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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132화 (132/250)

131화.

퇴원 절차는 금방 이루어졌다.

아직 성치 않은 한채린의 상태.

사실 퇴원할 수가 없어야만 했다.

하지만 역시나 퇴원하겠다는 채린의 한 마디에 모든 것은 일사천리였다.

그렇게 퇴원을 마친 이후.

채린은 시우를 따라 장소를 이동했다.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여긴….”

채린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은 SH헌터 길드의 연무장이 아니었으니까.

채린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

“공방… 아닌가요?”

서씨 공방.

지난 날, 마스터 오렐리안과 함께 왔었던 그 공방이었다.

또한 시우가 일하고 있다던 바로 그 공방이기도 했다.

“오늘 수업은 공방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시우는 잠긴 서씨 공방의 문을 열었다.

딸랑.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시우가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

채린은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공방에서 수업을 한다니.

검술을 배울 적합한 장소가 결코 아니었다.

그런 채린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서 들어오세요.”

공방 안쪽에서 시우가 재촉해 왔다.

채린은 잠깐의 고민 끝에 천천히 공방 안으로 발을 디뎠다.

공방 안은 어두컴컴하고 조용했다.

시우는 공방의 조명을 밝히며 물어 왔다.

“채린 씨. 혹시 망치를 잡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채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시우가 잘 되었다는 듯 말해왔다.

“그럼 오늘 한 번 해 보시겠습니까? 제가 옆에서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시우 씨가요?”

채린은 깊은 의문이 들었다.

물론 시우가 실력이 뛰어난 대장장이인 건 알고 있었다.

마스터 오렐리안조차 인정한 대장장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 시우가 야금술을 가르치는 것.

아마 모든 대장장이들이 바라 마지않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수업을… 한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채린에게는 아니었다.

채린은 대장장이가 아닌 헌터.

채린은 야금술이 아닌 검술을 배우고자 이곳에 왔다.

“오늘 수업이 바로 야금술입니다.”

그러나 시우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채린은 내키지 않았다.

내키지 않음을 넘어 배우기 싫었다.

야금술이나 배울 시간이 없었으니까.

한시라도 빨리 검술을 배워야만 했으니까.

그런 채린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쪽으로 오시죠.”

시우는 주섬주섬, 야금술을 가르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채린은 가만히 시우를 바라봤다.

이어지는 고민.

채린은 마지못해 시우에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시우는 어느새 용광로에 불을 지펴 올리고 있었다.

“장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금속 재료를 제련해야 합니다.”

화륵, 화르륵!

뜨거운 불길이 일며 주변의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금속을 달군 뒤 망치질하여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제련의 과정 중 하나로 이를 단조라고 합니다.”

시우는 채린에게 정체 모를 금속을 건네었다.

가공되지 않아 투박한 금속.

“직접 해 보시겠습니까?”

채린은 시우가 건넨 금속을 가만히 바라봤다.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여전히 이걸 왜 배워야 하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 수업의 일환입니다.”

하지만 이어진 시우의 말.

채린은 마지못해 건넨 금속을 받아 들었다.

받아 든 금속을 용광로 안에 넣자 용광로의 열기가 순식간에 금속을 달구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금속.

채린은 집게로 달아오른 금속을 꺼내었다.

그리고 모루 위에 올려 망치로 내리쳤다.

키앙!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쇠음이었다.

채린은 계속해서 망치를 두들겼다.

키킹─! 키키잉─!

“잘… 안 되네요.”

채린은 망치를 내려놓았다.

어째, 금속이 뜻대로 되질 않았다.

힘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채린은 A+급의 헌터.

힘이 부족하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온도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무 빨리 꺼내셨거든요.”

옆에서 시우가 말해 왔다.

“이렇게 금속이 충분히 달궈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조를 하면….”

시우가 모루 위의 금속을 가리켰다.

채린이 두들기던 바로 그 금속.

“되려 형체가 기이하게 일그러져 아예 사용할 수 없게 돼 버립니다.”

채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 일그러져 흉측해진 모습.

확실히 이 금속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윽고 시우가 공방의 창고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채린이 단조하던 것과 똑같은 금속을 꺼내 왔다.

자연스레 용광로에 집어넣어 금속을 달구었다.

화륵, 화르륵!

날름거리는 불길이 시우의 얼굴을 덮어왔다.

그러나 시우는 피하지 않았다.

열기를 피부로 느끼기라도 하듯 불길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시우가 용광로에서 금속을 꺼내었다.

아까와 달리 금속 자체가 빨간색이 되어 있었다.

“다시 한 번 두들겨 보시겠어요?”

채린은 망치를 들어 보였다.

까앙─!

깔끔한 소리가 공방 전체로 울려 퍼졌다.

아까와 같은 날카로운 쇳소리가 아니었다.

청량한 망치질 소리.

손으로 느껴지는 감각도 아까와는 차원이 달랐다.

채린은 살짝, 놀란 눈을 떠 보였다.

시우는 계속 망치질을 해 보라는 듯 눈짓을 했다.

한채린은 다시 망치질을 이어 나갔다.

깡! 까앙─!

맑은 소리가 계속 울려 퍼져 나갔다.

그리고 채린이 원하는 대로 그 형태를 갖춰 나갔다.

그런 채린의 귓가로 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비를 만드는 것에 있어 어떤 금속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장비의 품질이 달라집니다. 사람으로 치면 일종의 재능이라고도 볼 수 있죠.”

