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와그작, 와그작.
흑돌이가 밥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고기를 집어삼켰다.
먹는 것이 아니었다.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벌써 30만 원어치를 해치운 흑돌이.
저건 역시나 ‘집어삼켰다’라고 표현함이 바람직했다.
그 때문일까.
“......”
이민정의 표정이 꽤나 볼 만했다.
마치 괴랄한 생명체를 마주한 것처럼 정신이 빠져 있었다.
하기사, 저 작은 몸집에 저 많은 고기가 들어가는 게 말이나 될까.
뱃속에 아공간이라도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건 현실인지라.
“......”
이민정은 멍하니 흑돌이가 고기 삼키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 이민정을 가만 바라보고 있자니.
시우는 왜인지 한채린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둘 다 차가운 분위기의 여인.
외모는 취향의 영역이나, 시우는 한채린의 손을 들어줄 수 있었다.
뭐, 어쨌든.
이민정과 한채린은 비슷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보니,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한채린은 차가우면서 무덤덤했다.
얼음 덩어리.
감정 없는 로봇.
그런데 이민정은 뭐랄까.
절제된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감정을 느끼나, 그 감정을 절제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여 지금.
살짝, 입을 벌린 이민정의 표정.
“......”
정말이지 재밌는 표정이었다.
시우는 속으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흠칫!
이민정이 화들짝 놀라며 시우를 바라봤다.
뭐야, 왜 이렇게 놀래?
놀라는 이민정의 반응에 옆에 있던 서아도 놀라버렸다.
아무래도 흑돌이의 충격이 상당히 거세었던 걸까.
이민정의 눈빛이 살짝, 떨려왔다.
황급히 표정을 갈무리하더니 다시 무표정한 얼굴을 지어보였다.
“늦은 시각에 찾아와 죄송합니다.”
과연 시찰국의 가더라는 걸까.
인성은 전혀 건드릴 것이 없었다.
그리고 시우는 딱히 괜찮다 말하지는 않았다.
늦은 시각에 찾아온 건 맞았으니까.
잠깐의 정적.
“김이준에 대해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이민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고.
시우는 눈을 살짝, 치켜떠 보였다.
김소은의 남동생이자 얼마 전에 실종된 김이준.
시우는 옆에 앉아있는 서아를 살폈다.
서아는 동그란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김이준이라는 이름.
처음 듣는 이름이었고, 사정을 모르니 당연했다.
시우는 다시 시선을 돌려 이민정을 바라봤다.
이민정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두 눈빛은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다.
보아하니.
좋은 종류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랬다면 이렇게 직접 시우를 찾아왔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
잠깐의 고민.
“나가서 이야기 하시죠.”
시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공간.
“으음….”
흐릿한 정신 속.
김이준은 살며시 눈을 떠 보였다.
시야가 서서히 잡히며, 주변의 사물이 명확히 인지되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한 지하실.
지하인지 아닌지는 솔직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습한 환경과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삭막한 공간은 지하실이라는 장소를 떠올리게 끔 만들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 냄새.
비릿한 피냄새가 코끝을 스쳐왔다.
좋지 않은 장소임은 분명해보였다.
김이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철컹─.
단단한 무언가가 김이준의 몸을 막았다.
손과 몸을 단단하게 묶고 있는 쇠사슬.
“이게 무슨…?”
김이준은 그때서야 앞선 기억들을 되짚어 보았다.
아직 흐릿한 정신에 기억이 희미했다.
하지만 곧 차례차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누나, 소은이 어떤 일로 고민하고 있던 것.
고민을 들어 보니 김이준이 해결할 수 있었던 것.
소은은 만류했으나 하겠다고 고집부린 것.
그리하여 터틀 드래곤 파티를 모집한 것.
성공적으로 터틀 드래곤을 사냥한 것.
사냥 이후 파티원들이 술이라도 한잔하자는 것.
내키진 않았으나 다음 레이드도 같이 가야 할 파티원들이었던 점.
해서 같이 술자리를 가진 것.
그리고….
기억이 없었다.
정확히는 그 다음 기억이 바로 지금이었다.
여전히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앞선 기억들을 종합해 본 바.
“납치… 당한 건가?”
김이준은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김이준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손과 몸을 단단히 묶고 있는 쇠사슬.
그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김이준은 B급에 달하는 헌터.
