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공방 전체를 쩌렁쩌렁, 울려 오는 외침.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은 것일까.
이 정도면 기차 화통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오우거 폐 정도는 삶아 먹어야 얼추 비슷한 수준이었다.
시우는 정말로 깜짝 놀랐다.
놀라 바라본 곳.
그곳엔 오렐리안이 두 눈을 부릅! 뜨고 있었다.
쩌억, 벌어진 입은 숨길 수 없는 경악이 드러나 있었다.
갑자기 저 양반이 왜 저래?
싶은 생각도 잠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네요.”
무덤덤한 한채린의 통역이 들려왔다.
시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채린에게 물었다.
“뭐가 말씀이십니까?”
“그 주머니요.”
“주머니요? 아, 이거 말씀이십니까?”
시우는 손에 들고 있는 주머니를 살짝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크게 떠진 오렐리안의 두 눈이 주머니를 따라 움직였다.
시우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게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겁니까?”
한채린이 시우의 말을 통역하여 전달했다.
그러자 오렐리안이 ‘%&%*#@^’이라며 소리쳐왔다.
당연히 저렇게 말하지 않았다.
다만, 시우가 듣기엔 저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어떻게 금속 가공과 제련을 탄흔과 열성 취결 없이… 음.”
통역을 해 오던 한채린이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왜 그러나 싶은 것도 잠시.
“죄송해요. 전문 용어는 제가 잘 알지를 못해서.”
한채린이 살며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어째, 한채린도 오렐리안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한채린의 프랑스 어는 수준급.
아무래도 오렐리안이 프랑스인도 알아먹지 못할 온갖 전문 용어들을 남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쉽게 예시를 들어 광합성을 영어로 하면?
이 질문을 생각하면 한채린이 느끼는 당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
오렐리안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을 소리칠 뿐이었다.
* * *
삼강오륜(三綱五倫).
유교에서 강조하는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 인륜.
그 중에서 다섯 가지 인륜 중,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것이 있다.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는 뜻.
시우는 공자의 직속 제자다.
직속 제자 수준이 아니라 공자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었다.
그야말로 씹선비의 뿌리라 할 수 있겠다.
인륜은 곧 천륜이라.
시우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인륜을 거스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왜일까.
그 다짐이 근본적으로 뒤흔들리고 있었다.
“Absurdité!!!!!”
세상 떠나가라 들려오는 경악의 외침.
그와 동시에 파지직─!
시우의 손 위로 강렬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이런 젠장.’
시우는 속으로 곱씹으며 주머니를 확인했다.
그리고 역시나.
‘또 실패했네.’
아공간이 각인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시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시스의 현실조작[現實操作](SSS).
예상대로 아공간 기능을 각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보통 정신력을 요하는 일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숙련도도 0%인지라 제대로 각인이 되질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Absurdité!!!!!”
옆에서 들려오는 오우거의 고함 소리.
저 귀청 떨어지는 오우거의 괴성 때문에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았다.
시우가 뭐만 하면 자꾸 저렇게 경악으로 소리치는데.
‘진짜 오우거 폐라도 삶아 먹었나.’
정말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 때문인지 일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장유유서(長幼有序).
공자께서 특별히 강조하시는 인륜.
해서 가만히 두었다만, 이쯤 되니 참을 수가 없었다.
시우는 오렐리안에게 말했다.
“좀 가 주시면 안 됩니까?”
마음 같아서는 꺼져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장유유서(長幼有序)다.
인륜은 곧 천륜.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은 지켜야 했다.
물론 언제 노인 공격으로 변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미안하다고 하시네요. 정말 놀라워서 자기도 모르게 그랬다고 말씀하세요.”
한채린이 오렐리안의 말을 통역해 왔다.
그리고 바라본 오렐리안은 확실히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확실히 본의 아니게 한 기색이 물씬 풍겼다.
시우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바였다.
그 정도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몇 번째인지는 아시는 겁니까?”
이게 한두 번이어야지 말이다.
자그마치 수십 번이다.
