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81화 (81/250)

80화.

김이준은 어느 정도 정신이 회복됨을 느낄 수 있었다.

몸도 조금은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속박된 쇠사슬 때문에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현 상황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맹한 분위기의 사내.

누구일까.

어떻게 여길 찾아온 것일까.

왜 여길 찾아온 것일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가지 답은 확실했다.

“도망…치세요….”

도망쳐야 한다.

저 미치광이 사내로부터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한다.

숱한 고문과 실험.

미치광이 사내는 자신을 상대로 온갖 실험을 해 대었다.

그 과정에서 김이준은 미치광이 사내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접목[接木](C+).

본래 개념은 서로 다른 식물종의 조직을 접붙여 하나의 개체로 만드는 방법을 의미했다.

전투 계열의 개성이 아니었다.

농부로서 가장 적합한 개성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딱히 위협적인 개성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 사내는 그야말로 미쳐 있었다.

사내는 스스로를 혐오했다.

나약한 개성이라며 자신을 증오했다.

그 삐뚤어진 마음이 결국 해서는 안 될 짓에까지 손을 뻗쳤다.

인간.

저 미치광이는 각성자의 개성을 접붙이는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추지 않았다.

인간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몬스터.

몬스터들의 능력 또한 접붙여 하나의 개체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지금.

꾸르르륵! 꾸륵!

부풀어 오른 미치광이 사내의 살덩이들이 엉겨 붙기 시작했다.

온갖 것들의 형체가 기워 붙여진 모습.

키메라(Chimera).

저건,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었다.

“너는 평범하지 않아. 평범하지 않으면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그렇지? 맞지? 맞잖아. 흐히히히힛!”

느껴지는 끔찍한 광기.

이길 수 없다.

저 괴물 앞에서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넌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넌 어떤 실험이 되어 줄까?”

그러니 도망쳐야 한다.

그런데 왜일까.

시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가만히 시선을 들어 기워 붙여진 괴물을 바라볼 뿐이었다.

“추하네.”

단조로운 말이 내뱉어졌다.

그리고 꽈앙!

들려오는 굉음.

뭐지…?

싶은 생각.

뻐어어어어어엉─!!!

기워 붙여진 괴물이, 순식간에 터져 나갔다.

후두둑, 살점이 떨어져 내린다.

풍선처럼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던 몸.

그것은 다시 풍선이 터진 것처럼 뻥 하니 터져 있었다.

“이, 이게….”

김이준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펼쳐진 압도적인 광경에 정신이 멍해졌다.

보이지… 않았다.

단 한 순간조차.

시우가 움직이는 순간부터.

괴물의 몸이 터져 나가는 결과까지.

정말 단 한 순간도 볼 수가 없었다.

실로 압도적인 무력.

“어, 어떻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김이준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이 광경을 만들어낸 시우를 찾아 주변을 훑었다.

바로 그때.

꾸륵, 꾸르르륵!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사방으로 흩어진 살점들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터덥, 텁!

괴물의 몸에 달라붙어 기워지기 시작했다.

“재생…?”

김이준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사실 재생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재생은 어디까지나 회복을 의미한다.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미 잘려 나간 것들을 다시 기워 붙이는 것을 재생이라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텁, 터더덥.

저건 재생이라 부를 수 없었다.

그러나 김이준은 재생의 힘이라 확신했다.

다름 아닌 자신의 힘이었으니까.

저 기워 붙여지는 살점에서 자신의 힘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김이준의 초재생[超再生](A+).

저 괴물은 김이준의 능력을 스스로에게 접목시켰다.

그러나 완전하지는 않았다.

아직 완전히 접목시키지는 못한 것 같았다.

“ㄴ ㅓ… ㄴ ㅓ 뭐 ㅇㅑ …..”

완전히 기워지지 않은 입.

그 입에서 괴기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얼굴이 기워지며 표정이 드러났다.

당황과 충격.

아직 인간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괴물의 두 눈이 심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히죽.

