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어둠 속에서 들려온 나지막한 목소리.
사내의 인상이 살짝, 굳어졌다.
2M에 달하는 커다란 덩치.
우락부락한 근육과 온몸의 상처는 사내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알려 주고 있었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압박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커다란 덩치의 사내는 들고 있던 술잔을 탁, 내려놓았다.
그리고 양옆에 끼고 있던 여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나가 봐.”
알록달록 화장을 한 여인들이 일어났다.
여인들이 나가자 어둠 한구석에서 또 다른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덩치의 사내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D-급 헌터?”
“그래.”
“나랑 장난하나?”
이어 어마무시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온갖 범죄자들이 모이는 헌터들의 뒷골목.
이 암흑가에는 법과 질서 따위는 없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오로지 힘만이 정의일 뿐이었다.
그야말로 개새끼들이 미쳐 날뛰는 공간.
하여, 암흑가의 패권자라 함은 그런 개새끼들을 모조리 짓밟았다는 뜻이다.
법과 질서 혹은 규칙 따위가 아니라 오로지 힘만으로 말이다.
그리고 암흑가는 지역마다 그 패권을 지닌 조직이 달랐다.
서울 지역의 암흑가.
부산, 대구 지역의 암흑가 등.
각 지역마다 패권을 지닌 조직은 각기 달랐다.
그리고 이 조직들은 서로 간의 패권 싸움을 통해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한 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범죄 조직의 패권 싸움.
이를 국가 단위로 확장해도 똑같았다.
한국의 암흑가 패권을 지닌 범죄 조직.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등.
각 나라마다 암흑가의 패권을 지닌 조직들의 영역 싸움.
그리하여 전 세계 범죄 조직의 패권을 장악한 범죄 단체.
판데모니움(Pandemonium).
모든 국가의 안보 단체에서 척살 1순위로 손꼽히는 범죄 조직.
그렇기에 판데모니움은 범죄 조직이라 말하지 않았다.
악(惡)의 조직.
인류의 적이라 정의될 뿐이었다.
하여, 지금.
“우리 판데모니움이 우습게 보이나?”
커다란 덩치의 사내의 기세가 거칠어져만 갔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사내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단순히 D-급이 아니다.”
“D-급이면 D-급이지. 무슨 개소리지?”
“한채린이 S-등급 던전을 레이드 한 건 알고 있겠지.”
“알고 있다.”
지금도 한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데 모를 리가 있을까.
“그 일과 관련이 있는 자다.”
“무슨 뜻이지?”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 의미를 물었다.
“자세한 건 잘 모른다. 다만, 맹시우. 이 자가 한채린에게 도움을 준 것 같더군.”
“그럼 의뢰라는 건?”
“확인 절차다. 방식은 자유.”
“흐음….”
“무엇보다 VIP의 의뢰다.”
“VIP?”
“그래.”
VIP라는 말에 덩치 큰 사내가 기세를 거두었다.
뒷골목에 숨은 암흑가.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암흑가는 권력과의 연결점이 있었다.
따라서 VIP의 의뢰라 함은 높은 권력자의 뒷배라는 뜻이었다.
판데모니움이 악명 높은 범죄 조직이나 각 국가의 권력자를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들과 긴밀한 연결 고리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의뢰를 무시해서는 안 되었다.
“미안하지만 이번엔 안 되겠군.”
그러나 덩치 큰 사내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이유가 뭐지?”
“요즘 단속이 너무 심해.”
덩치 큰 사내는 빈 술잔에 술을 콸콸, 따랐다.
“시찰국의 가더들을 말하는 건가?”
“가더들이야 항상 귀찮게 굴지. 특히나 이 나라는 더욱 그렇지만, 내가 말하는 건 그런 잔챙이들이 아니야.”
“그럼?”
“이민정이 움직였다.”
덩치 큰 사내는 술이 가 득찬 술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아─! 하며 들려오는 탄성.
“이민정? 인간 백정을 말하는 건가?”
“그래. 어디서 꼬투리를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 그 때문에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판데모니움의 절단급 간부가 시찰국의 가더 따위를 신경 쓴다고?”
판데모니움의 일원들은 헌터들과는 등급을 다르게 나누었다.
정확히는 헌터 등급을 받을 수 없다고 봄이 옳았다.
범죄자가 헌터 관리국에서 정식으로 등급 판별을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여, 이들은 자체적으로 스스로를 나누었다.
그 중 간부라 불리는 핵심 인물.
그들은 총 5단계로 구분되었다.
절단, 골절, 파열, 흉터, 상처.
절단급이라 함은, 가장 하위 단계의 간부.
그 뜻은 말 그대로 절단[絶斷], (Amputation).
신체의 일부가 잘려 나가는 것을 의미했다.
판데모니움의 지배자, 붉은 그림자.