저렇게 놀라고 사과하는 게 벌써 수십 번이란 말이다.
“원하는 게 대체 뭡니까?”
“시우 씨와 야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시네요.”
오렐리안과의 야금술 토론.
대장장이라면 꿈에서만 그리던 영광의 일이었다.
하지만 시우에게는 딱히?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고 나발이고.
시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지금 굉장히 바쁘다고 전해 주세요.”
“언제 끝나냐고 물으시는데요.”
“옆에서 방해하면 평생 안 끝날 것 같다고 말해 주세요. 그리고 이야기를 나눌 생각도 없다고도 전해 주세요.”
시우는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한가롭게 오렐리안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뭣 하러 그런 시간 낭비를 한단 말인가.
그 시간에 헤파이스토스 영상을 보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그렇기에 이쯤 되면 포기할 법하건만.
장인의 고집이라는 걸까.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냐고 여쭈세요.”
끈질기기는 엄청 끈질겼다.
“오리할콘을 주면 생각해 보겠다고 전해 주세요. 세미나 우승 상품 말고 하나 더.”
시우는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웬걸.
“그거면 되냐고 말씀하시는데요.”
오렐리안도 아무렇지 않게 답을 해보였다.
“그런데 오리할콘은 왜 원하냐고 물으세요.”
“제련해서 장비를 만들 생각입니다.”
시우는 가볍게 답을 해 보였다.
그러자 오렐리안이 두 눈을 크게 떠 보이며 물어 왔다.
“설마 오리할콘을 제련할 수 있냐고 말씀하세요.”
“아마도요?”
아마도가 아니라 확실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몰랐다.
그래서 그냥 아마도라고 퉁친 것에 불과했─.
“Absurdité!!!!!”
어우 씨, 깜짝이야.
시우는 귀청이 떨어지지 않았나 귀를 점검했다.
다행히 떨어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혹시 참관해도 되냐고 물으시네요.”
“음….”
옆에서 소리치는 게 거슬리긴 하다만….
오리할콘을 하나 더 준다면야.
“그러시죠.”
시우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렐리안이 화색을 띠며 말했다.
“지금 바로 돌아가서 가져오겠다고 하시네요.”
“...예?”
돌아가서 가져 와?
어딜? 설마 프랑스에?
“설마 지금 없는 겁니까?”
“그렇다고 하시네요.”
“세미나 우승 상품으로 가져온 거 아니었습니까?”
“한국에 급하게 온다고 안 챙겨 왔다고 하네요.”
“아.”
시우는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면 더더욱 오렐리안한테 볼 일이 없었다
“그럼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하죠.”
시우의 말에 오렐리안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휙, 공방을 떠나갔다.
“저도 그럼 가 볼게요, 시우 씨.”
한채린도 오렐리안을 따라 공방 밖으로 나갔다.
이제야 조용해진 공방.
시우는 비로소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 죄송해요 아저씨.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서팔광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렐리안과의 만남은 대장장이로서 영광스러운 일.
시우는 아니었지만 서팔광은 아니었다.
그런 오렐리안을 내쫓듯이 보내버렸으니 굉장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아니네. 나는 괜찮으니 개의치 말게.”
하지만 서팔광은 전혀 아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되려 무언가를 확신할 수 있었다는 듯 말을 이어 왔다.
“마스터 오렐리안과의 만남보다 자네와 같은 공방에서 일하고 있다는 게 보다 큰 영광이자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서팔광은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손을 휘휘, 내저을 뿐이었다.
* * *
오렐리안은 떠나갔지만 서팔광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마저 일을 봐야겠군.”
공방에 남아 밀린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시우는 그런 서팔광의 상태를 살폈다.
신의술[神醫術](S+)로 살펴본 바.
‘큰 무리는 없어 보이네.’
골병이 들 정도의 부상은 아니었다.
마냥 쉬는 것보다 조금씩 몸을 움직여주는 것이 더 좋아 보였다.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알겠네.”
서팔광의 답을 끝으로 시우는 다시금 주머니로 시선을 돌렸다.
“후우…!”
