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62화 (62/250)

62화.

어둠 사이를 비집고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딘가 맹한 분위기의 사내.

그러나 바라보는 눈빛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암흑가의 범죄자들을 흔히 사람의 탈을 쓴 짐승들이라 말한다.

김민수는 그 말에 적극 동의하는 바였다.

여기 모인 놈들은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놈들이었으니까.

무엇보다 김민수, 본인부터가 그러했으니까.

윤리와 도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야생의 짐승들.

그런 짐승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다.

하여 지금 눈앞에 보이는 시우.

사람처럼 보이나,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짐승도 아니었다.

시우에게선 짐승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으니까.

“뭐 하는 놈이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터벅, 발걸음을 내딛을 뿐이었다.

“뭐 하는 놈이냐 물었─.”

꽈앙!

앞선 시야가 폭발하며 사내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으로 경종이 울려 왔다.

본능적으로 바닥을 굴렀다.

그와 동시에 꽈꽝─!

방금 전까지 김민수가 서 있던 자리가 폭발했다.

자욱히 인 먼지구름.

그 사이로 사내가 터벅, 걸어 나왔다.

“이 무슨….”

김민수는 두 눈을 크게 떠 보였다.

괴물.

머릿속으로 하나의 개념이 스쳐 지나갔다.

짐승은 사람을 사냥하며 잡아먹는다.

그러나 괴물은 아니었다.

놈들은 짐승들을 사냥하며 살아간다.

괴물 앞에서 짐승은 한낱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명지광. 불러 와.”

사내가 그렇게 말하며 성큼, 다가갔다.

흉악한 괴물이 먹잇감을 탐하며 다가온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이성을 마비시켜 왔다.

하지만 김민수는 고개를 털어내었다.

여긴 짐승들이 모여 있는 소굴.

아무리 괴물이라도, 이 모든 짐승들을 감당할 수는 없다.

“뭐 하고 있어! 저 새끼 죽여!”

김민수가 소리치자, 안쪽에서 무수한 짐승들이 튀어나왔다.

* * *

시우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좌중을 훑었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대충 눈에 잡히는 놈들만 수십 명이었다.

안쪽이 분주한 것을 보니 더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어림잡아 100명.

심지어 저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모두가 각성을 한 각성자들이자, 창의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

그리고 앞선 범죄자들과도 달랐다.

저들 모두는 판데모니움의 일원들이다.

그야말로 사람의 탈을 쓴 몬스터와 다를 바 없었다.

하물며 몬스터들보다 까다로웠다.

그래도 이성이 있는 존재였으니까.

생각을 하며 싸우는 이들이었으니까.

그런 이들이 무려 100명이다.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다.

아니, 솔직히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망설임이 인다.

이렇게까지 찾아왔을 필요가 있었을까.

너무 무모한 일이 아닌 걸까.

시찰국에 신고를 해야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들에게 맡겨야 했음이 옳은 선택이 아니었던 걸까.

수많은 상념이 휘몰아치며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시우는 단번에 털어 버렸다.

아마 시우를 향한 위협이었다면 그렇게 했을 터였다.

시우도 그 정도로 넘어갔을 터였다.

그러나 놈들은 서아를 건드렸다.

만일 그냥 그대로 넘어간다면.

여기서 우습게 보인다면.

시찰국에 맡기는 나약함을 보여버린다면.

놈들은 언제고 이 짓거리를 반복할 것이다.

서아를 또 다시 노릴 것이다.

놈들은 이성 한 켠에 자리한 윤리와 도덕들이 갈가리 찢겨진 짐승들.

그러니 짓밟아야 한다.

이성이 아닌 본능에 새겨야 한다.

시우라는 이름만 들어도 공포에 질리게끔.

절대로 시우를 건드려서는 안 됨을 본능 깊숙한 곳에 각인시켜야 한다.

그것이 살(殺).

시우의 손을 더럽히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군자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허나, 군자는 마냥 어진 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이에 대하여 선왕이 공자께 묻기를.

[과거, 탕(湯)은 걸(傑)을 몰아내어 왕이 되었고. 무왕(武王)은 주(紂)를 쳐내고 왕이 되었으니. 신하 된 자가 제 임금을 시해한 것이 어찌 군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공자께서 답하시길.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한다.]

