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94화 (94/250)

93화.

이번엔 시우의 고개가 갸우뚱거렸다.

“예? 고모님께서 말씀이십니까?”

“네. 그런데… 고모라는 말. 생각보다 듣기 좋은데요?”

한민아가 정말로 기분이 좋은지 싱긋거리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아, 기분이다. 비용까지 전부 다 제가 지불할게요.”

“예에?!”

시우는 크게 놀라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시우가 필요로 하는 건설 자재는 상위 등급의 몬스터 부산물.

구하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소은도 구하느라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한두 푼 드는 돈도 아니었다.

대충 때린 견적만 무려 30억.

물론 SH그룹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돈이다만.

정확히는 돈 취급도 하지 않을 금액이겠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왜 고모님께서 그걸…?”

“그야, 채린이와 살 신혼집이잖아요?”

“...예?”

“어머. 내가 너무 나갔나.”

한민아가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어 보였다.

“어쨌든. 그 부분은 내가 해결해줄게요. 말 나온 김에 지금 바로 처리해야겠네. 빠르면 빠를수록 좋잖아요? 그럼 편히 쉬어요. 혹시 또 도움이 필요한 일 있으면….”

한민아는 병실 한쪽에 비치된 종이와 펜을 들어 무언가를 적었다.

010으로 시작하는 11자리의 숫자.

“제 번호예요. 명함을 주고 싶지만, SH그룹의 오너는 담당하는 계열사가 많아서 따로 명함을 만들지 않거든요. 사실은 상법상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이지만요.”

한민아는 가벼운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튼 저한테 직접 연결되는 핫라인이니까, 도움이 필요한 일있으면 연락 줘요.”

그리고는 휙, 한민아가 병실을 나갔다.

뭐라 해명할 틈도 없이 나가 버렸다.

시우는 멍하니 손에 쥐어진 종이를 바라봤다.

한민아의 번호.

SH그룹의 오너와 직통으로 연결할 수 있는 핫라인이었다.

이 번호의 값어치를 따지면 얼마 정도 될까.

아무리 못해도 억 단위는 기본일 터였다.

아니, 그건 그렇고.

“한채린과 살 신혼집이라니?”

그게 뭔 말 같지도 않은─?

“아, 설마?”

그 순간 시우의 머릿속으로 생각 하나가 번뜩이듯 스쳐 지나갔다.

다름 아닌 아까 전.

한채린과 만나고 있냐는 물음.

“설마….”

그 만남을 사귀고 있냐는 의미로 말한 거였나?

“어….”

아무래도 크나큰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았다.

오해 수준을 넘어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바로 잡기엔, 한민아는 벌써 사라지고 난 뒤였다.

* * *

결국 오해를 풀 수는 없었다.

오해를 풀 방법도 없었거니와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지도 못했다.

사실 고백하건대.

‘건설 자재를 받고 오해를 풀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아주 조금 들었다.

많이는 아니고 정말 조금.

아니, 애초에 한민아가 제멋대로 오해한 것이지 않은가.

그리고 굳이 시우가 나서지 않아도 오해라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될 터.

‘에이, 모르겠다.’

시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여, 지금.

SH병원의 공원.

시우는 서아와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흑돌이는 공원의 풀숲을 이리저리 뛰놀고 있었다.

나비를 쫓아 폴짝폴짝, 뛰놀고 있었다.

흑돌이는 지금 서아와 같은 병실에서 지내고 있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병실에 애완동물은 출입 금지였다.

하지만 뭐.

한민아의 말 한마디에 일사천리였다.

법과 질서 위에 군림하는 초월자.

병원의 규칙 따위는 그녀의 말에 다 바뀌었다.

아니, 한민아의 말이 곧 병원의 규칙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를 준 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서아가 입원해 있는 곳은 특특실.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기에 충분히 가능했다.

그 때문일까.

‘병원장님이 나만 보면 기겁을 한단 말이지.’

기겁을 넘어 거진 까무러쳐 보였다.

버선발 수준을 넘어 맨발로 뛰어나왔다.

뭐,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채린에 이어 이번엔 한민아까지.

오너 일가의 핏줄이 두 명이나 시우를 특별히 대하니 말이다.

덕분에 시우는 물론 서아까지 SH병원에서 편히 지낼 수 있었다.

그것도 모두 무료로 말이다.

‘덕분에 서아도 괜찮아졌고.’

