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105화 (105/250)

104화.

강원도의 한 산골 마을.

박태민은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서 대체 무슨 짓을….”

광역 수사대 팀장, 박태민.

광역 수사대는 시찰국 본청 소속의 특수 수사대다.

보통 사건이 발생하면 관할 구역의 시찰국이 나서서 해당 사건을 수사한다.

서울에서 일어난 사건은 서울 지부의 시찰국에서.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은 부산 지부의 시찰국에서.

하지만 광역 수사대는 그러한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담당하여 처리한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자잘한 사건들까지 모두 담당하는 건 아니었다.

범국가적인 범죄들.

범죄 유형은 구분하지 않는다.

지역 시찰국에서 처리할 수 없는 범죄들을 담당하여 처리할 뿐이다.

하여 지금.

“마을 전체를 대상으로 대체 무슨 짓을….”

마을 전체에 낭자한 핏자국들.

한때는 평화로운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죽음의 마을이 되어 있었다.

박태민은 아무렇게나 놓인 시체를 살폈다.

사실 시체라고 볼 수도 없었다.

핏덩이 혹은 살덩이.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오는 괴기한 형태였지만 백태민은 외면하지 않았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시체를 살폈다.

바로 그때.

“팀장님. 수색을 모두 마쳤습니다.”

누군가 박태민을 향해 다가왔다.

광역 수사대의 가더이자 박태민의 팀원, 김동운.

박태민은 고개를 돌려 김동운에게 물었다.

“생존자는?”

김동운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살며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저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까드득!

박태민은 분노로 이를 까득, 씹었다.

판데모니움의 교단.

차마 인간이라 부를 수도 없는 악마 같은 집단들.

박태민은 치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래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박태민은 차분히 이성을 유지하며 물었다.

“수색 결과는? 특이 사항이 있나?”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마을의 시체들이 죄다 남자들이었습니다.”

이 마을에 여인이 살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 말은 즉.

“여인은 죽이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김동운의 보고에 박태민은 차분히 고개를 돌렸다.

방금까지 확인하고 있던 살덩이.

성별을 알아볼 수 없는 무엇이지만 김동운의 보고에 따르면 이건 남성의 것이었다.

흔히 있는 일이었다.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납치해 가는 일 따위.

광역 수사대에 있으면 수없이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여인의 시체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

상당히 의심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목적은?”

“그것까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김동운은 고개를 숙였고.

박태민은 그에 대하여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으니까.

정확히는 밝혀낼 수가 없었음을 알고 있었다.

“오주원이 개입하는 바람에….”

오주원의 개입.

한국의 판데모니움을 관리하는 흉터급 간부.

광역 수사대는 오랜 추적 끝에 판데모니움 교단의 본거지를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이 판데모니움의 몸통을 발본색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주원의 개입으로 모든 것이 틀어져 버렸다.

되려 역으로 광역 수사대가 모조리 몰살당할 뻔했다.

그럼에도 박태민과 김동운이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

“국장님은 어디 계시지?”

“오주원을 쫓아가시긴 했습니다만….”

바로 그때.

“여기 있네.”

한쪽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인상 좋은 미중년의 사내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시찰국장, 백선제.

박태민은 다가오는 백선제에게 물었다.

“오주원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놓쳤네.”

백선제는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

박태민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추측할 뿐이었다.

백선제의 추적을 뿌리친 오주원.

판데모니움의 흉터급 간부가 알려진 것보다 강했음을 가늠할 뿐이었다.

바로 그때.

휘청.

백선제의 몸이 기울어졌다.

박태민이 황급히 백선제의 몸을 잡았다.

“괜찮으십니까?”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군.”

다행히 백선제는 금방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약간의 현기증이 인 모양인 듯 싶었다.

박태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

박태민의 손끝으로 축축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새빨갛게 묻어나온 피.

다름 아닌 백선제에게서 묻어나온 피였다.

박태민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라 물었다.

“국장님…!”

“시찰국엔 아무 말 말게.”

백선제는 살며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시찰국장이 범죄자에게 당해서야 쓰겠나. 시민들이 불안해할 걸세.”

창백한 얼굴.

그러나 백선제는 작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시찰국장, 백선제.

수많은 범죄 단체들이 한국에 뿌리내리려 했으나 저 이름 하나에 모두 가로막혀 축출되었다.

세계에서 한국의 치안을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결정적인 이유.

