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170화 (170/250)

169화.

크게 떠진 백선평의 두 눈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주름진 눈가.

그 안에는 뚜렷한 놀람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가능한 일이다.”

백선평은 금방 놀람의 감정을 가라앉혔다.

이윽고 싸늘한 눈빛으로 일갈했다.

“나를 동요시킬 생각이라면 아무리 너라도 용서치 않겠다. 헛소리는 더 이상 받아주지 않겠다.”

콰아아아아아아─!!

백선평의 전신으로 끔찍한 기운이 폭사했다.

오로지 존재의 죽음을 갈망하는 의지.

명백한 살의(殺意)가, 백선제를 옭아매었다.

이 살의(殺意) 앞에서 피로 이어진 혈육의 연도 의미가 없었다.

백선제는 드리우는 살의(殺意)에 저항하며 말했다.

“판데모니움 교단의 간부로부터 얻어 낸 신뢰 있는 정보입니다.”

“판데모니움의 간부라 할지라도 금제가 걸려있다. 그럼에도 그 정보를 발설했다는 건 금제에 해당하지 않는 정보일 터. 그런데도 어찌 신뢰할 수 있다 말하는 거지?”

“금제를 풀어 얻어낸 정보입니다.”

“금제를 풀었다라….”

백선평의 주름진 두 눈이 일시에 번뜩였다.

“헛소리는 더 이상 받아주지 않겠다고 경고했을 텐데.”

콰콰콰콰콰콰─!!

태산이 짓눌러 오는 듯한 압박감이 백선제를 옭아 매었다.

“끄윽…!”

백선제가 몸을 비틀거렸다.

마주 기세를 끌어올리며 짓눌러 오는 기세에 저항했다.

그러나 의미가 없었다.

의식이 점멸하며 시야가 흐릿해 진다.

백선제는 이를 까득, 깨물며 떠나가는 정신을 붙잡았다.

“붉은 그림자가…! 한국으로… 향했다 합니…다…!”

겨우 내뱉은 말.

“......!”

백선평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건 앞선 감정과는 사뭇 다른 무엇이었다.

앞선 감정은 놀람.

그러나 지금 보이는 감정은 명백한 경악이었다.

그 때문일까.

짓누르던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허억…! 허억…!”

백선제는 그때서야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UN에서….”

허억…! 허억…!

그럼에도 쉬이 진정되지 않는 호흡.

백선제는 심호흡을 몇 번 해 보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UN에서 직접, 시찰국에 전달해 온… 정보입니다…!”

휘청.

백선제는 기울어지는 몸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백선평을 바라봤다.

바라본 그곳.

“......!!”

백선평의 주름진 두 눈은 전보다 더욱 커져 있었다.

보다 더 큰 경악의 감정을 내보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백선제는 다시 입을 열었다.

“판데모니움이 악마를 부활시키려는 사실은… 거짓일 수 있습니다. 허나, 붉은 그림자의 움직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일입니다.”

“......”

백선평은 아무런 답을 해 보이지 않았다.

말마따나 판데모니움이 악마를 부활시키려 한다는 건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붉은 그림자가 움직였다는 것.

그 이유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붉은 그림자가 움직였다는 사실 하나.

그 사실만으로 이번 일이 평범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백선평은 침묵했다.

폭사하던 기운 또한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다.

정적은 길게 이어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돌아가거라.”

백선평은 다시금 축객령을 내렸다.

“아버지!”

“붉은 그림자가 나섰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세상의 흐름은 한 사람으로 인해 바뀌는 종류의 것이 아니야. 붉은 그림자나 내가 나선다고 달라질 일이었으면, 그건 본디 그런 흐름이었던 것이다.”

확고한 백선평의 의지.

“돌아가거라.”

백선평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도….”

백선제는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아직도 스스로의 정의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시는 겁니까.”

세상 누구보다 존경했던 아버지, 백선평.

“한때는 그 누구보다 앞장 서 세상을 위해 싸워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세상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고개 젓던 일을,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인류의 운명을, 아버지 손으로 직접 바꾸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버지만의 정의와 신념을 굳건히 지키시며─.”

