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소은은 불안한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자꾸만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대는가 한편.
계속해서 화면을 만지작거리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확실히 무슨 일이 있기는 있는 모양.
시우는 천천히 소은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앗! 시, 시우 씨?”
소은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어 보였다.
딱히 인기척을 숨기지 않았건만.
시우가 다가오는 것을 모를 정도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 그게….”
소은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준이랑… 연락이 안 돼요.”
소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준라는 이름.
“소은 씨 동생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소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는 잠깐 생각을 해보이고는 소은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연락이 안 된 겁니까?”
“어제부터요. 터틀 드래곤 던전에 들어간다고 연락을 받은 이후로 지금까지 연락이 안 돼요.”
“음.”
던전에 들어가고 하루가 지난 상황.
확실히 이상하다고 여길 만한 일이었다.
“관리국에 확인은 해 보셨습니까?”
던전을 클리어 하면 관리국에 신고를 해야만 했다.
정확히는 던전을 나오면 어떤 식으로든 관리국에 신고를 해야만 했다.
던전을 클리어 했는지.
아니면 던전을 클리어 하지 못했는지.
어느 쪽이든 확인은 해야 했으니까.
“네. 그런데 들어간 그 날, 클리어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지금까지 연락은 안 되고요.”
“네.”
확실히.
소은이 저렇게까지 걱정하는 이유가 있었다.
시우는 저도 모르게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런 시우의 표정 때문일까.
“이준이한테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죠?”
소은이 불안한 기색으로 물어왔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람.
시우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소은을 안심시켰다.
“별일 없을 겁니다. 던전 안이라면 모를까, 클리어까지 했다면야 뭐. B급의 헌터를 누가 감히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던전 클리어 기념으로 파티원들과 진탕 술 먹었을지도 몰라요. 20살이면 한창 그럴 나이지 않습니까.”
“이준이가 그럴 애가 아닌데….”
“무엇보다 개성이 초재생이지 않습니까. 절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있듯. 별일 없을 겁니다.”
그런 시우의 말 때문일까.
소은의 걱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시우는 그런 소은의 기색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레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시찰국에 신고는 해 두죠.”
시찰국은 범죄자들을 검거하는 일만을 하지 않는다.
헌터들과 관련한 모든 사건을 도맡아 처리한다고 보면 되었다.
그야말로 헌터 경찰서.
“네. 지금 바로 가 봐야겠어요. 정말 감사해요, 시우 씨.”
소은은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왜일까.
평소 소은의 밝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멀어져 가는 소은.
시우는 그런 소은의 바라보다 같이 발걸음을 옮겼다.
“시우 씨?”
소은이 놀라 물어왔다.
시우는 소은의 옆에 따라붙으며 말했다.
“같이 가 드릴게요.”
“네? 아뇨. 괜찮아요. 시우 씨 바쁘신데,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소은은 한사코 거절해보였다.
뭐, 소은이 어린 애도 아니고.
소은물산의 대표가 그런 것 하나 못 할 리가 없긴 했다.
시우라고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같이 가 주겠다고 한 이유는 단순했다.
“제가 가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시우의 존재가 도움이 될 테니까.
시찰국은 헌터 경찰서로, 말마따나 각성자와 헌터들과 관련한 사건들을 도맡아 처리한다.
그리고 하루에 접수되는 신고만 수천 건.
당연히 그에 따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해서 신고를 해도 사건이 수사되는 건 한참 뒤의 일.
위급하지 않다 생각되면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실종 신고와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러했다.
결국, 야단이 나고서야 움직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씁쓸하면서도 안타까운 현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마.
소은이 신고를 한다 한들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소은의 동생이 실종이 된 건 고작해야 하루 전.
시간상으로만 따지면 24시간도 되지 않은 일이었다.
신고만 접수되고 조사는 안 할 것이 뻔하디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우가 간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시찰국은 현재 시우를 눈여겨 보고 있으니까.
오죽하면 시찰국장인 백선제가 직접 찾아왔을까.
물론 그 이후로 별 다른 터치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런 시우가 실종 신고를 한다?
“제가 시찰국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요.”
분명 도움이 될 터였다.
* * *
시찰국의 신고는 어렵지 않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시우의 예상처럼도 될 수 있었다.
