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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141화 (141/250)

140화.

캉! 카캉!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검격들의 향연.

한채린의 검이 미쳐 날뛰듯 시우를 향해 덮쳐 왔다.

시우는 물러나지 않았다.

덮쳐 오는 검격들을 하나하나 반응하며 모조리 튕겨내었다.

카앙─! 카캉!

쇠붙이가 맞닿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그 순간 뚝.

쏟아지던 한채린의 검이 멈추었다.

어느덧 자세가 낮아진 한채린.

쐐애액!

한채린의 검이 벼락처럼 시우에게 쏘아져 왔다.

카아아앙─!

‘확실히….’

시우는 확연히 달라진 한채린의 실력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무공을 수련함에 있어 중요한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심(心). 기(氣). 체(體).

심(心)은 곧 마음이요.

기(氣)는 곧 마력이며.

체(體)는 곧 육체라.

한채린의 기(氣)는 태극(太極)이었다.

시우가 알려 주는 장삼봉의 태극[太極](SS).

비록 장삼봉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채린은 스스로의 태극(太極)을 체득했다.

모르긴 몰라도 인간 중에 따라올 자가 없는 수준이라 말할 수 있었다.

체(體)는 말할 건덕지가 없었다.

천무지체(天武之體).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심(心).

한채린의 심(心)은 그렇지 못하였다.

이러나 저러나 한채린은 21살밖에 되지 않은 여인.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한채린이었다.

그렇기에 불안정했다.

기(氣)와 체(體)는 저만치 앞으로 나아가 있으나, 심(心)은 그 둘을 따라가지 못했으니 말이다.

일종의 삼각대와 같다고 볼 수 있었다.

기(氣)와 체(體)의 다리는 길쭉길쭉하여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심(心)의 다리는 짧고 위태로웠다.

하나의 균형이 맞지 않으니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한채린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시우의 특별 수업이 탁월한 효과가 있었던 걸까.

카앙─! 캉!

지금의 한채린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심득(心得).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心)이 받쳐 주니, 기(氣)와 체(體)가 비로소 본연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제야 한채린의 재능이 개화하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안 되겠네.’

시우는 빠르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검으로 한채린을 상대하는 건 무리다.

이대로 가다간 시우의 필패.

해서 잠깐 고민이 들었다.

한채린의 자신감도 살려 줄 겸.

이번엔 그냥 져 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금방 생각을 털어 내었다.

그건 한채린에 대한 모욕이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 한채린은 가녀린 여인도, SH그룹의 막내 손녀딸도 아니다.

무인(武人).

무(武)의 극한을 쫓는 이에게 그건 내보일 수 있는 예(禮)가 아니다.

쐐애애액!

한채린의 흑발이 어지러이 흩날리며 시야를 가려 온다.

시우는 쥐고 있던 검을 한채린에게 집어 던졌다.

후우웅!

“......!”

갑작스러운 시우의 행동에 한채린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한채린은 황급히 검을 고쳐 잡으며 카앙!

날아드는 검을 튕겨내었다.

그 순간 툭.

시우의 주먹이 한채린의 왼쪽 뺨에 닿아 있었다.

“...졌네요.”

한채린은 힘없이 검을 아래로 내려 보였다.

“검을 던지실 줄은 몰랐어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세요. 실전에서는 온갖 변수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겁니다.”

시우의 말에 한채린은 하나 배웠다는 듯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무덤덤한 얼굴로 시우에게 말했다.

“마지막 움직임은 전혀 보이질 않았어요. 역시… 봐주고 계셨던 거군요.”

“아뇨. 진심으로 상대한 겁니다만?”

“하지만 방금 움직임은….”

“그건 무투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움직임입니다. 검을 들고 있을 땐, 할 수가 없어요. 봐준다고 일부러 안 한 게 아닙니다.”

다름 아닌 신투술의 보법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금은 다가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네요.”

한채린이 살짝 쳐지는 목소리로 말해 왔다.

약간 실망감이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래도 시우 씨의 검을 내려놓게 만들었네요.”

한채린이 평소 무덤덤한 어투로 말해 왔다.

슬쩍 바라본 한채린은 시우가 선물한 팔찌를 매만지고 있었다.

초조함에 먹히지 않는 모습이었다.

마음의 불씨를 잘 다스리고 있었다.

확실히 달라진 한채린.

시우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죠.”

“네. 고생하셨어요.”

한채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갈무리했다.

시우 또한 자리를 떠나려던 찰나.

“저….”

한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한채린의 개인 비서, 김민재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인 건가 싶은 것도 잠시.

