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SH헌터 길드 사옥.
그 최하층에 위치한 연무장.
“아가씨께서 금방 내려오신다고 합니다.”
한채린의 비서, 김민재의 말에 시우가 갓튜브의 영상을 일시 정지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자 김민재가 한껏 미안한 표정으로 말해 왔다.
“오늘 아가씨의 검을 점검하는 날인지라….”
“괜찮습니다.”
시우는 살짝 손사래를 쳐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찾아온 건 다름 아닌 시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검을 점검한다는 건, 설마 마스터 오렐리안이 여기에 있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검의 이상이 없나 점검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기사, 오렐리안이 지금 한국에 있을 리가.
만일 그랬다면 시우가 모를 리가 없었다.
뉴스에서부터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떨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마스터 오렐리안이 제작한 명검이라고 한들, 꾸준한 관리는 반드시 필요했다.
“항상 푹신푹신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매달 한 번씩 점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예?”
시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푹신푹신한 상태?
마스터 오렐리안이 만든 검이 푹신푹신하다는 뜻인가?
이 뭔 개소리─.
“신을 찔러도 모자람이 없는 상태를 말씀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신을 찌르면 푹신푹신.”
진짜 저게 뭔 개소리야?
시우는 정신이 출타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출타한 정신 사이.
김민재가 아주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참을 수 없는 대견함이 김민재의 입가로 씰룩거렸다.
지난 번에도 지금도 그렇고.
저 말 같지도 않은 개그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했다.
“유, 유쾌하시네요.”
“별 말씀을.”
김민재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그런 김민재의 반응 때문일까.
돌아온 정신이 잠깐 놓고 온 것이 있다며 다시 출타해 버렸다.
다시 멍해진 정신.
아, 설마.
한채린이 로봇처럼 감정이 없는 이유가 혹시 이런 개그 때문인가?
그런 생각마저 잠깐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음….
생각해보니 방금 그거.
갓튜브의 인물들이 들으면 반응이 볼 만하겠는데?
신을 찌르면 푹신푹신.
나중에 한 번 써먹을─.
…에라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시우는 황급히 고개를 털어 버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한쪽에서 맑디 맑은 미성이 들려왔다.
누군지 안 봐도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채린이 시우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째.
며칠 못 본 사이 더 예뻐진 것 같았다.
시우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아뇨. 생각보다 얼마 안 기다렸습니다.”
솔직히 많이 기다리긴 했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우리 돈 많은 수강생이 바쁘다는데 기다려야지.
“그럼 전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 부르십시오.”
김민재가 그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나갔다.
김민재가 밖으로 나가자 한채린이 다시 말해 왔다.
“일단 약속드린 계약부터 해결할게요.”
한채린은 곧장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처음엔 뭔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막상 익숙해지니 시간도 안 끌리고 좋았다.
“계약금을 제하고 90억. 맞죠?”
S-등급 던전을 도와주는 대가로 약속한 돈은 100억.
계약금으로 10억을 미리 받았으니 90억이 맞았다.
“확인해 보시면 입금되어있을 거예요.”
“예?”
시우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90억이면 적지 않은 돈이었다.
적기는 염병할 무슨.
어마어마하다 못해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그만한 돈이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르긴 몰라도 여러 복잡한 행정 절차가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계좌 잔고] - 10,614,534,500₩
확실히 입금되어 있었다.
하기사 SH그룹이 90억에 쩔쩔맬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통장에 찍혀있는 금액 106억.
“아…!”
시우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106억이라니! 106억이라니!
4인 가족이 277년을 숨만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라니!
“아아…!”
절로 떨려 오는 몸부림.
곧 접신을 하려던 찰나.
“그리고 수강료는….”
들려오는 한채린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106억이 꽂혀있지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멤버십 가입 유지만으로도 1년을 못 버티는 금액.
가뜩이나 흑돌이 식량까지 생각하면 더 벌어야 했다.
시우는 눈을 반짝이며 한채린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어질 한채린의 말.
“실례가 안 된다면 직접 보고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시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시우도 얼마를 받아야 할지 애매했으니 말이다.
너무 과하게 부르자니 좀 그렇고.
싸게 부르자니 그것도 좀 그렇고.
무엇보다 한채린이 얼마까지 낼 생각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니 차라리 한채린에게 결정하게 하는 편이 좋았다.
정확히는 한채린 쪽에서 매달리게 하는 편이 좋았다.
생각을 마쳤으면 곧장 행동에 나서야 하는 법.
괜한 사족을 붙이는 건 역시나 취향이 아니었으니까.
“수련용 검 한 자루만 빌릴 수 있을까요?”
