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85화 (85/250)

84화.

시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김이준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내가 여기에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어?”

“관리국에서 알려주던데요.”

“관리국에서?”

시우는 저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당연하게도 던전을 예약한 자에 대한 신원은 비밀이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알려 줘서는 안 되는 일.

그런데 무슨….

“던전을 예약할 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던전 청소기가 던전을 싸그리 쓸어 갔다면서 예약할 던전이 없다고요. 그러면서 쓸려나간 던전 목록을 보여주더라고요.”

“음?”

시우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관리국 직원이 예약 완료된 던전 목록을 보여준 것이야… 얼추 이해는 되었다.

저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저것만으로 시우의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알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였다.

“그 던전들을 다 뒤져 본 거야?”

“네.”

“......”

시우는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목록들이 대체 몇 개인데 하나하나 다 뒤져 봤단 말인가.

오늘이야 8개였을 뿐이었다.

앞선 던전들을 합하면 자그마치 수백 개였다.

정확한 개수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많았다.

그 많은 던전들을 뒤져 봤다?

“힘들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실로 미친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냥 나한테 연락을 하면 되었잖아.”

“저 형님 번호를 몰라서요.”

그건 그렇긴 했다.

같은 특실에 입원했다만 번호를 교환할 기회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네 누나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아?”

그러자 김이준이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시우를 바라보는 표정이 마치 ‘천잰데요?’ 하는 얼굴이었다.

나 참.

시우는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래서. 날 왜 찾아온 건데?”

“아, 그게.”

김이준은 다시 표정을 바꾸고는 말을 이었다.

“누나한테 듣자 하니, 형님께서 몬스터 부산물을 파밍하고 계신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아니, 잠깐. 저번부터 말하려던 건데, 내가 왜 네 형님이야?”

“우리 누나 친구시니까요?”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소은에게 듣기로 김이준의 나이는 올해로 20살.

그리고 시우는 23살로 소은과 동갑이었다.

시우가 김이준보다는 확실히 형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형님이라 부르니 좀 그러했다.

무엇보다.

“설마 매형이신 건… 아니시죠?”

저번부터 왜 저런 결론에 도달하는 걸까.

“남자친구 아니라니까.”

“매형이 누나 남자친구는 아니죠. 남편이지.”

“그게 뭔….”

에휴, 됐다.

“그냥 형님이라 해.”

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형님이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시우도 김이준을 만나자마자 반말을 하지 않았는가.

소은의 동생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약간의 실수를 범했다.

뭐, 아무튼.

“해서, 제가 형님께 도움을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도움? 네가? 나를?”

“네! 형님을 물심양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어진 김이준의 말에 시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움은 별로 필요 없는데.”

시우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중 한 가지를 꼽으라면 역시 이것.

“수익을 나눠 가져야 하잖아.”

가뜩이나 모아야 하는 재료도 많거늘.

수익까지 반으로 나눌 수는 없었다.

여기에 시우가 파밍한 몬스터는 거의 모두가 장비 재료로 들어갔다.

수익을 나누면 여러모로 계산이 골치 아팠다.

그런데 웬걸.

“수익은 안 주셔도 됩니다.”

“뭐? 그럼 공짜로 도와주겠다고?”

“물론이죠! 형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해 주신 은인이지 않습니까. 그 빚을 생각하면 수익 같은 건 안 주셔도 됩니다.”

한마디로 은혜를 갚겠다는 말이었다.

뭐, 그렇다면야.

“그래도 괜찮은데.”

그럼에도 썩 내키지 않은 제안이었다.

시우가 당장 던전 레이드에 있어 어려움이 있다면 또 모를까.

별 다른 어려움이 없는데 굳이 한 사람을 더 데리고 다녀야 할까.

“됐어.”

시우는 단호히 거절을 해 보였다.

“하지만….”

“도움은 됐어. 무엇보다 너 B급 헌터라며. 네 인생도 있는데 그런 인재를 막 부려 먹으면 안 되지.”

“저는 괜찮습니다. 형님 혼자서 몬스터 레이드 하기에 버겁지 않습니까. 제가 옆에서 도움을─.”

“별로 안 버거워.”

빈말이 아니라 정말 버겁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이준의 표정이 잠깐 멍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럼 짐꾼이라도 하겠습니다. 파밍한 재료들이 좀 무겁습니까. 그걸 제가….”

“겸사겸사 중량 운동하는 거라, 그것도 괜찮아.”