질 좋은 금속에 질 좋은 장비가 만들어진다.

마찬가지로 뛰어난 재능에서 뛰어난 사람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단순히 금속만 좋다고 좋은 장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망치질을 통해 금속의 불순물 제거하는 제련의 과정이 필요하죠.”

같은 재료라도 얼마만큼의 망치질을 했느냐에 따라 장비의 품질은 확연히 달라진다.

“금속의 제련은 사람으로 치면 노력이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금속의 품질이 타고난 재능이라 말한다면.

금속을 제련하는 과정은 노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로 채린 씨는 아주 훌륭한 금속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금속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죠.”

세기의 천재.

한채린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라 할 수 있었다.

“또한 채린 씨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계십니다. 질 좋은 금속을 그에 걸맞게 제련하고 계시는 것이죠.”

그렇기에 한채린은 충분히 잘하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노력.

아니, 혹사에 가까운 노력.

그러나.

“보시다시피 금속은 마냥 두들긴다고만 해서 제련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우는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아무리 질 좋은 금속이라도 충분히 달궈지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망치질하면, 이렇듯 못 쓰게 되고 버려지게 될 뿐입니다.”

형체조차 일그러져 쓸 수 없는 금속.

시우는 말했다.

“노력으로 자기 자신을 망치질하는 건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채린 씨. 아직 달궈지지 않은 자기 자신을 망치질하는 건 되려 그 재능을 못쓰게 만드는 일입니다.”

지금 이 금속처럼 말입니다.

시우는 일그러진 금속을 채린에게 건네었다.

채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손에 들고 있는 망치.

이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았다.

정신이 멍하디 멍하다.

“......”

채린은 말없이 시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멍한 한채린의 두 눈.

시우는 그런 한채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본 채린 씨는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금속입니다. 그러나 채린 씨.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금속이 가장 단단하게 되기 위해서는 뜨거운 불길을, 보다 오래 견뎌 내야 합니다.”

“......”

여전히 멍한 한채린의 두 눈.

그러나 그 시선은 오롯이 시우를 향하고 있었다.

“채린 씨가 어떤 마음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는지는 제가 감히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김민재에게 한채린의 과거를 듣긴 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한채린의 심정을 어렴풋이 공감할 수 있을 뿐.

한채린이라는 사람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그 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채린 씨가 어떤 생각을 지니고 계신지, 어떤 강박을 가지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을 연민하지 않았다.

불쌍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한채린보다 불쌍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들에 비하면 한채린의 과거는 딱히 연민할 종류의 것은 아니다.

적어도 돈 걱정은 없이 살아오지 않았는가.

사람마다 처한 환경은 똑같을 수 없다.

각자 가진 환경에서 가진 바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

한채린은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을 지니고 있다.

김민재는 한채린이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강박을 내려놓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시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강박임과 동시에 한채린을 지탱하는 무언가였으니까.

한채린을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한채린이라는 금속을 달구게 하는 불길.

시우는 그 불길을 꺼뜨릴 생각은 없었다.

다만.

“지금은 채린 씨가 가진 그 마음의 불로 스스로를 충분히 달궈야 할 때입니다.”

그 불길을 다스릴 필요는 있었다.

한채린의 재능이라는 금속이 마음의 불길에 충분히 달아오를 시간이 필요했다.

“망치질로 스스로를 두들기는 건 그 다음의 일입니다.”

시우는 그렇게 말을 마쳤고.

한채린은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그 자리에 가만히 박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채린 씨 주변인들이 모두 떠나가도. 설령 세상 사람 모두가 채린 씨를 떠나간다 하더라도. 채린 씨 스스로조차 채린 씨를 외면한다 할지라도.”

시우는 멍한 한채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만큼은 반드시 채린 씨 옆에 있겠습니다.”

매달 과외비 200억 원의 값을 해야 하니까요.

시우는 마지막 말은 내뱉지 않고 속으로 삼켰다.

한채린은 그때서야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두 눈으로 시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모습이 꼭 사슴이 바라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고마워요.”

한채린이 작게 중얼거려 왔다.

그런 한채린의 얼굴엔 환하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건 한채린의 미소였다.

SH그룹의 손녀딸이 아닌.

세기의 천재가 아닌.

한채린이라는 여인.

그 아름다운 여인이 지어 보이는 진실된 미소였다.

그 때문일까.

‘진짜 갓튜브에 한 번 따져 보고 싶긴 한데.’

신(神)이 인간을 차별해서 만든 여자가 아닐까 싶었다.

정말이지 관리자 계정인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어쨌든.

“오늘의 특별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어떻게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한채린은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밝은 미소를 품은 얼굴.

가뜩이나 청순가련한 외모에 미소가 더해지니 확실히 남달랐다.

‘클레오파트라랑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데.’

미(美)는 취향의 차이라고는 한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일 때의 이야기였다.

이 정도의 미(美) 앞에서는 취향은 의미가 없었다.

어쨌든.

한채린은 확실히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예전처럼 몸을 혹사시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왜일까.

이대로 수업을 끝내기엔 뭔가 아쉬웠다.

“채린 씨. 잠시만요.”

시우는 성큼, 한채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한채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멀뚱히 시우를 바라 봤다.

사슴을 닮은 두 눈.

시우는 덥썩, 한채린의 손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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