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클레오파트라와의 식사 데이트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계산할 때 종업원이 굉장히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아무튼.
레스토랑 밖으로 나온 이후.
시우의 머릿속으로 의문이 솟구쳤다.
다름 아닌 마지막에 클레오파트라가 했던 말.
[모든 신(神)들이 갓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건 아니랍니다.]
“뭔 개소리야?”
진짜 뭔 개소린가 싶었다.
모든 신(神)들이 갓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건 아니라니.
“그게 뭐 어쨌다고?”
정확히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 싶었다.
그러니까 시우가 갓튜브의 인물을 만날 수 있는 것.
보다 정확히는 시우에게 갓튜브를 넘겨준 금발의 사내.
그것과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거냔 말이다.
실시간 스트리밍을 하는 신들도 있다, 뭐 그런 말인가?
“그 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란 말인가.
물론 갓튜브에도 실시간 스트리밍 기능이 있는 것 같긴 했다.
어쨌든.
구독를 해야 시우와 만날 수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음….”
어떤 의미인지 명확히 해석되지 않았다.
이러하지 않을까? 싶은 의문은 있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확, 와닿지는 않았다.
“...에이, 모르겠다.”
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는 말일지도 몰랐다.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하는 여자이지 않은가.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닌 여자.
그런 여자의 말을 깊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보다 내 뭘 보고 결혼하자고 한 건데?”
이집트의 결혼 문화는 그런 건가?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생판 모르는 남자한테 결혼하자고 급발진하는 건 이집트는 물론 지구의 문화는 결단코 아니었다.
“물론 지구 사람이 아니긴 하다만.”
지구에 존재했었던 사람이었지.
아무튼.
“그 때문인지 군자심이 무려 6.8%나 올랐네.”
시우는 군자심의 숙련도를 가만히 바라봤다.
현재 군자심의 숙련도는 이러했다.
<군자심[君子心] - 인의예지[仁義禮知](SSS) 숙련도 12.91%[+6.8%]>
무려 12.91%
원래 군자심의 숙련도는 6.11%였다.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의 수행.
돈오점수의 깨달음.
그야말로 생지랄발광을 통해 올린 수치가 6.11%였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와의 식사 데이트 한 번에 +6.8%가 올랐다.
그간 시우가 생 지랄발광한 노력이 단 한 번의 식사 데이트만 못한 격이었다.
“이 정도면 요물이 아닐까 싶은데.”
구미호는 개뿔이 무슨.
서큐버스를 데려와도 클레오파트라한테는 안될 것 같았다.
이쯤 되니 헷갈리기 시작했다.
군자심의 숙련도를 6.8%나 올린 클레오파트라가 대단한 건지.
아니면 클레오파트라의 유혹을 견뎌 낸 군자심이 대단한 건지 말이다.
“가끔 식사 데이트를 하는 게 나쁘지 않을지도…?”
그러면 클레오파트라한테 어떻게 연락해야 하지?
헤라클레스처럼 클레오파트라 채널을 구독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때마침 구독권이 하나 생겼긴 한데….
“...내가 무슨 생각하는 거야.”
시우는 금방 생각을 떨쳐버렸다.
그 구독권이 대체 얼마짜린데 고작 데이트에 쓴단 말인가.
아무리 군자심의 숙련도가 중요하다고 한들 그건 아니었다.
“진짜 요물인가.”
하마터면 그대로 홀려 버릴 뻔했다.
시우는 고개를 거세게 흔들어 생각을 떨쳐 버렸다.
“바로 레이드나 하러 가자.”
그리고 다시 관리국으로 걸음을 옮겼다.
헤라클레스 일도 잘 해결되었겠다.
이제는 해야 할 일을 해야할 때.
새 집을 지을 건설 자재들을 모아야 했다.
“A급 헌터까지 던전이 몇 개 남았더라.”
정확하진 않지만 100여 개 안팎으로 남은 걸로 기억했다.
김이준이 합류한 이후.
던전 클리어의 속도를 더할 수 있었으니까.
“이준이한테 바로 오라고 말해야겠네.”
시우는 현실 스마트폰을 찾아 품 속을 뒤적거렸다.
바로 그때.
우웅!
품 속에서 작게 진동이 울려왔다.
설마 클레오파트라인가? 싶었지만 역시나 그건 아니었다.
정확히는 갓튜브의 스마트폰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시우가 찾던 현실 스마트폰.
누군가가 시우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발신인을 보아하니….
“서아?”
다름 아닌 서아였다.
무슨 일이지?
시우는 바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빠, 오늘은 생일날이니까. 일찍 들어오지?
오후 13:14
“응?”
시우의 고개가 자동으로 기울어졌다.
다름 아닌 서아가 보내온 메시지 내용.
“오늘 서아 생일이었나?”
