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69화 (69/250)

69화.

SH헌터 길드 사옥.

그 최하층에 위치한 연무장.

“아가씨께서 곧 내려오신다고 합니다.”

한채린의 개인 비서, 김민재의 말에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끄러미 김민재를 바라봤다.

그러나 김민재는 별 다른 말이 없었다.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시우는 멋쩍게 말을 흐렸다.

그러면서도 슬쩍, 김민재를 살폈다.

하지만 김민재는 역시나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가씨께서 금방 오신다고 하니, 그럼 전 이만 나가 있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그대로 나가 버릴 뿐이었다.

그런 김민재의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왜인지 서운한 기색이 들었다.

“오늘은 별 말이 없네.”

그 왜. 시덥잖은 개그 말이다.

들을 때는 뭔 개소린가 싶지만서도 막상 없으니 꽤나 서운했다.

이런 걸 저며든다, 라고 하는 건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때.

김민재가 순간 당황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좌우로 휙휙, 돌리며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었지… 이거, 왕이 오른쪽에도 있고, 왼쪽에도 있었네.”

김민재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딴에는 혼잣말로 중얼거린 것 같았다.

하지만 괴력[怪力](SS)으로 단련된 감각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왕이 오른쪽에도 있고, 왼쪽에도 있다니?

시우가 그 말의 의미를 떠올리는 것도 잠시.

“우왕좌왕해 버렸구만.”

김민재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계단 쪽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

저런 건 따로 공부라도 하는 걸까?

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기다리셨죠.”

맑디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역시나 한채린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얘는 진짜.

어떻게 날이 갈수록 예뻐지는 것 같네.

아니, 그건 그렇고.

“어떻게 거기서 오십니까?”

“......?”

갑작스러운 시우의 물음에 한채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우는 같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채린에게 물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거 아니었습니까?”

한채린이 걸어 나온 곳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

한마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방금 김민재가 엘리베이터는 고장 났다고….

“아뇨.”

한채린이 무슨 소리를 하냐며 답을 해 보였다.

시우는 순간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방금 김민재가 한 말은…?

아.

설마 빌드업을 짠 거였단 말인가?!

“......”

시우는 잠시 어이가 승천해 버렸다.

“무슨 일 있으셨나요?”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금방 고개를 털어내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이윽고 마주 선 둘.

한채린이 입을 열었다.

“수강료는 어느 정도가 될까요?”

역시나 사족 따위는 없었다.

앞뒤 다 자르고 거진 몸통마저 도려내듯 치고 들어오는 한채린이었다.

쓸데없는 이야기가 없어서 좋긴 했다만.

가끔은 이게 대화인지 뭔지 싶었다.

시우는 잠시 생각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강의는 일주일에 두 번을 기본으로 하려 합니다. 그리고 수강료는….”

잠깐의 고민.

시우는 슬쩍, 한채린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달에 100억…이면 어떨까 싶은데.”

“좋아요.”

“네?”

시우는 뭔가 싶었다.

진짜 뭔가 싶었다.

아니, 대답이 왜 이렇게 빠르단 말인가.

적어도 ‘100억이요?’ 라든가.

음…. 하며 침음을 내뱉든가.

그 정도의 고민은 해 봐야 하지 않은가.

100억은 돈도 아니라 이거야?

뭐, SH그룹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씨, 이럴 거면 눈 딱 감고 더 부를 걸 그랬나.’

시우는 속으로 백번은 넘게 후회했다.

지금이라도 ‘100억… 보다 많은 200억은 어떻습니까?’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공자께서도 말씀하시길.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고.

내뱉어진 말은 주워 삼킬 수 없다.

그렇게 속으로 후회란 후회는 죄다 하고 있던 그때.

“제가 말씀드리려는 금액과 딱 맞아떨어지네요.”

한채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해 왔다.

“할아버지께서 그 이상으로 허락해 주시지 않으셨거든요.”

하긴, 사실 말이 100억이지 .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적은 돈은 개뿔이 무슨.

일반인들은 평생토록 꿈도 꾸지 못하는 돈이었다.

돈 좀 번다하는 헌터들도 만지지 못하는 돈이었다.

SH그룹이라도 돈으로 생각하는 수준의 금액.

“아무래도 매달 들어가는 예산이다 보니.”

하물며 그것이 매달이라면야.

정신 나간 금액이라 할 수 있었다.

1년이면 무려 1,200억이지 않은가.

SH그룹이라도 그 정도면 큰돈이었다.

‘얼추 계산을 때린 금액이긴 했다만.’

과연 제갈공명의 통찰력(S+)이라는 걸까.

협상의 맥시멈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럼 100억으로 하죠.”

