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번쩍!
빛이 터져 나오며 시우가 빠르게 공간을 도약했다.
75분의 1초, 찰나(刹那).
이 찰나의 시공간 속.
움직임을 허락 받은 존재는 오로지 시우뿐이다.
그러나.
파앗!
일순간 문태범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파앗!
한쪽에서 문태범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끄으윽…!”
다시 모습을 드러낸 문태범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과도하게 그리고 급작스럽게 힘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태범은 인지했다.
시우가 거니는 찰나의 세계.
이 세계를 인지하고 반응했다.
시공간 확장.
우려대로 문태범은 시공간을 활용하는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다.
문태범이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마치 공간의 축을 붙잡듯.
문태범이 뻗은 손을 강하게 움켜 쥐며 잡아 당겼다.
그와 동시에 꽈드드득!!
시우를 담은 공간이 괴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강력한 공간 왜곡 현상.
환계 마법인가?
아니, 아니다.
시우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이건 공간 자체가 왜곡되어 비틀리고 있었다.
그리고 공간은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법칙.
본래라면 이렇게 직접적으로 공간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하다.
공간의 법칙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다루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럼에도 문태범은 공간을 비틀었다.
공간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시우는 문태범의 수준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꽈드드드득!
공간이 일그러지며 깡통이 우그러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공간 자체가 우그러지는 현상에 시우 또한 그 힘에 휘말린다.
시우는 헤르메스의 초신속[超迅速](SS+)을 터트렸다.
번쩍!
비현실적인 현상을 가로 지른다.
왜곡된 세계를 빠르게 벗어난다.
공간이 접히듯.
순식간에 문태범과 가까워진다.
바로 그 순간.
“괴물… 같은 새끼!”
문태범이 악에 받친 얼굴로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문태범의 형체가 흐릿해진다.
흐릿해진 형체는 분열하여 둘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둘로 분열된 형체는 다시 넷, 여덟.
계속해서 분열한다.
감각을 속이는 현혹.
눈을 현혹하는 환술.
환영 마법의 환(幻)이 시우를 어지럽혀 온다.
분열된 문태범들이 일시에 손을 휘젓는다.
파직! 파지직─!
검붉은 뇌전이 튀어 오르며, 사방으로 셀 수 없는 번개가 피어올랐다.
분영들이 피워올린 마법.
본래라면 환영에 지나지 않았다.
환영은 실체가 없는 존재.
그러나 문태범은 아니었다.
사출되는 뇌전 하나하나가 실체를 갖고 있었다.
꽈르르르릉!!
무수히 많은 번개가 오직 시우만을 노리며 쏘아진다.
검붉은 뇌전들이 공간 전체를 드리웠다.
사각 따위는 없다.
공간 전체를 뒤덮는 뇌전의 공세 앞에 피할 곳은 없다.
그렇다면.
시우는 크게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시우의 발에 휘감겨 올려왔다.
그리고 다시.
시우는 들어올린 오른발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쩌어억!
거대하고도 포악한 용의 아가리가 앞선 풍경을 집어 삼킨다.
헤라클레스 신투술(神鬪術).
제 1식(第 一式).
낙룡각(落龍脚).
콰아아아아─!!
사방을 뒤덮은 뇌전의 다발이 모조리 삼켜져 소멸한다.
시우는 빠르게 문태범의 위치를 찾았다.
그리고 공간 한쪽.
문태범은 어느 샌가 게이트 너머로 몸을 밀어 넣고 있었다.
고민 같은 걸 할 시간이 없다.
시우는 헤르메스의 초신속[超迅速](SS+)을 극한으로 터트렸다.
주변의 풍경이 엿가락처럼 쭈욱, 늘어진다.
극한의 속도는 마치 공간을 도약하는 것처럼 인지된다.
시우는 문태범을 향해 손을 앞으로 뻗었다.
바로 그 순간.
“이미 늦었어.”
