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백선제는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은 자가 생각을 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백선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어야만 했다.
헌데, 지금….
“크하학!”
오주원이 피를 한 움큼 바닥으로 토해 내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오주원의 몸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대체… 어째서?
백선제는 역시나 이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쿨럭!”
이번엔 백선제의 입가로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가슴으로 끔찍한 통증이 일었다.
통증.
그래, 이건 통증이었다.
살아 있다는 삶의 방증.
시선을 내리자 가슴에는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오주원의 단검이 박혀 있었던 바로 그곳이었다.
벌어진 상처에선 꿀럭꿀럭, 심장 박동에 맞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심장 박동…?
백선제는 차분히 몸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곧.
뛰고 있는 심장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심장이 꿰뚫리지 않았다…?”
분명 오주원의 단검 끝이 겨누고 있던 심장이었다.
백선제는 도무지 어떻게 상황이 흘러가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커헉…!”
백선제의 몸이 크게 꺾이며 털썩.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 앉았다.
심장은 꿰뚫리지 않았으나 어디까지나 완전히 꿰뚫리지 않은 상태였다.
심장 직전까지 파고 든 상처는 백선제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다.
바로 그때.
“괜찮으십니까?”
백선제의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오주원의 것이 아니었다.
흐릿한 시야.
그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자네는…?”
그러나 백선제는 금방 그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어딘가 맹한 분위기의 사내.
“맹시우 헌터…? 자네가 어떻게 여기에…?”
백선제는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처가 깊습니다. 말씀을 자제하세요.”
시우는 천천히 백선제에게 다가왔다.
쓰러진 백선제를 편하게 눕히고는 주섬주섬,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목갑 하나를 꺼내 들었다.
목갑에는 가느다란 침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시우는 목갑에서 침을 꺼내어 백선제의 몸에 찔러 넣었다.
“이, 이게…?”
백선제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의 몸은 스스로가 잘 알았다.
찢어진 심장의 상처.
백선제는 즉사만 하지 않았다 뿐이었다.
생명이 위급하다 못해 위독했다.
당장 병원으로 이송된다 한들 아마 살아나기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푹. 푹.
가느다란 침이 몸에 꽂힐 때마다 통증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위급했던 상처가 점점 회복되고 있었다.
현대 의학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가능한 건 오직 한 명.
성녀, 루도레아.
13인의 영웅 중 한 명이었던 그녀만이 이러한 기적이 가능했다.
“어떻게…?”
백선제는 회복되는 자신의 상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만…두게나.”
백선제는 침을 꽂는 시우의 손을 붙잡았다.
“날… 치료하지 말게나.”
침을 꽂던 시우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백선제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여기서 죽어야 하네….”
자신은 살아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아버지, 백선평이 나설 테니까.
오직 백선평만이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번 서울에서 일어난 사태는 백선평이 반드시 필요하다.
“오주원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이어진 시우의 물음.
백선제는 힘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오주원이 문제가 아니네… 이번 일에서 오주원은 그저… 쿨럭!”
왈칵, 쏟아지는 핏물.
백선제는 차마 뒷말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나를… 그냥 내버려 두게.”
백선제는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시우는 가만히 백선제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슨 이유로 그리 말씀하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우가 막아선 백선제의 손을 밀쳐 냈다.
그리고는 백선제의 혈(穴)을 짚어 침을 꽂아 넣었다.
백선제를 치료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백선제는 그런 시우를 다시 막아섰다.
아니, 막아서려던 그 순간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지키고자 하신 국장님의 의지는 알 것 같습니다.”
시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시우는 계속해서 백선제에게 침을 꽂아 넣었다.
그럴 때마다 백선제의 상태는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국장님, 사람들을 지키는 방법에는 이러한 희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우는 백선제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오주원은 저라는 미끼를 물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국장님을 없애는 쪽을 선택했죠.”
