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페르세포네가 손으로 입가를 살포시 가리며 말을 이었다.
[어쩐지, 이 년이 그때 갑자기 아도니스를 내게 맡기더라. 이 정신 나간 년. 그래 놓고 아도니스를 위하는 척 그랬던 거니? 아도니스는 그것도 모르고 자기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랑 매년 6개월 간 같이 있었던 거네?]
[경고하는데 페르세포네. 아도니스에게 그 사실을 말하기만 해 봐. 그땐….]
[그땐 뭐? 네가 어쩔 건데?]
[......]
아프로디테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말마따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
하물며 다른 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건 어디까지나 불륜의 일.
되려 숨기고 감춰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완벽한 페로세포네의 승리로 보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페르세포네 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데스 님이 바람 피우실 때는 그렇게 노발대발하시더니….]
[야, 야! 그건…!]
헤라클레스의 말에 페르세포네가 폴짝, 뛰어 보였다.
황급히 헤라클레스의 입을 막으려는 듯 앞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어머. 그건 또 무슨 이야기일까?]
아프로디테가 그런 페르세포네를 붙잡았다.
[이, 이거 놔! 아프로디테! 이거 놓으라고!]
[헤라클레스? 어서 말해 보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니?]
지어지는 아프로디테의 작은 눈웃음.
그에 반면.
[제발… 제발, 그이한테는 말하지 마….]
페로세포네의 안색은 점점 창백하게 질려 갔다.
안색이 거의 새하얀 도화지가 되어 버린 페르세포네.
페르세포네의 두 눈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심히 떨려왔다.
[안 돼… 그이에게 말하면 절대 안 돼…!]
페르세포네는 굉장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뭐, 그럴 만도 했다.
그녀의 남편은 명계의 제왕, 하데스.
일단 그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포스부터가 남다르지 않은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사실 페르세포네가 두려움을 느끼는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하데스가 불륜의 사실을 알고 자신에게 보복을 할까.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 아니었다.
[아도니스가… 아도니스가 무사하지 못할 거야.]
아도니스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신화 이야기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그리스 로마 신화는 특히나 바람을 피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바람을 피우지 않는 신(神)이 없었다.
신(神)이라 함은 난봉꾼과 다름 없었다.
그러나 딱 한 명.
하데스만은 예외였다.
하데스는 순애적인 사랑으로 굉장히 유명한 신이었다.
페르세포네를 첫눈에 반해 보쌈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런 하데스도 딱 한 번 있었다.
다른 여인과 바람을 피운 사건이 말이다.
민테(Menthe).
민테는 하데스의 개인 비서 격에 있던 님프였다.
그 때문일까.
하데스와 접점이 많던 민테는 끝내 하데스와 정분이 나 버린다.
그리고 이 사실을 페르세포네가 알게 된다.
페르세포네는 조용히 민테를 부른다.
그리고 말하길.
‘네 년이 감히 우리 남편을 유혹해?’
그리고는 꽈직!
민테를 그대로 짓밟아 버린다.
민테는 뭐라 변명할 여지도 없이 잘게 으깨진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민트.
박하의 유래가 바로 이 민테였다.
정확히는 페르세포네가 민테의 육체를 으깨어 만든 것이 박하였다.
페르세포네는 으깨 버린 민테를 우려내 차(茶)로 끓인다.
그리고 그걸 하데스에게 대접한다.
박하 차를 맛본 하데스.
하데스는 박하 차를 굉장히 좋아한다.
하여, 페르세포네에게 묻기를
‘향이 진한 것이 굉장히 좋소. 명계에서 처음 보는 것이온데, 이게 대체 무엇이오?’
이에 페르세포네가 답하길.
‘우리 여보가 그렇게 좋아하는 민테를 으깨어 우려낸 차예요. 역시 우리 여보가 좋아하던 년이라 그런가? 취향에 잘 맞으시나 보네요?’
하데스는 그대로 찻잔을 떨궈 버린다.
눈웃음 짓는 페르세포네를 바라보며 충격에 빠진다.
하데스는 그렇게 다시는.
두 번 다시는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역으로 페르세포네가 바람을 피운 상황이다.
[하데스 님께서 아도니스의 존재를 알면 어떻게 될지는… 음.]
헤라클레스는 그 뒷말을 잇지 않았다.
그런데 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마 아도니스를 잘게 으깨서 케르베로스의 저녁밥으로 주지 않을까.