시우와 같이 쓰려졌다던 서아.

특특실의 초특급 케어를 받아서일까.

서아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신의술[神醫術](S+)로도 슬쩍, 살펴봤지만 역시나 문제는 없었다.

큰 문제 없이 상황이 잘 해결된 것.

그런데 왜일까.

“......”

시우는 굉장히 어색했다.

서아는 왜인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물론 평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시우는 오늘따라 굉장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서아한테 뭐라 설명해야 하지….’

물론 이민정이 말하길.

서아는 다 알고 있다고 했었다.

그러니까 시우가 헌터 생활을 한다는 것.

그리고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시우가 보기에도 서아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모르는 척, 넘어갔었다.

시우 또한 딱히 설명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서아가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는가.

적어도 어떠한 해명 정도는 해야만 했다.

이걸 뭐라 설명을 해야 할까.

아니,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까.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있던 그때.

부스럭.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기….”

그리고 들려온 낯선 목소리.

나를 부르는 건가?

시우는 의문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당신은…?”

낯익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납골당에서 보았던 중년의 남성.

시우가 목숨을 던져 가며 구해 주었던 바로 그 남성이었다.

남성은 멋쩍은 얼굴로 시우에게 다가왔다.

시우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병원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더군요.”

“다행입니다.”

시우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싶었지만 정말 다행이었다.

바로 그때.

“아빠, 이 아조씨는 누구야?”

남성의 뒤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성의 무릎도 채 오지 않는 키.

아직 이빨도 제대로 나지 않은 여자아이였다.

남성은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 목숨을 구해준 분이셔.”

“이 아조씨가?”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의문을 한가득 담은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곧.

“아조씨! 우리 아빠를 구해주셔서 감사함미다!”

시우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

시우는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보다 아저씨라니.

아직 그 정도는 아닌데.

“아저씨가 아니라 오빠─.”

“앗! 강아지다!”

아이는 시우의 말을 무시하고는 후다닥, 시우를 지나쳐 뛰어갔다.

“강아지야! 나랑 놀쟈!”

일순간 흑돌이가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이를 바라봤다.

그 모습이 마치 ‘나랑 놀아줄 거야? 정말?’

그렇게 묻는 것만 같았다.

“나 자바바라!”

이윽고 아이가 짧은 다리를 움직여 도망쳤다.

흑돌이는 뒤쫓던 나비 대신 아이를 뒤쫓기 시작했다.

꺄르르, 거리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공원에 퍼져나갔다.

“아이 엄마가 딸아이를 낳다가 먼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들려온 남성의 말.

남성은 흑돌이와 뛰노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우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딸 아이의 생일날임에도 남성이 납골당에 있었던 이유.

그 이유를 이해할 뿐이었다.

“만일 제가 거기서 죽었더라면….”

그랬다면 저 아이는 부모를 모두 잃게 되었을 터였다.

동시에 자신의 생일날이 엄마와 아빠.

둘 모두의 기일이 되어버렸을 터였다.

“정말이지 뭐라…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남성은 그렇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숙인 고개 아래로 투툭.

투명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시우는 시선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

투둑. 툭.

왜인지 빗방울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제 딸 아이를 살려 주셔서… 정말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남성은 자신의 목숨이라 말하지 않았다.

딸아이의 목숨.

그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기에 시우는 그저 미소로 화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강아지야! 담에 또 보쟈!”

남성과 아이는 떠나갔다.

흑돌이가 상당히 아쉬운지 떠나는 아이에게 시선을 떼질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흑돌이는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완전히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고.

끼잉─.

흑돌이가 정말 서운한지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이랑 뛰노는 게 상당히 재밌었던 모양이었다.

보니까 그냥 뛰어다니기만 하던데.

그게 뭐가 그리 재밌었던 건지.

시우는 흑돌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주었다.

그 순간.

“오빠.”

서아가 문득 말을 걸어왔다.

바라본 그곳.

서아는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 어제 그 꿈을 꿨어. 엄마가 돌아가시던 그 꿈 말이야.”

“......”

“평소엔 꿈 속에서 엄마의 얼굴이 되게 슬퍼 보였어. 우리한테 꼭 할 말이 있었는데, 그걸 말할 수 없는 것이 굉장히 슬퍼 보였어.”

서아가 시선을 내려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우를 바라봤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었다? 고맙대. 뭐가 고맙냐고 물으니까, 그냥 고맙대.”

