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123화 (123/250)

122화.

커다란 짐승이 눈동자를 뜬 것만 같은 게이트의 형상.

저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공간을 이어… 붙였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확률로 표현하면 0%.

존재할 수 없는.

존재해서도 안 되는 현상이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문태범의 두 눈이 경악으로 뜨여졌다.

그런 문태범의 시야 속.

일련의 사람들이 공간을 비집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금천규, 이하린, 유한나, 이시윤.

한국에 존재하는 6명의 S급 헌터들 중 4명.

가히 국가 전력이라 말할 수 있는 이들.

하지만 문태범의 눈은 오로지 한 존재만을 찾고 있었다.

놈은?

설마 놈도 온 것인가?

문태범의 두 눈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없었다.

다행히도 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크큭… 크크큭…!”

문태범은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뭐가 우습지? 실성이라도 한 거야?”

문태범의 웃음에 이하린이 어처구니 없는 투로 물어 왔다.

문태범은 흐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당연히 우습지. 고작 너희들 따위가 나를 어찌해 보겠다고 달려온 꼴이 말이야.”

“실성한 게 맞나 보네.”

이하린이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문태범이 평범한 수준이 아님은 인정한다.

하지만 여기 모인 이들 또한 평범하지 않았다.

평범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한국에 6명밖에 없는 S급 헌터.

그 중 4명이 있는 상황이다.

이 세상 그 어떤 누구도 4명의 S급 헌터들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제 발로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민 꼴이란.”

문태범이 비웃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왜 여기로 왔다고 생각해?”

판데모니움의 파열급 간부, 문태범.

수준 높은 마법사.

“여긴 오롯한 나의 영역이거든.”

키이이이잉─!!!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동이 터져 나왔다.

수많은 마법진들이 공간 전체에 새겨지며 떠올랐다.

“증폭 마법진이에요!!”

유한나가 소리쳤다.

증폭 마법진.

마법의 위력을 몇 배나 증가시키는 마법진.

그런 증폭 마법진이 주위로 무려 수백 개가 떠올라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이게…! 증폭 마법진은 하나조차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인데!”

“말했잖아. 여긴 나의 영역이라고. 마법사의 던전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는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마법사의 무대.

이곳은 오롯한 문태범의 영역이자 공간이었다.

사아아아─!!

문태범의 두 눈이 검붉게 일렁거렸다.

정신지배의 마력이 증폭 마법진을 거쳐 이 공간 전체 내리꽂혔다.

공간 자체가 하나의 정신지배의 영역이 되었다.

“으으윽!”

“끄아윽!”

저항할 수 없는 정신의 파장이 S급 헌터들을 옭아매었다.

이 힘은 저항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또한 피할 수 있는 종류도 아니다.

정신지배는 필중(必中)의 능력.

하물며 그 힘이 증폭되고 증폭되었다.

그렇기에 이건 감히 말할 수 있었다.

13인의 영웅이라도 감당할 수 없다고.

이곳에서 문태범의 정신지배는 한 단계 초월했다.

지배(支配).

이 영역의 모든 것은 문태범의 지배 하에 놓인다.

공기의 흐름.

바람의 속도.

공간과 시간.

세상 모든 법칙들이 문태범의 지배 하에 놓인다.

이 영역 안에서 문태범은 신(神)이다.

문태범이 꿇으라면 꿇어야 하고.

죽으라면 죽어야 한다.

문태범은 소리쳤다.

“모두 죽─.”

바로 그때였다.

아직 열려 있는 공간 너머.

한 사내가 문태범에게 쏘아져 왔다.

맹한 분위기의 놈팽이.

놈이다.

그 괴물 같은 놈.

하지만 문태범은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기선 두렵지 않았으니까.

여기서만큼은 저 놈은 괴물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놈이 괴물이라도 상관 없었다.

이 절대 영역에서 문태범은 신(神)이다.

신(神) 앞에서 괴물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하다.

그러니 놈이 이 영역에 발을 들였다는 건….

발을 들였다는 건….

발을… 들였다…는 건…?

덜컥.

