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177화 (177/250)

176화.

서울 상공을 뒤덮은 던전 게이트.

그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수백, 수천.

아니, 어쩌면 수만.

차마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던전 게이트들이 서울 상공을 새까맣게 뒤덮고 있었다.

“저, 저게 무슨…?”

“대체 무슨 일인 거지…?”

사람들은 자리에 멈춰 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망치는 이들은 없었다.

“갑자기 하늘에 던전 게이트가?”

“저게 대체 몇 개인 거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

“야야! 대박! 대박! 유투브 영상 올리면 조회수 달달하겠는데?”

“빨리 카메라 찍어 봐!”

카메라를 들어 하늘을 찍고 있는 사람들.

저마다 각기 다른 반응을 내보이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 속.

“마, 마계 대침공….”

누군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작디 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었다.

외관상으로 보이는 나이만 80이 넘어 보이는 노인.

폐지를 줍고 있었던 것일까.

리어카에는 온갖 박스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 마, 마계 대침공….”

노인은 다시 한번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하늘을 바라보는 주름진 두 눈 또한 경악으로 뜨여져 있었다.

“영감. 그게 대체 무슨 말이요?”

“마계 대침공이라니?”

사람들은 노인을 향해 물어 왔다.

마계 대침공.

그 말의 뜻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과거, 인류를 종말의 벼랑까지 몰아넣었던 대사건.

그러나 그리 와닿지는 않는 말이었다.

그건 과거의 일이었으니까.

마계 대침공을 겪은 이들은 대부분 늙어 죽었다.

지금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불과한 일.

현시대의 사람들은 당시의 일을 글로만 접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도망… 도망쳐야 해…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해…!”

노인은 그렇지 않았다.

노인은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줄행랑을 쳤다.

고생해 가며 모은 박스 더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뭐야…?”

“왜 저래?”

사람들은 노인의 행동에 의문을 품을 뿐이었다.

일부 눈치 빠른 이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멈춰 서 있을 뿐이었다.

바로 그때.

키에에에에에엑─!!!

소름 끼치는 괴성이, 고막을 자극해 왔다.

그것은 하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가 아니었다.

크워어어어어─!!

키야아아악─!!

수많은 괴성들이 한데 모여 천둥처럼 서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뭔가… 이상한데?”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사람들은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비로소 당황이라는 감정이 깃들었다.

그 사이로 후두두두둑.

먹구름과도 같은 서울의 하늘 아래로 빗방울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빗방울이 아니었다.

키에에에에에엑─!!!

크워어어어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몬스터.

마계에 기거하는 마물들이 소나기처럼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더, 던전 쇼크….”

던전 쇼크.

던전 안의 몬스터들이 던전 밖으로 튀어나오는 현상.

그 현상이 서울 상공을 뒤덮은 수만의 게이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 뭐야… 뭐냐고 이게!”

“도, 도망쳐!!!”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사, 살려줘! 제발 살려줘!”

“꺄아아아아아악!!”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도.

콰아앙!

콰지지직!

쏟아진 마물들이 서울의 풍경을 무차별적으로 박살 내기 시작했다.

부서진 잔해에 사람들이 휘말리고 휩쓸려 갔다.

“어, 엄마! 으아아앙!”

“예나야!! 안돼!! 도와주세요! 누가 우리 예나 좀 살려주세요!!”

한 아이의 엄마가 애처롭게 소리쳤지만 의미 없었다.

수많은 마물들을 상대로 도와줄 수 있는 이가 없었으니까.

그저 파묻힐 뿐이었다.

키에에에에에엑─!!!

크워어어어어─!!

흉포한 마물들의 괴성.

“으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악!”

혼비백산하는 사람들의 비명.

바로 그때였다.

서걱─!

깔끔한 절삭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아이를 위협하던 마물의 움직임이 뚝, 멈춰 섰다.

이윽고 스르륵.

마물의 몸이 양단되어 허물어졌다.

갈라진 사체 사이.

그곳엔 한 명의 여인이 검을 든 채 서 있었다.

포니테일의 머리.

냉혹하리만치 싸늘한 분위기.

검은 제복 복장과 어깨 견장에 새겨진 해태 문양.

“비상 계엄령 조항에 따라 현 시간부로 이곳은 서울 지부 시찰국에서 통제합니다.”

서울 지부 시찰국 가더 4팀장, 이민정.

그런 이민정의 뒤로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더들이다!”

“시찰국의 가더들이 왔다!”

사람들의 얼굴에 비로소 안도의 감정이 내려앉았다.

가더들은 몬스터로부터 사람들을 수호하는 파수꾼.

가더들이 앞선 마물들을 베어 내었다.

하늘에 쏟아진 마물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가더들 또한 많았다.

전국 각 지부의 가더들이 모두 한데 모여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 살았어! 우린 살았어!”

사람들이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풀리는 긴장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이들도 있었다.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그러나 아직 절망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키에에에에에엑─!!!

크워어어어어─!!

하늘 아래로 마물들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민정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말했다.

“국장님과 광역 수사대 대장님의 부재로, 이곳 상황은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광역 수사대 분들께서도 동의하십니까?”

“동의한다.”

이민정의 말에 광역 수사대 일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민정은 다시 그 뒤쪽에 포진한 가더들에게 말했다.

“다른 지부의 가더들도 동의하십니까?”

“우리도 동의한다. 관할 구역의 지시를 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나.”

이민정은 다시 입을 열었다.