문태범의 비아냥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시우 앞으로 무언가 툭, 튀어나왔다.
마스터 오렐리안.
문태범은 오렐리안을 방패 삼아 내던졌다.
시우는 문태범 대신 오렐리안을 붙잡았다.
초신속의 속도를 줄이며, 오렐리안을 안전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잘 있으라고.”
문태범이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한채린을 데리고 그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시우는 사라지는 문태범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이미 게이트는 닫혀 버린 후였다.
그리고 닫힌 게이트는 다시 열 수가 없다.
하지만 아직이다.
아직 마력의 잔재가 남아 있다.
마법은 반드시 어떠한 흔적을 남긴다.
마흔(魔痕).
그것을 역추적할 수 있다면 잡을 수 있다.
문태범이 도망친 곳이 어딘지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지 도망친 위치를 찾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단순히 위치를 찾는 것이라면 흑돌이도 가능하다.
그리고 그건 시간이 걸린다.
흔적을 추적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문태범의 정신지배.
한채린은 이미 문태범에게 정신지배를 많이 받은 상황이다.
그리고 정신이 무너져 버리면 끝이다.
시우도 정신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
육체적인 손상은 신의술[神醫術](S+)로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신적인 손상은 아니었다.
한 번 붕괴된 정신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그러니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
지금 당장.
문태범을 따라붙어야 한다.
시우는 살며시 두 눈을 감았다.
이시스의 현실조작[現實操作](SSS).
하지만.
“쿨럭…!”
불가…하다.
숙련도가 낮아도 너무 낮다.
또한 마력의 흔적이 얽히고설켜 있다.
문태범은 마흔을 꼬아 추적을 불가하게 만들었다.
이시스의 현실조작[現實操作](SSS)은 그 꼬인 마흔도 추적이 가능하나, 현재의 시우로서는 무리다.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대가를 감당할 수가 없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시우의 존재가 붕괴되어 소멸한다.
바로 그때.
“이, 이게 무슨…!”
한쪽에서 경악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일련의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해태 문양이 새겨진 검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시찰국의 가더들.
그리고 그들의 맨 앞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S급 헌터들.
“다, 당신은…?”
“그때 공방에서의….”
시우를 발견한 S급 헌터들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왜 시우가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또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설명이 필요해 보였지만….
시우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설명할 시간조차 없었으니까.
시우는 앞선 S급 헌터들에게 물었다.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까?”
정확히는 유한나와 이시윤.
S급 헌터이자 두 천재 마법사에게 말했다.
“놈이 채린 씨를 데리고 도망쳤습니다.”
“예?”
“그 말씀은….”
유한나와 이시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세히 설명할 시간 없습니다.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실 수 있으십니까?”
“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놈을 따라가야 합니다.”
시우의 말에 유한나와 이시윤의 고개가 다시금 기울어졌다.
시우는 재차 말을 이었다.
“놈이 텔레포트로 도망쳤습니다. 마흔을 추적하여 도망친 곳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미 닫혀 버린 공간은 텔레포트로 이어 붙을 수 없어요. 웜홀의 이론을 이용한다면 가능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에요.”
“또한 마흔을 추적할 수 있지만, 정확한 공간 좌표를 계산할 수 없습니다. 아쉽지만… 따라 붙는 건 불가합니다.”
안다.
복잡한 마법 이론은 모르나 고작 흔적 정도로 따라붙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흑돌이조차 흐름을 추적할 수 있을 뿐이었다.
정확한 공간을 도약해 단번에 추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가 옆에서 보조하겠습니다.”
“네, 네?”
“그게 무슨…?”
이것저것 설명할 시간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력의 흔적은 옅어지고 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더욱더 힘들어질 뿐이다.
“시간이 없습니다!”
시우는 소리쳤고.
유한나와 이시윤이 살짝, 몸을 떨어 보였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뭐 때문에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해 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손을 앞으로 뻗어 마력을 끌어올렸다.