‘이민정…이라고 했었지.’
강도철 사건 때 만나 봤던 시찰국의 가더.
듣자 하니 상당한 실력의 가더라고 한다.
별명이 인간 백정이라고.
어쩐지.
그때 당시에 느껴지던 기세가 살벌하다 싶었다.
어쨌거나 그녀가 직접 사건을 담당해 주었다.
그로써 확실히 조사가 이루어질 터.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모두 한 셈이었다.
하지만.
‘괜히 신경 쓰이네.’
역시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은의 표정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당장 시우만 하더라도 그럴 것이었다.
서아가 연락이 안 된다면 똑같은 심정일 터였다.
‘일단은 기다려 봐야지.’
하지만 역시나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무엇보다 시우는 지금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 수많은 할 일 중 하나.
쐐애액─!
시우의 눈앞으로 한줄기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그 뒤로 보이는 흑발의 미녀.
한채린이 매서운 기세로 시우에게 달려들었다.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검에도 힘을 뺀 것이 진심으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몸집도 가녀린 애가 왜 이렇게 힘이 좋아?’
그럼에도 그 안에 기세는 심상치가 않았다.
과연 한채린.
시우는 힘겹게 한채린의 검을 튕겨 내며 말했다.
카앙─!
“태극(太極)은 음양의 사상을 근간으로 합니다. 음양(陰陽)이라 함은, 천지 만물을 만들어 내는 상반된 성질. 만물의 생성 변화의 기(氣)를 뜻하죠.”
한채린은 계속해서 시우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렇다고 단순히 휘두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우가 지금 알려 주는 태극(太極)의 묘리.
그것을 한채린이 스스로 해석하여 본인만의 검술을 만들고 있었다.
“음양에서 음(陰)은 구름이 태양을 가린 형상을 의미합니다. 그로써 구름, 북향, 여성을 의미하죠. 반대로 양(陽)은 태양이 구름 밖으로 나온 형상. 양지, 남향, 남성을 의미합니다.”
캉! 카앙─!
“이 둘은 얼핏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서로 의존하여 사물을 만들고 성립시킵니다. 존립의 원리. 서로 순환하여 전화하는 조화라 할 수 있습니다.”
타닥!
카아앙─!
“하여, 태극(太極)의 핵심은 화경(化勁)에 있습니다. 화경이라 함은 다시 말해 조화. 사무여한(死無餘恨)의 태극은 안락의 공존이라. 그 이치를 깨달아 검에 담아낼 수 있다면….”
시우는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채앵─!
한채린이 휘두른 검이 크게 튕겨져 올랐다.
놀라 떠지는 한채린의 두 눈.
“이렇게, 상대의 공격을 손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죠.”
“......”
한채린은 고개를 떨구며 검을 내려 보였다.
왜인지 상당히 실망한 기색이 엿보였다.
자신의 공격이 허무하게 막힌 것 때문일까.
아니면 시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때문일까.
“난해…하네요.”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계십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한채린은 정말로 그러했다.
시우가 말해준 태극의 묘리.
그건 장삼봉의 태극[太極](SS)으로서 등급만 무려 SS등급이었다.
헤라클레스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 따위는 감히 배울 수 없는 것.
그런데 한채린은 그걸 조금씩이지만 따라 하고 있었다.
미약하지만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난 통찰력이 없이 하나도 못 알아먹겠던데.’
진짜 뭔 개소린가 싶은 이야기들 투성이였다.
영상 속, 장삼봉이 뭐라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그런데 과연 한채린.
재능만큼이나 머리도 좋았다.
“검로가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알려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해요.”
한채린은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감정 하나 없는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시우는 검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죠.”
한채린 또한 검을 검집에 넣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박혀 움직이지를 않았다.
아무래도 방금 전의 내용을 곱씹는 것 같았다.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
역시나 과연 한채린이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시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할 일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정확히는 목표한 헌터 등급인 A급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자리를 떠나가려던 그때.
“한 달 내로 해결될 것 같아요.”
한채린이 말해 왔다.
그리고 시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저게 갑자기 뭔 소리란 말인가.
사족 떼고, 앞뒤 다 자르는 한채린의 대화 방식이야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이건 무슨.
