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시우는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좀처럼 수락 버튼을 향해 손가락이 내밀어지지 않았다.
“많이… 삐졌겠지?”
영상 컨텐츠를 알려준다고 해놓고 나 몰라라 한 시간이 얼마던가.
연락을 씹기는 또 몇 번인가.
개인 PT를 빠지는 것은 또 몇 번이었지.
삐져있기만 한다면 정말 다행이었다.
분기탱천(憤氣撑天).
분노가 하늘을 뚫지 않았을까.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그러할지 몰랐다.
하늘을 떠받친 적도 있는 헤라클레스이지 않은가.
화로 하늘을 뚫는 것이야 일도 아닐 터였다.
“받는 게 맞는 걸까…?”
시우는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우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띠링!
<헤라클레스님께서 영상 통화를 신청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다시 한 번 스마트폰 알림음이 들려왔다.
역시나 손가락은 주저했으나 그렇다고 안 받을 수는 없었다.
그래봤자 일을 미루는 꼴밖에 더 되는가.
시우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수락 버튼을 눌렀다.
꾹.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질끈, 감아 보이지 않는 시야.
혹시 손가락을 잘못 누른 건가?
싶은 생각이 들던 그때.
[어?]
헤라클레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라클레스도 연결이 되었는지 몰랐던 모양인 듯 싶었다.
그래서일까.
시우는 감은 두 눈을 차마 뜰 수가 없었다.
[회원님?]
[그동안 연락이 없으셔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
헤라클레스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그러니까 예상과는 달리 목소리가 차분했다.
분기탱천한 헤라클레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용서…해 주는 건가?
시우는 살며시 눈을 떠 보였다.
그리고.
[정말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
혹시 고릴라가 정색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완전히 똑같다고는 할 수 없겠다.
[왜 제 연락을 그렇게 씹으셨습니까?]
그런데 정말로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상냥했다.
얼핏 걱정 어린 감정도 실려 있었다.
그런데 얼굴은 정말이지….”
“아, 그게… 말이죠. 진짜로. 진짜로 중요한 일들이 있어서─.”
[아유, 그럼요.]
[설마하니 별일도 아닌데 제 연락을 씹으셨겠습니까?]
“아뇨. 제가 진짜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선생님께서야 워낙 공사다망하신 거야 제가 잘 알고 있죠.]
[그러니 제 채널의 구독자가 90명이 될 때까지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거죠.]
“정말로 바쁘고 중요한 일들이 막 겹치고 겹쳐서….”
아니, 그런데 잠깐.
구독자가 90명이 될 때까지 그럼 뭐 한 거야?
아무리 시우가 영상 컨텐츠를 안 알려줘도 그렇지.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으면 어쩌잔 말인가.
그건 유투버의 자격이… 아니, 갓튜버로서의 자격이 없지 않은가.
어처구니 없는 심정에 시우는 살짝 눈을 치켜떠 보였다.
하지만.
[아~ 그러시군요.]
시우는 다시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입을 꾹, 다물었다.
할 말은 정말 많았지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저보다 중요하고 바쁜 일들이 있으셨군요.]
진짜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물론 헤라클레스는 이곳으로 올 수 없었다.
이렇게 화면 너머로밖에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시우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니라면?
헤라클레스는 이쪽으로 오는 방법이 없다고 했지만 그건 모를 일이었다.
펜리르도 오는 마당이지 않은가.
혹시 모를 일이라는 건 있는 법이었다.
시우는 정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헤라클레스의 눈치를 슬금슬금, 볼 뿐이었다.
그리고 들려온 목소리.
[뭐,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니까.]
시우는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떠 보였다.
이렇게 쿨하게 넘어가 준단 말인가.
역시.
세계에서 제일 터프한 헤라클레스가 할 수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빙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PT 시작하자.]
그리고 평소처럼 똑같이 PT를 시작할 뿐이었다.
그런데… 진짜 왜일까.
화면 너머로 보이는 헤라클레스의 얼굴.
[그동안 많이 쉬었으니, 오늘은 전신을 조져 보자꾸나.]
흉신악살(凶神惡殺).
이러한 말이 절로 떠올랐다.