존재만으로도 범죄자들을 억제하는 이.

그런 백선제의 얼굴 아래.

식은땀이 한 방울 떨어졌다.

창백한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난 아무런 이상도 없는 거야.”

백선제는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 * *

울창한 산 속의 풍경.

오주원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헐떡거리는 숨은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 같았다.

오주원은 가까스로 나무에 등을 기대앉을 수 있었다.

“지, 지부장님… 괜찮으십니까?”

그런 오주원의 앞으로 수하 하나가 다가왔다.

수하의 표정은 꽤나 볼만했다.

다 죽어가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표정.

아무래도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오주원은 손을 들어 왼쪽 얼굴을 매만졌다.

그러자 찐득하게 피가 묻어 나왔다.

왼쪽 얼굴 전체가 피로 범벅이 된 것 같았다.

그렇기에 왼쪽 시야가 시뻘겋게 물들어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정작 보이는 시야는 어두컴컴할 따름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왼쪽 눈 하나면 싸게 먹혔군.”

오주원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수하에게 물었다.

“교단은 어떻게 되었지?”

“지부장님 덕분에… 다, 다행히 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진행 중인 의식 또한 소생 불가할 정도의 타격을 입진 않았습니다.”

“시찰국의 가더들이 의식에 대해 알아챘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 또한 지부장님 덕분에 철저하게 숨길 수 있었습니다.”

오주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왼쪽 눈 하나면 싸게 먹혔군.”

이 정도면 굉장히 값싼 거래라 할 수 있었다.

“백선제….”

오주원은 그 이름을 한 번 되뇌었다.

실제로 맞붙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내심.

백선제에 대한 소문이 과장되었으리라 생각한 면도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과장된 것이 아니라 축소된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범죄자들이 활개 치지 못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

“끄윽…!”

눈가를 찢는 듯한 고통에 비명이 절로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한동안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왼쪽 눈도 눈이지만 힘을 과하게 사용한 터라 회복이 필요했다.

바로 그때.

“허억..! 허억…!”

한쪽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또 다른 오주원의 수하가 숨을 헐떡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다급한 표정이 어떤 일이 생긴 것만 같았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지, 지부장님! 조북천이…. 조북천이….”

수하가 헐레벌떡 오주원 앞으로 뛰어왔다.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수하가 황급히 말을 내뱉었다.

“조북천이 시찰국에…! 붙잡혔다고 합니다아…!”

“뭐…라?”

오주원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이제 기능을 상실한 왼쪽 눈 또한 본능적으로 크게 떠졌다.

조북천.

오주원 대신 맹시우를 처리하러 갔던 판데모니움의 골절급 간부.

정확히는 판데모니움 교단 소속의 간부였다.

그렇기에 조북천은 알고 있었다.

현재 판데모니움에서 진행 중인 일.

오주원이 왼쪽 눈을 희생하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던 의식.

그것이 무엇인지 조북천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조북천이 시찰국에 붙잡혔다는 말.

“맹시우에게…! 맹시우에게 당했다고 합니다…!”

오주원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세 번째.

맹시우라는 이름이 세 번째 들려왔다는 생각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 * *

띠링!

<초신속[超迅速](SS+) 숙련도 9.28%[+8.9%]>

떠오르는 스마트폰의 알림창.

무려 8.9%나 오른 숙련도.

찰나(刹那)의 세계에 닿음으로써 얻은 숙련도였다.

세상 모든 만물이 정지된 시공간의 세계.

새로운 능력을 개안한 기분이었다.

그 때문일까.

‘조금은 컨트롤이 가능해졌단 말이지.’

그 세계 속에서 헤르메스의 초신속[超迅速](SS+)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가 있었다.

그 덕분에 조북천을 잡는 데 있어 주변에 피해를 입히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최대 속도가 아니라니 원.’

온전한 헤르메스의 초신속[超迅速](SS+)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숙련도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직 10%도 되지 않는 속도.

헤르메스의 초신속[超迅速](SS+)은 찰나(刹那)의 세계 속에서도 자유로웠다.

‘헤라클레스가 마음 먹고 도망치는 헤르메스를 잡을 수 없다고 하더니.’

확실히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었다.

그야말로 초신속[超迅速](SS+).

여전히 시우가 통제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 때문일까.

시우는 손에 든 고깃 덩어리를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그리고는 멍한 표정의 이민정에게 말했다.

