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어떻게 되었지?”
오주원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하에게 물었다.
수하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문태범이 맹시우에게 당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수하의 얼굴에는 불신의 기색이 엿보였다.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주원도 솔직히 그랬으니까.
판데모니움의 파열급 간부, 문태범.
문태범이 어떤 존재인지를 오주원은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우습게 보였다고는 하나, 오주원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것부터가 평범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문태범이 맹시우에게 당했다는 것.
“다시 한 번 제대로 조사를 해 보겠습니다.”
이건 도무지 믿을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수하는 그 말을 내뱉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되었다.”
이어진 오주원의 말에 그 걸음을 멈춰 섰다.
오주원은 소파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맹시우.”
확실히… 평범하지 않은 놈이었다.
판데모니움을 상대로 경고를 한 자.
실로 시건방지기 짝이 없으나 그 시건방에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시건방이 도움이 되었군.”
자신에게 반기를 들던 파열급 간부, 문태범.
맹시우 덕분에 그 문태범을 손 안 대고 처리할 수 있었다.
또 그뿐이랴.
“경기 지역의 판데모니움은 어떻게 되었지?”
“문태범이 처리된 것이 사실이라면… 구심점을 잃었으니 지부장님이 흡수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겁니다.”
오주원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어부지리(漁夫之利).
그야말로 앉은 자리에서 이득만 챙긴 셈이지 않은가.
오늘은 왜인지 왼쪽 눈의 흉터가 그리 아려 오지 않았다.
그 순간.
벌컥!
“지, 지부장님!! 크, 큰일 났습니다!!”
갑자기 호텔 방문이 열리며 한 수하가 소리쳐 왔다.
노크도 하지 않고 마음대로 들어온 수하.
그 불경한 태도에 오주원의 눈이 살짝, 일그러졌다.
하지만.
“겨, 경기 지역의 판데모니움이…! 모두, 모두 쑥대밭이 되었다고 합니다!!”
“뭐라?”
충격적인 말에 오주원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같이 있던 수하 또한 놀란 눈을 떠 보였다.
“경기 광주, 수원, 파주, 부천, 안산 등 경기 지역에 위치한 모든 판데모니움이 바, 박살이 났다고 합니다…!!”
수하는 숨을 헐떡거리며 말을 마쳤다.
그리고 저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경기 지역 전체가 뿌리 뽑혔다…?”
경기 지역의 판데모니움이 아작이 났다.
그로써 오주원이 흡수할 세력.
그 세력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동시에 한국 판데모니움의 전력이 절반 가량 날아갔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 무슨….”
오주원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도심 곳곳에 숨어있는 판데모니움.
그런 판데모니움의 본거지는 철저한 어둠 속에 숨겨져 있다.
최상등급 인식 저해 장치는 그 위치를 완벽하게 숨겼으니까.
“가더들과 더불어 S급 헌터들이 대대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S급 헌터가 나선 것은 의외다.
그럼에도 이해가 안 된다.
S급 헌터라도 최상등급의 인식 저해 장치를 꿰뚫는 것은 불가했으니 말이다.
아니, 어떻게 한두 개 정도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경기 지역 전체를 발본색원했다?
단언할 수 있었다.
그건 절대. 절대로 불가하다.
그렇다는 건 하나.
“아무래도 문태범이… 위치를 발설한 것 같습니다.”
경기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문태범.
문태범은 당연히 경기 지역 판데모니움의 모든 위치를 모두 알고 있다.
그런 문태범이 발설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금제가 걸려 있을텐데?”
판데모니움의 위치 발설은 금제로 억압되어 있다.
위치를 발설하려 하면 죽음에 이른다.
간부라 해도 예외는 없었다.
판데모니움 일원이라면 모두가 이 금제에 걸려 있다.
그렇다는 건 즉.
“금제를 풀었다?”
금제를 풀었다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하지만 이 역시나 불가하다.
금제는 오직 시전자만이 풀 수 있는 종류.
결단코 제 3자가 간섭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것밖에 가능성이 없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조북천의 금제도 풀렸다?”
교단의 간부였던 조북천.