이로써 시우는 한채린 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보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채린 씨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만.”

“부탁이요?”

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집을 새로 지을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복잡한 행정 절차가 있어서 말입니다.”

“시우 씨가 직접 집을 지으신다고요?”

“네.”

한채린이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을 직접 짓는다는 게 워낙 뜬금 없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

한채린이 뭔가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시우가 서팔광에 못지 않은 장인이라는 것을 떠올린 것 같았다.

그런데 이해가 빨라도 너무 빠른 거 아닌가?

“한번 알아볼게요.”

한채린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한채린.

법 위에 군림하는 오너 일가의 핏줄.

자랑스러운 시우의 제자였다.

“그럼 이제 수업에 들어가도록 하죠.”

시우의 말에 한채린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검을 뽑아 들려던 찰나.

“아뇨. 검을 뽑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우가 한채린을 가로막았다.

한채린이 눈을 깜빡이며 시우를 바라봤다.

시우는 그런 한채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채린 씨께 가르쳐드릴 건 검술이 아닙니다.”

* * *

SH그룹 사옥.

SH그룹의 회장, 한태산의 막내딸이자 한채린의 고모 되는 이.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우리 조카가 나를 찾아오고.”

한민아가 놀란 눈을 떠 보였다.

웨이브 진 단발의 머리가 찰랑거리며 우아한 세련미가 흘러나왔다.

한민아는 가만히 한채린을 바라봤다.

할 이야기가 있다며 찾아온 한채린.

그런데 한채린이 이랬던 적이 있었던가?

지금 당장 생각나는 기억은 없었다.

“오랜만에 뵈어요. 한민아 이사님.”

“오랜만이야, 조카. 이번에 정말 고생 많았어. 덕분에 회사도 안정을 찾았지 뭐야.”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회사가 안정을 찾은 건 이사님이 애써 주신 덕분이죠.”

“그 성격은 여전하네. 그런데 그 이사님이라는 말. 언제까지 그럴 거니?”

그러자 한채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한 것 같았다.

한민아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난 네 아빠의 여동생이란다. 고모라는 정겨운 우리 말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

한채린이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였다.

그리고 잠시.

“오늘은 이사님을 찾아온 것이니까요.”

“어련하겠니.”

한민아는 고개를 살며시 저어보였다.

사실 처음부터 저런 것은 아니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던 어린 시절.

채린은 애교도 많고, 정도 많았다.

저 예쁘디 예쁜 외모만큼이나 정말로 사랑스러운 조카였다.

‘오빠가 이 어린 것을 두고 그렇게 가 버렸으니.’

하지만 채린의 부모가 세상을 떠나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홀로 남겨진 어린 한채린.

부모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야생에 홀로 내던져졌다.

재벌가의 핏줄이라는 건 의미가 없었다.

되려 재벌가의 핏줄이라는 것이 더욱 혹독하게 만들었다.

재벌가에게 가족이라는 건 없었으니까.

같은 핏줄이라는 건, 곧 경쟁자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한채린은 어린 시절부터 갖은 공격을 받아왔다.

보다 못한 한채린의 할아버지, 한태산이 나섰지만 때는 늦었다.

채린의 감정은 사라지고, 웃음은 지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지.’

한민아는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민아는 한태산의 막내딸.

다른 형제들에 비해 그 나이가 젊었다.

그렇기에 한채린보다 많은 공격을 받아왔다.

한채린보다 윗 서열인 한민아는 그들에게 더한 경쟁자였으니까.

오빠라는 이들은 한민아를 없애 버리려고자 갖은 수작을 걸어왔다.

그럼에도 한민아가 이렇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

바로 한채린의 아버지이자, 한민아의 오빠 덕분이었다.

그래, 오빠.

4남 1녀 중 그는 한민아가 유일하게 오빠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채린은 그런 오빠의 하나뿐인 딸.

비록 채린이 어렸을 때는 한민아가 많은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그땐 한민아 스스로의 앞가림도 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도움을 줄 여력이 충분히 되었다.

그런 의미로.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한 거야?”

한민아가 물었고.

한채린이 답을 해 보였다.

“집 한 채를 건설하고 싶어서요.”

“...응?”

한민아는 순간 뭔가 싶었다.

일순간 멍해지는 정신.

한채린이 재차 입을 열었다.

“SH건설의 이름을 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

진짜 뭔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물론 한민아가 담당하는 계열사 중에 SH건설이 있었다.

그 때문에 처음에 말들이 많았다.

실무도 못 해 본 자가 뭘 알겠냐며 말이다.

건설과 같은 일은 특히나 그런 경향이 강했다.

그러니 백화점이나 호텔.

여자는 그런 거나 맡으라며 비아냥 거렸다.