시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한채린이 건네는 검을 받아들고는 연무장 중앙에 가 서 보였다.
운동장보다 넓은 크기의 연무장.
“제가 지금부터 보여드릴 검술은 총 세 가지입니다.”
“세 가지요?”
그러자 한채린이 살짝, 눈을 치켜떠 보였다.
아무래도 세 가지나 보여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싶었다.
“채린 씨에게 어울릴 법한 것을 선별하긴 했습니다만, 하나를 고르기가 어려워서요. 그러니 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시우는 크게 심호흡을 해 보였다.
검을 살며시 말아 쥐며, 갓튜브 영상을 떠올렸다.
‘멤버십 가입을 안 하긴 했지만.’
그렇기에 해당 개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원래는 멤버십 가입을 해서 보여주려 했지만 그랬다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다.
멤버십 가입 비용이 고정되어 있다면 모를까.
가입하는 채널이 늘어날수록 비용이 늘어나는 터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제대로 보여 줄 수 있을까.
시우는 솔직히 걱정이 조금 앞섰다.
하지만.
“먼저 보여드릴 검술의 이름은 파천신검입니다.”
시우는 천천히 검을 움직였다.
* * *
채린은 솔직히 반신반의한 심정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50대 50은 아니었다.
30%는 믿고, 70%는 의심하고 있었다.
우스운 표현이나 실제로 채린은 그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급의 검술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걸 시우가 가르쳐 준다?
그것도 D-급의 헌터가?
개소리 말라며 무시할 법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채린이 30%나 믿는 이유는 단순했다.
시우가 보여 준 놀라운 힘.
아니, 놀랍다 못해 실로 경이로웠던 힘.
시우는 쉬이 사용할 수 없는 힘이라 했지만 그래도 경이로웠다.
그 정도의 힘을 사용하는 자라면 혹시?
무(無)개성의 각성자가 그러한 힘을 사용하려면 그만큼 뛰어난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역시나 의심 쪽이 더 강했다.
가장 큰 이유는 시우가 사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무투술(武鬪術).
검술과는 전혀 다른 맥락의 무공이었으니까.
“제가 지금부터 보여드릴 검술은 총 세 가지입니다.”
“세 가지요?”
심지어 세 가지를 알고 있다는 것에서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한 가지를 알고 있어도 의심스럽거늘.
세 가지는 말이 안 되었으니 말이다.
채린의 믿음은 10%미만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먼저 보여드릴 검술의 이름은 파천신검입니다.”
시우가 천천히 검을 움직임에.
사아아아─!
알 수 없는 기세가 시우의 전신으로 쏟아져나왔다.
동시에 사박, 시우가 지긋이 발걸음을 내리 밟았다.
쐐애애액!
시우의 검이 휘둘러졌다.
아니, 휘둘러졌다고 느껴질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분명 시우의 검은 허공에 뻗어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검의 궤적은 보이지 않았다.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오직 한채린의 개성 중 하나인 육감[六感](S).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인지할 수 있게 해 주는 여섯 번째 감각.
그 감각만이 ‘시우의 검이 휘둘러졌다.’ 라고 인지할 뿐이었다.
“......!”
일순간 채린은 소름이 우수수, 돋아났다.
저도 모르게 입이 살짝, 벌어졌다.
다시 사박, 하는 발걸음이 들려오며.
시우의 검이 그때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시우는 천천히 검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아주 느릿하게 검이 휘둘러진다.
눈에 선히 보일 정도로 느리다.
아까와는 달리 한 발짝만 움직이면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차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전신을 내리누르는 듯한 묵직한 중압감.
숨통이 조여오는 듯한 압박감.
그것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한 힘이요, 천지(天地)에 들어찬 기운이라.
그것은 그 무엇도 맞설 수 있는 기상일지니.
만인지적(萬人之敵)의 패왕(覇王), 항우.
그의 파천신검(破天神劍)은 하늘을 깨뜨리는 검이다.
꽈아아앙─!
터져 나오는 기세가, 채린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다음에 보여드릴 검은 용살검법입니다.”
이어진 시우의 말과 함께 뚝, 검의 궤도가 멈춰섰다.
뒤이어 시우의 검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마치 법칙을 거스르는 것처럼.
또한 검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휘어지고 꺾여진다.
그리고 다시 뚝.
시우의 검이 멈추며 시우 또한 움직임을 멈추었다.
검을 길게 늘어뜨린 채, 허공을 바라본다.
본디 무공(武功)이라 함은.
스스로의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쓰러뜨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무공의 시작이다.