“중량 운동이요?”

“그런 게 있어.”

시우는 손을 휘휘, 내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쯤에서 포기할 법도 하건만.

김이준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정말 뭐든지 하겠습니다. 잡일이든 뭐든. 그냥 노예라 생각하고 부려 먹으십시오.”

“됐다니까. 왜 그렇게 나를 도와주고 싶은 건데?”

“형님께 목숨 빚을 졌으니까요.”

김이준은 세상 진지한 눈빛으로 답을 해 보였다.

그리고 보아하니.

비단 자신의 목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 형님께서 누나를 많이 도와주신다고.”

김이준의 누나, 소은.

해서 김이준은 진심으로 시우에게 은혜를 갚고 싶어 했다.

시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도 네 누나한테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 그러니 그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시우는 그 말을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 잠깐만요!”

김이준은 역시나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럼 한 번만. 한 번만이라도 함께 레이드 해 보시고 결정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한 번 레이드를 같이 하자고?”

“네! 제가 터틀 드래곤 던전을 예약해놓았습니다.”

“터틀 드래곤 던전을?”

언제 그걸 예약한 거야?

터틀 드래곤은 굉장히 인기가 좋은 몬스터였다.

경쟁이 치열하다 못해 피 튀기는 정도였다.

지금 시우가 클리어하고 나오긴 했다만, 시우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네. 지금 가서 같이 한 번 레이드를 해 보시죠! 제 쓸모를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당연히 수익은 형님께 다 드리겠습니다!”

“음.”

시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 시우에게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나쁘기는 커녕 이득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터틀 드래곤은 건설 자재에 필요했던 몬스터.

그리고 김이준이 이대로 물러날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그러니 크게 문제 될 것도 없겠다.

한 번쯤 정도야 뭐.

수익도 전부 다 준다지 않은가.

“그래, 그럼.”

“예쓰!”

김이준은 뭐가 그리 좋은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 * *

“......”

김이준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정확히는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모르는 건 아니었다.

시우의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 지하실에서 압도적인 힘을 두 눈으로 지켜보지 않았는가.

공간 자체를 소멸시켰던 아득한 힘.

모르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애로사항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뛰어난 강자라도 혼자서 활동하는 데 불편함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반드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은혜를 갚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꽈아아아앙!

없었다.

애로사항은 개뿔이 무슨.

저 압도적인 힘 앞에 애로사항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있더라도 개박살이 날 뿐이었다!

김이준이 나설 기회 따위는 없었다.

도움을 줄 기회도 전혀 없었다.

아니, 도움은 개뿔이 무슨.

“걸리적거리니까. 옆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뒤로 쭉, 빠져 있어.”

“네, 네? 아, 네.”

걸리적거린단다.

나름 B급의 헌터로서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어느 파티든, 어느 길드든.

자신을 모셔가기 위해 안달이 난다.

그런데 걸리적거리니 뒤로 꺼지란다.

자존심이 굉장히 상했다.

꽈앙─! 꽈꽝!

그런데 뭐라 할 말은 없었다.

꽈드드득!

진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크, 크워어어어─!

진짜로.

김이준은 멍하니 시우의 전투를 지켜봤다.

시우는 수십 마리의 터틀 드래곤을 상대로 기가 막히게 싸우고 있었다.

사람이 맞는걸까…?

그런 움직임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움직임만 좋다 하여 터틀 드래곤을 사냥할 수는 없었다.

드래곤의 모습을 한 거북이 몬스터.

그 등껍질의 단단함은 드래곤 스킨(Dragon Skin)과 비교할 법했다.

실제로 드래곤 스킨보다는 뒤쳐졌지만, 그래도 비교라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웬걸.

퍼서석─!

전부 구라였던 모양이다.

시우의 맨손에 게딱지 갈라지듯 등껍질이 부서진다.

“어? 힘 조절 잘못했다.”

그리고 들려온 시우의 중얼거림.

“......”

김이준은 도무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수십 마리의 터틀 드래곤이 쓰러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분…?”

1분.

확실하진 않았지만 얼추 20마리 정도가 있었다.

그럼 3초에 한 마리 꼴로 나가떨어진 격.

“이게 무슨….”

대체 뭐하는 사람인 걸까.

그리고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

김이준은 왜인지 시무룩해지는 심정이었다.