꽈드득─!
김이준은 온몸에 힘을 주어 쇠사슬을 끊어 내려 했다.
그런데.
철컹─!
쇠사슬이 끊어지질 않았다.
마나의 힘까지 끌어내어 힘을 쥐어짜 내도 소용이 없었다.
바로 그때.
“그거. 쉽게 안 풀릴거 야.”
한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번쩍, 번쩍.
어두웠던 지하실에 조명이 밝혀졌다.
그리고 보인 정체불명의 사내.
머리는 산발에 허리가 살짝 굽어 있었다.
눈은 퀭, 하니 풀려 초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미치광이(狂人).
그런 말이 절로 튀어나올 인상이었다.
“내가 특제 제작한 쇠사슬이거든. S급 헌터라도 쉽게 풀 수는 없을걸?”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키킥,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한쪽 구석으로 가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덜컹, 콰직.
그럴 때마다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뭘 하려는 거지?”
김이준의 물음에 사내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는 성큼, 김이준에게 다가오더니.
“궁금해? 궁금해? 진짜? 진짜 궁금해?”
사내가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었다.
“혹시 불법 각성자라고 들어 봤어?”
“불법… 각성자?”
들어는 봤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각성의 힘을 사용하는 이들.
사람을 제물로 하여 사이한 힘을 취하는 이들.
“모두 내 작품이라 할 수 있찌!”
사내는 기쁨을 도무지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키킥!
터져 나오는 환희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런데 대체 왜!!!”
사내가 크게 소리쳐 보였다.
방금 전까지 보이던 기쁨은 온데간데 없이 분노를 표출해 보였다.
“그런 내 노력을 몰라주고 죽어버리는 건데!!! 내가 어?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는데!”
콰앙!
사내가 들고 있던 무언가를 집어 던져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만지작거리던 것들을 죄다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피를 조금 뽑아 버리면 픽, 하니 죽어버리고!”
콰앙!
“팔을 잘라 버리면 아프다고 죽어 버리고!”
철푸덕!
“다리를 분지르면 못 걷는다고 죽어 버리고!!”
콰직!
뒤를 이어 씩씩, 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사내가 김이준을 바라봤다.
성큼, 다가와 히죽.
“하지만 너는 다르겠지?”
웃음을 지 어보였다.
마주한 눈빛에는 광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너는 다를 거야. 다를 거란 말이지. 그치? 분명 다를 거야. 달라야만 해.”
사내에게서는 그 어떠한 이성도, 엿보이지 않았다.
* * *
“김이준이 인체실험을 목적으로 납치를 당했단 말씀입니까?”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민정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내보이지 않았다.
높은 확률이라 말했으나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김이준의 개성은 초재생(超再生).
등급만 무려 A+등급으로 거진 트롤의 재생력과 비견될 개성이었다.
그렇기에 납치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시우도 인체실험을 받아 본 경험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화타의 신의술로 매번 인체실험을 하고 있긴 했다만.
과거, 시우는 무(無)개성의 각성자로서 각종 실험을 받아 본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합법적인 실험이었다.
그런데도 몸이 상했고, 탈이 났다.
합법적인 실험조차 그 정도일진대 범죄적인 인체실험이라니.
말이 실험이지 실상은 고문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아무리 초재생이라도 버틸 수 없을 터였다.
행여 육체는 버티더라도, 정신이 망가져 버릴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렇기에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하건만.
“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시우는 이민정에게 물었다.
이민정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잠깐의 정적.
“실은….”
이민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야기.
그 내용은 한마디로 이러했다.
“김이준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다는 말씀입니까?”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이민정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범죄자 놈들이 사용하는 인식 저해 장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CCTV에 찍혀도 그 흔적을 지워 버리는 마법 장치죠. 그렇기에 엄염히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만….”
범죄자 놈들이 법을 지킬 리가 만무하겠지.
그랬다면 범죄자가 아니었을 테니까.
그래 뭐.
김이준을 못 찾는 것이야 그렇다 치자.
“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그런데 왜 시우를 찾아왔냐는 것이다.
물론 시우가 실종 신고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시우는 일개 헌터에 불과했다.
당연하게도 사람 찾는 일은 할 줄 모른다.
시찰국의 가더보다 더 잘할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
“판데모니움.”
이민정이 나지막히 말을 내뱉었다.