그렇기에 본디부터 강한 자들은 무공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태생부터가 강함을 타고 난 이들은 약함을 극복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몬스터들이 무공을 배우지 않아도 강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하여 만물 위에 군림하는 최강의 생명체.
지상 최강의 포식자를 넘어 범접할 수 없는 최강자.
드래곤(Dragon).
드래곤은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존재다.
태생부터 ‘최강’이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는 존재.
격(格)의 차이.
아무리 노력해도, 발악해도.
만물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에게 닿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
콰아아아아아─!
그 드래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만물 위에 군림하는 절대자가 무릎을 꿇는다.
한낱 인간 따위에게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최초의 용살자(龍殺子), 지크프리트(Siegfried).
그의 용살검법(龍殺劍法)은 격(格)의 차이를 뛰어넘는 검이다.
“어, 어떻게….”
그렇기에 감히 이해할 수가 없다.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가 않는다.
저건… 저건….
“마지막으로 보여드릴 검은 태극검입니다.”
다시금 변화하는 시우의 기세.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곳엔 무(無)의 세계가 펼쳐져있었다.
분명 실체가 없는 환상이다.
그러나 채린은 분명 그렇게 느꼈다.
펼쳐진 무(無)의 세계.
그 안으로 우주 안에 있는 온갖 것들의 실체가 쏟아져 내린다.
해, 달, 비, 바람, 안개, 눈.
봄, 여름, 가을, 겨울.
강, 산, 돌, 나무, 풀, 짐승, 사람.
우주에 존재하는 삼라만상(森羅萬象).
허공법계의 만휘군상(萬彙群象).
그 앞에는 시작도, 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온 바 또한 궁구할 수가 없다.
태극(太極)은 곧 무극(武極)이라.
그 담연하여 허(虛)하고 정함이 기의 체(體)이니.
무당파의 개파시조, 장삼봉.
그의 태극검(太極劍)은 우주의 근원을 담은 검이다.
“이상. 제가 채린 씨께 가르쳐드릴 수 있는 세 가지 검술입니다.”
바람이 불고.
시야가 열린다.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드셨습니까?”
채린은 저 물음에 차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정확히는 ‘감히’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채린이 각성한 개성, 검재[劍材](S).
무려 S등급에 달하는 검에 대한 재능.
천재들조차 뛰어넘는 그 재능이 말하고 있었다.
시우가 보여 준 세 가지의 검술.
그건 감히, 내가 닿을 수 없는 무(武)라고.
“......!!!”
경악으로 뜨여진 두 눈.
벌어진 채린의 작은 입은 닫힐 생각을 하지 못했다.
* * *
SH헌터 길드 사옥 앞.
“아직도 안 나왔어?”
“나오는 것을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명지광이 혀를 한 번 차 보였다.
맹시우가 SH헌터 길드에 들어가 있으면 뭘 어찌할 수가 없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SH그룹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설마 눈치를 챈 건가?”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명지광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런 것 같았으니까.
그냥 아다리가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대체 안에서 뭘 하는 거야? 설마 놈이 한채린에게 줬다던 도움이 그 도움이었던 건가?”
그러면서 명지광이 허리를 한 번 튕겨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혀를 쯧, 차 보였다.
“겉보기로는 맹해 보이는데. 침대에선 좀 다른가 보네.”
“계속 기다릴까요.”
수하의 말에 명지광은 답을 해 보이지 않았다.
말마따나 이대로 놈이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면 되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뭐랄까.
지루하기도 했거니와 놈만 재미를 본다는 사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한채린과 말이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명지광은 조금 더 재미난 생각을 떠올렸다.
“저 녀석. 여동생이 있다고 했었나?”
“그렇게 들었습니다.”
“가서 잡아 와.”
명지광의 말에 수하가 잠시 멈칫, 거렸다.
“그러면 문제가 커질 수 있습니다. 행여나 시찰국의 가더들에게 이목이 끌려 이민정이 나서기라도 하면….”
“걱정 마. 이번 의뢰의 뒷배가 알아서 막아줄 테니까.”
명지광은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살인, 고문, 강간, 납치.
그 어떤 범죄 행위도 서슴지 않고 행하는 짐승.
명지광은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범죄자였다.
“놈의 여동생을 몇 번 귀여워해 주다 보면 눈을 까뒤집으며 알아서 찾아오겠지. 난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가서 잡아 와.”
“알겠습니다.”
명지광은 그렇게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멈칫.
“아, 참.”
명지광이 슬쩍, 고개를 돌려 수하에게 말했다.
“너 지난 번처럼 기미상궁이랍시고 나 먼저 맛보면 죽여 버린다?”
“......네.”
“새끼.”
명지광은 낄낄거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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