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시찰국 본청.
‘어색한데.’
시우는 괜시리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헌터가 시찰국에 올 이유는 그리 많지 않았다.
범죄를 저지른 경우.
그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봄이 옳았다.
그래서일까.
그다지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별로 오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시우의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난 것일까.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이민정이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힘드시면 무리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민정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지금 시우의 상태는 누가 봐도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다름 아닌 실압구독의 여파로 전신이 처참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괜찮지 않았다.
신의술[神醫術](S+)로 꾸역꾸역, 버티고 있다 뿐이었다.
그리고 시우가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이유.
“몸이 회복 되시고 오셔도 됩니다. 아니, 저희가 찾아가도 됩니다. 국장님도 그러시길 바랄 테고요.”
시찰국장, 백선제.
그와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 괜찮습니다. 보기엔 이래도 나름 견딜 만하거든요.”
“하지만….”
이민정은 쉬이 걱정을 떨쳐 버리지 않았다.
괜히 말을 더 했다가는 끝도 없을 것 같았다.
시우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음?”
시우의 시선 한쪽.
이질적인 무언가가 눈에 확, 띄었다.
정확히는 이민정의 옆구리에 매여있는 한 자루의 검(劍).
“그 검. 혹시 오렐리안께서 만들어 주신 검인가요?”
시우가 묻자 이민정이 흠칫, 놀라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 네. 그렇습니다.”
이민정이 검을 풀어 헤쳐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슬쩍, 시우 앞으로 내밀었다.
“한번 살펴보시죠.”
시우는 양손으로 검을 받아 살짝, 검을 뽑아 보았다.
스릉─.
매끄러운 쇠음과 함께 큰 이질감 없이 검이 뽑혀 나왔다.
날이 벼려진 새하얀 검신은 그 무엇도 벨 수 있을 것처럼 번뜩였다.
과연 오렐리안은 오렐리안이라는 것일까.
“오….”
감탄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는 퀄리티였다.
전체적인 밸런스는 그야말로 완벽.
더하여 시우가 알려 준 신[神]의 야금술(SS) 기술들이 미약하게나마 녹아들어 있었다.
그 때문일까.
“채린 씨의 검보다 더 좋은데요?”
한채린의 검보다 퀄리티가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오렐리안의 실력이 성장을 한 것 같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서팔광 아저씨랑 하루 종일 야금술에 대해 토론을 하니까.’
서씨 공방에 갈 때면 언제나 붙어 있는 둘.
아주 공방에 신혼집을 차린 것 같았다.
오렐리안은 프랑스로 돌아갈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조금씩 한국말도 배우고 있는 것 같고.’
이대로 한국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오렐리안은 서팔광과 하루 종일 야금술을 연구하여 발전시키고 있었다.
간혹가다 시우가 신[神]의 야금술(SS)이라도 알려 줄 때면 그 날 용광로는 24시간 풀가동이었다.
시우가 알려준 기술들을 체득 한다고 잠조차 자질 않았다.
그 노력의 결과인 걸까.
“저의… 보물 1호입니다.”
이민정이 한껏 떨리는 목소리로 답해 왔다.
검을 바라보는 두 눈 또한 심히 떨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걱정 가득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지금은 세상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여자아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여자아이만이 있을 뿐이었다.
“설아를 만난 건 제 일생일대의 행운입니다.”
“설아요?”
“검의 이름입니다. 눈 설(雪). 어금니 아(牙). 눈처럼 새하얀 이빨이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그러면서 설아….
아니, 검을 바라보는 이민정의 표정은 애틋하기 그지 없었다.
“잘 때도 설아랑 같이 잡니다. 밥 먹을 때도 설아랑 같이 먹고요. 목욕도 같이 하고 싶었습니다만… 오렐리안께서 절대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바람에….”
이민정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시찰국의 가더이자 인간 백정, 이민정.
언제나 냉혹한 분위기를 풍기던 이민정이었거늘.
가만 보면 참….
“얼마 전엔 같이 영화도 보고 왔습니다.”
귀여운 면이 있는 여자였다.
“전부 맹시우 헌터님 덕분입니다. 헌터님 덕분에 설아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민정은 세상 감사한 얼굴로 시우를 바라봤다.
그런 이민정의 두 눈에는 설아….
아니, 검을 바라보던 애틋함보다 더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뭘요. 제가 만들어 드린 것도 아닌데요.”
시우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한쪽에서 선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하면서도 낯익은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선한 인상의 미중년.
“우리 초면은 아닌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네.”
백선제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 * *
“그럼 저는 나가 보겠습니다.”
이민정은 저 말과 함께 국장실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백선제와 마주한 자리.
“미안하네. 자네가 상태가 그런 줄도 모르고….”
백선제가 가장 먼저 사과의 말을 건넸다.
시우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괜찮다고 우긴 건데요.”
“정말 괜찮은 것이 맞는가?”
백선제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째, 백선제가 보기에도 시우의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뭐, 실제로도 괜찮지 않기도 했고 말이다.
아무튼.
“견딜 만은 합니다.”
“지난 번에 봤을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말 대단하군.”
백선제가 감탄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시우의 수준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름 아닌 지금 느껴지는 백선제의 기세.
‘그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백선제와의 첫 만남에서 느꼈던 기세는 애교 수준이었다.
물론 백선제는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건 되려 시우였다.
지금의 시우와 그때의 시우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괴력[怪力](SS)의 숙련도가 80%를 넘으며 보다 첨예해진 감각.
시우는 진정한 백선제의 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시우가 만난 이들 중 가장 최강은 단연 장 웨이였다.
현 무당파의 장문인이자 13인의 영웅, 융 위란의 제자.
그러나 지금 그 기준이 다시 바뀌었다.