그 붉은 그림자와의 ‘일합’에서 ‘절단’ 정도의 부상을 입고 살아남을 수 있는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붉은 그림자의 강함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애초에 정체조차 불분명한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최소 13인의 영웅급이라 추정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3인의 영웅 중 한 명이 붉은 그림자에게 살해당했으니까.
하여 판데모니움의 절단이자 눈앞의 커다란 덩치의 사내, 명지광.
그는 가장 하위 단계의 간부라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아니,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어마어마한 실력자였다.
“모르는 소리 마라. 그 썅년한테 잘못 걸리면 아무리 나라도 무사하진 못해.”
하지만 이민정 앞에서는 아니었다.
인간 백정.
괜히 그러한 별명이 붙은 것이 아니니 말이다.
“무엇보다 지부장님이 새로이 한국에 부임했다. 부임 초기부터 괜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지부장이라면… 설마! 흉터급 간부?”
흉터급 간부라 함은 붉은 그림자와의 ‘일합’에서 ‘흉터’ 정도의 부상을 입고 살아남을 수 있는 실력자를 의미했다.
실로 말이 안 되는 실력자.
그렇기에 판데모니움 전체를 따져도 흉터급 이상의 간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흉터급의 간부가 이제 한국에도 있다는 건가?”
“그래. 그렇다고 어디 가서 함부로 입을 놀리진 말고.”
“허어….”
명지광은 다시 술잔에 술을 콸콸, 따랐다.
그리고 술잔을 들어 올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당분간 의뢰는 안 받으니 그렇게 알라고.”
벌컥벌컥, 크아─!
잠깐의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잠시.
“시찰국은 이쪽에서 손을 써두겠다.”
“뭐라고?”
명지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이어진 말.
“더하여 판데모니움이 한국에 자리를 잡는 데 도움을 주지. 정확히는 새로 부임한 지부장이 자리를 잡 는데 도움을 주겠다. 자네가 지부장에게 점수를 딸 수 있는 기회인 거지.”
명지광은 입을 꾹, 다물었다.
VIP의 의뢰라는 말에 높은 권력자임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찰국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 정도.
그 말은 즉.
정부 기관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자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만한 권력을 가진 인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VIP가 아니라 VVIP였군.”
명지광은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의뢰 내용은 어떻게 되지?”
“죽이지만 마라.”
“그 말은 팔 다리 정도는 잘라도 된다는 뜻?”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여긴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었다.
인간의 탈을 쓴 몬스터들이나 다름없는 존재들.
하물며 판데모니움의 절단급 간부라면야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뭐.
“알아서 하도록.”
그만큼 일 처리 하나는 확실했다.
* * *
펜리르… 아니, 흑돌이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 이후.
시우는 서아와 함께 간단한 쇼핑에 나섰다.
다름 아닌 흑돌이를 위한 물품들을 사기 위함이었다.
원래는 시우 혼자서 나오려 했었다.
하지만 서아가 꼭 같이 가고 싶다 졸랐다.
아직 밖을 돌아다니기엔 무리가 있는 서아.
하지만 시우가 제조한 탕약 덕분일까.
상태를 보니 간단한 외출 정도는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정확히는 시우가 옆에 있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그리고 시우는 애완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뭐가 필요한지 잘 몰랐다.
물론 애완동물을 처음 키우는 건 서아도 마찬가지.
그래도 시우보다는 나을 터였다.
그런데 웬걸.
“밥그릇 정도면 되지 않을까?”
어째 서아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냥 흑돌이 생각에 신나서 같이 가고 싶다고 한 것 같았다.
시우가 바라보자 서아가 슬쩍, 시선을 회피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흑돌이에 대한 사랑이 중요한 거니까!”
서아가 세상 당당한 표정으로 반박을 해 왔다.
그걸 왜 나한테 반박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시우는 그냥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런데… 예방 접종 같은 건 어떻게 하지?”
“그건 오빠가 알아서 할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예방 접종 같은 거 맞힐 생각이 없었다.
세계를 삼키는 늑대한테 뭔 놈의 예방 접종이란 말인가.
물론 현재 펜리르… 그러니까 흑돌이는 많이 약화된 상태였다.
그러니 행여 병이 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뭐.
‘내가 치료해 주면 되니까.’
화타의 신의술[神醫術](S+).
괜한 곳에 돈을 쓸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럼 밥그릇이랑 흑돌이 먹을 것만 좀 사 가자.”
“응! 저기, 사료 코너 있어.”
서아가 총총, 걸음으로 사료 코너로 달려갔다.
시우는 그런 서아를 붙잡듯 말했다.
“흑돌이는 사료 말고 다른 거 먹이자.”
흑돌이로 다시 태어났다고는 하나 그래도 세계를 삼키는 늑대다.
개 사료를 먹이기엔 좀….
“다른 거? 뭐?”
“그냥 고기 같은 거?”
“그건 너무 비싸지 않을까…?”
서아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되물어왔다.
확실히 매끼마다 고기를 주기엔 가격적인 부담이 있었다.