* * *
“끄으으윽…!”
근육이 살려달라며 비명을 지른다.
더 이상 나를 혹사시킨다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라며.
다시는 나를 사용할 수 없도록 파열될 거라며.
진짜로 그럴 것이라며 소리쳐 온다.
하지만 시우는 차마 멈출 수가 없었다.
[회원님. 마지막으로 딱 10개.]
[딱 10개만 하시죠.]
화면 너머에서 들려오는 헤라클레스의 목소리.
[하나. 둘. 셋. 좋아요! 그렇게!]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좋아요, 아홉! 마지막!]
“끄아아아아…!!”
[에이, 자세가 흐트러지셨잖아요.]
[무효. 땡땡땡!]
[다시 한 개 더!]
이런 미친!
시우는 속으로 이를 까득 씹었다.
하지만 역시나 속으로 씹을 뿐이었다.
“흐으으읍…!”
[에헤이! 대충하면 안 되죠!]
[이번에도 무효!]
[농땡이 피웠으니 다시 10개 더!]
죽일…까.
진짜로 죽일까.
하지만 그럴 수 없음에 통탄할 뿐이었다.
“하악…! 하악…!”
숨이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처럼 껄떡거렸다.
더 이상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면 정말 가만있지 않을 거라며.
그냥 이대로 폐를 찢어버릴 것이라며.
온갖 협박이란 협박을 해 온다.
하지만 역시나.
시우는 차마 움직임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나. 둘! 셋!]
계속해서 이어지는 헤라클레스의 PT.
<헤라클레스 운동법을 수행했습니다.>
<괴력[怪力](SS)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
.
<괴력[怪力](SS) 숙련도 26.39%[+0.31%]>
<괴력[怪力](SS) 숙련도 27.04%[+0.65%]>
<괴력[怪力](SS) 숙련도 27.32%[+0.28%]>
<괴력[怪力](SS) 숙련도 27.67%[+0.35%]>
숙련도가 그야말로 미친 듯이 오르고 있었다.
이 짧은 시간에 무려 1.59%가 올라 버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띠링! 띠링!
숙련도가 올랐다는 알림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조금은 궁금하여 슬쩍, 확인한 숙련도.
<괴력[怪力](SS) 숙련도 28.14%[+0.44%]>
<괴력[怪力](SS) 숙련도 28.67%[+0.53%]>
<괴력[怪力](SS) 숙련도 29.05%[+0.38%]>
벌써 29%를 넘어갔다.
이제는 30%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기존 괴력의 숙련도는 26%가량.
이번 PT로만 무려 3%를 올린 격이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성장.
단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었던 이례적인 일이었다.
벌써부터 전신에 차원이 다른 힘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우웨에에엑!!”
단 한 번도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이젠 못 한다.
진짜 더는 못 한다!
농담이 아니라 이러다 죽는다!
차라리 신투술을 사용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장삼봉의 태극[太極](SS)까지 담아 그대로 까무러쳐 죽어버리는 편이 족히 2만 배는 나았다.
“우웩, 우웨에에에엑!!”
이건 아무리 그래도 아니었다!
[회원님? 아직 PT는 안 끝났어요.]
[그러게, 누가 그동안 운동 쉬라고 했어요?]
헤라클레스는 빙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죽일 생각이다.
헤라클레스는 지금 시우를 죽일 생각이다.
근육을 터트리든, 찢어버리든.
나발이든 염병이든!
지금 헤라클레스는 시우를 죽일 생각임이 분명했다.
[다음은 버피 테스트 3,000회─.]
“스핑크스!”
시우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껄떡거리며 넘어가는 숨.
시우는 삶을 갈망하며 악착같이 말을 이었다.
“다음 영상 컨텐츠는 하악…! 스핑크스와의 수수께끼 대결입니다!”
* * *
번쩍!
감겼던 두 눈 떠지며, 어둑어둑한 하늘이 시야에 담겼다.
뭐지? 싶은 물음도 잠시.
기억이 주입되듯.
앞선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기절…했었나.”
시우는 금방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죽일듯한 헤라클레스의 PT.
결국 견디지 못하고 기절해버린 것 같았다.