* * *

널브러진 수십 마리의 터틀 드래곤.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스마트폰 화면 위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괴력[怪力](SS) 숙련도 26.08%[+3.8%]>

<신의술[神醫術](S+) 숙련도 34.27%[+2.3%]>

<헤라클레스 신투술[神鬪術](SSS) 숙련도 16.94%[+5.91%]>

<군자심[君子心] - 인의예지[仁義禮知](SSS) 숙련도 5.61%[+1.3%]>

<태극[太極](SS) 숙련도 6.9%[+5.2%]>

폭발적으로 상승해 있는 숙련도.

“저번 것까지 합쳐진 건가.”

다름 아닌 헤라클레스 신투술(神鬪術) 제 2식.

그때 올랐던 숙련도까지 합쳐 반영된 것 같았다.

“흐음.”

시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까 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생각처럼 단단하질 않단 말이지.”

터틀 드래곤의 단단함이 예상과는 달랐다.

물론 헤라클레스의 괴력[怪力](SS)앞에서 당연한 말이었다.

말마따나 진짜 드래곤조차 괴력의 힘을 버틸 수는 없을 테니까.

하물며 숙련도까지 오른 상태였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쉬웠단 말이지.”

뭐랄까.

타격감조차 없다고 해야 할까.

단단함을 깨부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단단함 자체를 없애버리는 느낌이었다.

“태극의 묘리 때문인가.”

음….

확실하진 않았다.

하지만 태극에 또 다른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원래 시우가 생각한 태극은 대자연의 기운을 정제의 과정 없이 담아낼 수 있는 것.

그러나 지금 보니 마냥 그러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무(無)로 되돌리는 능력이 있는 것 같은데.”

태초로 환원시킨다고 해야 할까.

태극의 힘은 상대하는 모든 능력을 무효화시켰다.

그로써 터틀 드래곤의 단단함 자체를 없애버린 것 같았다.

“지난 번, 괴력천멸권에서는 몰랐지만….”

그땐 지난 바 힘이 워낙 거대했기에 티가 나질 않았다.

그런데 터틀 드래곤을 상대해 보니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주의 근원을 담고 있는 태극(太極).

확실하진 않았지만 무(無)로 되돌리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내 개성이랑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확실히 헤라클레스가 추천한 이유가 있었다.

아, 그래.

헤라클레스.

“그나저나 헤라클레스, 이 양반은 아직 연락이 없네.”

정확히는 한 번 연락이 오긴 했었다.

그런데 그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내가 기절했을 타이밍에 와 가지고 참….”

해서 의도치 않게 또 연락을 씹어버렸다.

다시 메시지를 보내놓긴 했지만 이번엔 진짜로 삐진 것일까.

메시지를 읽었는데도 답장이 없었다.

“영상 컨텐츠 두 개를 알려 줘야 하나.”

시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슬쩍, 바라본 시선.

김이준은 왜인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딱히 도움이 되지 못한 것에 실망한 것 같았다.

조금 안쓰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굳이 도움을 요하기에도 좀 그랬다.

뭐, 아무튼.

“파밍하고 나가야지.”

시우는 널브러진 터틀 드래곤의 사체를 확인했다.

그러다 문득.

시야 한켠에 산산히 부서진 카메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유투브 영상을 찍기 위해 설치한 카메라.

그 카메라가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터틀 드래곤과 싸우다가 건드린 것 같았다.

어째 카메라도 무(無)로 되돌려 버린 모양이었다.

“하아, 벌써 몇 대를 부숴 먹은 거야.”

시우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과장 조금 섞어서 지금까지 카메라 값으로 수천만 원은 족히 쓴 것 같았다.

던전마다 카메라를 바꾸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유투브 수익보다 카메라 값이 더 나가겠는데.”

여기에 덕구 월급과 인센티브까지.

적자도 이런 적자가 없었다.

“그래도 메모리 칩은 살아있네.”

다행히 영상 자체가 날아가진 않았다.

불행 중 다행.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행 중 다행일 뿐이었다.

“찍는 영상의 각도가 썩 좋지도 않고.”

거치대의 힘을 빌리는 터라 각도가 매우 한정적이었다.

영상 앵글을 벗어나 싸우는 건 도무지 담아낼 수가 없었다.

움직이며 싸우는 긴박함도 전혀 담아낼 수가 없었다.

“덕구가 편집을 잘해주기에 망정이지.”

여러모로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누가 영상을 대신 찍어 줄─.”

일순간 생각이 뚝, 하니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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