“얼마 전, 서울 지역의 판데모니움이 쑥대밭이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암흑가 전체가 뿌리 뽑힌 전대미문의 사건이었습니다.”
“......”
“판데모니움 일원들이 사용하는 인식 저해 장치는 가장 최고 등급의 장치입니다. S급 헌터의 이목도 속일 수 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시우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민정은 개의치 않았다.
처음부터 답을 요하지 않았다는 듯.
이민정은 저 할 말만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렇기에 시찰국에서도 판데모니움의 위치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판데모니움이 쑥대밭이 된 것입니다. 정체 모를 누군가에 의해.”
이민정은 가만히 시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역시나.
시우는 아무런 말을 해 보이지 않았다.
이민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찰국의 가더로서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범죄자를 찾지 못하다니. 차라리 사건을 덮는 것만 못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종에는 골든 타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납치의 경우 골든 타임이 지나게 되면 살아 있을 확률 자체가 거의 없어지죠.”
그렇기에 골든 타임 이후의 실종자는 사망자나 다름없었다.
그 이후의 실종 수색 또한 사실상 시신 수습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실종자의 가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살아 있을 거라 믿는다.
언젠가 반드시 나타나 줄 것이라 믿는다.
매일매일 희망이라는 고문을 당한다.
“실종은 기억에 의한 살인이다. 우리 가더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민정이 고개를 숙였다.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저 시우를 향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 모습에는 갖가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가더로서의 부끄러움.
가더로서의 자존심.
가더로서의 미안함.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부탁.
실종의 골든 타임이 지나기 전에 우리는 찾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부디 찾아 달라고 말이다.
시우가 판데모니움을 찾았던 그때처럼.
이민정은 그 사건이 시우가 한 일임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우가 말하지 않으니, 자기도 말하지 않겠다는 모습이었다.
시우는 아무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사실.
이민정이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엄밀히 따지면 김이준은 이민정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
그러나 이민정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고통받는 가족들의 눈물을 보지 않을 수 있다면.
인간 도살자라 불리는 시찰국의 가더.
그 중에서도 인간 백정이라 불리는 이민정.
냉혹하리만치 차가운 분위기의 그녀.
하지만 왜일까.
“......”
고개 숙인 이민정의 모습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집 안에 서아가 있습니다.”
그러자 이민정이 고개를 들어 보였다.
시우는 그런 이민정의 두 눈을 바라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잠시 같이 계셔 주십시오.”
* * *
시우는 다시 집 안으로 돌아왔다.
안쪽을 살피자 서아가 흑돌이랑 놀고 있었다.
흑돌이는 그 사이에 그 많던 고기를 다 먹은 모양이었다.
시우는 그런 둘에게 다가갔다.
“오빠 왔어? 이야기는 잘했고?”
왈!
시우가 다가가자 서아와 흑돌이가 화답해 보였다.
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흑돌이에게 말했다.
“흑돌아. 밥 다 먹었으면,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이나 갈까?”
“산책? 이 늦은 시간에?”
그러자 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 왔다.
“나가 보니까, 밖에 공기도 선선해서 좋더라고. 흑돌이 밥도 많이 먹었으니까 소화도 시킬 겸.”
시우는 그렇게 말하며 흑돌이를 바라봤다.
흑돌이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다른 개들은 산책 나가자는 말에 난리가 난다고 하더만.
흑돌이는 딱히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뭐.
생각해 보면 흑돌이는 개가 아닌 늑대였다.
같은 개과 동물이다만 습성은 엄연히 다르다.
늑대는 산책을 싫어할 수도 있었다.
흑돌이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우가 말한 산책, 이라는 말.
그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왈!
흑돌이가 시우에게 다가왔다.
“흑돌이도 산책 가고 싶나 보다.”
그 모습에 서아가 말해 왔다.
약간은 서운한 표정을 짓는 것이 아쉬운 것 같았다.
아직 몸이 좋지 않은 서아.
같이 산책을 나갈 수 없다는 것이 내심 아쉽고 서운한 것 같았다.
‘슬슬, 혈사병을 제대로 연구해 봐야겠는데.’
어느덧 30%를 넘어선 신의술[神醫術](S+).
이제 슬슬, 혈사병을 연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그럼 잠깐 다녀올게.”
“응. 다녀와.”
서아의 배웅을 받으며 시우는 흑돌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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