“......”

“이제 찾아오지 않을 생각인가 봐. 우리 엄마.”

서아는 다시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봤다.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 서아는 말이 없었다.

시우는 그런 서아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엄마도 참 나쁘다. 그래도 가끔은 찾아와주지.”

“그러니까 말이야.”

그렇게 먼저 가버려 놓고.

서아가 입을 비죽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괜찮아. 섭섭하긴 한데. 이제는 괜찮아.”

서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우를 바라봤다.

시우 또한 그런 서아를 바라봤다.

마주 바라본 시선.

“오빠가 있잖아.”

히힛.

서아가 배시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왈!

흑돌이가 꼬리를 흔들며 서아에게 안겨 왔다.

그 모습이 꼭, ‘나는? 나는?’이라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흑돌이도 있고!”

서아는 흑돌이를 끌어안으며 다시 한 번 배시시, 웃어 보였다.

시우는 가만히 서아와 흑돌이를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

왜일까.

내년 서아의 생일은 조금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시우는 특특실의 침대에 홀로 누워 있었다.

사실 원래라면 이렇게 한가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퇴원하여 던전 레이드를 가야 했다.

집 건설에 필요한 자재들을 한시라도 빨리 파밍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뭐.

“한채린 고모님이 구해 준다고 하니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어떤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긴 했다만 어쨌든.

필요한 건설 자재는 모두 파밍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A급 헌터는 따놓긴 해야지.”

그렇다고 던전 레이드를 안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건설 자재가 아니더라도 던전 레이드는 반드시 해야만 했다.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

멤버십 구독료로 지출되는 금액이 매달 31억.

거기에 흑돌이 밥값까지.

한채린 연금으로 매달 100억씩 들어오고 있긴 하다만 돈은 꾸준히 벌어야만 했다.

해서 장비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파밍할 겸.

또한 시우가 쓸 장비.

그 재료 또한 파밍하려면 여러모로 A급 헌터는 필요했다.

“유투브 각도 포기할 수 없고.”

벌써 10만 명이 넘어간 구독자.

이 성장세를 결코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서아의 병도 돌볼 수 있으니까.”

특특실에서 누릴 수 있는 프리미엄 혜택.

얼핏 듣자 하니 하루 이용료가 무려 수천만 원에 달한다고 들었다.

1주일 입원하면 거진 1억에 달하는 미친 금액.

하지만 이것도 뭐.

“공짜니까.”

한채린의 고모, 한민아가 내주고 있었다.

그러니 굳이 급하게 퇴원할 이유가 무얼까.

하여 시우는 돈 냄새가 풀풀, 풍기는 특특실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마냥 쉬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시우는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다름 아닌 이번 납골당에서 있었던 일.

“조금 더 빨리 움직였다면 가능했을 것 같은데.”

그러면 남성을 충분히 구할 수 있었을 터였다.

굳이 던전 폭발을 온몸으로 견딜 필요가 없었다.

남성을 데리고 시간 내에 납골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터였다.

물론 시간이 절대적으로 촉박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말 불가능했냐, 묻는다면 글쎄.

그러니까 헤라클레스였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 양반은 폭발 자체를 깨부숴 버렸겠지만”

시우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꼭 헤라클레스가 아니더라도 S급 헌터들이라면 어찌 가능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드는 생각.

“움직임을 따로 배울 수는 없을까.”

일명 보법(步法)이라 불리는 것.

보법(步法)은 격투나 검술 등의 기술을 펼칠 때 발의 움직임을 의미했다.

하지만 단순히 발에 국한되지는 않았다.

몸 전체의 움직임을 아우르기에 신법(身法)이라고도 불린다.

“헤라클레스 신투술에도 있기는 한데.”

어디까지나 신투술(神鬪術)이기 때문일까.

보법(步法)과 관련한 건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움직임에 특화된 건 역시나 아니었다.

그리고 갓튜브에는 움직임에 특성을 지닌 저명한 신(神)들이 있을 터였다.

때마침 무료 구독권도 하나 있겠다.

“그런 움직임을 배울 수 있다면….”

비단 이번 일뿐만이 아니었다.

던전 공략과 더불어 시우의 실력 향상에도 크나큰 도움이 될 터였다.

“음….”

깊어지는 고민.

하지만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건 역시.

“헤라클레스한테 물어봐야겠다.”

시우는 갓튜브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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