폰의 알림음만이 그런 시우를 달래줄 뿐이었다.
시우는 한동안 바닥에 드러누워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그거 가지고 드러눕기는.]
헤라클레스가 혀를 차 보이며 말했다.
뭐라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그럴 힘이 나지 않았다.
“하악…! 하악…!”
그 한마디 할 시간에 숨을 들이쉬는 게 더 이득이었다.
시우는 그렇게 드러누워 숨을 헐떡거렸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후우…!”
시우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호흡만 안정을 되찾았다 뿐.
“아윽…!”
박살이 난 근육은 여전했다.
전신을 사포로 갈아버리는 듯한 근육통이 느껴졌다.
일어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한마디로 남는 시간.
시우는 품 속에 손을 넣어 스마트폰을 꺼냈다.
갓튜브가 아닌 시우가 사용하는 평범한 스마트폰.
시우는 드러누운 자세로 스마트폰의 영상을 시청했다.
그런 시우의 모습에 헤라클레스가 물어왔다.
[뭘 보는 거야?]
“이거요? 제가 요즘 분석 중인 몬스터요.”
[분석 중인 몬스터?]
“네. 오늘로 벌써 3일째인데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시우는 그러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디 봐봐.]
“이걸요? 왜요?”
[궁금하잖아.]
화면 너머 헤라클레스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짓고 있었다.
근육 이외에 아무것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아니었나?
시우는 헤라클레스가 볼 수 있도록 스마트폰을 돌렸다.
거치대에 걸려있는 갓튜브 스마트폰 카메라에 각도를 맞춰 보여주었다.
그리고.
[음?]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 가까이 보여줘 봐.]
이번엔 시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지 아세요?”
[더 가까이.]
헤라클레스는 대답 대신 얼굴을 화면 가까이 들이밀었다.
화면 가득히 보이는 헤라클레스의 얼굴.
시우는 보고 있던 스마트폰 화면을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이윽고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갸웃갸웃.
몇 번이나 좌우로 갸우뚱하더니.
[걔 펜리르 아니야?]
“네에?!”
시우는 저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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