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169화 (169/250)

168화.

검선이 이곳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백선제의 말.

보다 정확히는 검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백선제의 답.

“아버지께서 칩거하신 후로 나 또한 아버지와 연락을 할 수가 없었네. 지금은 나도 아버지가 어디에 거처하고 계신지 몰라.”

“......”

박태민은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왜 이곳으로 오신 겁니까? 예전 본가가 아닌, 곧바로 이곳에 오신 이유가 있으실 것 아닙니까.”

“이유는 있지.”

백선제는 잠시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여기는 어릴 적, 내가 아버지 밑에서 수련했던 곳이라네.”

박태민은 다시 한번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건 그냥 국장님의 추억이지. 검선께서 여기에 계실 이유가 아니지 않습니까.”

“원래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사는 법이네. 하물며 아들과의 추억이지 않은가. 가능성은 높다고 볼 수 있지.”

“......”

박태민은 뭐라 한 소리 하려다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출발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도착한 이상 따져봐야 큰 의미는 없었으니까.

“어딘지 위치는 기억하십니까?”

그도 그럴 것이 한라산은 보통 산이 아니었다.

이 드넓은 산 전체를 죄다 수색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웬걸.

“글쎄…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군.”

“얼마 만에 오시는 겁니까.”

“아버지 곁을 떠나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 온 적이 없었으니… 벌써 25년이나 되었군.”

25년.

강산이 2번 하고도 절반이나 변했을 시절.

“......”

박태민은 이곳에 온 것이 맞는 건가 싶었다.

그런 박태민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렇게 보니 세월 참 빨라. 안 그런가, 박 팀장?”

백선제는 추억을 회상하듯.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면에 박태민은 이걸 뭐라 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만일 여기에 검선께서 안 계시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되겠는가.”

백선제는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말했다.

“개고생만 하는 거지.”

“......”

“그러게, 내가 따라올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나.”

백선제는 씨익, 웃음을 지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정말이지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직급이 깡패였고.

실력이 깡패였으며.

따라오겠다고 우긴 본인 잘못이었으니까.

박태민은 말없이 백선제를 뒤따랐다.

그러다 문득.

“국장님. 외람된 말씀이오나….”

박태민은 한 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검선께서는 어찌하여 칩거를 하시게 된 것입니까.”

검선은 어째서 세상을 등지게 되었는가.

사실 백선평은 칩거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검선(劍仙), 백선평.

인류를 구원한 13명의 영웅.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백선평은 그 평화를 만끽하며 살아야 했다.

막말로 떵떵거리며 살아도 그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아니, 반드시 그러해야만 했다.

백선평은 그만한 자격이 충분했으니까.

그런데 백선평은 그러지 않았다.

세상으로부터 그 자취를 감추었고.

그 어떤 일에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백선평의 행보.

관련하여 수많은 이야기가 나돌았다.

마왕과의 결전에서 모든 힘을 잃었다는 둥.

세상에 환멸을 느꼈다는 둥.

신선과도 같은 삶을 추구 하고자 한다는 둥.

보다 강해지기 위한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는 둥.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었다.

그 어떤 누구도 진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허나, 지금.

“국장님께서는 알고 계신 바가 있으십니까.”

백선제는 시찰국장이기 전에 백선평의 아들이었다.

백선제라면 그 이유를 알고 있지 않을까.

박태민은 물었고.

“어려운 질문이군.”

백선제는 그렇게 답을 해 보였다.

백선제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내려앉은 정적.

사박, 거리는 발걸음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스스로의 정의에 잡아 먹히셨다…라고 말할 수 있겠군.”

“...예?”

박태민은 저게 뭔 소린가 싶었다.

스스로의 정의에 잡아 먹혔다니.

그 뭔 뜬구름 잡는 소리란 말인가.

“무슨 신선놀음 같은 소린가 싶지?”

“......”

박태민은 차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그러했으니까.

백선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괜히 아버지께서 검선이라 불리시겠는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그 순간.

뚝.

백선제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박태민 또한 얼떨결에 같이 걸음을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싶은 것도 잠시.

“아무래도 내 직감이 맞았던 것 같네.”

백선제가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조심하게나, 박 팀장.”

백선제가 경고를 하듯 말해 왔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그리 반기지 않으실 거거든.”

“...예?”

박태민은 이번엔 또 무슨 소린가 싶었다.

아버지께서 반기지 않을 거라니.

그러니까 백선평이 백선제를 반기지 않는다?

아니, 백선평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게 무슨 말씀─.”

딱.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사아아아아아아─!!

설명하기 힘든 기운이, 사방으로 드리웠다.

휘몰아치는 바람.

바람은 커다란 태풍이 되어 주변의 사물들을 무조건적으로 박살 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있어 특별한 힘이 필요치 않았다.

기세(氣勢).

콰지지지직─!!

사물을 박살 내던 태풍은 공간 자체를 찢어 버렸다.

과장이 결코 아니었다.

그렇기에 농담도 아니었다.

지금 박태민을 짓누르는 이 기세(氣勢).

한라산 전체가 이 기세(氣勢)에 압도되어 있었다.

말이… 실로 말이 안 되는 힘.

“커허헉…!”

박태민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광역 수사대 팀장, 박태민.

그 수준을 논하자면 S급이라 말할 수 있었다.

대인전에 한정하면 S급 중에서도 최상위라 말할 수 있었다.