“각 지부의 가더분들께서는 최우선으로 사람들을 대피시켜 주십시오.”

“알겠다.”

“수아, 네가 주축으로 가더분들을 지휘해줘.”

“넵!”

이민정의 팀원, 정수아가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헷갈리지 않게 팀 분류부터 할게요! 경기도의 가더분들은 1팀! 경상도는 2팀! 1팀과 2팀은 부서진 건물 안의 사람들을 구호해 주세요! 그리고 전라도의 가더분들은….”

정수아의 지휘 아래 가더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건물에 갇힌 사람들을 구조하는 한편.

혼비백산한 사람들을 다독이며 상황을 통제했다.

이민정은 앞선 광역 수사대 가더들에게 말했다.

“광역 수사대분들은 저와 같이 쏟아지는 마물들을 막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지.”

광역 수사대 가더들이 이민정의 옆에 서 보였다.

“대장님은 물론 국장님께서도 이민정 팀장, 자네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던데. 오늘 그 실력을 볼 수 있는 건가?”

이민정은 답을 해 보이지 않았다.

키에에에에에엑─!!!

크워어어어어─!!

쏟아지는 마물들 속.

선명하게 빛나는 설아(雪牙)를 들어 보임에.

서걱─!

행동으로서 답을 해 보일 뿐이었다.

* * *

“이, 이게 무슨….”

한민아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무수한 마물들.

꺄아아아아아악!!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사람들의 비명.

“뭐, 뭐야….”

도무지 현실이라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비현실적인 현상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크게 떠진 두 눈으로 보이는 풍경은 명백한 현실이었다.

한민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서울 하늘에 던전 게이트가 생겨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위험하다.

한시라도 빨리 사옥을 벗어나야 했다.

한민아는 대충 옷을 챙긴 뒤 이사실을 나섰다.

그리고 뚝.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혈향.

복도는 피로 낭자하여 참혹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경호원들은 움직임이 없었다.

“이, 이게…!”

한민아의 두 눈이 쉼 없이 떨려 왔다.

형용할 수 없는 경악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 순간.

“네가 한민아인가?”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정체불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사내의 양손에 들려 있는 두 개의 단검.

각각의 단검에는 붉은 피가 방울방울 맺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누, 누구시죠…?”

한민아의 목소리가 심히 떨려 왔다.

사내는 천천히 등을 돌려 한민아를 바라봤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스쳐 가듯 본 적도 없었다.

다름 아닌 왼쪽 눈가에 새겨진 일자 흉터.

본 적이 있다면 저 흉터를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한민아는 사내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오직 하나.

이 끔찍한 광경의 주범이 저 사내라는 사실.

그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사내가 천천히 한민아에게 다가왔다.

“단지 거래를 했을 뿐.”

거래?

한민아는 의문이 들었으나 그 의문을 길게 이어 나가지 못했다.

보다 정확히는 생각이라는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이런 짓을 대체 왜…!”

공포와 두려움.

뱀 앞에 선 생쥐의 심정이 이러할까.

한민아는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당장이라도 도망쳐야 함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세포 하나하나가 얼어붙은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고통은 없이 보내 주지.”

다가오는 죽음.

한민아는 두 눈을 질끈, 감을 뿐이었다.

그리고.

카앙─!

둔탁한 쇠음이 들려왔다…?

쇠와 쇠가 맞부딪히는 둔탁한 쇠음.

지금 들려온 건 분명한 쇠음이었다.

한민아는 천천히 감은 두 눈을 떠 보였다.

그리고 보인 광경은….

“다행히 늦지는 않은 모양이군.”

그건 한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남자의 모습.

정체불명의 사내는 당연히 아니었다.

정체불명의 사내는 저 멀리 밀려나 있었다.

그 또한 매서운 눈빛으로 한민아 앞을 가로막은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잠깐의 정적.

“백선제….”

정체불명의 사내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시찰국장, 백선제.

한민아의 앞을 가로막은 남자는 다름 아닌 백선제였다.

“가녀린 여인를 겁박하다니. 아무리 판데모니움이라지만, 흉터급 간부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은가.”

“......”

“오주원이라는 이름이 울겠군, 울겠어.”

백선제는 약간의 질책 섞인 어투로 말했다.

정체불명의 사내, 오주원은 가만히 백선제를 노려보며 말했다.

“맹시우를 따라간 것이 아니었나?”

“역시, 그게 미끼인 줄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백선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오주원, 자네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저것 때문이겠지?”

백선제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서울 상공을 뒤덮은 던전 게이트.

“저거 진짜 자네가 한 건가? 대체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건가?”

“내가 알려 줄 이유가 있나?”

“뭐, 기대도 안 했네.”

백선제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러나 정작 표정은 쩝, 아쉬운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묻지. 왜 맹시우를 따라가지 않았지? 나를 끌어내기 위해 맹시우의 승격 심사를 진행한 것이 아니었나?”

“그래서 이렇게 버젓이 자네를 끌어내지 않았는가.”

들려온 백선제의 답.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군.”

오주원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정적이 내려 앉았다.

백선제와 오주원.

서로가 서로에 대한 기묘한 대치가 이어졌다.

별다른 기세의 충돌도 없었다.

그러나 한민아는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누군가 한민아의 숨통을 옭죄어 오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정신이 서서히 멀어져갈 때쯤.

“괜찮으십니까?”

일순간 들려온 백선제의 말.

“허억…!”

한민아는 그때서야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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