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178화 (178/250)

177화.

달콤한 숨이 폐부로 들어오며 켈록켈록!

막혔던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흐려지던 정신이 번쩍, 뜨이며 시야가 맑아졌다.

“괜찮으십니까?”

그 사이로 백선제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설마하니 오주원에게 저런 말을 하지는 않을 터.

“...켈록켈록! 아, 네. 덕분에… 켈록!”

한민아는 가까스로 답을 해 보였다.

사실 괜찮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성함이, 한민아 씨 맞으십니까?”

“아, 그… 네. 하, 한민아. 한민아예요.”

“민아 씨,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십시오.”

백선제는 오주원을 향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제가 민아 씨를 지켜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기 오주원은 그리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백선제의 말에 한민아는 놀란 눈을 떠 보였다.

시찰국장, 백선제.

검선(劍仙), 백선평의 아들.

한민아는 백선제를 모르지 않았다.

그 실력이 어떠한지 또한 모르지 않았다.

정확하진 않았지만 대한민국 한정.

가히 최강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으리라.

그런 백선제가 쉽게 상대할 수 없다?

한민아는 오주원이라는 사내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 민아 씨. 제가 신호를 보내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사옥 밖으로 뛰어나가십시오. 사옥 밖으로 나가면 가더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오. 그러면 민아 씨는 안전할 겁니다.”

백선제는 그때서야 고개를 돌려 한민아를 바라봤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들려온 백선제의 물음.

그러나 한민아는 쉬이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 그럼 국장님은요? 국장님은….”

“저는 민아 씨가 안전하게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오주원을 붙잡고 있겠습니다.”

백선제는 한껏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제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건, 오주원을 막아서는 것이 전부인지라.”

그리고는 한민아를 향해 선선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긴박한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소였다.

그런데 왜일까.

저 미소를 보고 있자니 떨렸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딘가, 마음의 안심이 되는 미소였다.

그 순간.

“나를 바보로 아는 건가?”

오주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주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다 들었나?”

백선제가 아차 싶은 표정으로 말했다.

보다 정확히는 능글맞은 연기에 불과한 표정이었다.

“아리따운 여인과의 은밀한 대화였거늘. 자네한테 엿듣는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는걸.”

백선제는 태연할 뿐이었다.

오주원이 듣든 말든.

아무런 상관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서 뭐 어쩔 건가.”

그건 일종의 자신감과 같았다.

백선제는 한민아를 지키면서까지 오주원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오주원 또한 백선제를 무시하며 한민아를 억압할 수는 없었다.

오주원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차라리 저 여인을 미끼로 쓰는 것이 나를 상대함에 있어 효율적이지 않나?”

“민아 씨가 자네에게 인질로서의 효과가 있나? 자네, 설마….! 민아 씨에게 관심이 있나?”

백선제는 능글맞게 물었다.

그리고 오주원은 아무런 답을 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백선제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람 참 싱겁기는.”

백선제는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만, 능력만 본다면 칼만 쓸 줄 아는 칼잡이보다는 SH그룹의 이사가 더 뛰어나지 않겠나. 효율을 따져 보니 내가 희생하는 쪽이 더 낫더군. 무엇보다 이런 미인을 잃는 건, 인류적인 손해라서 말이지.”

백선제는 여전히 능글맞은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참으로 대단한 영웅 납셨군.”

“영웅이라….”

백선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말은 되도록이면 사람들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인데… 자네에게 들으니 기분이 참으로 묘하구만.”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한 번 정적이 내려앉았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기묘한 대치가 이어졌다.

그러나.

타닷! 탁!

이번엔 그 대치가 길지 않았다.

백선제와 오주원.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한민아는 둘의 움직임을 인지할 수가 없었다.

콰아아앙!!

둘 사이의 거리 중간쯤에 커다란 폭발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캉! 카캉─!

꽈꽈꽝!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일격들이 행해지고 이어졌다.

한민아는 단 한 순간도 둘의 모습을 인지할 수가 없었다.

한민아가 인지할 수 있는 건 딱 두 가지.

꽈아아아앙!

백선제와 오주원이 격돌했다는 굉음.