“다름이 아니라,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김민재의 말에 한채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김민재가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가씨가 아니라 시우 님을 찾아왔습니다.”

“...저를요?”

“그렇습니다.”

시우는 뭔가 싶었다.

갑자기? 라는 물음.

누구지? 싶은 물음.

그리고 왜 여기에? 라는 물음이 동시에 떠오르는 것도 잠시.

“네가 맹시우라는 놈인가?”

한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상당히 잘생긴 얼굴의 사내가 시우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약간 껄렁거리는 듯한 분위기는 제 잘난 맛에 도취한 듯한 모습이었다.

얼굴이며, 표정이며, 분위기며.

나 엄청 잘났다!라고 광고하며 다니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마디로 재수 없는 인상이었다.

그렇기에 시우의 기억 속에 있는 인상이기도 했다.

“이예준?”

한국의 S급 헌터, 이예준.

이예준이 시우의 앞에 서 보였다.

* * *

한국에 존재하는 6명의 S급 헌터 중 한 명, 이예준.

“당신이 왜 여기에…?”

“네가 쓰던 장비는 어디에 있지?”

이예준에게서 동문서답과도 같은 말이 되돌아왔다.

“장비?”

시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이예준의 시선이 시우의 손에 집중되어 있었다.

“설마 이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시우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오리할콘 권갑을 꺼내 들었다.

쑤욱, 시우의 손에 권갑이 쥐어졌다.

“......!”

이예준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아무래도 아공간 주머니를 보고 놀란─.

“그거 설마 아공간 주머니인가?”

역시 그런 것 같았다.

“그렇습니다만.”

시우는 짤막하게 답을 해 보였다.

아니, 그건 그렇고.

쟤는 다짜고짜 왜 반말이야?

“얼마면 되지?”

다짜고짜 반말도 모자라 다짜고짜 선제시를 해 왔다.

시우는 그 의미를 파악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 장비를 사겠다고?”

그러자 이예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무래도 시우가 반말한 것에 심기가 뒤틀린 것 같았다.

이예준이 상당히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해 왔다.

“네가 사용하는 건틀렛과 그 아공간 주머니. 모두 내가 사겠다.”

불쾌함과는 별개로 말에는 상당한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얼마를 부르든 감당할 수 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기사, 이예준은 S급 헌터다.

얼마든 그 값을 지불할 능력은 있었다.

“이건 안 팔아.”

하지만 시우는 당연하게도 팔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굳이 가격을 매긴다면….”

오리할콘을 통짜로 해서 들어갔고.

여기에 인건비까지 더 하면….

“한 3천 억 정도는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러자 이예준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장난하나?”

3천 억은 무리였으니까.

아무리 이예준이라도 3천 억은 안 되었다.

지금 옆에 있는 한채린도 아마 힘들 터였다.

SH그룹의 막내 손녀딸인 한채린도 3천 억은 심각한 고민을 해 봐야 할 수준의 금액이었다.

어쨌든.

“300억을 주겠다.”

이예준은 다짜고짜 가격을 흥정해 왔다.

“싫다면?”

“그럼 어쩔 수 없지.”

콰아아아아─!

일순간 이예준의 기세가 터져 나왔다.

살갗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살기.

싸가지는 없어도 S급 헌터는 S급 헌터였다.

그리고 이 기세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

“힘으로 빼앗겠다고?”

이예준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시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미친놈인가?

다짜고짜인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거늘.

이 정도면 그냥 미친놈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은가.

“보물은 그것을 지킬 힘이 있을 때 보물인 법. 힘없는 자에게 보물은 재앙과 다름 없다.”

“그런데?”

“증명해라.”

이예준은 더욱더 기세를 피워올리며 말했다.

“네가 그 장비를 가질 만한 자격이 있는 놈인지를 말이다. 자격이 없으면 내가 가져가겠다.”

왜 논리가 그 쪽으로 흘러가는 건데?

어이가 승천한다는 표현이 딱 지금 시우가 느끼는 심정이었다.

“내가 왜?”

“내가 그걸 원하고 있으니까.”

진짜 미친놈인가?

확실한 건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박혀 있는 놈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의미가 없었다.

이 이상으로 말을 섞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냥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공자께서도 말씀하시길.

[아무리 예를 다해도 상대가 무례함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는 필히 짐승과 같은 자이다.]

[짐승과 실랑이를 해서 무엇하겠느냐.]

시우는 이예준을 무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무례하시네요.”

갑자기 한채린이 나서 보였다?

한채린은 평소 차가운 얼굴로 이예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예준은 시선을 돌려 한채린에게 말했다.