“오만이었다.”

답을 하는 백선평은, 백선제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내가 행하는 모든 것들이 정의라고 생각했던, 실로 오만한 마음이었다.”

“그것이 어찌 오만이란 말씀이십니까.”

백선제는 말했다.

과거, 인류를 종말의 벼랑까지 몰아넣었던 마계의 침공.

그 누구도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직 13명.

수 십억의 인구 중 단 13인만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싸울 뿐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도 믿지 않았다.

세상 어떤 누구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13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절망 속에서도 그들만의 정의와 신념을 지켜 내었다.

그들은 결국 마왕의 목을 베어 내었고.

끝내 종말에 빠진 인류를 구원해 내었다.

“그런 아버지께서 정의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정의란 말입니까.”

백선제는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언젠가, 백선평과 같은 영웅이 되고자 다짐했다.

시찰국의 가더가 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보다 많은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헌터의 길.

그 길을 망설임 없이 포기할 수 있었다.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으니까.

그리하여 시찰국장의 자리에 올랐을 때는 얼마나 뿌듯 했던가.

그러나 아버지, 백선평.

백선평은 시찰국장이 된 백선제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선제, 너는 아직도 네 스스로가 정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 하느냐.”

“정의가 될 수는 없지만, 정의를 추구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선평은 그때서야 백선제를 바라봤다.

그러나 주름진 두 눈은 여전히 무심했다.

“선제, 네가 추구하는 정의가 대체 무엇이더냐.”

“선량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지켜주신 세상을 평화롭게 유지하는 일입니다.

“사람을 가차 없이 죽이면서 사람들을 지키고 있다 말하는 것이냐?”

“제가 죽이는 건 사람이 아니라 흉악한 범죄자들입니다. 이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되는 악. 진흙탕에서 싸우려면 진흙이 안 묻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람이 아니라 흉악한 범죄자라….”

백선평은 날카로운 눈빛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네가 말하는 흉악한 범죄자란 무엇이지?”

“인간으로서 차마 행할 수 없는, 악독한 범죄를 저지르는─.”

“과거, 인류의 삶은 실로 참혹했다.”

백선평이 백선제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생존이 위협받는 세상이었지.”

오늘 하루 살아남음에 안도하고.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남을지 두려워 하는.

“하루는 자신의 아이를 서로 맞바꾸는 두 부모를 본 적이 있었다. 두 부모는 각자 다른 아이를 데려가 죽여 인육으로 만들었지. 차마, 자신의 아이를 죽여 먹을 수는 없었던 게야.”

“......”

“부모는 그 인육을 다른 자신의 아이들에게 먹였다. 그로써 아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지. 한 명의 희생으로 다른 아이들은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참혹하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끔찍한 시대였다.

그래서일까.

“네가 말하는 정의에 있어 두 부모의 행동은 선이더냐, 악이더냐.”

백선제는 차마 저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네가 말하는 죄라는 범주에 있어 두 부모의 행동은 명백한 죄악이다. 그러나 그것이 네가 말하는 악(惡)이더냐.”

“......”

“부모는 맞바꾸어 죽은 아이의 뼈를 수습해 땅에 묻었다. 차디찬 땅이 얼어붙어 파이지 않았다. 손톱은 깨지고 부러져 피가 흘렀고, 흐르는 피가 땅을 적시기도 전. 주저앉아 흐르는 부모의 눈물이 온 땅을 메워 흘러갔다.”

“.....”

“너는 이들의 목을 당장이라도 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구나. 네 알량한 신념과 정의를 들먹이며, 세상 모든 일이 네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구나.”

“그건….”

“네가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정의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하나 묻겠다. 마계 침공이 있기 전, 과거의 아이들은 노동이라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유치원 대신 공장에 나갔고.

놀이터 대신 일터에 나갔다.

아이들은 노동을 함으로써 세상을 배우고 커갔다.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 부모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허나, 지금은 어떠하더냐?”

아이를 유치원이 아닌 공장에 보내는 부모.