콰아아아─!
서로 다른 두 마력이 엉킨다.
마력의 바람이 일며 머리가 휘날린다.
그리고.
시우 또한 살며시 두 눈을 감았다.
이시스의 현실조작[現實操作](SSS).
시우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너무도 많은 법칙을 개변시켜야 했기 때문.
하지만 두 천재 마법사가 도와 준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두 사람이 공간을 열고, 비집는 것을 대신해 준다면.
그리하여 단순히 두 공간을 이어붙이는 것 정도라면….
원래는 그 마저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닫혀 버린 공간.
애시당초 공간은 이어 붙일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끄으윽…!!”
불가능한 세계의 법칙을 가능한 법칙으로 개변한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려 왔다.
심장은 터질 것처럼 요동쳐 온다.
우주적 반동.
주륵.
시우의 입가로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입가로 흘러나오는 붉은 피가 아래로 떨어져 대지를 적셨다.
이성은 당장이라도 그만두라 명한다.
온몸을 짓누르는 반발감에 본능이 강력히 경고한다.
죽는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시우는 떠나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았다.
그리고.
띠링!
<현실조작[現實操作](SSS) 숙련도 2.1%[+1.3%]>
“여, 연결했어요…!”
스마트폰의 알림음과 함께 유한나의 외침이 들려왔다.
“말도 안 돼…. 대체,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
이시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시우는 차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휘청.
아찔한 현기증에 몸이 기울어진다.
고작 공간을 이어 붙이는 것뿐이거늘.
시우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을 수 있었다.
우우웅.
공간 사이로 열린 게이트.
이로써 도망친 문태범을 따라붙을 수 있었다.
“먼저… 가십시오. 쿨럭! 뒤 따라… 가겠습니다….”
하아…! 하아…!
시우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정말이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기절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다, 당신은 대체….”
유한나와 이시윤은 경이로운 눈으로 시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빨리 가지. 한채린 양을 구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들려온 금천규의 목소리.
“가더분들은 여기서 현장을 정리하며 마스터 오렐리안을 보호해 주게나. 이 너머는 우리가 해결하지.”
금천규는 그렇게 말하며 게이트 너머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 뒤를 이하린이 말없이 따라붙었다.
유한나와 이시윤은 조금 늦게 그 둘을 따라갔다.
* * *
문태범은 십년감수한 심정이었다.
아니, 십년이 무어란 말인가.
백 년, 천 년을 감수해도 이 정도는 아닐 터였다.
“오렐리안을 놓친 건 아쉽긴 하지만….”
아니.
사실 아쉽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 말도 안 되는 놈.
생각만 해도 끔찍한 괴물.
그 괴물에게서 살아 돌아왔다는 것.
오렐리안을 놓친 건 전혀 아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채린을 데려왔으니까.”
문태범은 한채린을 바라봤다.
한채린의 두 눈은 흐리멍텅했다.
눈은 마음을 담는 창이라 했던가.
초점 없는 눈동자는 정신이 엿보이지 않았다.
정신이 거의 지배 당했다는 증거다.
정신이 거의 붕괴되었다는 방증이다.
이제 곧 한채린은 문태범의 명령에 복종하는 인형이 될 터.
“생각지도 못한 곳에 숨어 있었─ 쿨럭!”
문태범의 입가로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몸이 정말이지 말이 아니었다.
과도한 힘을 사용하며 발악했기 때문이었다.
사라진 왼팔은 그야말로 애교 수준이었다.
내부의 마력 회로가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마법사로서 치명적인 부상.
자칫 잘못하면 평생 마력을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역시나.
아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커헉!”
살아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완벽히 벗어날 수 있었다.
공간은 닫혔고, 놈은 이곳에 따라올 수 없─.
바로 그때.
쩌어억─!
문태범의 뒤편으로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
“무, 무슨…!”
그곳엔 공간이 벌어져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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