시우는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이시스의 현실조작[現實操作](SSS).
사기적인 능력이나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암전된 시야.
오감 중 시각이 차단되며 다른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시우는 벼려진 감각을 주머니에 집중했다.
그와 동시에 통찰력(S+)의 힘을 끌어내었다.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힘, 통찰력(S+).
주머니 속, 공간이 뚜렷하게 인지된다.
공간이란 물질이 존재하고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
이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법칙.
‘공간을 확장한다.’
그러한 공간을 확장한다는 것.
그 말은 세계의 법칙을 비튼다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렇기에 불가능한 일이다.
엄격한 세계의 법칙은 그러한 이질적인 현상을 허락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시스의 현실조작[現實操作](SSS)은 그 법칙 자체를 개변시키는 능력.
파츠츠츠─.
시우의 손 앞으로 푸른 빛이 일렁거렸다.
이윽고 머리가 급속도로 뜨거워진다.
일순간 현기증이 일며 정신이 아찔해진다.
수많은 정보와 개념들이 흩어졌다 모여지길 반복한다.
어떤 강한 반발감이 전신으로 느껴진다.
시우를 둘러싼 공간.
그것이 적의를 품고 시우를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끄으윽!”
신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딸랑.
경쾌한 종소리가 들리며 공방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다, 당신들은…?”
이윽고 당황하는 서팔광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길래 저러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신경 쓸 여력이 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반발감이 강해지며 시우를 압박해 온다.
우주적 반동.
시우는 그 개념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다른 곳으로 신경을 돌릴 정신력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랬다간 이 반발감에 그대로 삼켜질 것만 같았다.
시우는 온 정신을 주머니에 집중했다.
“으윽…!”
신음이 끊임없이 비집어 나왔다.
주륵, 입가로 피가 흘러내리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내뻗은 손이 파르르, 떨려 온다.
정신이 아찔해지며 몸이 휘청거렸다.
바로 그 순간.
띠링!
<현실조작[現實操作](SSS) 숙련도 0.8%[+0.8%]>
스마트폰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우는 그때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허억…! 허억…!”
거칠어진 숨이 헐떡거렸다.
전신을 지배하는 탈력감.
정말이지 온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헤라클레스의 PT를 받고 난 직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헤라클레스의 PT 때보다 더 힘들었다.
‘고작 공간 확장에 따른 반동이 이 정도라니….’
그렇다면 현실 개변과 같은 조작은 어떠하다는 걸까.
진짜로 존재가 붕괴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냥 사기 능력이… 아니었네.”
시우는 허탈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뭐.
숙련도를 올리다 보면 차차 나아지겠지.
시우는 완성한 아공간 주머니를 바라봤다.
“딱히 달라진 건 없네.”
겉보기로는 그냥 평범한 주머니였다.
하지만 그 기능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시우는 주머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쑤우욱.
어깨까지 거침없이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손으로 안쪽 공간을 휘적휘적, 거렸음에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손끝으로 감각을 집중하자 안쪽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었다.
“대충 축구장 정도 되는 것 같네.”
이 정도면 당장 쓰기에 무리가 없었다.
무리가 없기는 커녕 아주 요긴했다.
더 이상 공간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숙련도를 올리면 더 넓힐 수도 있는 것 같고.”
시우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개고생을 하며 만든 보람이 있었다.
시우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마, 말도 안 돼요!!!”
“지금 대체 무슨!!!”
공방 한쪽에서 경악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도 오우거 폐를 삶아 먹은 듯한 외침이었다.
설마 오렐리안인가?
싶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프랑스에서 벌써 돌아올 리가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들려온 건 분명한 한국어였다.
시우는 의문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응?”
저도 모르게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시우의 눈앞에 보이는 풍경.
정확히는 일련의 사람들이었다.
4명.
금천규, 이시윤, 이하린, 유한나.
한국에 존재하는 6명의 S급 헌터 중 4명.
S급 헌터들이 공방에 방문해 있었다.
그래서일까.
“왜 당신들이 여기에…?”
시우는 이번엔 또 뭔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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