“강자의 무례는 무례가 아니라 권리다.”

와.

시우는 순수한 감탄을 터트렸다.

미친놈도 이런 미친놈이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쟤는 가만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저건 판데모니움의 범죄자들이나 갖는 사고방식이지 않은가.

그냥 두면 언젠가 큰 범죄를 저지를─.

“그럼 증명하세요.”

다시 한채린이 무덤덤한 어투로 말했다.

“그 쪽이 강자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세요.”

그러면서 한채린이 검을 뽑아 들었다.

얼음장 같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예준을 바라봤다.

“네가 나랑 싸우겠다고?”

“두려우신가요?”

한채린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이쯤 되니 시우가 당황스러웠다.

‘얘가 갑자기 왜 이래?’

한채린이 왜 이런단 말인가.

시우는 한채린에게 말했다.

“아뇨. 채린 씨가 그러실 필요 없─.”

“시우 씨한테 무례하게 굴었어요.”

한채린은 단호히 말해 올 뿐이었다.

감정 하나 보이지 않는 얼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한채린이었다.

그런데 뭐랄까.

‘화났나…?’

어딘가 화가 난 듯한 한채린이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모습이기도 했다.

한채린이 화가 난 건 그간 시우도 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왜 네가 화내?’

한채린이 왜 화를 낸단 말인가.

이예준이 무례하게 군 건 시우인데 말이다.

그런 시우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가 이기면 시우 씨께 정식으로 사과하세요.”

“하.”

이예준이 코웃음을 한 번 쳐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럴 일이 있을까?”

그러면서 이예준이 자세를 잡았다.

그렇게 성사된 한채린과 이예준의 대결.

‘......뭔데?’

시우는 뭔가 싶었다.

* * *

이예준은 같잖기 그지 없었다.

지금 자신 앞에서 기세를 뿜어내는 여인, 한채린.

현재 한채린의 헌터 등급은 A+급이었다.

물론 조만간 승격 심사가 있다고는 들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직 S-급도 되지 못한 수준이었다.

반면에 자신은 S급.

수준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그렇기에 응당 보여야 하는 반응은 굴복이었다.

그런데 지금.

“S급 헌터시니 전력으로 갈게요.”

한채린은 투지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감정 하나 엿보이지 않는 얼굴.

그 안에는 패배라는 감정 역시 보이지 않았다.

이예준은 정말이지 코웃음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전력을 다 한다고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한채린은 아직 애송이다.

세기의 천재이니 뭐니.

호들갑을 떨어도 애송이는 애송이였다.

지난 날, 납치 사건 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듣자 하니 저항 한 번 못 해 보고 납치되었다고.”

이예준은 도발을 하듯 한채린에게 말했다.

한채린은 여전히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미묘하게 흔들리는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도발 하나에도 평정심을 잃어버리다니.

피식.

정말이지 같잖기 그지 없었다.

“선공을 양보하지.”

이예준은 두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진정한 강자의 여유란 무엇인지를 한채린에게 보여 주─.

흠칫!

감각 사이로 파고는 알 수 없는 이질감.

한채린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무슨…?”

뚜렷한 당황이 떠오르는 것도 잠시.

쐐애애액!

공기를 찢으며 한채린의 검이 쇄도해 왔다.

어느 틈에…?

그런 의문은 현재로서 의미가 없다.

이예준은 황급히 허리를 뒤로 젖혔다.

스픗─!

한채린의 검이 코끝을 스쳐 가며 가느다란 선혈이 튀어 올랐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다면.

얼굴 전체가 꿰뚫렸을 일격.

그런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분노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았다?’

당혹.

분명 단순한 찌르기였다.

그러나 이예준은 알 수 있었다.

한채린이 찌른 단순한 동작 안에 무수히 많은 것들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았다.

이예준은 그 안에 담긴 어떠한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이게 대체…!’

촤악!

시야 위로 새빨간 피가 뿜어져 올랐다.

코끝을 스친 한채린의 검은 어느덧 이예준의 옆구리를 베어 내고 있었다.

끔찍한 통증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이예준은 젖힌 허리를 튕겨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뚝.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죽는다.

이예준은 그대로 몸을 옆으로 내던졌다.

하지만.

스윽─.

목덜미를 살며시 베어 내는 서늘한 감각.

이예준의 목 위로 새하얀 검신이 걸쳐져 있었다.

“......!!!”

이예준의 표정이 경악으로 뜨여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정신이 혼미했다.

그런 혼미한 정신 속.

“당장 시우 씨께 무릎 꿇고 사과하세요.”

싸늘한 한채린의 목소리가, 먹먹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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