문태범의 몸이 굳어 버렸다.

스쳐 가는 하나의 생각.

문태범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든다.

이 공간은 문태범의 영역이다.

증폭진으로 강화된 정신지배의 영역.

또한 정신지배는 필중(必中)의 능력이다.

반드시 명중한다.

그 어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그 말은 즉.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존재는 정신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공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필중(必中)의 정신지배는 해당 존재를 잠식한다.

그리고 시우는 이 정신지배의 공간에 발을 들였다.

그렇다는 건 즉.

문태범이 시우의 정신을 건드렸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시우라는 존재를 지배하려 들었다는 뜻이다.

화아아악!

문태범의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어 간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공간.

[분명 방해하지 말라고.]

죽음의 사신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청각을 마비시키는 공포.

문태범은 그 자리에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항조차 무의미한 압도적인 존재감이 짓눌러 온다.

죽음의 사선 위에 서 있는 것만 같은 착각.

그 어떠한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정신이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싸늘한 눈빛이 문태범을 향한다.

근육은 빳빳하게 굳어버리고.

다가오는 공포가

죽음을 윽박지른다.

그리고.

[경고했을 텐데.]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문태범이라는 존재가, 갈가리 찢겨진다.

* * *

푸화화학─!!!

문태범의 전신으로 어마어마한 피가 솟구쳐 올랐다.

끄륵, 끄르륵…!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털썩.

문태범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그와 동시에 파장창─!

공간 전체에 새겨졌던 증폭 마법진이 일시에 깨어졌다.

지배(支配)의 마력 또한 완전히 힘을 잃어 사라져 갔다.

“...헙!”

“하흣…!”

지배를 당했던 S급 헌터들의 정신이 되돌아왔다.

되돌아온 정신이 현 상황을 빠르게 인지했다.

하지만.

“갑자기 왜…?”

“이, 이게 무슨…?”

어느 것도 이해되는 것이 없었다.

정확히는 무슨 상황이 펼쳐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보이는 풍경.

푸화화학!!

푸화학!!

바닥에 허물어진 문태범의 몸에서 끊임없이 피가 터져 나왔다.

혈관 속의 피가 갇혀 있기 싫다는 듯 피부를 비집고 밖으로 솟구쳐 올랐다.

생기를 잃은 몸이 들썩거렸다.

눈, 코, 입, 귀.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부릅, 떠진 문태범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으… 아으으으…!”

문태범이 신음을 내뱉으며 꿈틀거렸다.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붙잡아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털썩.

문태범은 자꾸만 자리에 주저앉았다.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었다.

“오, 오, 오, 오, 오, 오지 마!!!!”

문태범이 잔뜩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숨소리는 공포 질려 헐떡거려왔다.

마치 미쳐 버린 것… 같았다.

이성이 파괴된 백치.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공포.

오직 본능의 공포만이 문태범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문태범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존재.

터벅.

뒤쪽에서 차분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시우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문태범이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오지 말라고!! 오지 마!! 오지 마아아아!!!”

문태범은 앉은 자세로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공포에 질려 벌벌 떨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그 모습이 정말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정말로 제대로 된 사고 활동을 하지 못하는 백치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제발… 제발 오지마!!!!”

어떡해서든지.

시우로부터 멀어지려 할 뿐이었다.

시우는 그런 문태범을 신경 쓰지 않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한채린에게 다가갔다.

“채린 씨.”

한채린은 답이 없었다.

영혼이 빠져버린 사람처럼 멍하니 정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흐리멍텅한 두 눈에는 초점이 보이지 않았다.

정신의 붕괴.

한채린의 정신은 이미 상당수 붕괴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아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늦지는 않았다.

붕괴 직전의 상태이나 아직은 버티고 있었다.

시우는 한채린을 살며시 끌어 안았다.

품에 안긴 한채린은 힘이 없었다.

그리고 또 너무나도 가녀렸다.

“채린 씨.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하려 마세요. 너무 많은 것을 담으면 결국은 검게 물들 뿐입니다.”

시우는 품에 안긴 한채린에게 말했다.