괴물이 기괴하게 웃는다.

“좋은 실험 거리가 될 수 있겠어!!”

번뜩이는 두 눈.

그곳에선 모든 핏줄에서 쥐어짜 낸 듯한 광기가 터져나왔다.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거지? 맞지? 흐히히힛!!”

괴물의 몸이 다시 한 번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꽈드드득!!

어마어마한 힘의 파동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하지만 그래 봤자 인간이잖아. 한낱 인간이잖아? 그렇잖아!!”

괴물에게서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그건 인간이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지상 최강의 포식자, 오우거.

지상의 그 어떤 누구도 따를 자가 없는 최강의 힘.

놈은 오우거의 인자를 스스로에게 접목시킨 것 같았다.

“나는 달라! 나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거든! 나약한 인간 따위는 감히 닿을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크히히히히히!!

광기 어린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윽고 거대한 팔이 앞선 시야를 쓸어 버리듯 휘둘러진다.

후우웅─!!!

살갗으로 거대한 풍압이 짓눌러 왔다.

죽는다.

저건 결코 인간이 대항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오우거의 힘은 인간이 감히 어찌할 수 없다.

“피, 피해요…!”

“이미 늦었어!!!”

바위처럼 커다란 주먹이 덮쳐 온다.

말마따나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벌레처럼 짓눌려 죽어 버려!!!”

꽈아아아아아아앙!!

천지가 뒤집어지는 듯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크나큰 지진이 일며 시야가 흔들려 왔다.

그리고.

꽈득!

“......!”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았다. 짓눌려 있지도 않았다.

아니, 되려.

꽈드드드득!

억누르고… 있었다.

시우가 바위처럼 커다란 괴물의 주먹을 잡아 꺾어 내고 있었다.

“......!!”

경악으로 떠지는 두 눈.

“마, 말도 안돼…!”

괴물의 경악 어린 외침이 터져나왔다.

밀린…다.

밀리고 있었다.

이건 앞선 재생력처럼 완전하지 않았다.

오우거의 인자를 접목시켜 만든 힘.

이건 진짜 오우거의 힘이었다.

인간 따위는 벌레 짓누르듯 죽일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말도 안 된다고!!!”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단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벌어져서도 안 되는 일이다!

꽈륵, 꽈르르륵!

가진 바 힘을 폭사시켰다.

오우거 인자가 갖는 모든 힘을 쥐어짜 내며 압박했다.

그런데.

꽈아아앙!

“크하학…!”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나며 피가 왈칵, 쏟아진다.

대항할 수가… 없다.

오우거의 힘이 저 인간에게 밀리고 있었다.

“이게…! 이게! 어떻게…!”

이해… 할 수가 없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상황이 이해가─.

생각이 끊어졌다.

시야가 암전되고, 의식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서서히 회복되는 시야.

뭐…지?

어느샌가 우악스러운 손길이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았다.

움직임을 놓쳤다…?

그렇게 말하기엔 뭔가 이상했다.

마치 해당 장면이 끊어진 것 같았다.

기억의 일부분이 도려내진 것 같았다.

꽈드드득!

머리를 붙잡은 손의 악력이 거세어져 갔다.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 눈빛.

“너는… 너는 누─.”

말은 완성될 수 없었다.

뻐어어어어엉─!!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뚝.

생각이 끊어졌다.

그리고 다시 시야가 회복되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몸을 간지럽히는 듯한 이상한 느낌의 정체.

기억의 일부분이 도려내진 것 같은 이 느낌.

아.

머리가 터지면 기억을 할 수가 없구나.

* * *

“세, 세상에….”

김이준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

꽈아앙─! 뻐억─!

꽈꽈꽈꽝!

괴물의 살점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금방 다시 돌아와 기워지지만 의미가 없다.

꽈아아앙!

다시금 터져나가 사방으로 흩뿌려질 뿐이었다.

그 과정에 크나큰 일이 필요치 않았다.

