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울창한 숲의 풍경.
한채린을 필두로 SH헌터 길드의 팀원들이 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건우는 그런 한채린의 바로 뒤에 자리해 있었다.
한채린 다음으로 등급이 가장 높기도 했거니와, 건우의 개성인 경화(硬化).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내는 탱커 역할이 주된 역할이었으니까.
건우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꾸만 긴장되는 마음에 손이 살짝, 떨려왔다.
압도적인 공포의 흑색 늑대.
그 흑색 늑대 앞에서 건우의 개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비단 건우뿐만이 아니었다.
뒤 따라오는 팀원들 또한 저마다 긴장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직 한 명.
“여기가 바로 S-등급의 던전입니다 여러분. 혹시 느껴지십니까? 무시무시한 기운이 아주….”
저 유투버인 관종을 제외하면 말이다.
셀카봉에 카메라를 달고 영상을 찍고 있는 사내.
‘맹시우…라고 했었지.’
이름 가지고 그러면 안되었지만 확실히 맹한 사내였다.
지금도 보라.
“이상하게도 주변에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죠? 그건 말입니다 여러분….”
이 중요한 순간에 시덥잖은 영상이나 찍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저렇게 큰 목소리로 말이다.
저러다 흑색 늑대가 눈치채면 어쩌려고.
뭐라 한소리 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참았다.
팀장인 한채린이 저 촬영을 허락했다고 들었으니까.
“이런 경우는 보통 카포종일 수가 있는데. 혹시 카포종이라고 혹시 들어 보셨습니까?”
카포종?
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A-급 헌터로서 수많은 경험을 해온 건우였다.
그런데 카포종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카포종은 변형종의 일종인데….”
그러면서 시우가 뭐라뭐라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지식에 조금은 흥미가 돋았다.
건우는 알게 모르게 시우의 설명을 귀담아들었다.
“하지만 이 던전은 아쉽게도 카포종이 아닙니다.”
뭐야.
그럼 왜 그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건데?
역시 관종은 관종인건가.
건우는 집중해서 들은 자신이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언짢은 기분을 삼키며 걸음을 내딛던 그때.
뚝.
앞서 걸어가던 한채린이 돌연 걸음을 멈춰섰다.
그리고 우뚝.
건우 또한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춰섰다.
시선을 들어 바라본 정면.
드리운 숲의 어둠 사이.
타오르는 붉디 붉은 안광.
크르르르….
공포에 이성이 마비되며, 검을 쥔 손이 덜덜, 떨려왔다.
대적할 수 없는 공포가 공간을 옥죄어 오는 것만 같았다.
건우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모인 모든 팀원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움직이면
죽는다.
한채린을 비롯한 팀원들.
그 모두가 섣불리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오직 단 한 사람.
“짜잔! 저게 바로 마랑이라 불리우는 전설의 신수, 펜리르입니다!”
저 놈의 미친 새끼─.
아니, 시우라는 자만이 앞으로 나서 보일 뿐이었다.
* * *
채린은 검의 손잡이를 살며시 말아 쥐었다.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게 긴장을 첨예하게 벼렸다.
그리고 바라본 앞선 시야.
쿵, 쿵.
감각으로 느껴진 뒤에야 소리가 들려온다.
우드드득! 콰앙!
가벼운 움직임에 나무가 꺾이고 부러진다.
화륵.
어둠 사이로 번뜩이는 붉은 광채.
칠흑의 아우라를 풍기며 등장한 흑색 늑대는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건만.
이 압박감은 좀처럼 적응이 되질 않았다.
아니, 적응을 하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그래서일까.
채린은 후회가 들었다.
저 흑색 늑대를 레이드 하려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을까.
객기가 아니었을까.
내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아닐까.
S급 헌터들의 도움을 얻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수많은 상념들이 채린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러나 채린은 고개를 흔들어 털어내었다.
S급 헌터들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 레이드는 단순한 레이드가 아니었으니까.
SH그룹이 헌터 산업에 도약하는 첫걸음.
길게는 SH그룹의 운명과도 연관이 있었다.
그러니 오롯이 SH그룹의 힘만으로 해야만 한다.
SH그룹의 힘이 건재함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흑색 늑대의 위용.
어리석은 결정일 것이다.
후회도 밀려온다.
그럼에도 때론.
어리석은 결정임을 앎에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었다.
챙─!
채린은 두려움을 이겨내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런 채린의 뒤를 따라 팀원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짜잔! 저게 바로 마랑이라 불리우는 전설의 신수, 펜리르입니다!”
웬 시덥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시우가 과장된 몸짓으로 서 있었다.
채린은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보이는 시우의 모습.
“펜리르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괴수죠. 네? 저게 진짜 펜리르냐고요? 글쎄요.”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어떠한 압박감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흑색 늑대가 뿜어내는 어마어마한 살기.
채린조차 지금 손이 떨리고 있건만 시우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런 채린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마 펜리르가 맞지 않을까요?”
시우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정말 펜리르가 맞다면 저 늑대는 공략 불가한 몬스터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를 집어삼킨 늑대를 어떻게 공략합니까.”
시우는 난처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래도 제가 누굽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공략하는 남자! 세공남 아니겠습니까. 세계를 집어삼킨 늑대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시우는 그 말과 함께 채린에게 다가왔다.
뭐 하는 건가 싶은 것도 잠시.