눈 앞에 있는 백선제.
장 웨이보다 최소 한 수 위의 강자였다.
“갑자기 자네를 만나고자 한 이유가 궁금할 것 같은데….”
이윽고 들려온 백선제의 말.
“이민정 팀장님께 미리 언질을 받긴 했습니다만.”
시우는 생각을 털어 버리며 말했다.
“악마 부활이라는 건 대체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네.”
백선제는 시우를 바라보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판데모니움이 악마 부활을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네.”
시우는 아무런 답을 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백선제의 눈을 마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개소리냐, 라고 묻는 듯한 표정인 것 같네만.”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하하하.”
백선제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잠시.
“혹시 지난 번에 조북천을 심문하실 때의 내용을 기억하나? 듣기로는 자네가 직접 심문했다고 하던데.”
백선제가 다시 시우에게 물어 왔다.
시우는 가만히 기억을 되짚었다.
집들이 당시에 시우가 제압했던 판데모니움 교단의 골절급 간부, 조북천.
시우는 조북천을 직접 심문했던 바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뭐라 그랬더라?
아, 그래.
“판데모니움의 목적은 악마의 부활이다…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만.”
“바로 그거네.”
백선제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설마 그걸 믿고 계셨던 겁니까?”
시우는 그때서야 악마 부활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건 헛소리이지 않습니까.”
그건 말 그대로 헛소리였으니까.
물론 저 정보는 시우가 직접 심문을 통해 얻어 낸 정보였다.
이시스의 현실조작[現實操作](SSS)으로 금제를 풀어내면서까지 얻어 낸 정보이긴 했다.
그러나.
“금제가 걸린 정보라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뜻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판데모니움의 범죄자들이 믿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믿음’이었다.
그 왜. 있지 않은가.
사이비 종교들이 믿는 허황된 소리 같은 종류.
세상이 곧 멸망할 것이라는 둥.
구원받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한다는 둥.
이런 종류의 헛소리들 말이다.
이러한 것에 금제가 걸려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하여 저 말들이 사실이 되던가.
당연하게도 아니었다.
그저 저들만의 ‘믿음’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판데모니움과 사이비 종교는 궤를 달리하긴 했다.
그러나 ‘미쳐 있다’라는 개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악마 부활이라는 것.
“그냥 정신 나간 소리라고 생각됩니다만.”
한 마디로 정신 나간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애초에 부활이라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죽음은 절대적인 개념.
죽은 자를 되살리는 건 오로지 신(神)만이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시우는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다.
말 같지도 않은 허황된 소리라 치부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민정 팀장도 자네와 같은 생각을 했더군.”
이민정 또한 역시나 믿지 않았다고 한다.
시우와 마찬가지로 미친놈들의 헛소리라 치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민정 단독으로 해당 일을 헛소리라며 묵살할 수는 없는 노릇.
이민정은 대수롭지 않게 본청에 보고를 올렸고.
“나는 그걸 단순히 헛소리로 치부할 수가 없었네.”
백선제는 그 보고를 헛소리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때문일까.
시우의 사고가 이해할 수 없는 속도로 가속화되었다.
통찰력(S+).
기이한 힘이 마주한 현실의 본질을 꿰뚫었다.
그리하여 지금.
“과거에 악마가 모두 죽지 않았던 겁니까?”
시우는 물었고.
“그걸 어떻게…?”
백선제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시우를 바라보는 백선제의 두 눈.
그곳엔 상당한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사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시우는 떠오른 생각에 확신을 더할 수 있었다.
부활이 불가능 하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백선제 또한 마찬가지일 터.
“악마 부활이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쯤은 국장님께서도 당연히 알고 계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악마 부활이라는 말에 대한 백선제의 반응은 응당 정해져 있었다.
묵살 혹은 무시.
그런데 정작 백선제는 그렇지 않았다.
“방금 국장님은 악마 부활을 헛소리로 치부할 수 없었다고 말씀하셨죠.”
아마… 백선제가 아닌 다른 이였다면 시우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백선제라는 사실이 시우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국장님은 검선(劍仙)님의 아드님이시지 않습니까.”
백선제는 검선(劍仙), 백선평의 아들이었으니까.
악마와 마왕의 목을 직접 베어낸 영웅의 아들.
백선제는 검선(劍仙)에게 관련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악마 부활을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것.
“제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우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현재로서 시우가 알고 있는 악마와 관련한 사실은 세상에 알려진 것이 전부였다.
과거, 인류의 명운을 건 13인의 영웅과 마왕과의 전투.
13인의 영웅은 끝내 마왕의 목을 베었고, 인류를 종말로부터 구원했다.
이것이 시우가 알고 있는 전부이자, 세상에 알려진 이야기였다.
허나 지금.
“검선께 들으신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겁니까?”
세상에 알려진 이야기와 다른 무언가.
그것이 단순히 알려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시우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데, 그것이 어째서 악마가 모두 죽지 않았다는 결론에 닿을 수 있었던 거지?”
“죽음으로부터의 부활만 부활이 아니니까요.”
부활이라 함은 보통 죽음과 연관 지어 생각한다.
그러나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은 불가능하다.
오직 신(神)만이 가능한 일을 인간이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따라서 이건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정확히는 부활이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 경우는 하나.
“재강림 혹은 재현신.”
죽지 않은 악마들의 재강림.
이 또한 부활의 일종으로 볼 수 있었다.
이 말은 즉.
“과거에 악마는 모두 죽지 않았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에 지나지 않는 일입니다만.”
고작 백선제의 한 마디에서 도출해 낸 결과였다.
그러나 제갈공명의 통찰력(S+).
“...놀랍군.”
시우를 바라보는 백선제의 두 눈에는 경이로움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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