몸통도 잘라버린 격이지 않은가.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찰나.
“저번에 말씀 주신 거요.”
“저번에요? 제가 저번에 뭘… 아.”
시우는 그때서야 한채린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건설 허가 관련한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아니, 그러면 그렇게 말하면 되지.
아니지. 그렇게 말한 건가?
에휴, 됐다.
‘한 달이라.’
시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얼추… 맞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건설 자재들이 모두 준비가 되는 시간과 얼추 맞아떨어질 것 같았다.
행여 건설 허가가 안 나면 어쩌나 했거늘.
역시 한채린.
법 위에 군림하는 초월자였다.
“감사합니다.”
“별일 아니에요.”
한채린은 정말 별일 아니라는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시우는 그런 한채린을 뒤로한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 달 내로 모든 준비를 마쳐야하기에 걸음 또한 빨리했다.
한채린은 계속 남아 수련할 생각인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렇게 SH헌터 길드 사옥을 나가려다 문득.
“히익!”
누군가 시우를 보고 기겁을 해보였다.
다름 아닌 지난 번에 펜리르 던전을 같이 갔던 한채린의 팀원.
그 중에서도 마법사 헌터였던 여인이 시우를 보고 기겁을 하고 있었다.
던전이라도 레이드하고 온 것일까.
전투의 흔적이 여기저기에 엿보였다.
그녀의 뒤로 다른 팀원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민아, 안 들어가고 뭐해?”
“아, 그게….”
“음? 당신은?”
그들 역시 시우를 발견하더니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우 님 아니십니까. 팀장님과 수련하고 가시는 길입니까?”
“아, 네. 방금 끝나고 가려던 참입니다.”
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몇 번 마주친 것에 불과한지라 팀원들의 이름을 알지는 못했다.
그래도 만나면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였다.
그리고 한채린의 팀원들은 시우를 상당히 반가워 했다.
정확히는 다들 시우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시우 덕분에 펜리르 던전에서 살아 나올 수 있었다며 말이다.
다만, 한 사람.
“히, 히익…!”
마법사 여인만은 왜인지 시우를 두려워할 뿐이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시우 님과 또 같이 레이드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땐 제가 제대로 된 공략법을 가져오겠습니다.”
“하하하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시우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들과 헤어졌다.
그렇게 사옥 밖으로 나온 시우.
시우는 곧장 관리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그러고 보니….’
헤라클레스한테 영상 컨텐츠 알려 줘야 하는데.
요즘 들어 워낙에 바쁜 탓에 깜빡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연락도 못 하고 있었다.
‘이 양반, 어째 삐진 거 아닌가 몰라.’
가면서 연락이라도 해 봐야겠다.
* * *
서울 지부, 헌터 시찰국.
“팀장님. 그 김이준 실종 신고 말인데요.”
“어떻게 되었지?”
“일단, 이걸 먼저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정수아는 대답 대신 한 장의 종이를 건넸다.
“김이준와 같이 던전에 들어간 파티원들의 신원입니다.”
이민정은 차분히 그 안의 내용을 확인했다.
김이준을 제외한 5명의 파티원.
출생지도,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확연히 드러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불법 각성자?”
“정확히는 불법 각성자로 의심받는 헌터들이에요. 여기, 김이준을 제외한 모두가요.”
이민정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일부러 김이준을 노렸다?”
처음부터 김이준을 노리고 파티를 짰다.
하지만 이건 조금 말이 안 되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없었으니까.
불법 각성자로 의심받는 자들이 뭣 하러 일반 헌터를 노린단 말인가.
그것도 이렇게 끼리끼리 뭉쳐서 말이다.
언제 꼬리가 밟혀 걸려들지 모를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지금도 보라.
이렇게 꼬리가 잡히지 않았는가.
그러니 김이준을 노렸다는 건, 조금 억측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 이야기는 또 달랐다.
“김이준의 개성이 초재생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민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초재생(超再生).
신체의 회복력을 극대화하는 능력.
“등급만 무려 A+등급으로 팔다리가 잘려도 재생할 수 있대요.”
실로 어마어마한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범죄적인 요소라는 퍼즐을 끼워 맞추면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
불법 각성자를 위한 실험.
“아무래도 김이준을 납치해서 인체실험을 할 생각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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