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서씨 공방의 한쪽 자리.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네.”
한태산은 마주 앉은 시우에게 작은 사과의 말을 건넸다.
“마침 할 일도 없던 차라 괜찮습니다.”
시우는 괜찮다는 듯 작게 손사래를 쳐 보였다.
“그보다 회장님께서는 여긴 어쩐 일로…?”
그리고 이어진 시우의 물음.
한태산은 그런 시우의 모습을 차분히 훑어보았다.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맹해 보였다.
나이 또한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막 사회에 첫걸음을 내딘 청년.
그래서일까.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이 시우라는 자.
이 자가 채린이를 구해 준 장본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더불어 오렐리안을 구출하고, 사건을 해결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들었네. 자네가 우리 채린이를 구해 주었다고.”
한태산은 내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S급 헌터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이 맹시우라는 자가 모든 것을 했다고 말이다.
설마하니 S급 헌터들이 거짓말을 할까.
무엇보다 한태산도 나름대로 조사를 해 보았다.
그리고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언론에는 S급 헌터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었다.
시우의 이름도 있었지만, 곁가지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언론에 알려진 것이 전부가 아님을 한태산은 알 수 있었다.
“채린이의 할애비로서 감사를 표하네. 정말 고맙네.”
한태산은 진심으로 시우에게 감사를 전했다.
“아닙니다. 저 혼자 한 것도 아닌데요 뭘.”
시우는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한태산은 잠시 텀을 두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해서 작게나마 자네에게 보답을 하고 싶네만.”
“보답이라… 하심은?”
“무엇이든 말만 하게. 내 역량이 닿는 선에서 무엇이든 해 주겠네.”
그러자 시우의 몸이 덜컥, 굳었다.
바라본 시우의 두 눈.
시우의 눈은 지진이라도 난 듯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시우의 모습에 한태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시우라는 자는 가더가 아닌 헌터였다.
가더들은 어떤 신념과 사명감을 지닌 이들.
헌터들은 본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이었다.
관리국의 헌터.
시찰국의 가더.
같은 각성자이나 서로 다른 길을 가는 이들.
그런데 정작 헌터들의 요구는 정말 까다로웠다.
정확히는 일정 수준에 오른 헌터들.
그들에게 돈은 큰 가치가 있지 않았으니까.
그들에게 돈이란 그냥 따라오는 것이었다.
A급 헌터만 되어도 돈은 큰 의미를 갖지 않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돈이라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적어도 한태산이 만난 헌터들은 그러했다.
강자들은 돈에 휘둘리지 않는다.
당장 SH그룹이 S급 헌터들을 포섭하지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헌터 산업에서의 패퇴.
만일 이번에 채린이를 잃었더라면….
한태산은 이 시우라는 자에게 크나큰 고마움을 지니고 있었다.
어쨌든.
그런 강자들에게 있어서 돈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다.
강자들은 본인의 값어치를 높게 평가한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성장.
대체로 강자들은 본인의 성장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둔다.
그렇기에 정말 까다로웠다.
그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제각각이었으니까.
또한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시우라는 자.
겉보기엔 맹해 보이는 어린 사내였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니, 세상 모든 일이 그러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SH그룹의 총수, 한태산.
한태산은 이 자리까지 올라오며 수없이 봐 왔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자가 아무도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곤 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러니 사람을 겉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시우는 S급 헌터들이 입을 모아 인정한 강자이지 않은가.
“저, 그럼 혹시….”
시우가 끝내 입을 열어 왔다.
한태산은 가만히 시우의 말을 기다렸다.
어떤 부탁을 해 올까.
이윽고 시우가 입을 열었다.
“과외비를 조금만 올려 주실 수 있으신지….”
“...음?”
한태산의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정확히는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한태산은 본인도 모르게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과외비라니?
과외비는 뭔 놈의 과외비란 말인가.
아니, 그러니까….
“돈을… 달라는 말인가?”
“한 50억 정도만….”
시우가 조심스럽게 말해 왔다.
한태산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표정이 절로 붕, 떠올랐다.
그런 한태산의 표정 때문일까.
“하하하. 역시 매달 50억은 좀… 과하죠?”
시우가 한태산의 눈치를 보며 다시 말해 왔다.
“정 안 되면 40억이라도….”
한태산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흥정을 하는 건가?
“30억이라도…?”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뭔….
“하하, 농담이었습니다. 사실 20억 정도만….”
시우는 계속해서 한태산의 눈치를 살폈다.
“10억…은 좀 적지 않을까요…? 하, 하하….”
시우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마쳤다.
그런 시우의 모습 때문일까.
“......”