[잔적(殘賊)한 이는 한낱 필부일 뿐.]

[탕과 무왕이 필부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군자란, 주변의 사람을 아끼고 챙기는 사람다움을 지닌 자.

결단코.

사람 새끼가 아닌 자들을 아끼고 챙기는 자가 아니었다.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죽여!”

판데모니움의 일원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시우는 다가오는 놈들을 향해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투웅─!

가장 앞선 놈과 주먹이 충돌하며, 충격이 한박자 늦게 터져 나온다.

시우를 향해 밀려오던 파도가 일시에 뒤로 쭈욱, 밀려난다.

단 한 번의 주먹질로 백여 명의 기세를 압도한 것이다.

“평범한 놈이 아니다! 무작정 달려들지 마!”

김민수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 말에 놈들이 섣불리 달려들지 않았다.

한 번의 격돌이었으나 시우의 수준을 파악한 것이리라.

이윽고 놈들이 시우를 중심으로 둥글게 에워싸기 시작했다.

“덮쳐!”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놈들이 일시에 달려들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기세가 느껴진다.

벗어날 공간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다수와의 전투라고 한들, 한 번에 덤벼들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었다.

평균적으로 셋.

많아야 다섯.

그 이상으로 덤벼드는 건 무의미하다.

그러면 서로 간의 몸이 꼬여, 되려 1:1로 덤비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이놈들은 아니었다.

수십 명의 인원이 대형을 갖춰 달려드는 형태.

그러면서도 꼬이지 않고 서로의 합을 맞추는 진형.

진법(陳法).

물론 놈들이 진법이라는 것을 알고 쓰는 것은 아니다.

진법이라 말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흉내 정도는 내고 있었다.

과연 몬스터보다는 사람을 상대하던 범죄자 놈들이라는 걸까.

이놈들은 다굴 치는 방법을 알았다.

그렇기에 이건 위험하다.

하지만.

[진법 파훼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진법의 대가라 불리는 제갈공명.

그의 지략 앞에서 파훼되지 못 하는 진법은 없다.

[생문(生門)과 사문(死門).]

[그 둘을 구별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사고가 맹렬히 회전하며, 머리가 뜨거워진다.

제갈공명의 영상에서 보았던 지식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펼쳐졌다 모여지길 반복한다.

그리하여 통찰력(S+).

기이한 힘이 마주한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다.

꽈아앙─!

대형이 일시에 무너지며, 한쪽 공간이 뻥 뚫렸다.

뚜렷하게 보이는 생문(生門).

시우는 그대로 몸을 내던졌다.

“이 새끼가!”

“잡아! 반드시 잡아!”

시우를 놓치자 놈들이 악을 쓰며 소리쳤다.

무너진 대형을 황급히 정비하고, 다시금 시우를 압박해 왔다.

아직 진법에서 완전히 빠져나간 것은 아니다.

[진법의 종류는 다양하나, 결국 하나의 이치로 귀결됩니다.]

과거, 진법의 대가 불리는 이들은 많았다.

진법을 창시한 이들 또한 많았다.

그러나 제갈공명을 뛰어넘는 자는 없었다.

모든 진법의 뿌리라 부를 수 있는 제갈공명의 팔진법(八陳法).

세상의 모든 진법은 하나의 이치로 귀결된다.

[천충(天衝) 16진은 양쪽 끝에 있습니다. 지축(地軸) 12진은 가운데. 천전충(天前衝) 4진은 오른쪽. 후충(後衝) 4진은….]

[천충(天衝)은 전후충(前後衝)과 아울러 24진으로 풍 8진과 합하여 천(天)에 붙여 32양(陽)이라 하니, 양(陽)을 뒤쳐지게 하여 왼쪽을 뒤로 삼으면….]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다시 떠올려봄에도 역시나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렴풋이 보인다.

지금 사방에서 달려드는 놈들 사이로, 자그마한 틈이 엿보인다.

활로는 아니다.

함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제갈공명의 통찰력(S+)은, 저것을 커다란 생문(生門)이라 말한다.

꽈아아앙─!

“마, 말도 안 되는!!”

김민수가 경악으로 소리쳤다.

시우가 수준이 낮지 않음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꽈아아아앙─!!

백여 명의 압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모습.

아니, 굴하지 않기는 커녕 유린하고 있었다.