“준비되셨습니까?”
“... 네?”
채린은 도무지 시우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준비는 뭔 놈의 준비란 말인가.
그런 채린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 펜리르 공략법 그 첫 번째!”
시우는 저 말 할 말만 해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꽈앙!
시우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
“......?”
갑작스러운 상황에 지켜보던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다.
채린 또한 잠시나마 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크르르르!
펜리르의 날카로운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시우가 펜리르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어느 틈에…? 라는 물음도 잠시.
펜리르가 달려드는 시우를 향해 앞발을 크게 들어보였다.
“위험해요!”
한채린이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소리가 전달되기도 전.
시우는 이미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꽈아앙!
내리찍은 펜리르의 앞발에 땅거죽이 비산했다.
사방으로 갈라진 땅거죽에 풍경이 찢어진다.
그리고 그 속에 시우는 없었다.
쐐액!
시우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져나갔다.
꽈드드득!
괴이하게 뒤틀리는 근육.
시우는 사출되는 광폭한 힘을 오롯이 주먹에 담아 내질렀다.
콰아앙─!
“저 무슨…!”
“세, 세상에…!”
사람들이 경악을 터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시우의 일격.
아니, 시우의 움직임부터 시작된 일련의 과정들.
그 과정들을 한 순간도 인지하지 못했으니까.
“......!”
채린 또한 두 눈을 크게 떠보였다.
무표정한 얼굴에 뚜렷한 놀람의 감정을 떠올렸다.
그러나.
크르르르르…!
다시 들려오는 펜리르의 울음소리.
펜리르는 쓰러지지 않았다.
제대로 직격했음에도 펜리르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저 몇 걸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 있을 뿐이었다.
“젠장!”
그런 펜리르의 모습에 시우가 씹듯이 말을 내뱉었다.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의미가 없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이렇게 하면 된다 그랬는데…!’
하여간, 그 양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은 내 잘못이지.
그런데 뭐.
솔직히 말하면 그리 놀랍지 않은 결과이긴 했다.
“저 일격을… 버텼다고?”
“마, 맙소사…!”
정작 놀란 건 다른 이들이었다.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한가락 하는 헌터들이었다.
그렇기에 시우의 일격에 담긴 힘을 모르지 않았다.
자신들이라면 어떠했을까.
방금 전 시우의 일격을 버틸 수 있었을까?
글쎄.
쉬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그런데 저 늑대는 맞고서 버텼다.
버티다 못해 별 다른 타격을 입은 것 같지 않았다.
두 눈으로 보고 있는 광경.
그럼에도 쉬이 믿기지가 않는다.
컹─! 컹컹─!
펜리르가 시우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거대한 몸임에도 속도는 재빨랐다.
꽈앙─!
꽈아앙!
시우는 숲의 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움직이고 있었다.
펜리르는 나무를 모조리 짓뭉개버리며 시우를 뒤쫓고 있었다.
“우리도 움직입니다.”
일순간 들려온 채린의 목소리.
바라본 그곳엔 타닥!
채린이 이미 펜리르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 * *
시우의 눈동자가 펜리르를 쫓는다.
펜리르는 짖지 않았다.
타오르는 안광으로 지긋이 존재감을 발산할 뿐이었다.
그 눈빛 안에 깃든 살의가 들끓는다.
공간 전체를 짓누르는 듯한 살의.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하나의 폭력이었다.
우지끈!
숲의 나무가 무조건적으로 박살이 난다.
그 과정에 별 다른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펜리르가 발걸음을 가볍게 내딛는 것만으로 행해진 일이었다.
스치듯 펜리르의 모습이 보인다.
며칠 먹지를 못한 것일까.
펜리르는 상당히 야위었다.
저게 어딜봐서 야위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만은 시우는 분명 그렇게 느껴졌다.
크르르르─!
펜리르가 낮게 내리 깔며 짖었다.
그것은 굶주림에 대한 갈망이자 곧 포악함이었다.
아래로 숙인 펜리르가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펜리르와 시선을 마주침에.
치명적인 본능이 경고한다.
‘위험!’
쐐액, 하는 바람소리가 시우의 귓가를 스쳤다.
피했다. 분명히 피한 일격이다.
그런데 귀가 찌잉─! 하면서 눈앞의 시야가 일시에 흔들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펜리르가 붉은 광채를 번뜩인다.
‘미친.’
시우는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괴력으로 날 선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저 펜리르는 진짜다.
그 순간 헤라클레스가 알려준 공략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헤라클레스였기에 가능한 공략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었건만.
‘1분은 개뿔이 무슨! 10초도 못 버티겠는데!’
꽈아앙─!
바로 앞에서 터져나오는 폭발.
번뜩이는 안광을 마주함에, 시우는 생각했다.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공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펜리르가 온전한 상태였다면 불가능했다.
공략이고 자시고 염병이고.
대면하는 순간 죽음을 맞이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펜리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상당히 힘이 약해져있었다.
또한 펜리르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목덜미 주변으로 나른거리는 실.
글레이프니르(Gleipnir).
펜리르를 속박한 글레이프니르가 펜리르의 움직임을 억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불가능하지 않다.
충분히 공략 가능한 수준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시우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쐐액!
공기를 찢으며 날아드는 한 줄기의 검.
촤학─!
새빨간 선혈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아우우우우─!!
펜리르가 고통 어린 울음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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