아이를 놀이터가 아닌 일터에 보내는 부모.

“아동 학대라며 손가락질한다. 너 같은 건 부모도 아니라며,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는다.”

현시대에선 실로 크나큰 죄악이었다.

달라진 것이 없는 일인데도 말이다.

“세상 모든 것들은 흘러가며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저 변화한 것뿐이다.

도덕적 관념.

시대의 가치관.

그리고.

“네가 말하는 정의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은 네 행동이 선이며, 판데모니움의 행동이 악으로 보일 수 있다. 허나, 그것이 진정한 선이고 악이라 말할 수 있을까.”

세월이 흘러가며 수없이 뒤바뀌는 거대한 흐름 속.

잠시 스쳐 지나가는 흐름일 뿐이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선도,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

“......”

백선제는 아무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검선(劍仙), 백선평.

그가 살아온 세월의 무게와 그 속에서 느낀 깨달음에 짓눌릴 뿐이었다.

“제 머리가 아둔하여 아버지의 말씀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허나.

“그럼에도 저는 제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행하고자 합니다.”

“실로 오만하구나.”

백선평의 기세가 다시 날카로워졌다.

“아직도 네 알량한 정의가 선이라 생각하느냐.”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저는 단지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허나, 범죄자는 평화로운 세상에 있어 분명한 악입니다.”

“네가 말하는 범죄자의 기준이 어디까지이더냐.”

백선평은 일갈하듯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殺人). 살인은 네게 있어 가장 추악한 죄일 것이다. 그런 기준 안에서 너는 어떠하더냐.”

보다 강해지는 기세.

들려오는 백선평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너는 흉악한 범죄자를 죽였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하지만, 네가 행한 것은 분명한 살인(殺人)이다.”

“......”

“이 나라에서 너보다 많은 살인(殺人)을 저지른 이가 누가 있더냐. 네가 말하는 흉악한 범죄자들 중. 그 누구도 너보다 많은 살인(殺人)을 저지른 이는 없을 것이다. 아마 네 살생 중에는 분명 선량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

백선제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이 그러했으니까.

백선제의 살생은 흉악한 범죄자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백선제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

실수를 저지르는 불완전한 존재였다.

백선제의 검에는 흉악한 범죄자의 피만 묻어있지 않았다.

피치 못할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며 백선제를 위로했다.

그러나 그 죄는, 여전히 백선제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네 정의관에 따르면 너는 실로 흉악한 범죄자이자 악독한 살인귀다. 그리하여 지금.”

콰아아아아아아─!!

형용할 수 없는 기세가 온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거대한 산에 짓눌리는 것만 같은 압박감이 느껴진다.

“내가 그 죄를 들먹여 네 목을 치고자 한다면, 너는 순순히 그 목을 내주어 줄 수 있겠느냐. 네 정의를 네 스스로 실현시킬 수 있겠느냐.”

백선평은 일갈했고.

“......”

백선제는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기나긴 정적이 내려앉았다.

백선제와 백선평.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백선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백선제는 시선을 들어 아버지, 백선평을 바라봤다.

어딘가 서글픈 눈으로, 백선제는 말했다.

“제가 아버지와 함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겁니까.”

백선평은 답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충분한 답이 될 수 있었다.

“제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아버지의 정의. 세상을 위해 희생하며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지옥 길을 걸으시겠다던 말씀. 그 신념은… 더 이상 빛을 발할 수 없는 것입니까.”

“나는 신념 따위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짤막한 백선평의 답.

백선제는 차마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다시 이어진 정적.

백선제는 천천히 몸을 낮추었다.

대청마루에 앉아 있는 백선평을 바라봄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큰절을 올렸다.

“살아계실 때 만나 뵐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백선평과 다시 재회하는 날은 백선평의 시신을 수습하는 날.

“부디, 강녕하시기를.”

백선평은 차분히 두 눈을 감았다.

백선제는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떠나갔다.

서서히 멀어져 가는 백선제의 모습.

백선평은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백선제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백선제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져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

백선평은 감은 두 눈을 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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