조북천은 시찰국에 발설하면 안 되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오주원은 판을 키워 조북천을 죽이려 했던 것.
하지만 이러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조북천의 금제가 풀렸다면 이미 정보는 발설된 것이니까.
조북천을 죽인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일이다.
그냥 오주원이 이용만 당한 꼴이나 다름 없었다.
판을 키운 의미도 없었다.
되려 손해만 잔뜩 짊어진 것이다.
“대체 누가…?”
누군가 오주원의 계략을 완벽히 꿰뚫었다.
이건 오주원의 계략을 꿰뚫은 정도가 아니다.
오주원을 손바닥 위에 놓고 조종한 수준이다.
“대체 누가…?”
그런데 누가 이 모든 수를 읽었단 말인가.
대체 어느 누가 이걸….
“아무래도 맹시우…인 것 같습니다.”
맹시우.
오주원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오주원은 침착을 유지하며 물었다.
맹시우가 이번 일의 핵심인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오주원의 계략을 간파했다는 뜻은 아니다.
맹시우가 이 모든 수를 읽고 판을 다시 짰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
수하가 주저하며 말을 걸어 왔다.
“맹시우의 유투브 채널에… 영상 하나가 업로드 되었습니다.”
“유투브 채널?”
오주원이 묻자 수하가 품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었다.
그리고 화면을 몇 번 터치하더니 오주원에게 건네었다.
캐주얼한 캐릭터.
캐릭터 주변으로 그려진 뚝배기들.
<세공남 채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세공남 채널.
보아하니 맹시우가 운영하는 유투브 채널인 것 같았다.
오주원은 최근 업로드 영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10분 전에 올라온 영상 하나가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새까만 배경의 썸네일.
3초도 되지 않은 짧은 길이의 영상.
오주원은 해당 영상을 확인했다.
짧은 길이만큼이나 영상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그저 딱 한 마디.
[다음은 너다.]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말이었다.
그렇기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상이었다.
그러나.
꽈드득!
오주원은 손에 든 스마트폰을 부숴 버렸다.
깨어진 파편이 오주원의 손바닥에 박혔다.
뚝, 뚝.
손바닥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오주원은 개의치 않았다.
움켜쥔 주먹만이 파르르, 떨릴 뿐이었다.
“맹시우.”
오주원은 나지막히 그 이름을 되뇌었다.
이로써 오주원의 귀에 다섯 번째 들려온 이름.
아니, 더 이상의 숫자는 의미가 없다.
이제는 오주원의 머릿속에 깊게 각인된 이름.
꽈드드득!
“맹시우!!”
오주원의 분노가 호텔 방안 전체에 드리웠다.
* * *
SH그룹의 사옥 최상층.
100평이 넓은 널찍한 공간과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통짜로 된 유리 너머로는 서울의 전경이 전부 비쳐 보였다.
그리고 그 풍경 속.
금천규는 지금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었다.
헌터 관리국의 국장이자 협회장, 금천규.
그런 금천규뿐만이 아니었다.
이시윤, 유한나, 이하린.
다른 S급 헌터들 또한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라 말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별반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한 명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정말 고맙소.”
SH그룹의 회장, 한태산.
대한민국 정계와 재계를 움켜쥔 거물 중의 거물.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납치되었던 한채린.
한태산은 한채린의 할아버지 되는 인물이었다.
“덕분에 채린이가 무사할 수 있었다오.”
한태산이 인자한 미소로 말해 왔다.
그래서일까.
“저… 그게.”
“이게 참….”
4명의 S급 헌터들은 정말이지 난감한 심정이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만 하시오. 내 뭐든지 들어주겠소이다.”
한태산은 정말이지 뭐든 말만 하라는 듯 말해 왔다.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S급 헌터가 누구란 말인가.
한국에 6명밖에 없는 최상위 헌터다.
인간의 정점이라 불리는 이들이 바로 S급 헌터.
그런 S급 헌터들의 요구 사항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S급 헌터들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이는 없다고 봄이 옳았다.
그러나 상대가 한태산이다.
그리고 한태산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무엇이든 말만 하면 정말 뭐든지 들어줄 수 있었다.