어느샌가 가슴팍에 흐르던 피가 흐르지 않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벌어진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시우는 그때서야 백선제의 눈을 바라봤다.
백선제는 아무런 답을 해 보이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
“저보다는 국장님을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시찰국장, 백선제.
백선제는 모든 범죄자들에게 있어 하나의 억제력과도 같은 존재였다.
대한민국에서 범죄자들이 활개 치지 못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
이 이름 석 자로 인해 뿌리 뽑힌 범죄 집단이 얼마던가.
백선제라는 이름이 두려워 실행되지 못한 범죄는 또 얼마이던가.
그로써 지켜진 사람들의 목숨은 또 얼마이던가.
존재만으로도 한국 사회를 지켜 온 백선제.
“이런 희생만이 아니라, 국장님께서 무탈하게 살아 계시는 것 또한 사람들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바라본 시우의 두 눈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니 죽지 마세요. 무탈히 일어나셔서 사람들을 지켜 주세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시우의 마지막 말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어쩌면 그 때문일까.
“......”
백선제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냥… 그냥….
그냥 정신이 멍했다.
망치로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은 기분.
아니, 그래도 이런 기분은 들지 않을 것 같았다.
시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서히 등을 돌림에.
왜일까.
백선제는 한 사람의 모습과 시우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인류의 종말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태산과도 같았던 등.
“잠시 쉬고 계세요.”
백선제는 시우의 뒷모습에서 아버지, 백선평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 * *
“크하학…!”
오주원의 입가로 피가 쏟아져 내렸다.
어떻게든 참으려 했으나 목구멍까지 차오른 피는 끝내 입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전신을 후드려 팬 듯한 충격.
정말이지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주원은 몸 상태보다 정신적인 충격이 더 거세었다.
“어, 어떻게…? 어떻게 네가…?”
불현듯 나타난 맹시우의 존재.
이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맹시우는 절대로 이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있어서는 안 되었다.
맹시우는 그곳에서 죽었어야만 했으니까.
오주원은 맹시우가 미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끼라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물 수밖에 없음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물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백선제의 죽음이 더 중요했다는 것.
둘째는 어차피 맹시우는 죽을 예정이라는 것.
맹시우가 들어간 S등급의 던전.
그 안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수 없었다.
맹시우는 절대로 그곳에서 살아 돌아올 수 없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그곳에서 죽었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쿨럭…!”
오주원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이 오주원의 정신을 뒤죽박죽 엉켜 놓았다.
무엇보다.
오주원이 본 미래는 이것이 아니었다.
백선제의 죽음.
백선제는 심장이 꿰뚫려 사망한다.
이것이 오주원이 본 ‘결정된’ 미래였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주원은 피로 얼룩진 손을 내려다봤다.
손끝의 감각은 분명 생생했다.
백선제의 심장을 꿰뚫고 들어간 감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정작 백선제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
그 말은 즉.
‘미래를… 바꾸었다…?’
말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증폭 마법진으로 강화된 예지의 능력.
이는 불변하는 법칙이자 확정된 미래다.
0%의 가능성.
지금 상황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쿨럭…! 크하학…!”
피가 끊임없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어떤 공격을 당한 것인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네게 물어볼 것이 많아.”
들려온 시우의 목소리.
오주원은 이를 까드득, 깨물었다.
흔들리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았다.
맹시우.
오주원의 머릿속에 각인된 그 이름.
겉보기로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놈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시우에게는, 놈에게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네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콰콰콰콰콰콰─!!
검붉은 마력이 폭사하며 사방으로 드리웠다.
키이이이이잉─!!
수천 개의 증폭 마법진이 그 힘을 받아 더욱 증폭시켰다.
“너는 여기에 오면 안 되었다.”
이 압도적인 힘 앞에서 오주원은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오주원은 쌍단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한 발.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음에.
파아앙─!!
공기가 터지는 폭음이 들려왔다.
천천히 돌아본 시선.
오주원의 몸 절반이 그대로 터져 나가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의식이 흐릿해─.