하지만 한민아는 능력과 실력으로 보여주었다.

백 가지 말이 아닌, 한 가지 행동으로 증명했다.

해서 지금은 아무도 한민아가 SH건설을 담당하는 것에 이견을 제기하는 자가 없었다.

어쨌든 SH건설은 한민아가 관리하는 계열사 중 하나였다.

“별장이라도 지으려고?”

“아니요.”

“그럼?”

“집 한 채를 짓고 싶어서요.”

“...아?”

한민아의 표정이 의문으로 가득 차올랐다.

저게 대체 무슨 의미인 걸까.

아, 설마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불편한 걸까?

그렇다면야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SH건설, 박 사장님께 말해 둘게. 하청 없이 바로 착공하면 금방 지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웬걸.

“지을 사람은 따로 있어서요. 그냥 SH건설의 이름만 빌려주실 수 있으신지 해서요.”

“......???”

한민아의 표정이 붕, 하고 떠올랐다.

진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 * *

까앙─! 깡!

서씨 공방에 울려 퍼지는 망치질 소리.

시우는 완성된 장비를 확인했다.

그와 동시에 띠링!

<한번은 써 볼까? 고민해 볼 장비를 만들었습니다.>

<신[神]의 야금술(SS) 숙련도 16.93%>

<신[神]의 야금술(SS) 숙련도 18.03%[+1.1%]>

“......”

떠오른 알림창에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한번은 써 볼까 고민해 볼 장비라니.

어쨌거나 쓰지는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지 않은가.

지난 번에 만들었던 일회용품 건틀렛보다 안 좋은 상황.

‘그땐 재료가 좋았긴 했다만….’

그래도 조금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하지만 ‘한번은 써볼까?’ 고민은 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니까 헤파이스토스를 고민하게 만들 정도였다.

확실히 숙련도가 올랐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허어…. 그 동안 못 본 사이에 수련이라도 하고 온 겐가?”

아니나 다를까 서팔광이 감탄하며 말해 왔다.

“잠시, 내가 살펴봐도 되겠나?”

시우는 서팔광에게 장비를 넘겨주었다.

서팔광은 조심스레 장비를 넘겨받고는 이리저리, 장비를 살폈다.

시우가 만든 장비를 보고 나름의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저씨 덕분에 한채린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지.’

헤라클레스의 말에 따르면.

인간들은 갓튜브의 무공을 배울 수 없었다.

하지만 시우가 가르치는 건 상관없다는 말을 첨언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걸 이런 식으로도 할 수 있었군….”

지금 서팔광과 같은 상황이라 보면 되었다.

서팔광은 헤파이스토스의 야금술을 배울 수 없었다.

헤라클레스의 말을 빌리자면 기본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신[神]의 야금술(SS)을 배우기엔 서팔광의 개성은 손재주(A).

어림도 없는 기본이었다.

그러나 시우을 통한다면 곁가지 지식들을 습득할 수는 있었다.

시우가 배워 알려 주는 지식들을 서팔광 나름대로 흡수할 수 있었다.

‘한채린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해 봤는데.’

역시나 가능했다.

하여, 장삼봉의 태극[太極](SS).

그 묘리들을 시우가 해석하여 한채린에게 알려 준다.

그리하여 한채린의 개성, 검재[劍材](S).

조잡한 휘두름도 하나의 검술로 만드는 희대의 재능.

그 재능이 묘리들을 해석하여 한채린만의 검술로 만들어 낸다.

뼈대? 기초? 틀?

아무튼 그러한 것을 시우가 잡아 주었다.

원래는 시우가 직접 검술을 창안하려고 했었다.

‘뭐가 뭔지 알아야지.’

검술 쪽은 영….

이건 통찰력(S+)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해서 시우가 선택한 것이 한채린이 직접 검술을 만들게끔 도와주는 것.

물론 그건 태극검(太極劍)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소 S등급의 검술은 될 수 있었다.

지구상 그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검술.

그로써 시우는 태극[太極](SS)을 수련하며 헤라클레스의 신투술도 수련할 수 있었다.

수련도 하고, 돈도 벌고.

‘SH그룹의 이름도 빌릴 수 있고.’

그야말로 일석삼조.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물고기도 잡는 개이득.

‘집 관련한 행정 절차는 한채린에게 맡기면 되고.’

각종 복잡한 것들은 한채린이 알아서 해줄 터.

그에 대해서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터였다.

이제 남은 건 본격적으로 집을 짓는 일.

집을 지을 건설 자재만 모으면 되었다.

그리고 과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했던가.

딸랑─.

“아저씨! 저 왔어요!”

때 맞춰 소은이 공방 안으로 들어왔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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