[일어났어?]
아니나 다를까 헤라클레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스마트폰 화면.
그곳엔 헤라클레스가 태연한 표정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아령으로 이두근에 자극을 주는 해머 컬(Hammer Curl) 자세.
문제는 파르테논 신전 기둥과 같은 것을 아령으로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시우는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동을 얼마나 했다고 그런 걸로 기절을 하냐.]
[에잉 쯧쯧, 멸치도 저런 멸치가 없다니까.]
다시 들려온 헤라클레스의 목소리.
진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대.
정말로 딱 한 대.
괴력천멸권(怪力天滅拳)으로 딱 한 대만 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솔직히 잘못한 건 시우였으니까.
그런데 기절해 있을 동안 자리를 지켜준 건가.
그건 좀 감동─.
[그런데 스핑크스와의 수수께끼 대결은 무슨 말이야?]
─이기는 개뿔이 무슨.
시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말씀 그대로예요. 스핑크스와 수수께끼 대결을 하는 거죠. 제가 알기로 스핑크스 채널에 관련한 영상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시우는 헤라클레스의 몸을 이곳저곳 터치했다.
정확히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터치한 것이지만 아무튼.
시우는 갓튜브의 채널 속에서 스핑크스의 영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핑크스>: 가장 먼저 수수께끼 맞추는 구독자께 이집트 최고 미녀, 클레오파트라와 1일 식데권 드립니다! (참고로 수수께끼 정답 사람 아님.)』
“이거. 아직 정답자 없는 걸로 아는데요.”
시우는 화면 공유를 통해 헤라클레스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헤라클레스는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윽고 헤라클레스가 우려 섞인 표정으로 물어 왔다.
[그렇긴 한데. 가능하겠어?]
“못 할 건 없지 않을까요? 그래봤자 수수께끼잖아요.”
물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난해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뭐.
시우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아침에는 네 개.
점심에는 두 개.
저녁에는 세 개.
유명한 수수께끼이지 않은가.
물론 영상 제목에 정답이 사람이 아니라고 못을 박아놨다.
그러니 저 수수께끼는 아닐 터였다.
하지만 이 역시 큰 걱정은 없었다.
시우는 스핑크스가 낸 다른 수수께끼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사실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낸 수수께끼는 하나가 아니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는 모두 세 가지.
다른 두 가지는 이러했다.
두 자매가 있다. 서로가 서로를 낳는데 둘은 누구인가?
오전에는 커졌다가 정오에는 다시 작아지고, 오후에는 다시 커졌다가 밤에 사라지는 것은?
시우는 이 두 가지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큰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 웬걸.
[혹시 오이디푸스에게 낸 수수께끼를 말하는 거면 아마 안 될 거야.]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옛날 오이디푸스 때를 생각하면 안 돼.]
[스핑크스 쟤. 그때 이후로 절치부심했는지 아주 수수께끼에 미쳐 살았다니까?]
“아무리 그래봤자, 수수께끼가 거기서 거기지 않아요?”
그런데 참.
저런 사자성어는 어디서 배워오는 건지 원.
[아니야.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오죽하면 지혜의 신, 토트 있지?]
[걔도 스핑크스한테 졌다니까?]
“예? 정말요?”
시우는 두 눈을 크게 떠 보였다.
지혜의 신, 토트(Thoth).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이 신은 말 그대로 지혜의 신이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지혜와 지식에 통달한 신.
혹시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우주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는 초차원의 정보 집합체,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
그것이 바로 토트가 들고 다니는 책, 토트의 서였다.
쉽게 말해 토트는 모르는 것이 없다 할 수 있었다.
그런 토트가 수수께끼 대결에서 졌다는 것.
[스핑크스와 수수께끼 대결을 이기는 건 불가능 해.]
[그러니 다른 걸로 하자.]
그 어떤 누구도 이길 수 없다고 보면 되었다.
하기사, 신화 속에서도 스핑크스는 전지(全知)하다고 전해진다.
그 어떠한 수수께끼도 스핑크스는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사실상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뭐.
“오히려 좋네요. 그런 스핑크스를 이기면 어그로 제대로 끌릴 테니까요.”
시우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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