시우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그리고 곰곰이 날짜를 세어봄에.
“...이런.”
오늘이 서아의 생일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요즘 정신이 없다 못해 날이 가는 줄도 모르고 살아와서일까.
정말이지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클레오파트라와의 정신 나간 데이트도 그렇고.”
솔직히 이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젠장.”
시우는 스스로를 굉장히 자책했다.
그래도 조금의 변명을 하자면, 사실 시우와 서아는 생일을 특별히 여기지 않았다.
남들은 축하 파티다 뭐다.
기념일을 챙겼지만 시우와 서아는 그러지 않았다.
생일을 챙길 여유가 없었으니까.
생일이라고 여유를 부리면 안 되었으니까.
“그래도 이제는 아닌데.”
바쁘다는 핑계는 말 그대로 핑계일 뿐이었다.
그래도 조금의 핑계를 더 대자면 사실 서아의 생일은 챙길 수가 없었다.
서아의 생일은 서아의 생일날만이 아니었으니까.
“그냥 넘어갈 뻔했네.”
시우는 레이드를 하려던 생각을 바꿔 발걸음을 돌렸다.
* * *
흔들거리는 차 안.
한민아는 들려온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납골당? 지금 맹시우가 납골당에 있다고?”
“그렇습니다.”
“납골당은 왜?”
“그것까지는….”
운전기사는 난처한 기색으로 말을 흐렸다.
하기사, 그런 세세한 사정까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뭐.
납골당을 갈 이유야 뻔했다.
누군가의 기일이라든가 그러한 것이겠지.
“어떻게 할까요.”
“음….”
한민아는 조금 고민이 되었다.
채린이가 관심 있어 하는 남자라길래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려 했었다.
정확히는 괜찮은 남자인지 확인해보고자 함에 있었다.
혹시 채린이를 이용하려는 놈팽이인지 아닌지 말이다.
물론 영특한 채린이가 알아서 하겠냐마는.
사랑에 빠진 여자는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진다.
정확히는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들었다.
간이며, 쓸개며 다 내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놈.
하물며 채린이는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 본 쑥맥이 아니던가.
그러니 성숙한 고모가 나서서 냉철하게 봐야 했다.
어딜 감히 우리 사랑스러운 조카를….
아니, 아무튼.
“일단은 가보자.”
“알겠습니다.”
운전기사는 시우가 있다는 납골당을 향해 운전대를 돌렸다.
* * *
서울 변방에 위치한 한 납골당.
“흑돌아,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왈!
서아의 말에 흑돌이가 알았다는 듯 짖어왔다.
서아는 흑돌이를 몇 번 쓰다듬고는 총총걸음으로 시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흑돌이는 그 자리에 앉아 얌전히 기다렸다.
“흑돌이 진짜 똑똑한 거 같아. 말도 엄청 잘 듣고. 정말 너무 예쁜 거 있지?”
서아가 배시시, 웃으며 말해왔다.
하지만 곧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흑돌이도 같이 들어가면 좋을 텐데. 엄마 아빠한테 소개도 해줄 겸.”
“그러게. 흑돌이도 이제 우리 가족인데.”
아쉽게도 납골당 안에는 애완동물은 출입 금지였다.
물론 흑돌이는 평범한 애완동물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애완동물이라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은 그렇지가 않았다.
“들어가자.”
“응.”
시우는 서아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죄송합니다. 현재 이쪽으로는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납골당의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앞을 막아 보였다.
설마 납골당이 문을 닫았나?
싶은 생각도 잠시.
“던전이 생성되어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납골당의 직원이 곧장 말을 이어왔다.
시우는 살짝, 놀란 눈을 뜨며 물었다.
“던전이요?”
“네. 2시간 전에 생성된 B-등급 던전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생성되자마자 관리국에 신고를 해두었으니, 곧 헌터나 가더들이 올 겁니다.”
직원은 안심하라는 듯 말해 보였다.
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던전 자체야 크게 위협될 것은 없었으니까.
되려 다른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다.
‘내가 클리어할까?’
원래 레이드하러 갈 생각이지 않았는가.
던전 등급도 마침 B-등급이겠다.
시우가 클리어하지 못할 건 없었다.
하지만 뭐.
금방 생각을 털어버렸다.
던전 레이드나 하자고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이미 예약을 한 헌터가 있을지도 몰랐다.
시우가 날름, 뺏어가는 것은 할 짓이 못 되었다.
“이쪽으로 돌아가시면 납골당 안으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시우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납골당 안쪽으로 들어갔다.
납골당 내부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자그마한 칸들이 줄지어 놓여진 공간.
처음 왔을 땐 어디가 어딘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몇 번 와보니 금방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故 맹 도운
故 서 하윤
“엄마 아빠. 우리 왔어요.”