시우는 한채린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한채린이 어떤 정신적 데미지를 받고 있는지는 모른다.

어떤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시우가 그간 지켜본 한채린.

시우가 가르치며 바라본 한채린은 혼자서 모든 걸 감내하려 하고 있었다.

“때로는 덜어 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외면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SH그룹의 막내 손녀딸.

SH그룹이 헌터 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교두보.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그녀.

희대의 재능러.

시우는 한채린이 어떠한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왔는지는 모른다.

알 수도, 알 방법도 없다.

하지만.

“세상이 채린 씨를 바라보는 시선이 꼭 채린 씨의 현실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한채린은 한채린이다.

마냥 약하지도, 마냥 강하지도 않은.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아직은 어리고, 여린 여인.

“인생의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공들여 맞춰 가며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그깟 인생의 퍼즐 따위.

“그냥 쏟아 버려도 됩니다.”

완성되지 않아도 된다.

무너져도 된다.

“채린 씨를 먼저 생각하세요. 희생 같은 건 집어치우고. 채린 씨를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세요. 그래야 다른 사람도 생각할 수 있는 겁니다.”

군자심[君子心] - 인의예지[仁義禮知](SSS).

시우가 가진 정신의 힘.

“이기적으로 굴며 사람들에게 미움 받을 용기도 필요한 법입니다. 모든 이에게 사랑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정신의 힘이 조금 이나마 전달되기를.

그로써 붕괴되는 한채린의 정신을 보호해 주기를.

“예수님조차 모든 이에게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시우는 끊임없이 한채린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순간.

“시, 시우…씨?”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히 한채린을 확인하자 흐리멍텅했던 한채린의 두 눈에 서서히 초점이 돌아왔다.

바로잡힌 초점이 정확히 시우에게 향했다.

“시우 씨가 왜 여기에…?”

“하아….”

시우는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행히.

한채린의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지 않았다.

정신이 붕괴되면 시우도 어찌할 수 없었거늘.

“정말 다행입니다.”

시우는 비로소 웃음을 지어 보일 수 있었다.

한채린은 멍한 얼굴로 시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시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문태범을 바라봤다.

웃음 따위는 진즉에 사라진 후였다.

차가운 분노.

그것만이 문태범을 향할 뿐이었다.

“히끅…! 히끅…!”

시우의 눈빛을 마주한 문태범이 딸꾹질을 해 보였다.

공포에 질린 얼굴에는 저항과 반항의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오지 마!! 오지 마!!!! 제발… 제발… 제발 오지 마!!!”

오지 말아 달라는 애걸이자 애원.

그것만이 문태범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우는 개의치 않았다.

터벅, 문태범에게 다가갈 뿐이었다.

그렇게 시우가 끝내 문태범 앞에 서 보였을 때.

끄르륵…!

문태범에게서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까뒤집으며 입에 게거품이 끓어올랐다.

그렇게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시우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문태범 앞에 서 보인 것이 전부였다.

그렇다는 것 즉.

시우라는 공포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시우라는 존재만으로 문태범의 정신을 파괴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이던가?

4명의 S급 헌터는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

“......”

“......”

“......”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정확히는 믿기지가 않았다.

직접 겪어 봤기에 알 수 있었다.

문태범이 얼마나 뛰어난 마법사인지를 말이다.

그런데 지금 무슨….

4명의 S급 헌터들은 도무지 이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시우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S급 헌터들을 한명 한명 바라봄에.

“아직 일이 하나 남아 있는데. 좀 도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시우가 의미심장한 말을 해 왔다.

* * *

서울 외곽에 위치한 한 호텔.

오주원은 스마트폰으로 기사 속보를 확인했다.

<오렐리안과 한채린의 극적인 구출!>

<피해 상황 전무! 세계에서 쏟아지는 찬사.>

<프랑스 대변인. 한국의 발 빠른 대처에 감사를 표함.>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기사글.

이 수많은 기사글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문태범이 당했다라….”

오주원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 순간.

“지, 지부장님!!”

호텔 방문이 열리며 수하가 다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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