간단한 주먹의 내지름.

가벼운 발길질.

그렇기에 화려하지 않았다.

일견 단조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왜일까.

꽈아앙─! 뻐억─!

압도적이다, 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경악으로 벌어진 입은 쉽사리 다물어지지 않았다.

괴물은 순식간에 제압을 당했다.

정확히는 계속해서 터져 나가길 반복했다.

저 말도 안 되는 폭력 앞에 괴물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니었다.

아니, 괴물은 따로 있었다.

“부ㄱㅏ느 ㅎㅏ ㅇㅣ ㄹㅣㅇㅑ!”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흩어진 살점들이 다시 기워졌다.

하지만 툭.

살점 하나가 촛농처럼 흘러내려 아래로 떨어졌다.

재생력의 한계를 맞이한 것이다.

“어떻게 인간 따위가… 인간 따위가 어떻게!!”

괴물은 아직까지 인간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 느끼는 감정.

“오, 오지 마!”

공포.

괴물은 지금 공포에 질려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는 거야…! 어떻게! 대체 어떻게!!!”

괴물이 주춤, 뒷걸음 질 쳐 보였다.

시우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재능을 타고난 거지? 그렇지? 처음부터 그런 힘을 타고난 거잖아!!!”

공포라는 감정에 저항이라도 하는 걸까.

괴물은 악을 쓰며 외치고 있었다.

“나는 너희가 싫어! 너무 싫어! 증오해!! 너무 싫어서 죽여 버리고 싶어!! 강한 놈들은 언제나 이런 식이야! 지들만 잘났고, 지들만…!”

“그래서.”

그리고 들려온 시우의 목소리.

시우가 자리에 서서 물었다.

“그래서 이런 짓거리를 하는 건가? 보다 강한 힘을 얻기 위해서?”

“네가… 네가 뭘 알아.”

괴물은 소리쳤다.

“네가 재능이 없어 빌빌거려야만 하는 그 비참한 심정을 네가 뭘 아냐고!!!!”

괴물은 더 이상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아니, 공포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약한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네가 알기나 해? 너는 모르겠지! 처음부터 강한 너는 절대 몰라!”

분노라는 감정으로 공포를 덮어쓰고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얼마나 비굴하게 살아야만 하는지! 네가 대체 뭘 알아!!!”

괴물은 그렇게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재능을 타고난 놈들. 처음부터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놈들! 저 스스로 얻은 능력이 아니잖아!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잖아! 그냥, 그냥 태어나니까 주어진 것이잖아!!”

꽈아아앙!

괴물의 분노가 주변의 사물을 박살 냈다.

쿠르르릉, 커다란 진동이 일며 시야가 일순간 흔들렸다.

“그러면서 너희는 우리에게 말하지!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근성이라는 것이 부족하다고! 그래서 그렇게 나약한 것이라고!!”

너무 역겨워! 너무 짜증 나!

너 같은 놈들은 전부 다 그래!

그래서 전부…! 전부…!

“전부 죽여 버릴 거라고!!!”

꽈꽈꽈꽈꽝!!

끔찍한 악의(惡意)가 피어오른다.

자욱한 죽음의 기운이 퍼져 나오며, 사방이 어둠으로 물들어 갔다.

“쿠히히히히히힛!!!”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스산하게 퍼졌다.

바라본 그곳엔… 더 이상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아있던 인간으로서의 이성.

그 이성마저 도려내어진 존재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저건 인간도, 괴물도 아니었다.

그리고 차마 몬스터라 부를 수도 없었다.

광기로 얼룩진 축생.

크워어어어어어어어─!!

모든 세포 하나하나에서 쥐어짜 낸 듯한 광기가 터져 나왔다.

그것이 어둠을 새빨갛게 물들인다.

사념이 새까맣게 몰려온다.

그 사이로 터벅.

시우가 발걸음을 내딛었다.

“나도.”

그리고 말한다.

“예전엔 너처럼 생각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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