서아가 손으로 유리문을 쓰다듬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셔진 곳.
돌아가신 날은 달랐지만 시우는 두 분을 함께 모셔 놓았다.
그리고 오늘은 다름 아닌 어머니의 기일.
서아의 생일이 곧 어머니의 기일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시우와 서아가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어릴 적, 서아의 생일날을 기념하여 온 가족이 놀러 갔을 때의 일.
그때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갑작스러운 던전 브레이크.
그 중에서도 던전 폭발.
어머니는 서아와 시우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으셨다.
시우는 문득 떠오르는 그 날의 일을 잠시 회상했다.
서아도 그 날의 일이 떠오른 걸까.
서아는 별말없이 납골당 안의 부모님을 바라봤다.
시우와 서아는 정적 속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런데 오빠. 나 궁금한 거 하나 있어.”
서아가 문득 시우에게 물어 왔다.
시우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서아가 다시 물어 왔다.
“엄마 돌아가셨을 때 말이야.”
“엄마 돌아가셨을 때?”
“던전 폭발에 엄마가 오빠랑 나를 껴안았던 그때 말이야.”
갑작스레 터져 나온 던전 폭발.
어머니는 시우와 서아를 대신하여 폭발을 온몸으로 받아내셨다.
“그때 왜?”
“그때,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혹시 기억나?”
서아는 조심스레 시우에게 물어 왔다.
시우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오빠도 기억 안 나?”
아니.
기억한다.
뇌리 속에 깊게 박힌 그 기억은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걸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아마 평생토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절대로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그렇기에.
“응. 나도 잘 기억이 안 나네.”
시우는 차마 서아에게는 말해 줄 수가 없었다.
“그렇구나….”
서아는 약간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던전의 마력에 피폭되었던 서아.
당시 서아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의식조차 불분명한 상태였다.
“그때 엄마, 우리한테 꼭 해야 할 말이 있던 거 같았는데.”
당시의 기억이 희미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희미한 기억조차 있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던전의 마력과 공명했던 시우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
어머니가 해야만 했던 말을 시우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가끔 있잖아. 꿈에서 그때의 일이 나와. 그때마다 엄마가 우리한테 뭐라고 하는데, 도무지 들리지 않는 거 있지.”
서아는 ‘故 서 하윤’이라 쓰인 곳을 매만지며 말했다.
“엄마는 그때. 우리한테 무슨 말을 했던 걸까.”
시우는 그런 서아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입이 달싹, 거리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끝내.
“......”
시우는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 * *
한민아는 납골당의 밖에서 시우를 기다렸다.
그런 한민아에게 운전기사가 물어 왔다.
“이사님께서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으십니까.”
한민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사님께서 맹시우라는 자를 궁금해 하시는 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이사님께서 이렇게 직접 찾아가실 이유가 있는 건지….”
그도 그럴 것이 한민아가 누구인가.
SH그룹의 수많은 계열사를 관리하는 이사.
대한민국에서 한민아와 이야기라도 해보고 싶은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수많은 재벌가들은 물론.
저명한 국회의원부터 판사, 검사 등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이들이 한민아와 담소라도 나누고자 발악을 한다.
그런데 그런 한민아가 직접 찾아간다?
심지어 이렇게 추위 속에 덜덜, 떨면서까지?
“채린이… 일이니까.”
한민아는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슬쩍, 보이는 한민아의 옆얼굴.
꽤나 당황하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모르는 척,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날이 춥습니다. 차에 들어가 계시지요.”
“됐어. 곧 있으면 나오겠지. 그보다 어디 이야기할 데라도 좀 알아봐 줘. 아무리 그래도 납골당 안에서 하기엔 좀 그러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이야기만 할 거야. 행여나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게 주의하고.”
“명심하겠습니다.”
운전기사는 자리를 떠나갔다.
한민아는 혼자서 시우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좀… 춥긴 하네.”
한민아는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봄이 다가오는 계절이나 아직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금방 나올 줄 알고 나와서 기다렸건만.
“차에 잠시 들어가 있어야─.”
바로 그때.
애애애애애애앵─!!
-근방 30M 내, 던전 브레이크가 감지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신속히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근방 30M 내 던전 브레이크가 감지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크나큰 경보음과 더불어 대피 안내 방송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던전 브레이크?”
한민아는 놀란 눈을 떠 보였다.
그보다 잠깐.
“30미터라면….”
거진 코앞이라 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우우우웅─!
시야 한쪽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공간 전체가 일렁거리며 요동치고 있었다.
“저거 설마….”
한민아의 머릿속으로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겠지.
그러나 예감은 점점 짙어져 갔다.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 던전.
-확인 결과. B-등급의 던전 폭발로 판명되었습니다.
불길한 예감은 곧 확신으로 변질되어 갔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