“어서 가십시오!”

그리고 백선제의 외침이었다.

한민아는 섣불리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한 백선제를 차마 두고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할 때였다.

지금 한민아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 되려 백선제의 발목을 붙잡는 일이다.

한민아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백선제를 바라봄에.

“밖에 나가서 가더분들께 도움을 청할게요!”

한민아는 그대로 몸을 돌려 사옥 밖을 향해 뛰어나갔다.

* * *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한민아의 모습.

오주원은 눈을 번뜩이며 한민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쐐애애액!

공기를 찢는 파공음에 그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카아앙─!!

막아선 단검 위로 묵직한 충격이 때려 왔다.

손바닥이 저릿한 것이 정녕 막은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자네, 정말로 민아 씨에게 관심이 있는 건가?”

그리고 들려온 백선제는 말.

오주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백선제를 무시하면서 한민아를 어찌할 수가 없다.

백선제는 그 정도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물론 어찌저찌 한민아를 죽일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오주원 또한 치명상을 입을 터.

“어쩔 수 없군.”

오주원은 한민아에 대한 미련을 빠르게 털어 버렸다.

그 대신 백선제를 바라봄에.

키이이이잉─!

오주원의 두 눈이, 붉은빛으로 번들거렸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으로 무수히 많은 오주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상처를 입는 오주원.

팔이 절단되어 잘리는 오주원.

목이 꿰뚫려 절명하는 오주원.

허나, 그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의 오주원일 뿐이었다.

오주원의 개성, 예지[豫知](S).

이 힘으로 내다볼 수 있는 미래의 시간대는 지극히 짧았다.

10초 앞.

오주원이 정확히 내다볼 수 있는 미래는 10초 앞이 한계였다.

그러나 전투와 싸움에 있어 10초는 어마어마한 시간이었다.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

어떤 방향으로 공격해 올지.

또 어떻게 방어를 할지.

10초간 이루어지는 공방을 오주원은 정확히 예지[豫知](S)할 수 있었으니까.

오주원은 그 미래의 정보를 내다보며,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미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

타닥!

오주원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백선제는 움직이지 않았다.

검을 길게 늘어뜨리며 오주원을 직시할 뿐이었다.

한 번의 기회를 노리는 걸까.

상관없다.

저런 백선제의 행동 또한 이미 보았던 미래였으니까.

오주원은 쌍단검을 빙글, 돌려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한 발.

앞으로 진각을 내딛으며, 쌍단검을 휘둘렀다.

카아앙─!

섬뜩한 불꽃이 튀어 올랐다.

단검을 쥔 손바닥이 찢어지며 피가 튀어 오른다.

힘과 힘의 대결에서 밀렸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카앙─!

카캉! 카카캉!

오주원의 쌍단검이 전방을 마구잡이로 할퀴었다.

수많은 잔상들이 만들어지며, 공간 자체가 찢어발겨진다.

감각을 뛰어넘는 속도.

카가──가──각!

소리가 끊어지며 들려온다.

수많은 잔상들이 자아내는 소리가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한다.

끊어지고, 또 베어진다.

쩌엉─!

백선제는 그 모든 일격들에 반응하고 있었다.

소리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무수한 일격들이건만.

백선제는 하나하나의 일격들을 반응하며 쳐 내고 있었다.

과연.

적이지만 감탄이 나오는 실력이었다.

하지만.

촤확!

이 또한 이미 보았던, 미래일 뿐이다.

백선제의 옆구리가 크게 베어졌다.

붉은 선혈이 튀어 오르며 크윽!

백선제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지금.

오주원은 빠르게 백선제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움켜쥔 쌍단검은 독사의 송곳니처럼 백선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푸확!

오주원의 어깨가 크게 베어졌다.

“......!”

오주원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어깨를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에 정신이 아려 왔다.

오주원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이대로는 역으로 당한다.

오주원은 쌍단검을 급히 회수하며 백선제의 복부를 걷어찼다.

뻐억─!

백선제의 몸이 날아가 벽에 쳐박혔다.

“허억…! 허억…!”

오주원은 그때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오른쪽 어깨를 매만지자 찐득한 피가 손에 묻어 나왔다.