페르세포네가 민테를 으깨어 차로 끓인 것처럼 말이다.
[안 돼… 그것만은 안 돼….]
페르세포네는 애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서로가 들춰내서는 안 되는 비밀들이 있으니, 이를 내기를 통해 덮자는 뜻입니다.]
헤라클레스는 말했고.
가장 먼저 아프로디테가 눈을 치켜 뜨며 답했다.
[내가 페르세포네, 이 년을 대체 뭘 믿고? 내 아도니스를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내로남불의 미친년인데?]
[뭐? 미친년? 너 말 다 했어?]
[다 했다. 다 했으면 어쩔 건데?]
아프로디테는 정말 어쩔 거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페르세포네가 이를 까득, 깨물며 반격했다.
[하! 나도 이 걸레 같은 년은 못 믿어.]
[뭐뭐? 거, 걸레 같은 년?]
[뭐. 왜. 내가 틀린 말 했나?]
[이 개X발 얀데레 같은 X년아!!]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저게 어딜 봐서 여신(女神)들의 대화인 걸까.
“이 두 분… 원래 이런 성격이에요?”
[원래 그래.]
시우의 물음에 화면 오른쪽 아래.
팝업창의 헤라클레스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문일까.
‘헤라클레스라서 다행이었네.’
아니었으면 어떤 보복을 당했을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아무튼.
[정 못 믿으시면, 스틱스강에 걸고 맹세를 하면 되지 않습니까.]
영상 속, 헤라클레스가 두 여신을 중재하듯 말해 왔다.
스틱스강의 맹세.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강력한 맹약의 맹세였다.
이 강을 걸고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져야만 했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라도 얄짤없었다.
만일 이 맹세를 어기게 되면 신(神)으로서 제명을 당한다.
그렇기에 스틱스강에 대한 맹세는 절대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다.
[승자는 아도니스 님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며, 패자는 그 어떠한 비밀도 발설하지 않는다. 이를 스틱스강에 걸고 맹세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헤라클레스가 정리하자 두 여신의 기세가 순간 사그라들었다.
[스틱스강에 대고 하는 맹세라면….]
[그거라면 충분히….]
두 여신은 그렇게 긴 고민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조심의 시간이 지나.
[좋아. 가뜩이나 이 년이 아도니스를 탐하는 게 거슬렸는데. 이 참에 끊어 버리지.]
[이 버러지 같은 페르세포네랑 연을 끊을 수 있다면야, 뭐.]
두 여신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버러지 같은 년? 누가 누구 보고 버러지래? 버려진 남근에서 태어나 부모도 없는 네 년이 버러지지.]
[이 X발련이?]
[어머. 누가 남근에서 태어난 년 아니랄까 봐, 입도 뭐 같이 천박하다니까.]
[하, 됐다. 부모가 외숙부랑 고모인데다가 남편이 큰아빠인 네 년이랑 무슨 말을 하겠니? 존재 자체가 근친의 표상인 네 년이랑 말이야.]
[뭐? 이 개X년이! 지금 말 다 했어?]
[다 했으면 어쩔 건데?]
어질어질한 대화가 한동안 이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 * *
두 여신은 서로 스틱스강에 걸고 맹세를 해 보였다.
특별한 의식의 절차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그냥 맹약의 말미에 ‘스틱스강에 대고 맹세합니다’라고 덧붙이면 끝이었다.
그 때문일까.
“저게 진짜 효과가 있기는 해요?”
시우는 그 효과에 대해 의심이 일었다.
물론 신화 이야기를 보면 절대적인 구속력을 갖는다.
이 때문에 태양신, 헬리오스가 자신의 아들인 파에톤을 잃게 되지 않았는가.
그 이후로 실의에 빠진 헬리오스는 퇴직.
태양신의 자리는 아폴론에게 돌아간 전대미문의 사건이 있었다.
그렇기에 스틱스강의 맹세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글쎄.
“딱히 구속력 같은 건 없어 보이는데요.”
그냥 말로만 맹세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저게 보기엔 단순한 말처럼 보이지만, 언령의 힘이 강제되어 있어.]
“언령이요?”
[말 자체에 깃든 힘을 의미하는 거야. 일종의 마법이라 볼 수 있지만, 사실 그 궤를 달리하는 개념인데….]
그러면서 뭐라뭐라 설명을 이어가는 헤라클레스였다.