박태민을 뛰어넘는 수준의 실력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커흑…!”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온다.

이성은 사라지고, 죽음에 대한 공포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다행히 건강하신 것 같군.”

그리고 들려온 백선제의 목소리.

박태민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백선제를 바라봤다.

백선제는 폭발하는 기세를 정면으로 맞서고 있었다.

물론 이 기세를 억누른 건 아니었다.

이건 억누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으니까.

태산과도 같은 기세.

과장이 아니라 한라산 전체가 대적이 되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백선제 또한 그저 저항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아윽…!”

박태민은 백선제가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아무래도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가야 할 것 같네.”

백선제는 터벅,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멀어지는 백선제의 뒷모습.

“커헉…!”

박태민은 차마 백선제를 따라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 * *

콰아아아아아─!!

산 전체를 움켜쥐고 흔드는 듯한 기세.

기세는 더 이상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점점 더 거세어져 갔다.

그런 흉포한 기세 속.

“못 뵌 사이에 더 건강해지신 것 같아 마음이 한결 놓입니다.”

백선제는 차분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 백선제의 모습 때문일까.

아니면 백선제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걸까.

폭사하던 기세가 점점 사그라들었다.

백선제는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저 멀리, 단촐한 초가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깊은 산중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

백선제는 망설임 없이 초가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들어가겠습니다.”

백선제는 살며시 초가집 마당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대청마루에 고고히 앉아 있는 한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 헤져 있는 삼베옷.

하얗게 쇠어 버린 백발.

주름진 피부.

그러나 결코.

노쇠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존재감.

“그간 강녕하게 지내셨습니까, 아버지.”

검선(劍仙), 백선평.

백선제는 백선평을 향해 큰절을 해 보였다.

반면에 백선평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백선제 역시 말없이 절을 해 보일 뿐이었다.

내려앉은 정적.

나무 사이를 스치는 스산한 바람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 순간.

“오래 전.”

들려온 백선평의 목소리.

“너와 나는 다시 만나는 날을 미리 결정해 두었었지.”

백선평의 말에 백선제는 그때서야 몸을 일으켜 보였다.

그리고는 백선평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의 시신을 거두는 날이라 말씀 주신 바 있습니다.”

“설마하니 그 날이 오늘은 아닐 테고….”

백선평의 시선이 일순간 날카로워졌다.

별다른 기세가 담겨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순한 시선만으로도 무언가를 압도하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어인 일로 나를 찾아온 것이냐.”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백선평의 하얀 두 눈썹이 꿈틀거렸다.

백선제를 향한 눈빛이 더욱 날카롭게 벼려졌다.

“그것이 네 개인적으로 필요한 도움이냐, 아니면 세상을 위해 필요한 도움인 것이냐.”

“세상을 위해 필요한 도움입니다.”

들려온 백선제의 답.

“돌아가거라.”

백선평은 단호했다.

단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세상은 흘러가야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이다. 그 흐름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거스르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하는 법이니라.”

“좋지 않은 흐름임이 뻔히 보이는데, 방관하는 건 옳지 못한 일이지 않습니까.”

“옳고 그름의 잣대를 네가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세상의 모든 이치를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할 뿐입니다.”

“넌 예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구나.”

백선평은 끝내 백선제에게서 등을 돌렸다.

“돌아가거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상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을지니.”

그리고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명백한 축객령.

그러나.

“거스를 수 있다면.”

백선제는 굴하지 않았다.

“발버둥 침으로써 흐름을 거스를 수 있다면, 생각을 달리하시겠습니까.”

백선평은 말이 없었다.

주름진 두 눈으로 자신의 아들, 백선제를 바라볼 뿐이었다.

다시 한 번 내려앉은 정적.

“누군가 너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이구나.”

백선평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군가로 인해 세상이 바뀌는 것을 본 것이냐.”

“보았습니다. 결단코 거스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흐름이, 단 한 명에 의해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쯧쯧.”

백선평은 혀를 차 보이며 말했다.

“누군가 네게 헛된 꿈을 심어 주었어.”

“그런 헛된 꿈을 일컬어 사람들은 희망이라 말합니다.”

“또한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오지 못한 가장 최악의 재앙이기도 하지.”

세상의 모든 재앙과 재악을 담아낸 판도라의 상자.

상자 밖으로 빠져나온 재앙들은 세상을 순식간에 파국으로 내몰았다.

판도라는 화들짝 놀라 황급히 상자를 닫았다.

그로써 희망만은 나오지 못했다.

희망만은 상자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힘든 일이 있어도 희망만은 잃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끔찍한 재앙 속에서도 억지로 살아가게 만드는, 실로 악독한 재악.”

희망을 잃지 않음으로써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는다.

희망을 잃지 않음으로써 헛된 꿈을 꾸고 더 큰 절망에 좌절한다.

“희망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오지 못한 가장 최악의 재앙이었다.”

처음부터 판도라의 상자는 세상의 모든 재앙과 재악을 담아낸 상자였다.

그런 판도라의 상자 안에 담겨 있던 희망.

애시당초 상자 안에는, 좋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할 말은 없다.”

백선평은 다시 한번 축객령을 내렸다.

그리고.

“판데모니움.”

백선제는 다시 한 번 굴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백선제의 말.

“그들이 악마를 다시 부활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백선평의 두 눈이, 일순간 크게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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