기가 막히게 빈틈을 찾아 빠져나가고, 다시 돌아와 진형을 붕괴시킨다.

하물며 여기 모인 한명 한명이 모두 판데모니움의 일원들이다.

평범한 암흑가의 일원과는 급이 다르다.

말이… 말이 안 된다.

저건 도무지…!

“이, 이게 대체…!”

가시질 않는 경악.

시우는 그 경악 사이를 종횡무진 누볐다.

눈으로는 끊임없이 생문(生門)과 사문(死門)을 찾았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으로 또 다른 기억을 되짚었다.

[사람의 신체에는 다양한 급소가 있소이다.]

[단전의 혈 자리로는 임맥(任脈), 원혈(原穴), 발앙(脖胦), 하황(下肓)....]

화타의 신의술[神醫術](S+).

인체학의 지식들이 스며들며 달려드는 놈의 급소를 노린다.

투웅─!

가벼운 충돌에 한 놈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많은 힘을 담지는 않았으나 혈(穴)을 짚은 일격이다.

내장이 들끓는 충격에 두 번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시우는 내지른 주먹을 거두었다.

그리고 다시금 생문(生門)을 찾아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생문(生門)이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사문(死門)으로 가로막혀 활로가 보이지 않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

“드디어 잡았네.”

사면초가(四面楚歌).

해하결전에서 항우가 이러한 심정이었을까.

시우는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어디에도 살아남을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우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암전된 시야.

그 사이로 헤라클레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자라도 수백 명이 달려든다면 힘들긴 하지.]

[다굴 앞에 장사 없다고. 잔챙이들도 뭉치면 까다로우니까. 물론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지만.]

[어쨌든. 싸우다 보면 사방이 가로막혀 도망칠 곳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어.]

[그럼 그땐 어떻게 하냐고?]

[힘으로 뚫어.]

꽈꽈꽈꽈꽝!!!

터져 나온 폭발에 김민수가 크게 당황하며 물러났다.

김민수뿐만 아니라 다른 판데모니움의 일원들도 크게 놀라 보였다.

“이, 이게 무슨….”

다 잡은 놈이었다.

모든 것이 끝난 싸움이었다.

그 어디에도 도망칠 곳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꽈아아아앙─!!!

내질러진 시우의 주먹에 대형이 크게 일그러졌다.

그 힘 앞에서 그 어떠한 것도 의미가 없었다.

실로 압도적인 힘.

“마, 말도… 안돼….”

김민수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판데모니움의 일원들 또한 공포에 질리며 물러섰다.

시우는 거침없이 몸을 움직였다.

시우가 한 번 몸을 움직일 때마다 수명의 일원들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역시나 그것에 있어 별 다른 과정이 필요치 않았다.

그저 툭, 하는 가벼운 내지름.

“크학!”

“커허헉!”

그 내지름에 판데모니움의 일원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단 한 번의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었다.

양 떼 사이를 누비는 한 마리의 사자.

더 이상의 숫자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

“괴, 괴물….”

소름끼치는 공포가 드리운다.

본능마저 잠식되는 공포에 대항할 투지조차 일지 않는다.

그리고 시우는 멈추지 않았다.

꽈앙─! 뻐어억─!

전의를 잃은 짐승들을 붙잡아 짓밟았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그로써 시우라는 존재를 두 눈에 새겼다.

두려움과 공포를 본능 깊숙한 곳에 각인시켰다.

[그렇게 한 놈, 두 놈.]

[차례차례 쓰러뜨리다 보면 있지.]

“웬 소란이냐?”

[마지막에 제일 강한 놈이 나올 거야.]

[흔히 말하는 대빵이지.]

“지광 형님!”

“민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 저 새끼는 또 뭐고?”

“그, 그게…!”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대빵 놈들은 항상 마지막에 나오더라고.]

일순간 시우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흠칫!

명지광이 크게 몸을 떨어 보였다.

뒤쪽으로 느껴지는 끔찍한 살기(殺氣).

명지광은 황급히 뒤를 바라보았다.

바라본 그곳엔, 어느샌가 시우가 다가와 있었다.

[그 놈은 있잖아.]

아무런 표정도, 아무런 감정도.

그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

[죽여.]

뻐어어어어억─!!!

명지광의 얼굴이 기이하게 꺾이며, 날아가 벽에 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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