“다 죽어가던 거 살려 놓긴 했습니다. 내키진 않았지만요.”

이민정은 시우가 내던진 고깃덩이를 확인했다.

그래, 이건 확실히 고깃덩이였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깃 덩어리.

결코 조북천이라 생각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살아 있는 상태라고도 생각될 수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미약한 생명의 신호가 느껴지고 있었다.

곧 꺼질 것처럼 흔들렸으나 확실히 살아는 있었다.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으나.

고깃덩이 곳곳에 가느다란 침이 꽂혀 있었다.

시우는 집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사방으로 낭자한 피.

널브러진 시체들.

시우가 조북천을 잡고 돌아온 사이에 모두 정리한 듯 싶었다.

시우는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민정이야 뭐.

가더로서 이러한 상황을 수없이 경험해 왔을 터.

자잘한 상처들이 새겨져 있었지만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김이준은….

“괜찮냐?”

“아, 네. 저야 뭐….”

김이준은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 봐도 괜찮아 보였다.

잘린 왼팔도 재생한 건지 멀쩡하게 붙어 있었다.

시우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차분히 시선을 돌려 한채린을 확인했다.

‘...괜찮나.’

어딜 다친 건 아니었다.

셋 중에서 가장 멀쩡한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상처는 신체적인 부상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살며시 아래로 내린 시선.

‘충격이 컸나 보네.’

한채린의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살인(殺人).

악독한 범죄자들이라고는 하나 어쨌든 사람의 형상을 갖춘 이들이다.

몬스터를 베는 것과 사람을 베는 것.

그것은 정신적으로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하물며 그것이 첫 살인이라면야.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무뚝뚝해 보이던 한채린.

희대의 천재라 불리는 한채린.

‘음….’

그러나 아직은 어리고 여린 여자였다.

SH그룹이라는 배경과 천재적인 재능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

한채린은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녀린 여인이었다.

그리고 시우는 알고 있었다.

감정 하나 없는 로봇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그러하지 않다는 것을.

‘집들이에 와서 이게 뭐야.’

사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가장 큰 몫을 했다.

시우는 큼큼, 헛기침을 하고는 한채린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채린 씨.”

그러자 한채린이 살며시 고개를 들어 보였다.

그 모습이 꼭 사슴이 올려다보는 것만 같아 시우는 괜시리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시우는 한채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한채린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맞잡은 손.

한채린의 작은 떨림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채린 씨가 아니었으면 사람들이 크게 다쳤을 겁니다.”

한채린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꾹, 다문 입술.

한채린은 말없이 시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시우는 그런 한채린의 두 눈을 바라봤다.

감정 하나 없는 눈동자.

그러나 그 눈빛은, 미약하게나마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 감당할 수 없다면, 돌아서도 괜찮습니다.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거든요.”

무엇이든 싸워 이겨 내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때론.

애써 싸우지 않는 것이 승리를 향한 길일 수도 있는 법이다.

언젠가, 공자께서도 말씀하시길.

[우리가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그것이 포기나 체념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을 향한 선택임을 잊지 마라.]

[군자의 성장은, 반드시 무언가를 더 해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애써 이겨 내려 하지 마세요. 감정에 압도당하지도 마세요. 무엇이든. 채린 씨가 가장 중요합니다.”

한채린은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물끄러미 시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떨려 오던 한채린의 손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고마워요.”

그리고 들려온 한채린의 목소리.

무표정하던 한채린의 얼굴로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사실 미소라 부를 수 없는 아주 작은 미묘함에 불과했지만.

시우는 작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채린은 강한 여자다.

아직 경험이라는 불길에 달궈지지 않았을 뿐.

지금처럼 맞닥뜨린 벽에 무너져 좌절하지 않는다면.

한채린은 언제고 세계를 넘나드는 헌터가 될 여인이었다.

그러니 그때까지.

무사히 성장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스승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그러라고 매달 100억 원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우는 맞잡은 한채린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주위를 바라봄에.

“......”

“......”

벙쪄 버린 이민정과 김이준을 볼 수 있었다.

둘은 멍한 얼굴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시우와 한채린.

둘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혹시 둘이…?’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시우가 뭐라 말하려던 것도 잠시.

“우리 누나. 경쟁자가 너무 쎈데….”

김이준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왜일까.

한채린과 관련한 오해가 더욱 증폭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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