이건….

보지 못했던 미래다.

오주원이 본 미래는 이것이 아니었다.

옆구리가 베어진 백선제.

백선제는 결국 오주원의 추가 일격을 막아 내지 못한다.

그리하여 목이 꿰뚫려 사망한다.

이것이 오주원이 내다본 미래였다.

그런데 지금.

“쿨럭…!”

그 미래가 바뀌어 있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래를 바꾸는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하나.

“내가 본 미래의 일부를… 지운 건가.”

비틀!

오주원은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 또한 역시 하나.

“역시나 거슬리는 개성이군.”

백선제의 개성, 무효[無效](S).

백선제는 상대의 개성을 무효화시킬 수 있었다.

하여 오주원의 개성, 예지[豫知](S)를 무효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무효화시킨 것은 아니었다.

예지[豫知](S)에도 한계가 있듯.

무효[無效](S)에도 한계가 있었으니까.

해서 오주원이 내다본 미래의 일부를 지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건 오주원의 예지[豫知](S)가 불완전해진다는 뜻이었으니까.

불완전한 미래는 결국 미래를 모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 불완전한 미래의 결과를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가.

왼쪽 눈에 깃든 의안.

불완전한 미래를 믿고 행동한 결과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건 내가 할… 소리네만, 쿨럭!”

뒤이어 백선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선제는 부서진 잔해 속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낸 백선제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베어진 옆구리.

그곳에선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오주원도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베어진 어깨.

마찬가지로 새빨간 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

“......”

둘은 서로를 말없이 지켜봤다.

백선제와 오주원.

무효[無效](S)와 예지[豫知](S).

서로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숙적(宿敵).

그러나 지금.

“백선제, 너는 한 가지 크나큰 실수를 했다.”

오주원이 의미심장한 말을 해 왔다.

“내가 단기적인 미래만 볼 수 있다고 착각한 것.”

그와 동시에 키이이잉─!!

오주원의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마력의 힘이 폭사했다.

이윽고 알 수 없는 마법진들이 사방으로 새겨졌다.

증폭 마법진.

콰콰콰콰콰콰─!

오주원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갔다.

그리고.

“나는 네가 맹시우를 따라가지 않을 것을 이미 보고 있었다.”

오주원의 왼쪽 눈이, 검붉은 광채를 띠기 시작했다.

* * *

백선제와 오주원이 격돌을 하고 있는 사이.

한민아는 큰 위협 없이 사옥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바깥 상황은 역시나 아비규환이었다.

키에에에에에엑─!!!

크워어어어어─!!

하늘 위에서 쏟아지는 마물들.

꺄아아아아악!

사방으로 들려오는 비명.

여긴 그야말로 지옥도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그 지옥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은 있었다.

서걱─!

콰지직!

“모두 이쪽으로 대피하세요!”

검은 복장을 입은 이들.

시찰국의 가더들이 사람들을 보호하며 상황을 꾸역꾸역, 틀어막고 있었다.

그럼에도 역부족이었다.

일단 쏟아지는 마물들이 너무 많았다.

가더들이 어떻게든 틀어막고 있으나 전선이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한민아 이사님 되십니까?”

누군가 한민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포니테일의 머리를 한 여인이 있었다.

어딘가 채린이를 닮은 듯한 냉혹한 분위기의 미녀.

“저는 서울 지부 가더 4팀장, 이민정이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제 제시에 따라 주시길 바랍니다.”

이민정은 한민아를 인도했다.

그러나 한민아는 이민정을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사옥 안에… 사옥 안에 시찰국장님이 계세요!”

백선제.

자신을 대신하여 사옥 안에 남은 그가 눈에 밟혔으니까.

무엇보다 지금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

“시찰국장님을 도와야 해요!”

한민아는 이민정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일반인에 불과한 한민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민정은 달랐다.

시찰국의 팀장.

필시 백선제에게 도움이 되리라.

한민아는 절박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민정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한순간 멍해지는 정신.

“국장님… 지시입니다.”

그 사이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민정의 말이 들려왔다.

초월자의 채널을 구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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