뭐 하는 사내인 걸까.
한태산은 시우라는 자를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한태산은 SH그룹의 총수 자리까지 올라오면서 수많은 군상들을 봐 왔다.
정말이지 모든 사람 군상을 봐 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맹시우라는 자.
“어떻게 15억 정도만이라도 과외비 인상을 해 주실 수 있으신지….”
정말이지 처음 보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 * *
SH헌터 길드 최하층.
그곳에 위치한 연무장.
쐐액!
섬광과도 검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 뒤를 이어 짙은 흑발의 머리가 어지러이 흩날렸다.
한채린.
한채린의 숨은 상당히 거칠어져 있었다.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입고 있는 옷 전체가 전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 때문인지 한채린은 상당히 지쳐 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그러나 한채린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쐐액, 쐐애액!
한채린의 검이 계속해서 허공을 갈랐다.
격한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가씨….”
김민재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아직 몸도 성치 않은 채린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몸은 괜찮았다.
그러나 정신 지배를 당했던 채린.
아직 그 정신적인 충격이 남아 있었다.
채린의 정신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몸을 움직이는 건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했다.
정신에 우울한 찌꺼기가 꼈는데 그걸 정신으로 이기려 들면 더 우울해지고 더럽혀진다.
그럴 때 일수록 몸을 움직여야 하는 법이었다.
머리는 같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겨야 한다.
그런 의미로 수련을 하는 건 정말 좋은 방법이었다.
그런데.
“아가씨께서 몇 시간째 수련 중이십니까.”
“벌써… 20시간째입니다.”
SH헌터 길드 소속으로 활동하는 A-급의 헌터, 이건우의 답이었다.
김민재는 다시 시선을 돌려 한채린을 바라봤다.
20시간.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일절의 쉬는 시간도 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너무 과했다.
머리는 몸으로 이겨야 한다지만 그것도 적당히였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과함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팀장님께서 이러다 쓰러지시는 게 아닐런지….”
이건우가 걱정스럽게 물어 왔다.
김민재도 충분히 동의하는 바였다.
아니, 진즉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당장이라도 말려야 했다.
지금이라도 채린을 뜯어말려야 했다.
“아가씨….”
그러나 김민재는 그럴 수가 없었다.
말린다고 해도 듣지도 않을 테니까.
그리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채린의 개인 비서, 김민재.
김민재는 어린 시절부터 채린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왔다.
그렇기에 김민재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채린의 과도한 수련.
저건 단순히 정신적인 우울함 때문만은 아님을 말이다.
이번 사건의 무언가가 한채린을 자극시킨 것 같았다.
그것이 스스로의 부족함을 책망하는 것이든.
아무것도 하지 못한 무력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든.
무엇보다 한채린은 SH그룹의 막내 손녀딸.
그녀는 홀로 수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있었다.
쐐애액!
한채린의 검이 허공을 수놓았다.
그러나.
“아가씨….”
채린의 검은 흔들리고 있었다.
김민재는 말없이 채린의 수련을 지켜봤다.
그리고 또 말없이.
터벅.
김민재는 연무장 밖을 나섰다.
* * *
시우는 정신이 멍했다.
정녕 현실이 맞는 건가 의심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마트폰 위에 떠오른 화면.
갓튜브가 아닌 현실의 스마트폰 위에 떠오른 화면.
[계좌 잔고] - 14,413,334,556₩
144억.
그러고도 1,334만 원이 추가로 있는 계좌 잔고.
실로 말이 안 되는 금액.
이 금액이 시우의 잔고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100억을… 앉은 자리에서 입금….”
시우는 말문이 턱, 막혔다.
말 그대로 한태산은 앉은 자리에서 100억 원을 시우에게 입금해 주었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지금 100억 원이 단발성이 아니었다.
“매달 과외비가 두 배….”
매달 100억 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기존 한채린의 과외비는 100억 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100억 원을 추가로 인상 받을 수 있었다.
하여 시우가 받는 과외비는 도합 200억이 되었다.
그것도 매달 받는 돈이 200억.
50억만 인상해도 감지덕지였거늘.
“이게… 가능한 거였나?”
시우는 정말이지 떨떠름한 심정이었다.
아니, 생각해 보라.
그냥 200억도 아니고 매달 200억이다.
200억 자체도 어마어마한 돈이거늘.
매달 200억이라니?
이게 말이 200억이었지 1년이면 무려 2,400억이다.
그런 돈을 고작 과외비에 투자한다?
일주일에 2번 정도 하는 수업인데?
“SH그룹은 SH그룹이라는 건가….”
클라스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니, 이건 클라스 자체를 아예 초월해 버렸다.