그리고 뭐.
‘복잡하네.’
역시나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이었다.
그래도 통찰력(S+)으로 정리한 핵심은 다음과 같았다.
[본인이 갖는 언령의 힘을 사용하는 거라, 스틱스 강에 대고 하는 맹세는 나도 거역할 수가 없어.]
확실한 구속력을 갖는다 볼 수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저렇게 말할 정도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잠깐.
‘현실조작으로 저항할 수 있으려나?’
머릿속으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시스의 현실조작[現實操作](SSS).
세계의 법칙을 뒤틀어 현실을 조작하는 사기적인 능력.
이 능력이라면 맹세의 법칙을 뒤틀 수 있지 않을까?
‘반동이 어마어마하겠지만….’
어떻게 잘 비틀어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
조금 깊어지는 생각.
그것과는 별개로 영상 속, 아프로디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어떤 내기인데?]
[내기는 간단합니다.]
영상 속, 헤라클레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커다란 두 개의 상자를 가져와 내보였다.
[두 상자 중 한 곳에 아도니스가 있습니다.]
헤라클레스는 두 여신에게 내기의 룰을 설명했다.
[두 분이서 순서를 정한 뒤, 두 상자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아도니스 님이 있는 상자를 선택하시는 분이 아도니스 님을 독점하는 거죠.]
[아도니스가 없는 상자를 선택하면?]
이어진 페르세포네의 물음.
헤라클레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아도니스 님이 없는 상자를 선택하면 아도니스 님에 대한 그 어떠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아도니스 님을 구속, 협박, 유혹해서는 안 됩니다.]
더하여.
[관련한 비밀에 대해서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되고요.]
두 여신은 잠시 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좋아, 간단해서 좋네. 이 년이 사기 칠 건덕지도 없어 보이고.]
[누가 할 소리를?]
아프로디테와 페르세포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전에.]
아프로디테가 헤라클레스에게 말해 왔다.
[헤라클레스, 너도 스틱스강에 걸고 맹세해.]
[그래, 이 내기는 결국 네가 준비한 거잖아. 네가 무슨 사기를 쳤을지 우리가 어떻게 믿어?]
아프로디테의 말을 받으며 페르세포네 또한 말을 더했다.
헤라클레스는 잠시 고민을 해 보였다.
[어떤 내용을 맹세하면 되겠습니까?]
그리고는 두 여신에게 물었다.
[두 상자 중 하나에는 반드시 아도니스가 있다고 맹세해.]
[또한 이 내기를 준비하는 과정에 우리 둘 중 한 명과 어떠한 작당 모의를 하지 않았음을 스틱스강에 걸고 맹세해.]
이어진 아프로디테와 페르세포네의 말.
“두 여신이 생각보다 치밀하네요.”
시우는 약간의 감탄을 터트렸다.
본래 성격이 치밀한 것인지.
아니면 아도니스를 향한 집착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쉽사리 당해주지 않는 치밀함이 있었다.
[정말 여간 까다로운 분들이 아니었다니까.]
왼쪽 아래 팝업창의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렇게 되면 계획의 일부가 틀어진 상황.
하지만 뭐.
[네가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으면 곤욕을 치를 뻔했다니까.]
시우는 이런 상황 역시 미리 예측.
진즉에 헤라클레스에게 언질을 준 바 있었다.
하여, 다시 영상 속의 헤라클레스.
[두 상자 중 하나에는 반드시 아도니스가 있으며, 이 내기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 아프로디테와 페르세포네. 두 여신과 어떠한 작당 모의를 하지 않았음을 스틱스강에 걸고 맹세합니다.]
헤라클레스는 한 손을 들어 보이며 맹세를 해 보였다.
역시나 말로만 하는 맹세처럼 보였다.
그러나 보기와는 달리, 스틱스강의 맹세는 헤라클레스도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구속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혹시 이 년과 작당 모의한 줄 알았더니….]
[확실히 수작질이 없는 공평한 내기인가 보네.]
아프로디테와 페르세포네는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선후를 정하도록 하죠. 동전 던지기로 할까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두 여신은 서로를 한번 바라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
[좋아.]
[상관 없어.]
상관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헤라클레스는 품속에서 작은 동전을 꺼내 보였다.
그리고 가볍게 동전을 던져 보였다.
그 결과.
[내가 먼저네.]
먼저 선택하는 쪽은 아프로디테였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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