그래도 이왕 책임지기로 한 것.
확실하게 책임질 생각이었다.
시우는 정육점 코너로 가서 넉넉하게 고기를 구매했다.
서아랑 먹을 것까지 생각해 꽤 많은 양을 구매했다.
그렇게 돌아온 집.
와작와작.
시우는 정신을 놓아 버렸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풍경.
와작! 와그작!
흑돌이가 아주 미친 듯이 먹고 있었다.
며칠 굶기라도 한 것처럼 밥그릇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밥그릇도 뜯어먹을 기세였다.
서아도 상당히 놀랐는지 시우의 눈치를 슬쩍, 보며 말했다.
“흑돌이 어, 엄청 잘 먹는다….”
잘 먹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니, 저걸 ‘잘 먹는다.’ 라고 표현하면 안 되었다.
포식한다 혹은 집어삼킨다.
그렇게 표현해야 얼추 들어맞았다.
아니, 진짜로 저 먹는 양을 좀 보라!
이번에 사 온 고깃값이 자그마치 50만 원이었다.
그런데 그걸 다 먹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서아랑 먹으려고 했던 고기까지 죄다 집어삼켜버 렸다.
그리고 웬걸.
끼잉─.
“더 달라고?”
왈!
더 달란다.
세계를 삼키는 대신 먹이를 삼킬 심산인 모양이다.
뭐, 세계를 안 삼키는 게 어디긴 하냐만.
그 대가로 시우의 통장이 삼켜질 것만 같았다.
‘사료를 먹여야 하나?’
그래도 감당이 안 될 것 같은데?
왈!
시우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흑돌이가 활기차게 짖어 왔다.
입가에 잔뜩 부스러기를 묻힌 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네가 지금 먹은 고깃값이 얼만지는 알고 있는 거냐?
아니, 그보다 우리는 뭐 먹으라고?
시우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끼잉─.
흑돌이가 다시금 시우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흑돌이가 많이 배고팠나 봐. 하하….”
서아가 그런 흑돌이를 감싸고 돌았다.
그런 서아의 말에 흑돌이가 다시금 활기찬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냥 함께 있다는 것이 좋은 걸까.
마냥 해맑은 표정의 흑돌이였다.
“흑돌아. 많이 먹으면 살찌니까. 좀 이따 저녁으로 먹고, 지금은 개껌 먹자!”
왈!
흑돌이가 알겠다는 듯 소리쳤다.
그런데 잠깐.
저녁으로 저 많은 양을 또 먹는다고?
그런 시우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흑돌이는 서아가 주는 개껌에 헐레벌떡 달려들었다.
그리고 꽈드득─!
개껌을 와그작, 씹어 먹어 버렸다?
“에…?”
서아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벙쪄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개껌은 원래 씹어 먹으라고 주는 것이 아니니까.
주된 목적은 이갈이 용도.
부 목적은 이렇듯 심심한 입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한마디로 그냥 물어뜯기만 하라는 용도였다.
와그작─!
그런데 그걸 가루로 만들어 씹어먹고 있으니 원.
“에에…?”
서아의 표정이 고장 나 버렸다.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가루가 되어버린 개껌을 바라봤다.
그러다 나름의 결론을 내린 것일까.
서아가 시우를 향해 고개를 홱!
“개껌이 불량인가 봐!”
사기 당했다는 억울한 표정으로 시우에게 소리쳤다.
시우는 그만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고 나니.
‘집이 좁네.’
왜인지 집이 좁게만 느껴졌다.
가뜩이나 좁은 집이긴 했었다.
그런데 뭐랄까.
‘몸집은 쪼그마한 것이 집 안을 가득 채우는 것만 같네.’
흑돌이가 집 안의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서아도 굉장히 좋아하고 말이다.
그런 의미로.
‘새집을 하나 살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집값이 비싸기는 했다만….
‘한채린한테 받을 돈이 있으니까.’
S-등급 던전을 도와주는 대가로 받을 100억.
진짜…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찔했다.
4인 가족 기준, 277년을 숨만 쉬며 살아갈 수 있는 돈이지 않은가!
그런데 음.
현재 멤버십 채널 유지 비용으로 배달 11억씩 지출되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리 많은 금액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1년도 못가 사라질 금액이니 말이다.
더하여 지금 흑돌이의 식비까지.
‘100억이 많지가 않아…?’
이게 정말 맞는 건가?
시우는 그만 정신을 놓아 버렸다.
어쨌거나 꾸준히 그것도 아주 열심히 벌어야만 했다.
그런 의미로.
‘한채린 연금에 가입해야겠다.’
다름 아닌 한채린에게 해 주기로 한 과외.
얼마를 받을지 아직 정하진 않았다.
정확히는 다시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
하여 지금.
“서아야. 오빠, 잠깐 나갔다 올게.”
“응. 오빠 조심히 다녀와.”
왈!
시우는 서아와 흑돌이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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