SH그룹의 총수, 한태산.
다른 의미로의 초월자나 다름 없었다.
그 때문일까.
“조금만 더 달라고 해 볼 걸 그랬나.”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하지만 금방 고개를 털었다.
욕심은 과하면 안 된다.
공자께서도 항상 말씀하시길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였다.
과함은 모자람만 못하는 법.
또한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
“100억도 어마어마하니까.”
100억도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또한 이로써 전혀 문제가 없게 되었다.
“바로 히드라 채널을 구독할 수 있겠는데?”
매달 80억 원에 달하는 미친 멤버십 가입 비용.
그 비용을 충분히 지불할 수 있었다.
물론 히드라 채널에 가입하면 매달 151억이라는 구독료가 지출된다.
151억 정도야 충분히 감당 가능했다.
200억에 달하는 수입이 있었으니까.
151억 정도는 충분히 지출할 수…
지출할 수….
“...젠장.”
…있기는 개뿔이 무슨.
아니, 무슨 구독료가 어떻게 151억일 수 있단 말인가!
“갓튜브가 아니라 돈튜브야 뭐야?”
돈튜브도 이렇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현실이 그러한 걸 어찌하겠는가.
“이제 와서 구독을 안 할 수도 없고.”
아니, 무조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래야만 시우가 가진 재능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으니까.
“하아….”
절로 새어 나오는 한숨.
시우는 갓튜브의 스마트폰에 접속했다.
그리고 히드라 채널을 찾아 멤버십 가입 버튼을 띄워 올렸다.
[히드라 채널 멤버십 가입 비용] - 8,000,000,000₩ / 월
“...맞는 거겠지?”
시우는 고민했다.
터치 한 번에 80억이 사라진다.
그것도 매달 80억 원이 사라지는 일이었다.
그러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하여 지금.
“사실 독보다는 독 내성이 더 중요하긴 한데….”
엄격히 말하면 시우에게 필요한 건 독 내성이었다.
화타의 신의술[神醫術](S+).
환골탈태(換骨脫胎).
그를 위한 독초들을 받아낼 수 있는 독 내성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히드라가 가장 적합하긴 했다.
신살(神殺)의 독(毒)을 품고 있다는 것.
그건 반대로 그 독에 대한 내성이 있다는 뜻이니까.
“히드라 말고 한 명 더 있기는 한데….”
하지만 한 명 더 있긴 있었다.
히드라의 독에 버금가는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요르문간드(Jǫrmungandr).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뱀.
크기는 어찌나 큰지 세계 전체를 휘감고도 남을 지경이라고 한다.
해서 평소엔 세계를 휘감고 꼬리를 스스로 물고 있었다.
“토르 마저 중독될 독의 소유자이기도 하니까.”
북유럽 신화의 종말, 라그나로크.
요르문간드는 미드가르드를 휘감은 몸을 풀어 아스가르드를 습격한다.
그렇게 천둥의 신, 토르와 격전을 벌인다.
결국 토르의 묠니르에 의해 머리가 박살 나 사망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토르가 요르문간드의 독에 중독된다.
그리하여 토르가 아홉 발자국을 떼기도 전, 독에 중독되어 사망한다.
요르문간드는 히드라의 독과는 달랐다.
너무 아파서 신들이 차라리 자결하는 독과는 달랐다.
진짜 신살(神殺)의 독(毒)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시우는 고민했다.
히드라냐, 요르문간드냐.
지금 이 순간도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흑돌이 동생은 좀 그렇네.”
흑돌이 동생의 힘을 사용하기엔 좀….
사실 요르문간드는 흑돌이 동생이었다.
그러니까 펜리르의 동생.
능력을 배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큰 상관은 없었다.
“그래도 좀 그러네.”
그래도 좀 그랬다.
“히드라로 하자.”
어차피 독 내성만 있으면 되는 일인 것.
히드라가 수준이 낮은 것은 결코 아니었으니 말이다.
시우는 어렵지 않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결정을 내린 시우는 곧장 가입 버튼을 눌렀다.
손가락이 파르르, 떨려 왔다.
시우는 손가락을 억지로 움직였다.
그래도 200억이라는 수입이 생겼기 때문일까.
꾸우욱.
생각보다 빨리 가입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파르르…!
그러니까 생각보다는 말이다.
띠링!
일순간 스마트폰 알림음이 들려오며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과연.
히드라는 히드라인 것일까.
<히드라 채널의 멤버십에 가입하셨습니다.>
<맹독[猛毒](SS+)을 습득합니다.>
“오!”
80억의 돈값을 충분히 하는 히드라였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