SH그룹이란 그러한 기업이었으니까.
세계적인 기업의 총수라는 지위는 분명 그러했으니까.
그렇기에 이건 기회라고도 할 수 있었다.
S급 헌터라고 필요한 것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필요한 것이 많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구하기 어렵고 또 비쌀 뿐이다.
“그게….”
“어….”
특히나 유한나와 이시윤은 더욱 그러했다.
마법사들은 연구다 뭐다.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나 다름 없었다.
S급 헌터의 수입으로도 연구 비용을 충당하기가 힘들었다.
유한나가 유투브 <불마녀> 채널을 운영하는 이유도 바로 돈 때문이다.
그러니 한태산의 제안은 정말 좋은 기회였다.
S급 헌터라고 자존심을 부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니, 자존심은 커녕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그게.”
“이게 참….”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속으로는 수십 번도 더 소리쳤다.
그런데 정작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 이런 걸… 받아도 되는지….”
한 게 없었으니까!
한태산이 이런 제안을 주는 이유는 하나다.
고마워서.
한채린을 구해 준 것이 고마워서.
그런데 정작 한 게 없었다.
여기 모인 4명의 S급 헌터들.
이들 중 그 누구도 한채린을 구해 주는 일에 있어 도움된 게 없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상황은 끝나 있었으니까.
물론 도망친 범인을 쫓아가긴 했었다.
그런데 거기서도 한 게 없었다.
그저 아윽! 하흐흑!
비명이나 지르기 바빴을 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또 상황은 끝나 있었다.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 아무것도.
눈곱만큼이라도 한 게 있었다면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서라도 원하는 바를 말했을 터였다.
“그게….”
“하… 정말이지….”
그런데 진짜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결국.
“회장님. 그게 실은 말입니다.”
금천규가 대표로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 * *
서씨 공방.
이민정은 망치를 쥐고 있는 시우에게 말했다.
“경기 지역의 판데모니움 전체가 발본색원 되었습니다. 더불어 경기 지역의 암흑가 또한 완전히 뿌리 뽑혔습니다.”
이민정은 말을 하면서도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판데모니움.
그리고 발본색원.
두 단어는 본래 매칭이 될 수 없는 조합이었으니 말이다.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기도 했다.
한국에 판데모니움이 자리한 이후.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비록 경기 지역에 국한된 일이긴 했다.
대한민국 전역을 따지면 판데모니움은 아직 건재하다.
그러나 심각한 타격을 입은 건 확실하다.
과장 하나 섞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판데모니움의 전력의 절반이 날아갔다고 말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
아니, 단 한 명의 존재.
“이걸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이민정은 시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는 뭘요.”
시우는 가볍게 손사래를 쳐 보였다.
하지만 이민정은 당치도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국장님께서도 맹시우 헌터님께 감사하다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국장님이라면…?”
“백선제 국장님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시찰국장, 백선제.
13인의 영웅 중 한 명인 검선(劍仙) 백선평의 아들.
대한민국의 안전을 책임지는 거물 중의 거물이 아닌가.
지난 번에 잠깐 만나 보기는 했었다.
그래서일까.
“어차피 개인적인 일로 한 건데요.”
시우는 더욱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괜시리 엮이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애초에 헌터가 가더와 엮여서 좋은 일은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딱히 감사를 받고자 한 일이 아닙니다.”
시우는 어떤 사명감 때문에 이 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경고를 무시한 대가.
서아의 안전과 시우 주변의 사람들을 지키고자 한 것에 불과했다.
정의 실현과 같은 거창한 신념 같은 일로 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민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걸까.
“맹시우 헌터님은….”
시우를 바라보는 이민정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존경과 경외의 감정이 얼핏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뭐랄까.
약간 애틋한 감정도 어렴풋하게나마─.
바로 그때.
딸랑.
경쾌한 종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공방 안으로 들어왔다.
누군가 싶은 것도 잠시.
“vous étiez ici.(여기에 있었군.)”
굴러가는 듯한 프랑스어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꼬장꼬장 분위기의 노인.
마스터 오렐리안이 서 있었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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