“허억…!!”
오주원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황급히 몸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멀쩡히 붙어 있는 몸 절반을 볼 수 있었다.
착각…?
하지만 방금 분명히….
시우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가만히 오주원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말은 즉.
방금 전의 일은 현실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생생했던 그 감각.
마치 현실과도 같았던 방금 전의 상황.
“이, 이게….”
오주원의 정신이 혼란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 순간.
뻐어억─!!
둔탁한 굉음과 함께 오주원의 가슴에 큰 구멍이 뚫렸다.
털썩.
오주원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주저 앉─.
“허어억…!”
다시금 들이켜는 숨에 정신이 돌아온다.
황급히 확인한 몸 상태는 아까와 같이 멀쩡─.
콰아앙─!!
머리가 박살 나며, 생각이 끊어진다.
“커허헉!”
그리고 다시.
콰지직─!!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지며 사라진다.
“커헉!”
또 다시.
콰콰쾅─!!
강렬한 폭발에 오주원의 몸이 흔적도 없이 소멸한다.
“허어억…!”
다시 숨을 들이켬에 원상태로 돌아온다.
오주원은 이때서야.
이 착각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다.
오주원의 개성, 예지[豫知](S).
그리고 증폭 마법진으로 강화된 힘.
그 증폭된 예지의 힘이 보여 준 가능성의 미래였다.
그 가능성의 미래가 생생하게 느껴진 것이었다.
아까 전, 백선제의 심장을 찔렀다고 느낀 것처럼 말이다.
그 말은 즉.
방금 전 오주원이 겪은 수많은 일들.
‘이게… 내 미래라고?’
그건 오주원에게 펼쳐질 수 있는 가능성의 미래란 뜻이었다.
까드득!
오주원은 이를 부서져라 깨물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으나 분명한 현실이다.
아니, 현실로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래 봤자 수많은 가능성 중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오주원이 볼 수 있는 가능성의 미래는 무수했다.
가능성을 뜻하는 의미의 ‘만약’이라는 단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뜻밖의 경우.
그 모든 경우의 미래를 오주원은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오주원은 미래를 취사선택할 수 있었다.
만약 왼쪽 어깨를 틀어 움직였다면?
만약 오른발을 들어 피했다면?
만약 허리를 뒤로 젖혀 회피했다면?
얼핏 보면 큰 의미 없는 차이로 느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가능성의 미래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지구 반대편에선 태풍을 일으킬 수 있는 법.
초기 조건의 아주 사소한 변화가 전체에 있어서는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하여 오주원이 내다보는 가능성의 미래.
패러렐 월드(Parallel World).
서로 고립된 채 존재하는 무한의 세계.
오주원은 그 미지의 세계를 내다볼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오주원은 선택하면 되었다.
왼쪽 어깨를 틀어 움직일지.
오른발을 들어 피할지.
무한으로 펼쳐진 가능성 중에서 오주원에게 가장 유리한 미래를 선택하면 되었다.
하여, 지금.
콰아아아아아─!!
키이이이잉─!!
오주원의 검붉은 마력과 증폭 마법진이 극한으로 가동되었다.
그리하여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을 넘어 수억.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미래가 펼쳐진다.
그리고.
파아아앙─!!
갈가리 찢겨… 사라진다.
패러렐 월드 속, 가능성의 세계가 찢겨지고 있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패러렐 월드는 서로 고립된 세계.
현실로 일어나지 않은 가능성의 미래이기에 소멸하고 자시고 할 수 없는 세계다.
그렇다는 건 즉.
‘존재하지를… 않는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주원이 내다본 수억에 달하는 가능성의 미래.
그 무수한 가능성의 미래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주원이 시우를 이기는 가능성의 미래가 없었던 것이다.
오직 하나.
“내가 경고하지 않았었나.”
죽음(死).
“다음은 너라고.”
그것만이, 오주원이 볼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의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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